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극 ⓒhttps://www.iclickart.co.kr/image/462229/update/week/18034/order/rate/start/1

“생명의 세계 자궁에서 영성의 태극적 수렴과 융합” 

김용복은 상생 생명학과 생명전기의 시각을 한국과 동아시아를 넘어서 태평양과 아프리카의 영성과 미국 대륙의 원주민공동체의 토착 영성과 연대하여 전 지구적으로 그 생명의 그물망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용복은 생명전기의 영성을 아시아, 아프리카, 미주의 토착 영성에서 발굴하고, 20세기의 흑인신학 운동과 여성신학 운동 등과도 서로 수렴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나아가서 모든 세계 종교 및 영성 전통들과 에큐메니칼 상호작용하여 21세기에 더욱 지배적이 될 서양의 테크노크러틱(technocratic) 기술 문명에 대응할 수 있는 대융합(Grand Convergence)을 주문한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김용복은 영문보다 한층 발전한 한글 제목을 부친다. 영문 제목 “생명의 세계자궁에서 영성의 대융합(Grand convergence of spirituality in the global womb of life)”에서 마지막 단어를 “태극적 수렴과 융합”으로 변경한다. 수렴과 융합으로 번갈아 사용하며 모호했던 “convergence”라는 개념에 “태극” 사상의 보다 명확한 우주론과 방법론을 도입한 것이다. 이것은 도의 신학의 입장에서 매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2) 물론 안동 심포지움에서 나는 태극사상의 신학적 중요성을 여러 번 강조했다. 여기서 그의 선토피아 생명학과 나의 도의 신학은 더욱 구체적으로 수렴하고 융합할 수 있는 “중추적 지점”을 갖게 된 것이다. 그의 사망으로 이 융합을 더욱 발전시킬 대화 파트너를 잃게 되어 매우 아쉽다.

오늘날 천문학은 블랙홀(Black Hall)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쏟아내고 있다. 모든 것을 빨아 드리는 블랙홀에서 우주의 모든 것이 수렴하고 융합된다. 태극은 이러한 블랙홀에 가장 근접한 이미지요 메타포이다. 태극은 이미지로는 블랙홀에 가깝지만, 또한 그것은 우주생성(cosmogony)의 동아시아의 주된 생성적 메타포이다. 신유교의 주창자인 주돈이(周敦頤, 1017-1073)의 태극도(太極圖)에 의하면 그 본질은 오히려 빅뱅(Big Bang) 우주론에 가깝다.(3) 태극도의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 곧 무극이 태극이라는 첫 구절에 현대 천문학 우주론을 대입하면 블랙홀이 빅뱅이 되는 우주생성을 의미한다고 추론할 수 있다.

태극은 음(陰)과 양(陽), 정(靜)과 동(動), 이(理)와 기(氣)로 나누어지지만, 그 목적은 서로 수렴하고 융합하여 만물을 생성하고 생명을 잉태하는 데 있다. 그리하여 창조되는 화수목금토(火水木金土)의 오행(五行)은 서로 상극과 상생을 순환하며 생명을 잉태한다. 변증법적 상극(相剋: 금>목>토>수>화>금)과 순환적 상생(相生: 금-물-나무-불-흙-금)의 서로 융합하는 태극 운동을 통하여 또 하나의 우주, 또 하나의 생명을 생성하고 창발한다. 이런 태극 사상은 민중신학이 서구의 변증법적 사유 틀과 이원론적 패러다임을 넘어 동양적 사유와 더불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김용복의 선토피아 생명학은 이미 그것을 제시하고 있다.

선토피아, 풍류신학, 그리고 도의 신학

김용복의 선토피아 생명학은 풍류를 중요한 영적 자원이라고 인식한다. 그러나 소금 유동식(1922-2022)의 풍류신학과는 거리가 있다.(4) 김용복은 풍류를 민중 공동체의 역사적 억눌림에 대한 한(恨)과 지배권에 대한 저항의식을 축제로 승화시킨 것으로 이해한다. 그것은 유동식이 말하는 “한 멋진 삶”과는 구분이 된다. 유동식이 최치원(857-?)의 천부경(天符經)을 근거로 “포함삼교, 접화군생, 현묘지도”를 중심으로 풍류를 생각했다면, 김용복은 삼국유사(三國遺事)의 단군설화를 근거로 “이화상생, 경세제민, 홍익인간, 태평천하”를 기본으로 하였다. 여기서도 종교문화적인 토착화 신학과 사회경제적인 민중신학의 차이점이 들어난다.

