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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가 어린아이의 것이니라!(욥 42:1-9 요일 5:1-4 막 10:13-16)부활절 다섯째 주일/교회교육주일/어린이・청소년주일(5월7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3.05.05 23:55

1.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한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라!

오늘은 부활절 다섯째주일이자 교회교육주일, 어린이・청소년주일입니다. 어린이나 청소년을 ‘다음 세대’라고 합니다. 저출생(저출산) 시대(1), 한국 사회는 물론, 교회에 다음 세대가 위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서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런 다음 세대가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하나님 나라를 순진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지난주 말씀에 나왔던 욥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인 욥은 자기에게 들이닥친 고난의 이유를 몰랐지만, 창조주 하나님을 대면하며, 자신의 피조물성을 깨닫고 지금까지 자기 생각을 거둬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총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욥을 기쁘게 받으십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입니다.

나아가 사도 요한은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총이 예수 그리스도로 계시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를 순진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참 생명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복음서 말씀부터 볼까요?

▲ 예수님과 어린이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막 10:13-14)

말씀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어떤 마을을 지나고 계실 때였습니다. 그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이들을 꾸짖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마도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들에게 복을 빌어주는 것보다는, 하셔야 할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 일은 눈앞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사역, 곧 이적 사역인 듯합니다. 소경이 눈을 뜨고, 문둥병자가 깨끗하게 되고, 귀신 들린 자가 나음을 받고,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예수님의 놀라운 사역입니다. 제자들은 이렇게 눈에 보이는 놀라운 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사실 이런 일들은 즉시 사람들에게 효과를 발휘합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을 축복하는 것은 바로 효과가 드러나는 일이 아닙니다. 그 변화는 세월이 흘러야 나타납니다. 이렇게 다음 세대를 위한 관심과 투자는 당장 효과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긴 호흡이 필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물론, 오늘 우리들도 이러한 다음 세대 교육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계속 말씀을 볼까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막 10:15-16)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들을 안고 머리에 손을 얹어 안수하시고 복을 빌어주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순진한 마음으로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코 거기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막 10:15, 공동번역).” 개역개정은 그냥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라고 했지만, 공동번역은 ‘순진한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이라고 좀 더 자세히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순진하다’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사전적으로는 ‘마음이 꾸밈이 없고 순박하다’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에 관해 어린아이들은 의심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느끼는 것이, 아이들은 가르치는 내용을 귀담아듣지 않습니다. 그냥 떠들고 장난칩니다. 그러나 나중에 물어보면 또 대답은 잘합니다. 다 들은 것입니다. 장난치면서도 다 듣는 것입니다. 그냥 스펀지처럼 받아들입니다. 이것이 순진한 것입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아멘”하고 응답하고 고개도 끄덕이지만, 사실 그냥 흘려듣습니다. 또한 막상 물어보면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냥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의 맥락에서 보면, 순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 물정에 밝은 어른과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어린아이들은 무언가를 받아들이는데 차이가 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는 이렇게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하게 다 받아들이는 사람이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은 어린이・청소년주일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한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조선인들은 수학이나 과학보다는 ‘실과’를 배워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순진한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너무나 빨리 변해서 순진한 이들이 살아가기에는 너무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다음 세대가, 아니 지금 우리 시대가 살아갈 세상은 인공지능 기반, 4차 산업혁명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를 대비하여 미국 백악관 보고서 ‘인공지능의 미래를 준비하며’와 ‘인공지능, 자동화, 그리고 경제’라는 보고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자동화는 저학력 노동자와 고학력 노동자 간의 임금 격차를 증가시켜서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시대의 대안으로 보고서는 “첫째, 수학과 과학 교육을 강화해야 하고 디지털 리터러시(이해력)를 높여야 한다. 둘째, 모든 미국인이 고등교육에 접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곧 장학금 혜택을 높여야 한다. 셋째, 직업을 잃은 노동자들의 재교육과 재취업을 도와야 한다.”라고 보고합니다. 사실 그 어떤 복지보다 경제 성장에 직접적으로 이바지하는 것이 교육입니다. 이것은 다음 세대 교육이 왜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교육이 필요할까요?

