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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 착한 사람이 되길 바라시는 것일까“모세의 온유함”(민수기 12:1-6)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3.04.23 21:25
▲ Marriage of Moses and Zipporah, Simon Henri Thomassin, after Charles Le Brun (1709) ⓒRijksmuseum.nl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평안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 놓여있을지라도 누릴 수 있는 성도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여러 상황에 흔들리게 될 때마다 내 안에 이 평안이 있음을 기억하시며, 평안을 선택하고 누릴 수 있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부활주일과 부활절 절기를 보내며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과 예수님 부활의 참 의미에 대해 매주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은 사람들 안에 있었던 추악한 욕망과 어두움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확인되는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이처럼 드러난 우리의 어두움을 끌어안으심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해 새 사람,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성도도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 주셨던 거룩한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삶,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과는 다른 방향의 삶을 향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성도를 향한 응원이자, 등 떠밀어 주심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집니다. 가치의 전복이 일어납니다. 새로운 목적이 생깁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오며 중요하게 여겼던 것들이 중요하지 않게 되고, 무가치하게 여겨졌던 것들이 오히려 중요하게도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빌립보서 3:7-9a에서 “[그러나] 나는 내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 때문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 모든 것을 오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성도는 더 높은 차원의 삶의 태도 즉 거룩한 삶을 고민하며 실천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아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마5: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5:44)

이런 말씀을 하신 뒤 예수님은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그래야만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것이다.”(마5:45a),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마5:48)

성도에게 삶의 목적이 새롭게 생겼습니다. 완전함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런 완전함을 회복하는 여러 길 중에 하나의 길인, 온유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온유함은 성도가 마땅히 가져야 할 삶의 태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또 말합니다. 여러분은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시는 대로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이 바라시는 것은 육체를 거스릅니다. 이 둘이 서로 적대관계에 있으므로,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갈5:16-17)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령의 열매를 맺어 육체의 욕망을 따라서가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막을 법이 없습니다.”(갈5:22-23)

베드로전서 3:3-4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머리를 꾸미며 금붙이를 달거나 옷을 차려 입거나 하여 겉치장을 하지 말고, 썩지 않는 온유하고 정숙한 마음으로 속 사람을 단장하도록 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값진 것입니다.”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온유함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전적인 의미의 온유는 “성격, 태도 따위가 온화하고 부드럽다.”입니다. 성경에서도 이런 의미로 온유에 대해 말하고 있을까요? 성격 좋은 사람들을 온유하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함에는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모세가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그러자 모세가 실수할 날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미리암과 아론이 즉시 모세를 비방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2a)

미리암과 아론은 모세의 형제들입니다. 누나이고 형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모세의 지도력에 이의를 제기하고, 흠집을 내며 본인들도 모세처럼 되고 싶다는 욕망을 드러냈습니다. 이때 모세는 어떻게 행동합니까? 오늘 본문에서는 어떻게 행동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대신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모세가 형과 누나가 자신을 대적하며 일어섰음에도 성격 좋게 물러섰다는 표현일까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는 의미일까요? 민수기의 다른 본문에도 이런 비슷한 상황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세는 끊임없이 지도력에 대한 시기와 질투, 의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14:1-5 “1 온 회중이 소리 높여 아우성쳤다.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다. 2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다. 온 회중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차라리 우리가 이집트 땅에서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아니면 차라리 우리가 이 광야에서라도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3 그런데 주님은 왜 우리를 이 땅으로 끌고 와서, 칼에 맞아 죽게 하는가? 왜 우리의 아내들과 자식들을 사로잡히게 하는가? 차라리 이집트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4 그들은 또 서로 말하였다. ‘우두머리를 세우자. 그리고 이집트로 돌아가자.’”

모세의 헌신과 희생, 노력 등은 잊어버리고 그저 자신을 향한 원망으로 가득한 회중을 향해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5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또 다른 장면이 있습니다. 민수기 16:1-4 “1 이스할의 아들 고라가 반기를 들었다. 그는 고핫의 손자이며 레위의 증손이다. 엘리압의 아들인 다단과 아비람, 그리고 르우벤의 손자이며 벨렛의 아들인 온도 고라와 합세하였다. 2 그들이 모세를 거역하여 일어서니,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이백오십 명의 남자들이 합세하였는데, 그들은 회중의 대표들로 총회에서 뽑힌 이들이었으며, 잘 알려진 사람들이었다. 3 그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대항하여 모여서 항의하였다. ‘당신들은 분에 넘치는 일을 하고 있소. 온 회중 각자가 다 거룩하고, 그들 가운데 주님께서 계시는데, 어찌하여 당신들은 주님의 회중 위에 군림하려 하오?’”

