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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의 이유”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3.04.30 23:41
▲ 끝없는 인도와 사랑은 하나님의 결단이다. ⓒGetty Images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평안은 언제나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그렇기에 평안 누리기를 미루지 않아야 합니다.두려움과 불안, 걱정과 근심에 쌓여 있을 때 내 안에 이미 완전한 평안이 주어졌음이 생각나신다면, 그 즉시 다시 평안을 선택하고 누릴 수 있는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평안 누리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나의 불안과 두려움을 맡깁니다.”라고 말입니다. 어떤 형식의 말이 되었건 평안을 구하는 마음을 가진 기도라면 평안을 불러올 것입니다. 멀리 있다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도님들 안에서부터 충만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분노나 괴로운 일에 집착할 때 나도 좋지 않은 경험을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웃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가 깨어 있는 상태라면, 나의 형편과 처지를 하나님이 이미 알고 계심을 알기에 하나님께 모든 상황을 의탁함으로 분노나 어두운 감정 상태에서 빨리 또는 쉽게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런 어두운 감정에 휘둘리고 집착하는 것이 더 안 좋은 것은, 나에게 집착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뜻과는 점점 멀어지는 삶을 살게 되는 상황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도’로서 살아야 할 삶, 비록 좁은 길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방향의 길이 우리 앞에 펼쳐졌지만, 이 길을 향해 한 발자국도 나가지를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성도로 살기 위한 몸부림이 필요합니다. 있는 힘을 다하고, 온몸을 흔들어 부딪쳐야 합니다. 다행하게도 성경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성도로서 살기 위한 이런 몸부림을 혼자, 외롭게 하도록 하나님이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점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과 다른 본문들을 통해 성도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나와 함께 하시며 도우시는 하나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말씀을 듣고, 세상에 끌려다니거나, 상황에 끌려다니는 삶이 아니라 성도로서 살아가는 삶, 창조자의 삶을 결단하실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먼저 이사야의 본문입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총에 관해 선포하겠다고 고백합니다. “7 나는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변함없는 사랑을 말하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여 주신 일로 주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베푸신 은혜, 그의 긍휼과 그의 풍성한 자비를 따라서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크신 은총을 내가 전하렵니다.”

이후의 구절에서 이사야는 하나님이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셨는지에 대해 나열합니다. “9 주님께서는, 그들이 고난을 받을 때에 주님께서도 친히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천사를 보내셔서 그들을 구하게 하시지 않고 주님께서 친히 그들을 구해 주셨습니다. 사랑과 긍휼로 그들을 구하여 주시고, 옛적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을 치켜들고 안아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동적인 고백입니까? 하지만 이사야는 다음 구절 이하에서 왜 지금은 당신들이 이런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로부터 끊기게 되었는지를 설명했습니다. “10 그러나 그들은 반역하고, 그의 거룩하신 영을 근심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도리어 그들의 대적이 되셔서, 친히 그들과 싸우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반역합니다. 하나님의 길이 아닌 자신들의 길을 걷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함께 읽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읽은 이후의 본문에서 이사야는 다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요청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하게 됩니다.

“15 하늘 높은 곳에서 굽어 보십시오. 당신께서 사시는 거룩하고 화려한 집에서 굽어 보십시오. 당신의 열성과 권능은 어찌 되었읍니까? 그 연민의 정과 자비심은 어찌 되었읍니까? 억지로 무심한 체하지 마십시오.”(공동번역)

이사야의 긴 중보기도(62-64장)를 들은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이렇게 응답하셨습니다. “나는 내 백성의 기도에 응답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내 백성은 아직도 내게 요청하지 않았다. 누구든지 나를 찾으면, 언제든지 만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내 이름을 부르지도 않던 나라에게, 나는 ‘보아라, 나 여기 있다. 보아라, 나 여기 있다’ 하고 말하였다. 제멋대로 가며 악한 길로 가는 반역하는 저 백성을 맞이하려고, 내가 종일 팔을 벌리고 있었다.”(이사야 65:1-2)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이 절절하게 담겨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사야는 하나님이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는지 설명하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주님의 백성을 인도하셔서, 주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14b)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기 위해 이렇게까지 하셨고, 심지어 하나님을 배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라도 다시 기도하면 응답할 준비가 되어계셨다고 이사야서는 기록합니다.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포기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징벌하시고 한 싹의 풀도 자라지 않도록 씨까지 말려버려도 시원치 않을 이 백성을 끝까지 기다리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자녀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전과 같은 종의 삶, 피해자의 삶이 아니라 창조자의 삶,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14세기 영국의 위대한 여성 수도가이자 영성가인 ‘노리치의 줄리안’은 구약 성서에 수많은 하나님의 징벌이 기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심판에는 진노가 없다는 고백까지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분노를 해소하기 위한 심판이 아니라 다른 의도가 하나님의 행위 속에 담겨 있다는 고백입니다.

