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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눈은 어디를 향해 있습니까“말씀이 풍성히 살아 있게 하십시오”(골로새서 3:1-4, 16-17)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3.04.16 21:39
▲ 세월호 참사 9주기를 사흘 앞둔 13일 오전 세월호 선체가 보존된 전남 목포시 달동 목포신항 철제부두에 노란색 추모 리본이 묶여 있다. ⓒ연합뉴스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성도는 언제, 어디서나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나의 외부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완전하게 통제하려는 헛된 욕망을 내려놓고 이미 내 안에 주어진 완전한 평안을 찾고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지난 부활 주일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이 오늘날 성도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순히 성도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죽음이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절로서 세상이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도록 움직이게 하는 사건이요, 성도가 지금보다 더 숭고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성도는 개인적인 안위를 향한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꿈이 나의 꿈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가 걸어가신 길이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용기 내지 못해 망설이며 우두커니 멈춰 있는 성도, 자신의 공간에만 맴돌고 있는 성도에게 ‘자, 이제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지’ 말씀하시면서 세상을 향해 성도의 등을 떠미는 사건입니다.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살아난 이들이 종종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성도의 삶이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함께 경험한 성도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많은 성도(목사를 포함)들이 신앙생활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왔던 자신의 삶만을 더 강화하려고만 하니 안타까울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주일이기도 하지만 세월호 참사 9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4월이 되면 자연스럽게 세월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그 날의 사건은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특히 성도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자신의 신앙이 변하게 되었다는, 변할 수밖에 없었다는 고백을 자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포기할 수 없는 약속>이라는 책에 나오는 한 집사님의 고백을 읽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매번 전쟁을 치르고 아픈 몸과 마음을 이끌고 주일날 교회에 가면 여전히 허공을 치는 설교와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감사 찬송 거룩 존귀 영광’ 레퍼토리를 들어야 했다. 교회 안과 밖의 온도 차이와 괴리감 때문에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가슴을 치면서 예배 도중 밖으로 나오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 나와 우리 가족은 세월호 참사 3주기 무렵 교회를 떠났다. 남편이 시무장로였기에 많은 고민과 망설임이 있었다. 그냥 교회가 아니었다. 학생부 때부터 36년간 모든 것을 교회 중심으로 살았던 우리에게 그곳은 젊음과 추억과 땀과 기쁨과 슬픔이 고스란히 배인 삶 자체였다. 천국까지 동행할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친척보다 더 친하게 지내며 소중히 여기던 교회 식구들이었다. 그런 곳을 우리는 떠났다.

세월호를 겪지 않았다면, 아니 팽목에 가지 않았더라면, 광화문에 가지 않았더라면, 유가족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여전히 그곳에 안주하며 눈먼 상태로 신앙생활하고 있었을 것이다.

광화문에서 보낸 5년여 시간은 물리적인 시간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큰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난 기간이다. 신앙에 대한 관점이 가장 크게 달라졌는데, 전에는 추상적이었다면 지금은 아주 실제적인 신앙으로 변했다.

전에는 내 신앙이 온통 하나님께만 집중되어 있었다면 지금은 하나님보다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사람에게 집중 된 것 같다. 믿음, 거룩, 영광이라는 단어보다도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 공평, 복음의 공공성이라는 말에 더 마음이 간다.

… ‘세월호는 당신에게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세월호는 내 삶이고 신앙입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내 신앙이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 《포기할 수 없는 약속》, 231-233.

이러한 신앙의 변화, 삶의 변화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위에 있는 것들을 추구하십시오.’의 말씀이 실제화된 모습입니다. 본문 1~4절을 읽겠습니다.

“1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심을 받았으면, 위에 있는 것들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2 여러분은 땅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지 말고, 위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십시오. 3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4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에 싸여 나타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방문해 보지 않은 골로새 교회에 편지를 썼습니다. 이 교회에 바울이 특별히 편지를 쓴 이유는 ‘그릇된 가르침’으로 인해 성도들이 혼란에 쌓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보다 앞서 있는 본문에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6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그분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7 여러분은 그분 안에 뿌리를 박고, 세우심을 입어서,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을 굳게 하여 감사의 마음이 넘치게 하십시오. 8 누가 철학이나 헛된 속임수로, 여러분을 노획물로 삼을까 조심하십시오. 그런 것은 사람들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를 따라 하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골로새서 2:6-8)

