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회 보도
“너, 활동지원 시간 더 안 받고 싶어?”제21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출품작, ‘거짓말-종이 한 장 차이’가 보여주는 장애인의 웃픈 현실
정리연 | 승인 2023.05.04 00:01
▲ 제21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출품작, ‘거짓말-종이 한 장 차이’의 상영이 끝난 후 출연진들과 연출자가 관객과의 대화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정리연

“여러분은 무고한 시민을 죽이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여러분을 위해서라면 제 목숨을 기꺼이 바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디 다시 한번 현명한 판단을 하시어 시민들이! 승리합시다!!”

남자 시민(이름: 벌구)이 온몸을 떨며, 비장하게 외쳤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엄지를 치켜드는가 싶더니, 바닥을 향하도록 돌렸다. 그렇다. 이들은 지금 자활센터에서 마피아 게임을 하고 있다. 벌구는 다른 시민으로부터 마피아로 지목받았다. 여러 차례 자신은 마피아가 아니라면서 열정적으로 항변했다. 얼마나 연설을 잘하는지 모두 깜빡 속을 뻔했지만, 벌구가 마피아였다. 여자 시민(이름: ‘이봄’) 한 명이 크게 감동받고 놀라면서 벌구에게 물었다.

“넌 어쩜 그렇게 거짓말을 잘해? 나도 좀 가르쳐 줄 수 있어?”
“거짓말에도 다 방법이 있어. 내일 전화하면 내가 알려주는 곳으로 나와!”

봄이는 왜 거짓말을 배워야 하는 걸까? 왜, 무엇 때문에 거짓말을 해야 하는 걸까? 점점 더 궁금해졌다.

# 하루 전날

방바닥을 기어서 겨우겨우 움직이고 있는 ‘이봄’. 눈이 향하는 곳은 싱크대 위에 있는 정수기이다. 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건 봄이에게 너무 힘겨운 여정이다. 봄이는 뇌병변 장애인이다. 비장애인의 눈에는 고작 방 한칸짜리 집안에서 일어나는, 한두 걸음이면 해결할 수 있는 거리지만, 봄이에게는 땀을 뻘뻘 흘리며 온몸을 던져도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활동보조인이 와서야 물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한참 후에.

봄이는 활동보조인에게 요즘 매우 긴장하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긴장돼요?”
“네. 그 사람 앞에만 있으면 너무 떨리고 긴장돼요.”

# 벌구를 만나기로 한 날

봄이는 벌구의 전화를 받고 휠체어를 사용해 약속 장소로 갔다. 벌구는 교회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봄이는 놀라며

“너, 교회 다녔어? 교회 다니는 애가 그렇게 거짓말해도 돼?”
“(낮은 목소리로) 쉿! 나 기도하잖아. 하나님은 기도하면 모든 걸 용서해주셔!”

기도 내용은 대략 이렇다.

“오, 하나님! 어제도, 그제도, 그그제도, 저는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부디 이 어린양을 불쌍히 여기시어 용서해주옵소서. 아멘!”

▲ 활동보조시간을 더 확보하기 위해 공단 관계자에게 자신을 무능을 항변해야 하는 장애인들의 우습지만 슬픈 현실이 잘 드러낸 작품이었다. ⓒ정리연

# 봄이네 집

그 사람 앞에서 떨지 않고, 긴장하지 않고 실제인 듯 거짓말을 잘! 해야 하는 친구를 위해, 벌구와 재근, 봄이가 모였다. 이제 ‘거짓말을 꼭! 해야 하는’의 이유가 밝혀지는 건가?

“거짓말을 어떻게 그렇게 잘할 수가 있어?”
“자, 양심이 잠깐 괴로우면 3년이 행복하다. 뭐라고?”
“잠깐 괴로우면 3년이 행복하다.”
“너 자신을 속여야 해.”
“나를 속이라고?” 봄이가 좀 머뭇거리자,
“너, 활동지원 시간 더 안 받고 싶어?”라고 벌구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봄이는 다급한 목소리로
“아니! 받아야 해!!!”