그러나 최근 유동식의 풍류신학은 종교학자들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고 있다. 유동식이 파악한 풍류의 개념은 샤머니즘(무교)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우리 종교영성의 한 부분에만 치중된 오류라는 것이다. 한국의 무(巫)는 대무(大巫)와 소무(小巫)로 이루어지는데, 유동식의 풍류신학은 그중 샤머니즘이라고 할 수 있는 소무에만 치중하고 있는 것으로 그보다 중요한 대무, 곧 선(仙, 僊)의 전통(선맥)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5)

동양에서 선과 풍류는 서로 연관된 사상이다. 그런데 김용복은 왜 선토피아 사상을 직접 성경에서 찾아내서 발전시키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최근 한국신학연구소가 이와 관련된 변찬린(1934-1985)의 독특한 한국적 성서해석인 『성경의 원리』을 개정 출판했다.(6) 변찬린은 “성서는 선(僊)의 문서”이며, 선맥이 성서에서 관통하고 있는 도맥(道脈)이라고 주장한다. 성서의 영성(靈聖)적 도맥으로서 선맥의 발견은 변찬린이 이룬 창의적인 성서해석이다.

변찬린은 기존의 전통적 신학에서 나아가 파격적인 구원론적 도맥을 제시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부활의 선맥(仙脈)”이라는 전통적 구원론을 넘어 에녹과 엘리야와 같이 죽지 않고 승천(羽化登仙)한 “변화의 선맥(僊脈)”을 독창적인 성서해석을 통하여 제시한다. 그래서 성서학자들에게 이에 대한 연구를 촉구하기 위해 최근 발간된 옥스퍼드 한국성서해석학 핸드북에 이것을 소개한 적이 있다(The Oxford Handbook of the Bible in Korea, 2022).(7)

더욱이 변찬린은 이러한 선맥이 우리민족(동이족)의 근본 영성이고 도맥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성서와 우리민족 영성의 두 도맥들이 지평융합을 이루는 이 지점에서 우리 종교의 내용을 주제화하고 신학화해야 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 해석학적 교차 지점을 ‘풍류’라고 규정하고, 따라서 ‘풍류해석학’이 우리 종교와 신학이 갖추어야할 보편적 담론이라고 제안한다. 최근 발견되고 있는 요하 문명, 흥산 문명 등을 근거로 “영생의 도맥인 신선 신앙의 본고장이 고조선”, 곧 우리 민족이라고 듣기에 흥미로운 주장을 내놓고 있다.(8) 그러나 이 주장이 신학에 적용되려면 성서신학자들과 종교학자들의 치밀한 검증 작업을 통과해야 할 것이다.

변찬린의 성서에 도맥(道脈)이 있다는 주장은 내가 주창해온 ‘도의 신학’의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서구적 맥락에서 근본개념인 로고스를 근본은유로 차용한 로고스 신학은 오랫동안 번성하고 세계를 지배해왔지만, 우리의 다른 동양적 맥락에서는 충분하지 못하고, 전통신학과 해방신학의 분리와 생태위기를 초래한 문제 등 오늘날 내용상 이원론적 한계를 노정하고 위기에 처해있다.

도(道)가 동아시아인의 근본개념인 우리에게는 도를 근본은유로 사용하여 신학을 구성하는 것은 맥락적 당위성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그것은 오늘날 세계 신학의 고전적 로고스 신학과 해방적 프락시스 신학의 이원론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도의 신학’을 제안하고 발전시켜왔다. 이것을 보다 대중적으로 소개하기 위해 지난해 내놓은 책 『기독교의 신학의 새길, 도의 신학』의 ‘닫는 말’에서 그동안 로고스 신학의 지배 아래 ‘선악과 신학’에 머물렀던 기독교 신학이 이제는 그것을 넘어 ‘생명나무 신학’으로 나아가야 된다고 다음과 같이 화두를 던졌다.(9) 물론 에덴동산과 창세기 3장을 염두에 둔 것이다.

변찬린의 선(僊) 도맥론과 풍류해석학이 이러한 신학 구성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는지 흥미롭다. 더욱이 김용복의 선토피아 생명학이 이러한 도의 신학의 의도와 수렴하고 있다. 인류세(Anthropocence)라고 칭해지는 초-테크노 시대에 세상이 디스토피아가 아닌 생명나무가 있는 에덴동산처럼 생명을 살리는 선토피아를 창발하게 하기 위한 명백한 도의 신학이 요청되고 있다.

김흡영(한국과학생명포럼 대표)  heup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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