골로새서 2:20-23 “20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서 세상의 유치한 원리에서 떠났는데, 어찌하여 아직도 이 세상에 속하여 사는 것과 같이 규정에 얽매여 있습니까? 21 "붙잡지도 말아라. 맛보지도 말아라. 건드리지도 말아라" 하니, 웬 말입니까? 22 이런 것들은 다 한때에 쓰다가 없어지는 것으로서, 사람의 규정과 교훈을 따른 것입니다. 23 이런 것들은, 꾸며낸 경건과 겸손과 몸을 학대하는 데는 지혜를 나타내 보이지만, 육체의 욕망을 억제하는 데는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성도들을 유혹하는 가르침이 있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들의 전통’, ‘세상의 유치한 원리’, ‘사람의 규정과 교훈’에서 떠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에서도 바울은 반복해서 말합니다. ‘위에 있는 것들을 추구하십시오.’, ‘위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십시오.’

‘위에 있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공간적으로 하늘 위에 있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위에 있는 것이란 하나님께 속한 것,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것을 말합니다. 즉, 말씀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입니다.

위에 있는 것들을 추구하고 또 생각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위에 있는 것들은 ‘이것이다!’라는 정답을 우리로서는 다 알 수 없기에, 위에 있는 것들에 초점을 맞추면서 삶에서 끊임없이 추구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제가 전도사 시절에 사역했던 한 교회에서 저는 예배를 드려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저의 눈은 담임목사님을 향해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담임목사님이 손가락 하나를 까딱하면, 그 손가락이 까딱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파악해서 재빨리 움직여야 했습니다. 그 손가락은 담임목사님의 음향 볼륨을 올리거나 조절하는 의도로 사용되기도 했고, 당장 찾아가야 할 성도를 지목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식당의 노래, 조명을 조절해야 할 때가 있었고 때로는 방송실에서 ppt를 제때 넘기지 못하고 있으면 방송실로 뛰어가서 ppt를 넘겨야 하기도 했습니다. 만약 그 날 손가락 하나를 놓치게 되면 담임목사님께 부교역자들은 크게 혼이 났습니다. 공 예배가 있는 날, 특히 주일은 아주 긴장감 넘치는 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추구하고, 생각하라’는 바울의 말을 읽을 때면 방금 말씀드린 과거가 떠오릅니다. 하나님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생각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추구하는 삶은 마땅히 성도가 살아야 할 삶이 되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구체적으로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추구하는 삶이 무엇인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5절 이하의 말씀을 통해 설명했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과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었습니다.

“5 그러므로 땅에 속한 지체의 일들, 곧 음행과 더러움과 정욕과 악한 욕망과 탐욕을 죽이십시오. 탐욕은 우상숭배입니다. 6 이런 것들 때문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내립니다. 7 여러분도 전에 그런 것에 빠져서 살 때에는, 그렇게 행동하였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최초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과적입니다. 이익을 보겠다고 규정을 어기고 물건을 과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불법을 눈감아 주었기 때문입니다. 급선회로 과적 된 화물이 한쪽으로 쏠려 부력과 복원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배가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악한 욕망’과 ‘탐욕’은 나 자신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나의 이웃들에게까지 피해를 줍니다. 그리고 이런 욕망과 탐욕은 하나님의 뜻을 찾지 못하게 하는 눈가리개가 됩니다. 이런 악한 욕망과 탐욕은 언제라도 우리 안에서 고개를 들고나오려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살아 있게 하십시오. 온갖 지혜로 서로 가르치고 권고하십시오. 감사한 마음으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여러분의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십시오. 17 그리고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에게서 힘을 얻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위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고, 추구하는 삶은 계속해서 성도의 삶에서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실천함으로 말씀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살아 있게 하며, 말씀이 나와 너, 나와 우리의 삶을 어떻게 풍성하게 하는지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공허한 말씀이 선포되는 강단, 하나님의 말씀이 구체적으로 실현되지 않는 공동체와 성도의 삶은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자기 만족의 교회요, 썩은 내가 나는 교회일 뿐입니다. 우리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하게 살아 있나요? 저와 성도님 각 개인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하게 살아 있나요? 

앞서 한 집사님의 고백을 말씀드렸습니다. 추상적인 신앙에서 아주 실제적인 신앙으로 변했다고 말입니다. 우리 초도제일교회의 신앙도 아주 실제적인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살아 있는 말씀을 풍성하게 경험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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