아! 활동보조 시간을 더 받기 위해서 거짓말을 해야 하다니. 그 말은, 필요한 거에 비해 활동보조 시간이 현실에 맞지 않거나 충분하지 않다는 거겠지? 벌구는 봄이에게 자신의 비법(?)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뚜둥! 일단 눕는다. 무조건 누워있어야 한다. 힘겨워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적절한 의상도 필요하다. 그건 하기스 기저귀 대용량.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냐고 묻는 봄이에게 벌구가 얘기한다.

“나 봐봐. 활동지원 시간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 친구도 만나고 여행도 갈 수 있어. 너, 활동지원 시간 늘어나면 하고 싶은 거 많을 거 아냐! 뭐하고 싶어?”
“호프집 가서 맥주 한 잔 마시고 싶고, 여행가서 고기도 구워 먹고... 근데 나 혼자 있으면 물 한잔도 버거워.”
“그렇게 할 수 있어. 안 되겠다. 며칠 안 남았으니까, 내가 아는 유명한 일타강사가 있는데, 그분한테 단기 속성으로 배우자.”

# 강의실

이태민! 봄이를 구원해 줄 일타강사. 그는 종합조사표가 너무 획일화되어 있다고 문제를 지적하면서 여러 가지 예를 든다. 하지만, 불평만 하고 있으면 원하는 활동보조 시간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활동보조)시간, 내 삶을 지키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고, 분석하고, 공부하고, 연습하고, 실전에 적용해야! 한다는 강사의 외침에 어느덧 모두 진지해졌다.

“첫 번째, 할 수 있어도 못 한다고 한다.”
“두 번째, 안 떨려도 계속 떤다.”
“세 번째, 하기스 기저귀 대용량은 필수로 두고 소변통은 치워야 한다.”
“네 번째, 그날은 경직약을 먹지 말아라.”

“경직약을 안 먹으면 죽을 것 같던데...”라고 봄이가 작은 목소리로 얘기하자, 벌구는 다시 한번 힘주면서 말한다. 
“시간이 줄면 3년을 고생하니까 차라리 하루를 안 먹는 거지.”

과연, 봄이는 배운 대로, 거짓말을 잘할 수 있을까?

▲ 정부와 지자체가 제공하는 사회복지서비스가 장애인의 무능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개선점이다. ⓒ정리연

# D-DAY, 봄이네 집

실전까지 마친 봄이는 긴장하며 공단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곁에는 강사와 친구들, 홀동보조인이 둘러있다. 모두의 조언과 격려를 위로 하고 이제 봄이 혼자 실전에 나설 차례였다. ‘똑똑!’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모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우왕좌왕한다. 긴박한 배경음이 깔리고 “공단에서 나왔습니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봄이는 눕고 이불을 덮는다. 다른 친구들은 여기저기 틈을 찾아서 겨우 몸을 숨기고 활동보조인은 현관문을 열어준다. 공단 직원은 무덤덤한 목소리로 봄이에게 묻는다. “크게 바뀐 거 없으시면 지난번처럼 시간 드리면 될까요?”

“아니요, 많이 필요한데요.”라고 대답한 봄이에게 공단 직원은 질문하기 시작한다. 밥은 먹었는지, 혼자 먹었는지, 누가 도와줬는지, 화장실 사용은 어떻게 하는지, 용변은 어떻게 하는지 등. 평소 ‘거짓말 못 하는’ 봄이는 오로지 활동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려고’ 노력한다. 거짓말을 잘하지 못하고 어물거리는 봄이에게 공단 직원은 계속 답변을 채근한다. 그러자 봄이는 소리친다.

“못해요!”
“밥을 못 드신다고요? 용변을 혼자 못 하신다고요?”
“못해요! 못하겠어요! 거짓말 못하겠어요! 밥도 먹을 수 있고 화장실도 갈 수 있고 옷도 입을 수 있어요.” 

여기까지 말하자 걱정이 앞섰다. ‘아니, 봄이야 왜 그래. 연습까지 했잖아. 다 못 한다고 해야지! 거짓말을 해야 네가 원하는 시간을 받을 수 있잖아.’ 속이 타는 것 같았다. 스스로 양심에 찔린 걸까? 하지만 이어지는 봄이의 말에 목울대가 뜨거워지면서 울컥했다. 

