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Junger Prediger
초라함 속에 계시는 야훼평화의 부활(열왕기하 5,15-17; 마태복음 28,5-7)
이경훈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3.05.03 22:58
▲ Pieter de Grebber, 「Elisha refusing the gifts of Naaman」 (1637) ⓒWikipedia

오늘 구약 본문인 열왕기하 5장은 예언자 엘리사의 기적 이야기들 중 하나로서, 시리아의 군사령관 나아만의 치병 사건을 보도합니다. 스승 엘리야를 계승한 엘리사의 예언 활동은 전쟁과 더불어 시작되었으며, 오늘 본문에서도 이스라엘과 시리아 사이에 전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시리아의 왕이 이스라엘의 왕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군사령관의 병을 치료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이에 이스라엘의 왕은 치료할 수 없는 병을 치료해 낼 것을 요구하고 이를 침략의 빌미로 삼으려 한다고 생각하여 격분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엘리사는 자신에게 어떤 요청이 없었는데도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자원합니다. 양국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예언자 엘리사의 개입은 나아만 군대에 대한 보복 등 이스라엘에 이로운 일을 기대하게 할 것이나, 오히려 엘리사는 적장에게 그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일러 줍니다.

그러나 요단강에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는 처방전을 받자 나아만은, 엘리사가 직접 자신을 맞이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안수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다메섹에 있는 강들이 이스라엘의 모든 강들보다 낫지 않느냐며 분노합니다. 자신의 문 앞에 적군이 도열하고 있는 위협적인 상황에도 엘리사는 전혀 위축되지 않고 처방전만 전달했을 뿐 더 이상 응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보호해 주셨는지, 나아만은 모욕감을 느끼면서도 그대로 군대를 철수시켜 시리아로 돌아가려 합니다.

그때 부하들이 아주 간단한 방법이니 시도해 봐도 손해 볼 것 없지 않겠느냐며 고언을 합니다. 이를 받아들여 요단강으로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자 나아만의 병이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믿음도, 인간의 어떤 행위도 없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만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나아만의 인식을 바꾸고 그로 하여금 오직 야훼께서 참된 신이며 생명의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을 엘리사 앞으로 돌아와서 하게 합니다.

아울러 나아만은 이스라엘의 흙을 실어 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이는 하반절의 제사 언급을 고려하면 흙 제단(출 20,24)을 쌓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후에 아하스 왕은 다메섹에서 화려한 제단을 보고 나서 이를 모방한 제단을 예루살렘에 설치하기도 합니다(왕하 16,10-12). 그와 같은 화려하고 웅장한 제단이나 신전에 익숙할 나아만이지만, 흙으로 쌓은 제단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초라해 보일 흙 제단이지만, 우리 이익의 도구나 욕망의 형상화가 아닌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명하신 제단입니다.

비록 엘리사가 나아만 앞에서 의연하고 당당하게 행동했지만 적장을 치료해 준 것은 큰 이적 행위와 다름없을 것입니다. 전쟁을 방지하기 위한 행동이었을까요? 그다음 열왕기하 6장에서 전쟁 보도가 이어지니 그것은 평화를 결과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후로 더 이상 시리아가 자랑하던 군사령관 나아만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그가 야훼 신앙과 함께 전쟁과 폭력의 길에서 돌이켰기 때문일까요?

전쟁 중에도 엘리사는 사로잡은 시리아 포로들을 오히려 배불리 먹여 귀환시키는 파격적인 제안을 관철시킵니다. 그로써 지속적이지는 못하더라도 상당 기간 전쟁을 멈추게 합니다. 이처럼 엘리사는 평화를 수립하기 위해 평화의 씨앗을 심고 끝까지 평화의 행동을 합니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이지만 권력 앞에서도, 전쟁 한복판에서도 그 길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바람 앞의 등불처럼 평화는 쉽게 흔들려 사라진 듯 보이지만 다시금 평화의 싹을 틔우고자 합니다.

예수의 죽음을 슬퍼하던 여인들이 그의 무덤을 찾아갔을 때 오늘 신약 본문과 같이 뜻밖의 소식을 듣습니다. 예수가 살아나셔서 전에 말씀하신 대로 갈릴리로 가셨으니 거기에서 그를 볼 것이라는 천사의 소식은 예수의 죽음으로 절망하고 낙담한 이들에게 새로운 힘과 희망을 불어넣어 다시 일어서게 하고, 무의미해진 것으로 보였던 갈릴리에서의 예수 사건들에 새로운 의미와 흔들리지 않는 토대를 가져다줍니다. 영영 실패로 돌아간 줄 알았던 하나님 나라 운동이 부활하신 예수와 그의 부활을 품은 이들과 함께 다시 갈릴리에서 시작됩니다.

여전히 죽음과 절망과 억압이 지배하는 세상 같지만, 그렇게 열린 부활의 새 시대를 우리는 지금 살아가고 있으며 그 어떤 것도 우리 가운데 부활 생명의 나라가 자라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지치지 않기가, 낙담치 않기가 쉽지 않은 때이지만, 평화와 평등과 생명의 세상을 향한 우리의 걸음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넘어지거나 주저앉을 때도 있겠지만, 주께서 우리를 다시 일으키시고 새 출발을 하게 하시며 마침내 귀한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부활의 빛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향한 우리의 열정과 용기와 인내가 더욱 커지고 깊어지며 그 세상에 저항하는 권력의 폭정을 이길 수 있기를 빕니다. 평화의 길을 가는 우리의 하루하루가 폭력으로 뒤틀린 창조세계를 펴고 신음하는 민중들에게 웃음을 되찾아 주도록 주께서 도우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이경훈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경훈 목사(백합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9 한국기독교회관 503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