우리가 새벽기도 시간에 묵상 중인 민수기의 본문만 봐도 그렇습니다. 끊임없이 모세의 지도력에 불만을 품고 권력투쟁을 일삼았습니다. 심지어 모세의 형과 누나조차도 모세에게 대항했습니다.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했고, 죽이려고 달려들었고, 백성의 지도자 격인 이들은 당을 지어 모세에게 대항했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이 백성들의 하는 행동이 한심스러우셨으면 이런 말씀까지 하셨겠습니까?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언제까지 이 백성이 나를 멸시할 것이라더냐? 내가 이 백성 가운데서 보인 온갖 표적들이 있는데, 언제까지 나를 믿지 않겠다더냐?”(민수기 14:11) 온갖 표적을 보고도 하나님에게 등을 돌리는 이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어떤 조치를 하십니까? 이들을 심판하시고 쓸어버리는 대신 더이상 이스라엘 백성들이 권력투쟁을 하지 않도록 또한 불의의 사고로 생명을 잃는 일이 없도록 온갖 방법으로 도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참으시고, 다시 두 팔을 펴시어 돕고 계십니까?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자기들 멋대로 살아보라고 내버려 두시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가리키시는 삶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정한 평화와 생명을 보장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21장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 제자들에게 모습을 나타내십니다. 요한복음 21장은 예수님이 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는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제자들 가운데서 다른 두 사람이 한 자리에 있었다.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나가서 배를 탔다. 그러나 그 날 밤에는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2-3절)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놓으며 복음을 전했던 제자들의 모습과는 달리 이 본문에서는 복음과는 전혀 상관없는 예전의 삶으로 돌아간 제자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 예수님을 향한 열망과 믿음, 복음은 사라진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에서, 다시 고기를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옛 삶의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이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등장하십니다.

예수님은 등장과 동시에 물고기를 잡지 못해 실망하고 있는 제자들로부터, 조금 떨어진 육지에서 제자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십니다. 이때 자신들에게 말하고 계신 분이 예수님임을 눈치챈 제자 한 명이 이렇게 말합니다.

“저분은 주님이시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바다에서 자신에게로 왔을 때 물고기와 빵으로, 고기 잡이를 하고서 배고플 제자들을 먹이시며 “나를 따르라.”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이후에 제자들의 삶은 우리가 알다시피 옛 삶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멈추고, 다시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보여주신 좁은 길 그리고 새로운 길이자 생명의 길로 향하게 됩니다. 제자들은 다시 태어났고, 믿음과 복음을 위해 살다가 죽습니다.

제자들이 실패했다고 여기지 않으시고, 이들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안내해 주셨습니다. 심지어 사도행전에서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예수께서 고난을 받으신 뒤에, 자기가 살아 계심을 여러 가지 증거로 드러내셨습니다. 그는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여러 차례 나타나시고,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일들을 말씀하셨습니다.”(사도행전 1:3)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어받아 살아갈 수 있도록, 이어받아야 할 삶이 참 생명과 복 된 삶이기에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경험과 상상을 뛰어넘어 일하시며 인도하시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이시다!’, ‘주님이시다!’ 우리의 삶에도 이렇게 나와 함께 하시는 분이 계심을 확인하게 되는 은혜의 시간이 주어집니다. 때로 ‘이렇게까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나를 사랑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우리에게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사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했듯이 ‘하나님이 이렇게까지!’ 민수기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이렇게까지!’ 요한복음 본문을 통해 ‘예수님이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오늘도 인내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성도로서 살아야 할 길을 기꺼이 걸으십시오. 나의 두려움과 불안을 하나님께 맡기시고,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마저 하나님께 맡기시고 좁은 길로 걸어가십시오. 그 길에서 참 생명과 쉼을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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