“근데, 밥은 먹을 수 있는데 누가 도와줘야 하고, 화장실은 갈 수 있는데 뒤처리는 혼자 못해요. 설거지도 혼자 못해요. 옷도 입을 수는 있는데 못 입는 옷도 많고 혼자 벗을 수는 없어요. 거짓말인데 거짓말은 아니에요. 더 이상 못하겠어요. 나가 주세요. 나가요! 난 당신이랑 얘기하기 싫어요! (울먹이며 소리치는 봄이) 난 더 이상 이렇게, 비참하게 당신한테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요!”

양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거짓말, 제도 속에 갇혀 있는 자신의 비참한 상황을 거짓말로부터 해방시키고 싶었던 울부짖음이 아니었을까. 봄이의 ‘할 수 없다’는 거짓말 아닌, ‘할 수 있지만, 없다는’ 진실, 현실에 충격을 받은 공단 직원은 사무실로 돌아가서 ‘서비스 종합 조사표’를 꺼내고 고민하더니 작성하기 시작한다. 며칠 후, 봄이는 우편물을 받고 그 안에는 공단 직원의 쪽지가 들어 있다.

“이 시간이 당신의 삶과 인생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내 시간만을 생각하고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활짝 웃는 봄이의 얼굴에 이어지는 화면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쓰여 있다.

“활동지원 시간은 ‘삶의 시간’인 동시에 ‘인생의 시간’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대로 활동지원에 필요한 만큼 받지 못해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양심이 잠깐 아프면 3년이 편하다고 할 만큼, 당사자에게는 절실하고도 꼭 필요한 서비스일 것이다. 비장애인은 자신이 원한다면 교육받고, 노동하고, 친구도 만나고, 여행도 갈 수 있다. 이런 일상이 장애인의 상상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이 될 수 있도록, 영화 속 벌구의 말대로 더 나은 삶의 질을 위해서.

3년, 1095일의 삶이 단 10분, ‘할 수 있나요, 없나요?’라는 질문으로 결정된다니. 영화에서 보여지는 게 이 정도라면, 현실은 더 가혹하고 비참하지 않을까? 영화의 무거운 주제에 비해 이야기 흐름이나 구성, 음악, 연기는 경쾌하기도 코믹했다. 그래서인지, 뒷부분의 결말이 더 진정성 있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갑자기 웃음기를 싹 덜어냈다기보다, 보는 이들이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영화에서처럼 조사관(제도)의 회심이 현실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그 현실화가, 활동보조 시간 서비스가 장애인에게 ‘베푸는’ 제도가 아니라,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당연함으로 되려면?

▲ 올해로 21번째를 맞이한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는 한국 사회 장애인인권영화제의 시작이었다. ⓒ정리연

뭉뚱그려서 “뭘 할 수 있고, 할 수 없니?”라는 몸의 기능을 따지는 게 아니라, “‘너’는 하고 싶은 게 뭐니? 어떤 지원이 필요해?”라는, 당사자 개인의 욕구와 필요를 묻고 공감해주는 제도의 변화를, 그 단단한 벽을 깨뜨릴 힘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연대에서 나오기를 기대한다.

올해 21번째를 맞이하게 된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가 지난 4월27일부터 29일까지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야외 공연장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영화제는 장애인을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 그려왔던 미디어의 문제점을 짚고 장애인의 주체적인 삶을 담은 영화들을 상영했다. 올해는 ‘열차가 어둠을 헤치고’라는 주제로 사전 공모작 중 선정된 7편과 장애인들의 권익을 주제로 한 국내외 초청작 2편, 기획작 4편, 연대작 2편 등 총 16편의 영화가 다양한 행사와 함께 3일간 진행되었다.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는 2003년 서울 광화문 영상미디어센터에서 4편의 장애인인권영화를 상영하며 첫발을 내디뎠다. 매년 영화제를 열어 장애인 인권이 담긴 작품을 상영하는 것뿐만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가 증폭되는 데 주목하고 하고 있다.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 속 에서 장애인 당사자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미디어 교육을 하고, 영화 제작에 협력하는 등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또한 더욱 많은 사람에게 영화제의 취지를 알리고 소통하기 위해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무료 상영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소개한 ‘거짓말-종이 한 장’(2023)는 총 38분 13초의 러닝 타임의 영화로 ‘지오필름’에서 제작했고, 연출은 양준서 감독이 맡았다. 김지홍, 서권일, 이봄 님께서 출연했다.

정리연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리연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9 한국기독교회관 503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