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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위해, 패하기 위해, 하는 전쟁“그러나, 그러나!”(출14:15-18, 계1:17-18, 눅24:9-12)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 승인 2023.04.24 22:42
▲ Nicolas Poussin, 「The Crossing of the Red Sea」 (1633–34) ⓒWikipedia

1.

할렐루야. 우리는 기쁜 부활을 맞이했습니다. 함께 인사나눴는데요. 두 가지로 인사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 주님 부활하셨습니다’ 그랬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먼저 알고, 기뻐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만 그쳐 버리면 안 됩니다. ‘주님 부활하셨구나, 와, 대단하다. 위대하다. …’ 하고 남 일 보듯이 해서는 안 됩니다.

간혹가다가 플래카드나 현수막에 ‘축 부활’ 이렇게 적힌 게 보입니다. 인사하면서 ‘부활 축하합니다’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어떻습니까? 이상하지 않으십니까? 축하는 ‘남의 일을 두고 좋은 일이 있을 때,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건네는 인사’입니다. ‘결혼한다며? 축하해! 예쁜 딸 났어? 축하해! 아들 취직했다면서? 축하해!’

그런데 자기 일에 자기가 축하하는 거 봤나요? 결혼식장에서 신랑이 신부에게 ‘축하해’ 그러나요? 생일상 앞에 놓고 생일 맞은 사람이 ‘축하해’ 하나요? 축구게임에 이겨놓고는 같은 팀 선수끼리 ‘축하해’ 그러나요? 농담처럼 그런 말을 하기는 하지만, 정상적인 표현은 아닙니다.

‘좋은 뜻으로 하는 말인데 뭘 그렇게 까다롭게 굽니까?’ 할 수도 있습니다만, 두 번째 인사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하는 겁니다. ‘부활 축하합니다. 축 부활.’ 부활은 그렇게 남의 일로 멀찍이서 축하만 해서는 안 됩니다. 부활은 내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 부활시키시고서 ‘잘 봤지? 나 이렇게 대단해! 다들 축하해 줘.’ 그러시지 않았습니다. ‘너희들도 이렇게 부활한다. 내가 너희를 부활시킬 것이다. 부활을 소망하고 부활생명을 받아 누려라!’ 하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약속을 믿고 소망합니다. 그것이 부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활을 다만 남의 일로만 ‘축하합니다’할 것이 아니라, ‘우리도 부활했습니다. 부활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나도 부활하는 큰 은혜를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2.

오늘 계시록의 말씀을 보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오십니다. ‘내가 세상 모든 권세를 쥐고 있다. 죽음까지도 이기고 부활했다. 무서워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러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보고서 주님의 부활에만 집중하고, 그 권세에만 집중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말씀의 중심은 ‘나는 한 번 죽었다 살아났다’는 겁니다. 그냥 ‘살아났다’는 것이 포인트가 아니라. ‘죽었다 살아났다’는 겁니다.

계시록 전체 말씀이 ‘박해에도 버티고 버텨서 절대로 죽지 말자’ 하는 것 같지만, 깊이 묵상해보면 오히려 ‘죽자’ 하는 겁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데, ‘나는 안 죽을래’ 하고서 괜히 버티지 말고, 그 죽음 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확 죽어버리자는 겁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마침내 다 이기시고 새 하늘 새 땅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겁니다. 새 하늘 새 땅의 핵심은 주님이 살아났다는 데에 있고, 주님이 살아나셨다는 것은 주님이 죽으셨다는 데 그 핵심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죽지 않고 살려고만 하니까, 죽는 것도 뭔지 모르고 사는 것도 뭔지 제대로 모릅니다. 우리는 죽는다는 것을 철저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이 하신 말씀 ‘나는 죽었다,’ 그 말씀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주님은 왜 죽었는가? 어떻게 죽었는가? 그 죽음의 의미는 뭔가? 그 죽음을 예수님은 탄식했는가? 기뻐했는가? 열망했는가? 혹은 회피하려고 했는가? 예수님은 어떠했고, 나는 어떠한가? 이 죽음을 철저하게 묵상할 때, 오늘 부활의 참 의미를 알게 됩니다. 부활은 죽음의 극복인데, 무엇을 극복하고 이겨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3.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바다 앞에 있습니다. 출애굽해서 나오긴 했는데, 이집트 군대가 쫓아오고 있습니다. 모세에게 달려가서 우리를 살려내라고 난리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백성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홍해바다 사건은 하나님의 구원사건입니다. 그 구원사건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이해하느냐,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모습을 결정짓습니다. 이집트와의 전쟁에서 이긴 것이라고 생각하면 하나님은 전쟁의 신이 됩니다. 노예 생활에 대한 징벌과 복수라고 생각하면 하나님은 잔인하고 이기적인 복수의 신이 됩니다.