일제시대 때,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며 “조선인들은 수학이나 과학보다는 ‘실과’를 배워야 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령 미적분보다는 농사나 목공이나 요리를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일본인들에게는 아주 긴 교육과정으로 수학과 과학에 대해 충분히 강조합니다. 실용성보다는 사유와 논리의 발달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최근 교과과정을 실용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일제의 잔재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정부가 우리 수출 경제의 근간인 반도체 산업의 질적 성장을 위해 내년부터 주요 대학에 첨단 반도체 학과를 신설하며 인재를 육성하겠다고 발 벗고 나섰습니다.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 반도체이니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서, 장기적인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 반도체 시설 투자뿐 아니라, 전문 인력 양성은 중요한 교육입니다. 그러나 지금 반도체는 일제 강점기의 농사나 목공, 그리고 요리에 해당이 됩니다. 실용적 교육의 대상입니다.

그렇다면 일본이 자국민을 가르치려고 했던 사유와 논리, 곧 수학과 과학은 무엇인가요? 바로 인문학과 기초 수학, 과학입니다. 이러한 터전 위에 제대로 된 실용 교육이 서게 됩니다. 구런데 인문학의 기초인 문학, 역사, 철학 교육을 등한시하고 기초 수학과 과학은 무시합니다. 이렇게 되면 사유와 논리를 제대로 훈련할 수 없습니다. 반도체 학과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초 학문의 지식이 없으면 단지 실용적 기술의 습득이 됩니다. 긴 안목에서는 무용지물입니다. 따라서 학문의 기본인 인문학 교육과 기초 수학, 과학을 긴 시간 동안, 그리고 비실용적이라도 가르치고 배워야 우리 사회는 물론 다음 세대에 희망이 있습니다.

일본 이야기가 나왔으니, 일본의 대표적인 지식인인 우치다 타츠루의 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스승은 있다』(민들레, 2012)라는 책인데, ‘거리의 사상가’라고 불리는 우치다는 이 책에서 한국의 교육에 관해 이렇게 조언합니다. “시장에서 쇼핑하듯 교육하는 한국에서도 곧 학력 저하 등 교육 붕괴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전에 진짜 배움을 위한 스승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책 제목이 ‘스승은 있다’입니다.

10여 년 전에 나온 책인데, 지금 우리의 상황을 잘 지적한 것 같습니다. 학원을 돌며 과외를 받고 단순히 암기하고 점수 잘 받기 위한 공부로 성적은 좋아지겠지만, 사유의 깊이는 없어 학력은 저하되고 또 진정한 가르침을 베푸는 스승도 없고, 제자도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결국 ‘교육의 시장화’, 곧 교육이 물건을 사는 쇼핑이 되었습니다. 돈을 주고 거래하는 실용적인 물건이 되었습니다.

우치다는 이전에 『하류 지향』이라는 책에서 구조적으로 약자를 양산하는 사회에서 공부와 노동으로부터 도피하는 젊은 세대의 출현을 예고하고, 『일본변방론』에서는 ‘일본은 중심이 되고자 하는 변방’이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중심이 되고자 하지만, 교육 시스템이 시장화되어 구조적으로 약자를 양산하여 변방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육의 시장화를 걱정하며 우치다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일본에서는 이미 교육의 시장화로 교육이 붕괴되고 있다. 학교는 교육상품을 판매하는 시장이고, 공부를 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은 화폐로, 화폐를 들여 사는 교육상품의 가치는 고액 연봉, 일류대 입학 등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느냐에 따라 평가된다.”

