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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으로 살고 있고 살아갈 것이다”선주민의 이주지원운동에 관한 단상 (3)
최정의팔 대표 | 승인 2023.04.14 14:07
▲ 서울 중구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 통번역지원사 나랑토야씨 ⓒ연합뉴스

3.8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8회 한국여성대회를 지나고나니 한국에서 이주여성의 삶의 자리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문화가정이라는 주제로 여러가지 사업이 진행되고 다문화사회가 화두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나랑토야의 “몽골에서 왔습니다. 남편 아닌 저에게 집중해주세요”라는 글이 제 마음에 다가옵니다. 몽골에서 한국으로 온 이주여성 나랑토야는 다문화가정보다는 이주여성이라는 칭호가 마음에 든다고 하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나는 그저 이와 같은 소개말이 더 마음에 든다. 다문화 가정이라고 소개하고 난 뒤에는 '나'에 대해 묻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나에 관한 질문 대신, 남편이 몇 살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잘해주는지를 묻는다. 이어서 아이가 몇 명인지, 몇 살인지, 한국어를 잘하는지 묻는다.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라는 여성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에서 한 여성으로 살고 싶을 뿐인 나랑토야는 누군가의 아내 혹은 엄마로서 한국과 연결되어 머무르는 사람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시민 그 자체로 살고 싶다며 다음과 같이 호소하고 있습니다.

““시민 그 자체로 살고 싶다”라는 ‘바람’이 아닌 “시민으로 살고 있고, 살아갈 것이다”라는 확신의 소개를 하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의 인종차별이, 성차별이 사라져야 한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불안한 삶의 여정에서 위태롭게 버틸 수밖에 없는, ‘존재주권’을 상실한 이주여성 삶의 골조를 만드는 한국 정부의 성인종차별적인 정책을 직면하고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나랑토야 같은 이주여성이 한국에서 한 시민으로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또 이를 위해 선주민 이주여성 지원단체들이 해야 할 일을 무엇일까요? 여성이 아닌 남성이, 더구나 이주민이 아닌 선주민인 제가 이주여성문제에 대해서 갖는 한계가 너무나 뚜렷합니다만, 그래도 이주여성운동이 전체 선주민운동에 시사하는 점을 찾고자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설립자인 한국염 님의 저서 《우리 모두는 이방인이다》를 참조해서 저의 단상을 게재합니다.

지난번 단상에서부터 계속 지적했듯이 대한민국 정부의 이주민 정책은 근본적으로 한국의 저출산· 고령화사회를 대비하기 위한 인력 수급정책입니다. 정부는 이주노동자를 부족한 일손 해결을 위한, 그리고 결혼이주여성을 출산과 돌봄 노동을 충당하기 위한 존재들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국제결혼중개업체 알선에 의한 국제결혼을 ‘인신매매성’이라고 반대할 때 국제결혼 중개업자들이 국가가 직접 나서서 못하는 국제결혼을 알선함으로 국가의 출산정책에 공헌하고 있다고 항의했습니다. 이주여성 운동 차원에서 보면 제대로 된 출산정책을 추진하려면, 중개업체 알선에 의한 국제결혼이 아니라, 이민을 받아들이거나, 노동 이주를 통로로 입국한 여성들이 한국인과 결혼을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주여성인권운동은 이주여성들의 삶 현장, 즉 한국 법과 제도의 성차별성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초기에 인권피해를 입은 이주여성들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주었습니다. 이주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인권침해를 방지하고 폭력피해 이주여성을 위한 법과 제도가 필요해 정부가 이주여성을 위한 시스템을 만들도록 하였습니다. 이 법과 제도가 인권적으로 잘 가동되도록 체류권을 비롯, 국적취득권, 문화권, 시민권 등 이주여성들이 누려야 할 권리 획득을 위한 권리운동으로 나아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진정한 이주여성인권운동은 당사자들이 하는 것이라는 ‘당사자 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이주여성인권운동은 대변자의 역할과 더불어 당사자 이주여성들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한 역량강화사업을 전개하였습니다. 인권피해자나 복지 지원대상으로 자리매김되어 있는 이주여성들이 시민으로서 선주민과 동등한 사회구성원이 되기 위한 역량강화에 역점을 두었습니다.