아니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풍요로운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다. 우리가 그래서 살게 되었다고만 생각하면 하나님은 물질의 신이 됩니다. 어떤 마음으로 어떤 신앙으로 하나님을 생각하느냐가 우리 신앙을 결정짓는 것입니다.

지금도 세상에 소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하는 짓을 보면, ‘짓’이라고 말해서 죄송합니다만, 그 하는 짓들을 보면 도대체가 어디가 그리스도인인지 모를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부끄러워하기라도 하면 다행이지만, 오히려 자랑스럽게 ‘나 하나님 믿어, 내가 믿는 하나님이 나한테 이렇게 해주셨어. 이게 하나님이 주신 복이야. 당신들도 이 복을 받아봐’ 이러고 있을 땐, 참 기운 빠지고 허탈해 집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홍해 사건의 의미가 뭐냐? 하는 거죠. ‘이집트 사람이 군대가 쫓아오는데, 그거 그놈들이 맘대로 쫓아오는 게 아니고, 내가 쫓아오게 한 거야! 이집트 군대가 바다속에서 전멸할 건데, 그거 자연재해도 아니고, 우연도 아니고, 인간들 사이에 힘겨루기 결과도 아니고, 내가 이 하나님이 처벌한거야!’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세상 모든 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하나님이 진행하시고,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일이다. 다 내가 하는 것이다. 내가 주님이다! 하는 선언입니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기쁜 것도 슬픈 것도, 아픈 것도 건강한 것도, 다 나의 권세 아래에 있다. 그러니 뭐다? 주님을 인정해라. 하나님을 인정해라!

출애굽 이야기에서 첫 요구가 바로 그거 아닙니까? 하나님을 예배하게 해라.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겠다. 그게 안 되니까 결국 출애굽까지 나오게 된 겁니다.

4.

그런데 오늘 홍해바다 이야기가 왜 나온 겁니까? 우리 죽는 이야기 했잖아요? 죽는 것 싫어하니까 그래서 죽지 않으니까, 다시 사는 것도 제대로 모른다고 했지요? 그 모든 원인에 바로여기에 있는 겁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나’를 붙들고 있을 때, 포기하지 않을 때, 우리는 죽지 않는 겁니다. 죽음을 부정하는 겁니다. 내가 죽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요. 죽어야 그 너머를 알게 됩니다. 계시록의 예수님이 ‘내가 온 세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안다. 알파와 오메가다’ 하시는데, 그냥 아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죽어봤기에 아는 겁니다. 죽어서, 제대로 죽어서, 그렇게 나를 죽이고 내 안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순종하니까, 하나님의 권세가 내 권세가 되고 그 주권으로 온 세상을 다스리게 된 겁니다. 이게 부활의 신비고, 능력입니다.

부활은 무슨 불사조 다시 살아나듯이 신화 같은 SF이야기 같은 그런 허무맹랑한 공상이 아닙니다. 초월적 능력에 대한 환상이 아닙니다. 부활은 지극히 현실적인,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처절하고 적나라한 우리 이야기입니다. 지금 내 삶 속에서 죽어가는 그 모습 속에서, 죽지 않겠노라고 발버둥치고 있는 내가 있고, ‘그렇게 살려고 하지 말고 죽어라. 그런데 그렇게 비참하게 죽는 것 말고, 제대로 죽어라.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준 것처럼 그렇게 죽어라. 그러면 너도 예수처럼 그렇게 산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있습니다. 그 나와 하나님 사이의 영적전쟁입니다. 알량한 내 삶을 포기하지 못하는 나와 그런 나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려는 하나님 사이의 치열한 전쟁입니다.