시간이 지나자 또 다른 누군가가 이번엔 당을 지어 모세의 권위에 도전을 했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 이런 상황을 모세는 경험합니다.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4 모세가 이 말을 듣고 땅에 엎드려 기도하고 나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모함하고, 비방한다면 성도님들은 어떤 반응을 하시겠습니까? 내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면 가해자에게 어떠한 방식으로든 태도를 보이지 않겠습니까? 어떻게든 내 손으로 복수하고자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모세가 제일 먼저 한 행동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향해 엎드린 것입니다.

시편의 고백들처럼 모세도 하나님께 엎드려 이렇게 기도하지 않았을까요? “1 주님,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나의 신음 소리를 들어주십시오. 2 나의 탄식 소리를 귀 담아 들어 주십시오. 나의 임금님, 나의 하나님, 내가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3 주님, 새벽에 드리는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새벽에 내가 주님께 나의 사정을 아뢰고 주님의 뜻을 기다리겠습니다.”(시5:1-3)

잠언에 이런 말씀들이 있습니다. “다툼을 멀리하는 것이 자랑스러운 일인데도, 어리석은 사람은 누구나 쉽게 다툰다.”(잠20:3), “‘악을 갚겠다’ 하지 말아라. 주님을 기다리면, 그분이 너를 구원하신다.”(잠20:22), “노하기를 더디 하는 사람은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성을 점령한 사람보다 낫다.”(잠16:32), “좀처럼 성을 내지 않는 사람은 매우 명철한 사람이지만, 성미가 급한 사람은 어리석음만을 드러낸다.”(잠14:29), “미련한 사람은 쉽게 화를 내지만, 슬기로운 사람은 모욕을 참는다.”(잠12:16)

모세는 ‘자신을 향해’ 비방하고, 원망하고 심지어 죽이려 하는 이들에게 직접 대항하지 않았습니다. 잠언의 말씀들처럼 더디 성내고, 참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비난할 때는 모세도 화를 내었지만, 자신을 향한 비난과 모함에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하나님께 엎드렸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온유’로 번역된 히브리어 ‘아나브’는 ‘대답하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동사 ‘아나’에서 파생한 단어입니다. 당시 사회에서 대답하는 사람은 종을 의미했습니다. 종은 질문할 수 없고 오로지 주인에게만 질문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에 나온 ‘온유한 사람’이란 나의 뜻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비움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는 성격 좋은 사람이 온유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자가 온유한 사람입니다.

성도님들께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한 주간 이상중 목사는 평안을 누리는 것에도 게을렀고, 이런 온유함과도 거리가 먼 삶을 살았습니다. 제 안에 분노가 가득 한 채로 살면서 하나님께 먼저 엎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내 손으로 내가 당한 일을 갚아줄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이런 분노와 고민 가운데 산 이유는, 지난 주 중에 있었던 제77회 강원노회 시에 짧은 세월이지만 지금껏 살면서 겪어보지 못한 수치와 모욕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 기억 자체는 평생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야고보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두십시오. 누구든지 듣기는 빨리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고, 노하기도 더디 하십시오. 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더러움과 넘치는 악을 모두 버리고, 온유한 마음으로 여러분 속에 심어주신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능력이 있습니다.”(약1:19-21)

저는 한 주간 이 말씀에 반대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노하기는 빠르고, 노함으로 오히려 제 안에 더러움과 악이 쌓여만 갔습니다. 하나님께 전혀 묻지 않고, 나 자신만을 주장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니 삶이 온전할 리가 있겠습니까? 몸에도 바로 반응이 왔습니다.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감춘다고 하면서도 드러났습니다.

하나님께 이 모든 상황을 온전히 맡기고, 성도로서 살아야 할 거룩함을 잊지 않았다면 한 주간의 삶이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지 못하고, 육체의 욕망에 따라 살았습니다. 우리의 삶이 온유하지 못할 때, 스스로를 고통과 어두움, 어려움 속으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모세의 온유함, 즉 하나님께 먼저 엎드리는 삶을 성도는 반드시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세를 대적한 미리암과 아론의 반란은 오히려 모세의 권위를 더욱 공고히 하게 되는 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에 개입하셔서 하나님의 방식으로 바로잡으셨습니다. 자신이 당한 일에 대해 스스로 갚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린 모세에게 응답하시고 삶을 인도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은 마찬가지로 응답하실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께 엎드리고 기다리는 온유함을 통해 성도가 마땅히 이루어 가야 할 온전함을 회복하게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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