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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까치밥으로 좀 남겨둔 겁니다”체육자료실 개방과 공 관리를 제대로 안 하는 이유, YG와 MJ의 이야기
홍경종 교사 | 승인 2023.04.27 01:51

고향이 고향인 줄도 모르면서
긴 장대 휘둘러 까치밥 따는
서울 조카 아이들이여
그 까치밥 따지 말라
남도의 빈 겨울 하늘만 남으면
우리 마음 얼마나 허전할까
살아온 이 세상 어느 물굽이
소용돌이치고 휩쓸려 배 주릴 때도
공중을 오가는 날짐승에게 길을 내어 주는
그것은 따뜻한 등불이었으니
... (이하 생략)...
- 송수권, ‘까치밥’

아직도 대부분의 학교는 체육 자료실이 주로 운동장에 있는 경우가 많다. 신축 학교들이야 일단 체육관을 기본으로 설계해놓고 짓기 때문에 자료실이 실내에 있는 경우도 있지만 여전히 체육자료실의 위치는 항상 운동장 구령대 밑의 어두침침한 공간,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봤던 늘 그 자리다. 그런데 체육 용구 관련된 업무를 맡고 있거나, 혹은 체육수업을 열심히 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알 것이다. 운동장 체육자료실에는 보통 운동장에서 수업할 수 있는 도구들과 각종 ‘공’을 보관하게 되는데 문제는 이 자료들을 관리하기가 꽤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자료의 관리는 넓은 의미로 체육자료실에 있는 전체 자료를 정리하고 관리하는 것이고 좁은 의미로는 ‘공’을 관리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우리에게 와 닿는 체육자료실 관리는 바로 ‘공’관리와 같은 의미로 통할 때가 많다.

YG와 MJ는 작년에 우리 반이었는데 학교가 끝나면 늘 운동장에서 친구들하고 놀고 있다. 거의 나 퇴근하기 전까지 그러고 있는데 항상 내가 퇴근하면서 집에 가라고 이야기를 해도 알겠다고 하고 더 노는 눈치다. 축구를 좋아하는데 클럽에 들어가서 선수로 뛸 만큼 잘하는 것은 아니고, 하지만 그냥 좋아한다. 보통은 4-5명이 골대 하나를 놓고 반코트처럼 축구하고 노는데 같이 놀 수 있는 인원이 별로 없는 경우에는 둘이서 서로 번갈아가며 패널티킥을 차고 논다.

보통의 아이들은 그 시간에 대부분 보육을 위해 공부방이나 학원을 전전하고 있을텐데, 이 친구들은 있을 곳이 학교뿐이다. 정 갈 데가 없으면 나 퇴근하기 전까지 그냥 교실에 있으라고 하는데 그건 싫은가보다. 아무래도 수업 이후로도 선생님께 뭔가 통제를 받는 것이 싫은 거겠지만. 이 친구들 외에도 학교에서 공차고 노는 그룹들이 많이 있다. 고학년들도 학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은 보통 몰려다니면서 소위 말하는 나쁜 짓 하고 다니는 경우들이 많은데 나는 이 친구들이 최소한 학교에 남아서 공 차고 노는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친구들이 가지고 노는 공은 체육 자료실의 학교 공이다. 갈 곳이 없는데 그저 운동장에 삼삼오오 모여휴대폰만 보고 있는 아이들이 조금 안타까워서 한 마디 건넸다.

“휴대폰은 맨날 집에서 보는거, 축구라도 좀 하고 있지 그래?”
“그런데 저희는 공이 없어요.”
“아... 그래? 그럼 학교 공을 빌려 줄게. 대신 쓰고 나서 꼭 자료실에 갖다 놓아야 한다.”

이후로 YG와 MJ는 수업이 끝나면 체육자료실에서 공을 꺼내 축구를 하고 놀았다. 그나마 학교 있는 동안만이라도 마음껏 움직이고 최소한 그 ‘얼어 죽을’ 휴대폰을 내려 놓는 것 같아 참 흐뭇했다. 그러나 그 ‘흐뭇함’도 잠시, 이들이 가지고 놀았던 공은 대부분 제 시간에 자료실로 가지 않았고 운동장에 방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대해 상당히 많은 시간을 들여 훈계하고 주의를 주어 YG와 MJ는 이 부분을 어느 정도 해결했다.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어쨌든 아이들에게 책임감을 가르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런데 문제는 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겨난다. 체육 자료실을 열게 되니 YG와 MJ외에도 운동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다른 아이들이 저마다 공을 꺼내서 놀기 시작했다. 물론 보기에는 참 좋았다. 갈 곳 없는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스포츠를 즐기는 모습. 하지만 사람이 많아지면 책임감도 그만큼 나눠지는 것일까. 그들이 놀고난 뒤에는 운동장 여기저기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공들이 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아, 이거 체육자료실 다시 닫아야 하나.’

그런데 또 YG와 MJ를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다. 얘들에게만 열쇠를 주고 “너희들만 꺼내고 바로 잠가야 돼.”라고 말하기도 어려운게 일단 문이 열리면 우루루 몰려드는 아이들을 제지하느라 또 싸움이 일어나고 문제가 더 커지는 경우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냥 자료실을 잠가버리면 다 해결될 문제지만 YG와 MJ를 위해서는 절대 그럴 수 없다.

그럼 다른 대안은 없을까 고민하다가 내린 조치는 점심시간에 잠깐 체육자료실을 개방하고 이후에는 잠그기, 단 모든 공을 회수하지 않고 운동장에 축구공 3개만 [방치]해 두는 것으로 조치했다. 이렇게 하니 운동장에 [방치]되어 있는 공 3개를 가지고 아이들이 충분히 놀 수 있었다. 다 놀고 공을 운동장에 버려두고 간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그 공들은 어디 안 가고 다음날 아침에 그 자리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체육자료실을 개방할 것이냐, 말 것이냐. 대부분의 학교가 이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지만 보통의 경우 ‘관리의 어려움’을 이유로 체육자료실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알고 있다. 체육자료실을 개방하면 좋은 점은 일단 아이들이 공을 자유롭게 쓸 수 있기 때문에 점심 시간, 혹은 일과 후 시간에도 체육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아이들이 많아지는 것인데 어쩌면 이 장점은 학교의 행정적, 관리적 입장에서 봤을 때는 크게 와 닿지 않는 것들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체육용구, 특히 ‘공’은 소모품이다. 늘 관리를 한다고 해도 자연 마모되는 것들이 있고, 담장을 넘어가는 것도 있으며 도난을 당하는 경우도 항상 있다. 이 소모품을 어떻게든 전량 회수하기 위해 관리하는 교사도 스트레스를 받고, 아이들도 공을 사용 못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까치밥’으로 몇 개를 남겨 놓는 것이 작은 것을 주고 큰 것을 얻는 지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홍 선생님, 운동장이 공이 늘 3개가 굴러다니는데 자료실 관리가 제대로 되는건가요?”
“아, 그거요, 까치밥으로 남겨 놓은 겁니다. 자료실 관리는 매우 잘 되고 있으니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홍경종 교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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