지금 우리 사회와 같습니다. 공부는 돈으로 하는 것이지, 좋은 스승과 진리 탐구의 열정을 가진 제자가 만나 인격적 교류가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가 막힙니다. 이렇게 우리는 일본의 전철을 지금 밟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입시만을 위한 교육상품과 출세를 위한 시험 잘 치기(공부 기술)만을 가르치는 교육자가 판을 칩니다. 결국 출세와 성공이라는 ‘세상적 목적이 뚜렷하지 않은 진리 탐구라는 교육상품’과 ‘인생의 참다운 의미를 가르치는 교육자’에 대해선 등을 돌려 교육의 황폐화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요? 우치다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교육의 시장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배우는 청년들이, 스승이 있다고 믿고 배우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며, 진짜 배움이란 ‘배우기 전과 달라지는 과정’이지,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렇습니다. 교육이 출세의 수단이 돼서는 안 되고, 인격 교육, 사람 교육, 제대로 된 사유와 논리를 습득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앞서 어린아이들은 순진하여 하나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순진한 이들은 배움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배워서 그 배움대로 그냥 달라지는 것입니다. 오늘 구약 본문의 욥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자 피조물로서 인간 존재의 ‘존재론적 비극’을 인정하고 –토기가 토기장이를 인정하듯- 자기 생각을 거둬들이고 하나님의 주권을 순진하게 받아들입니다. 구약 욥기 말씀을 볼까요?

3.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욥 42:1-6)

앞서 의인 욥은 자기에게 들이닥친 고난의 이유를 몰랐지만, 창조주 하나님을 대면하며, 자신의 피조물성을 깨닫고 지금까지 자기 생각을 거둬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합니다. 이것은 지난주 말씀의 맥락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 말씀의 맥락에서는 욥이 다시 순진함을 회복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욥을 기쁘게 받으십니다. 그런데 다음에 이어지는 말씀이 조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먼저 말씀을 볼까요?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그런즉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욥 42:7-8a)

하나님은 욥의 세 친구에게, 우매하고 정당하지 못한 말로 친구인 욥에게 한 말에 관해, 욥을 중보자로 하는 번제를 요구합니다. 사실 엘리바스는 자신의 주관적인 영적 체험에 근거하여 욥의 고난에 관해 욥을 징계하였고, 빌닷은 전통적인 견해로, 또한 소발은 자기 나름의 개인적인 확신으로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고 욥의 고난에 관해 욥을 정죄했습니다. 결국 이들의 잘못에 대한 책임과 대가가 필요합니다. 계속 말씀을 볼까요?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같이 옳지 못함이라.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욥 42:8b-9)

▲ 욥의 회복

욥은 친구들이 자신에게 한 말을 용서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용서를 빌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욥의 이러한 중보 번제를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4.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특별히 오늘 본문 말씀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께서는 욥을 ‘내 종’이라고 네 번이나 부르셨습니다. ‘세상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입니다. 이런 이들이 세상을 이깁니다. 오늘 서신서 말씀에서 사랑의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를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로 이해합니다. 서신서 말씀을 볼까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요일 5:1-2)

사랑의 사도답게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순종하는 것을 통해 이 험난한 세상을 이겨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계속 말씀을 볼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3-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인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지켜 다음 세대를 제대로 교육하고 세워나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미주

(1) ‘저출산’은 아이를 낳는 주체인 여성에게 집중하는 반면, ‘저출생’은 태어나는 신생아 수에 주목하는 단어입니다. 출생 인구 감소는 단순히 여성의 출산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구조적 문제로 바라봐야 하기에 ‘저출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더 효과적으로 정책 대안을 논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기존의 출산율 지표로는 현재 우리나라의 인구 감소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습니다. 출산율은 여성 수 대비 가임여성의 자녀 수로 출산 수준을 측정하는 지표인 반면, 출생율은 인구 수 대비 출생아 수로 인구 증감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임 여성 인구 수 자체가 감소하는 상황에서는 출산율이 올라가도 출생아 수는 줄어들기 때문에 출산율보다 출생아 수에 주목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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