우리는 영적전쟁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영적전쟁에서 승리합시다’ 그러죠. ‘세상과의 영적전쟁에서, 사탄과의 영적전쟁에서 승리합시다.’ 그렇게 말하는데요. 아닙니다. 진짜로 중요한 영적전쟁은 사탄하고 하는 게 아닙니다. 진짜 영적전쟁은 하나님하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기려고 하는 전쟁이 아니라, 지려고 하는 전쟁입니다. 야곱이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하던 그 전쟁입니다. 마침내 져서 절뚝거리게 되었을 때 비로소 솟아나는 아침 햇살을 맞이하게 되는 그런 전쟁입니다.

부활은 그렇게 치열한 영적전쟁에서 마침내 져서, 처참한 죽음 속으로 내 몰렸을 때, 그러나 그 죽음이 처참함이 아니라 은혜요 은총임을 알게 될 때, 문득 우리에게 찾아오는 궁극적인 구원입니다.

5.

오늘 누가복음 말씀 속에 제자들이 등장합니다. 무덤에서 천사를 만난 여인들이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해줍니다. 그런데 11절 말씀에 뭐라고 되어있나요? ‘그러나, 제자들은 어처구니 없는 말로 들었다.’

부활은 신비입니다. 은혜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신비와 그 은혜는 죽지 않는 사람에게는 결코 은혜가 아닙니다. 신비가 아닙니다. 이 땅에서 주님과의 영적전쟁을 치열하게 치르지 않는 사람, 그 전쟁을 거부하고서 내 맘대로 내 뜻대로 살아버리는 사람, 주님과의 전쟁을 기어이 이겨먹고 자기 고집대로 살고야 마는 사람, 그에게는 부활의 소식이 아무리 전해져도 복음이 아무리 들려와도 어처구니없는 말일 뿐입니다.

삼 년 간 주님을 따라다녔어도 정작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수많은 이적과 기적을 보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귀신이 쫓겨나가는 것을 봤어도, 정작 자기 삶 속에 주님이 임재하시는 이적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그래서 하나님과의 영적전쟁에서 마냥 이기고만 있다면, 부활은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그래도 그들은 여전히 제자입니다. 사도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교회를 지켜나가는 사람이라고 자부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세상을 향한 사도가 되고, 교회를 지켜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나 내가 죽지 않으면, 부활은 결코 우리 것이 되지 못합니다.

오늘 우리는 죽었습니까?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살았습니까? 아니면 죽지 않겠다고 끝까지 버티면서, 동시에 한편으로는 다시 살기도 하겠다고, 나는 그대로 두고서 그리스도더러 내 안에 있으라고 우기는 중입니까?

홍해가 갈라지고 다시 물이 온 땅을 덮을 때, 우리는 마른 땅에 있을까요? 바다 밑바닥에 있을까요? 마지막 날,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권세를 이기고 새 하늘 새 땅을 우리에게 주실 때, 우리는 그 새 하늘 새 땅에 있을까요? 저 깊은 곳 음부의 권세에 떨어져 있을까요?

절망적인가요? 그러나 절망하지 맙시다. 기회는 남아있습니다. ‘그러나’가 또 있습니다. 12절을 보니까, 어처구니없어하던 제자들 사이에서, 그러나, 베드로가 떨쳐 일어납니다. 달려갑니다. 그리고 무덤을 들여다봅니다. 일어난 일을 두고 이상히 여기기 시작합니다. 그의 마음에 영적전투가 시작된 겁니다. 어처구니없어하던 마음이 흔들리면서 하나님의 마음이 침투하기 시작합니다.

이 전투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베드로는 그 전투에서 하나님께 처참하게 패하고 장렬히 전사합니다. 그렇게 부활에 참여하게 됩니다. 부활을 누리고 부활을 살아가게 됩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썩어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부활의 아침, 주님과의 영적 전투에서, 우리 장렬하게 전사하고 죽읍시다. 그래서 마침내 주님 주시는 가장 큰 은혜를, 그 부활을 살아가는 우리가 됩시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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