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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해석과 교회사 속에 나타난 반대유주의본회퍼와 반유대주의 (1)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 승인 2023.04.24 23:22
▲ Stained glass depicting the legend of Jews stealing sacramental bread, in the Cathedral of Brussels. ⓒShutterstock/jorisvo

1.

반유대주의(Antisemitism)는 600만명 이상의 유대인을 학살한 독일 나치의 인종말살에서 그 절정에 다다랐지만, 그 역사적 뿌리는 성서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주목할 것은 독일에서의 유대인 학살이 미치광이 같은 히틀러와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서만 저질러진 끔찍한 범죄가 아니라는 점이다. 히틀러가 처음 의도한 것은 강제 이주였지 몰살까지는 아니었다. 전쟁이 시작된 후에야 유대인 정책을 종족 말살로 돌변시킨 것이었다.

그러나 유럽의 어느 나라도 유대인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고, 나치는 서방 강대국들이 유대인 이주에 협조적이지 않으며 그 누구도 유대인들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1) 서방 그리스도교 국가들은 600만명의 유대인 학살을 방조했다는 최소한의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서방국가들의 방조는 그리스도교의 반유대주의가 서구 문명의 주변부가 아니라, 그 중심부에 있다는 사실, 나아가 그 뿌리가 훨씬 오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2)

성서와 그리스도에 대한 해석 차이

그리스도교와 유대교의 적대적인 관계는 성서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유대인들은 신의 약속이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고 본 반면에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시작된 왕국에서 그 약속이 이미 실현된 것으로 해석했던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실패와 배신의 연속으로 보았고, 또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한 데서 배신의 역사가 절정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결국 그리스도론이 두 종교의 반목과 갈등의 근거가 된 것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할 수 없었는데, 까닭은 유대교가 죽임을 당하는 메시아에 관해서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고난 받는 예언자에 대한 개념은 있었지만, 그가 메시아와 동일시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고난 받는 메시아야말로 예언의 진정한 의미였다고 해석한 것이다. 메시아에 대한 해석의 차이를 넘어 갈등을 더 심화시킨 것은 그리스도인이 성전과 율법을 무효화했기 때문이다. 이방인 그리스도인의 할례문제도 중요한 갈등의 요인이었다.

이 두 집단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악화된 것은 유대전쟁(66-77년) 이후였다.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70년) 이후, 바리사이파 유대교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적대적이고 강경한 태도를 취했고,(3) 얌니야에서 85년 경 바리사이파 유대교는 ‘나사렛 사람들과 이교들을 곧 소멸하소서 … 저들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우시고 의인과 함께 기록하지 마옵소서’라는 기도문을 작성하였다.(4)

이로서 그리스도교와 유대교는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고, 교회는 유대교의 반그리스도교적 입장에 반유대교적 자세로 대응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유대인들이 ‘사탄의 무리’로 서술된다(2,9; 3,9). 바나바의 편지(약 113년)와 저스틴의 ‘유대인 트리포와의 대화’(약 150년 경)는 유대인들을 가장 악하고, 가장 불경건하고, 하느님의 저주받은 지상의 백성, 처음부터 사악한 천사에 의해 미혹 받은 자들로서 구약성서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탄의 백성으로 불렀다.

교회사 속의 반유대주의

이렇게 신학적으로 시작된 두 종교 간의 갈등은 콘스탄티누스 대제(272-337)에 의한 그리스도교의 국교화에서 제도화되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인 노예들에게 할례 주는 것을 엄격한 처벌규정을 두어 금지했다. 유대교로의 개종은 처벌대상이었으나, 유대교인이 그리스도교에로 개종하는 것은 훨씬 관용되었다.(5)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반유대주의는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부활절 절기를 규정하는 과정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유대인들이 예수를 살해함으로써 신을 모독하고 손을 더럽혔기 때문에 유대인의 관습에 따른 부활절 축제는 적합하지 않다고 거부함으로써 그리스도교의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가 정착되었던 것이다.(6)

박해받던 카타콤의 관용적인 종교가 배타적인 종교로 탈바꿈한 것이다. 테오도시우스 1세(378-395)가 제국을 통치하던 시절에는 이교도들과 이단의 신앙 및 관습은 불법적인 것이 되었고, 그들의 사원과 교회는 파괴되거나 몰수당했다.(7) 테오도시우스가 만든 법전은 유대인의 법적 신분을 강하게 억압했고, 뒤이어 중세까지 발전한 유대인들에 대한 부정적 관점의 기초를 놓았다.(8) 유대인들에 대한 이런 부정적 신화는 마침내 사회적으로 결합되어 독일 나치에 의한 인종말살적 반유대주의에 이르렀던 것이다.

미주

(1) 하워드 진, 《오만한 제국: 미국의 이데올로기로부터의 독립》, 이아정 역, 당대 2001, 152-153.
(2) 로즈메리 류터, 《신앙과 형제살인: 반유대주의의 신학적 뿌리》, 장춘식 역, 대한기독교서회 2001, 19.
(3) 데이비드 보쉬, 《변화하고 있는 선교》, 김병길, 장훈태 역, 기독교문서선교회 2000, 95.
(4) 데이비드 보쉬, 《변화하고 있는 선교》, 104.
(5) 알리스테어 키, 《콘스탄틴 대 그리스도》, 이승식 역, 한국신학연구소 1988, 144-145.
(6) Manfred Jacob, Das Christentum in der antiken Welt, Vandenhoeck & Ruprecht, Goettingen 1987, 184.
(7) 로즈메리 류터, 같은 책, 259.
(8) 데이비드 보쉬, 같은 책, 98.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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