이주여성운동 방향은 선주민들이 만들어놓은 다문화 프레임이 아니라, 이주여성 당사자들이 스스로 선주민 여성들과 같이 소통하고 융합하는 다문화사회를 열어가는 것입니다. 인권운동은 옆에서 ‘더불어 함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사자가 해야 합니다. 당사자가 해야 더 진정성이 있고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주여성운동의 경우 당사자들이 나서서 자신들의 인권문제를 말하기에는 한계가 너무 많습니다. 한국에 체류할 수 있는 권리가 본인에게 있지 않고 남편을 비롯한 한국인 가족에게 있는 상황에서, 추방의 위협 앞에서 이주여성들이 홀로 자기 목소리를 내기는 어렵습니다. 체류권과 귀화의 권리가 이주여성 본인에게 보장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주여성들의 목소리를 기대하기 어렵고, 그것 자체가 이주여성에게 또 하나의 폭력일 수 있습니다. 이주여성이 소리를 낼 수 있는 그 날까지 선주민이 이주여성의 소리를 대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주여성운동에서 ‘당사자성’이 부인해서는 안 됩니다. 이주여성 당사자들이 역량강화를 통해서 지도력을 갖추어 인권침해를 받은 이주여성을 지원하는 이주여성 당사자 인권활동가가 이미 곳곳에서 배출되고 있습니다. 자국민 여성들에게 삶의 질을 높혀가는 이주여성공동체 리더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또한, 이주여성 국회의원이 배출되어 이주민들의 인권향상에 이바지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이주여성지도력이 실험으로 끝나지 않도록 한국여성운동이 계속 이주여성지도력을 여성 세력화 이슈로 추동하고 강화하는 일에 함께하는 자매애가 필요합니다.

이주여성운동에서도 당연히 주변부에 있는 이주여성들을 중심부에 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부 이주여성들을 변방에서 중심부로 진입시킨다고 해서 이주민들이 살기 좋은 세상으로 변하지 않습니다. 변방성을 놓쳐버리면 설사 이주여성들이 중심으로 나간다고 해도 자기 이권을 추구하는 또 하나의 세력이 될 뿐, 사회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이주여성을 ‘변방에서 중심으로’ 보내는 것에 무게 축을 두기보다는 선주민들이 변방에 선 이주여성들과 함께할 수 있도록 선주민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에 더욱 힘을 실어야 합니다.

변방에 있는 이주여성에게 주체성을 갖도록 세우고, 중심부에 있는 선주민 여성운동은 이주민이 가진 ‘변방성’을 일깨워 한국 사회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선주민 중심에서 중심을 주변화하고, 변방에서 있는 이주여성 삶의 자리를 중심화하는 운동을 해야 합니다.

이주여성운동은 성문제만이 아니라 인종차별문제도 핵심으로 다뤄야 합니다. 한국 인권운동 출발이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다”는 세계 인권선언 제1조에 기초하고 있다면, 이제는 “피부색, 성별, 민족, 종교, 언어, 국적, 의견이나 신념이 다를지라도 평등하다.”라는 2조를 실현해야 합니다. 한국 여성운동은 여성운동가 내면의 인종주의를 극복하고 변방에 있는 선주민 인권만이 아니라 이주여성 인권도 끌어안고 가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이주여성’은 내 안의 인종차별을 들여다볼 수 있는 반면 거울이기도 합니다.

“이주민이 잘사는 사회가 되면 일반인도 잘사는 사회가 된다.”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이 아직도 통과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법이 일부 몰지각한 기독교인들에 의해 극심한 반대를 받고 있어서 기독교인인 저로서는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동성애가 성서에 어긋난다는 왜곡에서 벗어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한국교회가 차별금지법이 조속히 통과되도록 협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주민에 대한 차별적 제도나 시선이 없어지기를 소망합니다.

한국에서 가장 소외당하는 이주민이 차별받지 않고 잘 사는 사회라면 선주민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당연히 선주민도 차별 없이 살 수 있겠지요. 이주민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을 때, 우리가 그를 형제, 자매로 받아들여 이주민과 선주민 사이에 모든 차별과 갈등이 소멸하는 그 순간이 바로 인간을 존중하는 살기좋은 세상이 됩니다. 그리하여 선주민과 이주민 사이에 구별 없이 나랑토야가 3.8여성대회에서 강조했듯이 몽골에서 온 다문화가족 여성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한 시민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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