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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하지 않는 마음“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세기 4:1-7)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3.05.08 01:07
▲ Palma il Giovane, 「Cain and Abel」 (1576) ⓒWikimediaCommons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겪고 싶지 않은 상황, 피하고 싶은 상황,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은 성도라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새벽기도 시간에 함께 읽으며 묵상하는 민수기 본문만 보더라도, 힘들고 어려운 상황은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기도한다 해도 겪어야만 하는 상황은 기어코 오고야 맙니다.

예수님이 죽음으로 향하는 십자가의 길에서 육체적인 고통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려가며 기도하셨던 이유는 나의 뜻을 꺾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해주십시오.”(마태복음 26:42b) 왜 피하고 싶지 않으셨겠습니까? 하지만 이 한마디 기도를 위해 예수님은 끊임없이 기도하셨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성도는 예수님이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신 기도와 달리 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한 기도를 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매 일이 초조하고 두렵습니다. ‘언제 내 기도 들어주시려나.’, ‘기도했는데 오늘은 또 왜 이러나.’라는 생각만 하며 사는데 당연히 그렇지 않겠습니까?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그것을 내려놓기 위한 기도를 드리십시오. 하나님께 나의 삶을 온전히 맡기기 위한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아버지의 뜻대로 해주십시오.”라는 예수님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다면, 성도님들은 더 많이 평안의 삶을 누리실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 삶을 맡길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기를 소망할 때 성도는 평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평안을 누리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을 통하여 구원을 얻으라고 말하며 이런 선포를 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이 세상에만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누구보다도 가장 가련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죽었다가 부활한 첫 사람이 되셨습니다. 죽음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온 것처럼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왔읍니다.”(고린도전서 15:19-21, 공동번역)

사도 바울은 이 설교를 통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거룩한 삶,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도 역설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죽은 자의 부활을 믿는 성도라면 지금 보고 있고, 경험하고 있는 세상이 아닌 새로운 세상을 향한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성도는 이처럼 새로운 세상을 향한 희망을 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세상은 성도의 일상에서, 아주 사소한 일들을 다시 선택함으로써 시작되고 확장됩니다.

함께 읽은 창세기의 가인과 아벨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할 성도의 일상적인 삶이 어떠해야 할지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1 아담이 자기 아내 하와와 동침하니, 아내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았다. 하와가 말하였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내가 남자 아이를 얻었다.’ 2 하와는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다.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가 되고, 가인은 밭을 가는 농부가 되었다. 3 세월이 지난 뒤에, 가인은 땅에서 거둔 곡식을 주님께 제물로 바치고, 4a 아벨은 양 떼 가운데서 맏배의 기름기를 바쳤다.”

지금까지는 아주 평화로운 이야기입니다. 시간이 흘러 가인과 아벨은 성장했고, 하나님께 제물을 바칠 수 있을 정도로 믿음도 성숙해졌습니다. 그런데 평화가 깨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하나님이 동생인 아벨의 제물은 받으셨지만, 형인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4b 주님께서 아벨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셨으나, 5 가인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지 않으셨다. 그래서 가인은 몹시 화가 나서, 얼굴빛이 달라졌다. 6 주님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네가 화를 내느냐? 얼굴빛이 달라지는 까닭이 무엇이냐? 7 네가 올바른 일을 하였다면, 어찌하여 얼굴빛이 달라지느냐? 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였으니,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

하나님이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신 이유가 밝혀졌습니다. ‘네가 올바른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물이라고 해서 다 받으시는 게 아니라, 하나님은 성도의 삶을 보시고 제물을 받으시는 분임을 확인할 수 있는 본문입니다. 올바른 일을 하고 하나님께 제물을 바칠 때, 하나님은 그 제물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올바른 일을 하지 않는 가인에게 경고하셨습니다. “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였으니,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 죄가 또 다른 죄를 향하도록 이끌어 간다는 말씀이지 않겠습니까? 한번 죄를 짓고 나니 이제는 죄가 나를 지배하려 듭니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무조건 죄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죄는 다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란 무엇입니까? 과녁을 향해 날아가야 할 화살이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가 아니라 내 뜻대로, 내 욕망대로 살아가려는 삶이 바로 과녁에서 벗어난, 구약의 말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죄입니다.

그럼 어떻게 죄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선택하고 살아감으로써 죄를 다스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 오늘날 우리가 처한 환경에서 원하시는 삶은 무엇이겠습니까? 단순합니다. 선하게 사는 삶입니다. 올바른 일을 선택하고, 살아내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선한 삶의 태도 중에서 특별히 방관하지 않는 삶에 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구약 오바댜서에는 에돔의 멸망에 대한 선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돔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형제 야곱이 침략을 당하고, 고난을 겪을 때 방관했기 때문입니다. “네 아우 야곱에게 저지른 그 폭행 때문에 네가 치욕을 당할 것이며, 아주 망할 것이다. 네가 멀리 서서 구경만 하던 그 날, 이방인이 야곱의 재물을 늑탈하며 외적들이 그의 문들로 들어와서 제비를 뽑아 예루살렘을 나누어 가질 때에, 너도 그들과 한 패였다. 네 형제의 날, 그가 재앙을 받던 날에, 너는 방관하지 않았어야 했다. 유다 자손이 몰락하던 그 날, 너는 그들을 보면서 기뻐하지 않았어야 했다. 그가 고난받던 그 날, 너는 입을 크게 벌리고 웃지 않았어야 했다.”(오바댜 1:10-12)

우리도 이런 실수, 선택을 종종 하곤 합니다. 타인의 아픔에 무관심하고 때론 타인의 고통을 즐거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 역시 폭행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태도로 인해 에돔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방관의 태도를 깨고, 도울 때 죄는 다스려집니다. 선을 행할 때 죄는 다스려집니다. 섬기고 사랑할 때 죄는 다스려집니다.

그런데 죄를 다스리지 못할 때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까? 가인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인이 아우 아벨에게 말하였다. "우리, 들로 나가자."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였다.”(창세기 4:8) 가인은 더 큰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죄를 다스리지 못할 때 죄는 우리를 이끌고 갈 것이고 우리는 결국 더 크게 후회할 일들을 저지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다. 땅이 그 입을 벌려서, 너의 아우의 피를 너의 손에서 받아 마셨다.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이제는 너에게 효력을 더 나타내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 땅 위에서 쉬지도 못하고, 떠돌아다니게 될 것이다.”(창세기 4:11-12)

죄의 결과는 명백합니다. 불행입니다. 그렇기에 죄를, 악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반드시 다스려야 합니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올바른 일, 선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고통받는 이들의 삶을 방관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후에야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나의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마음, 외면하지 않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섬김의 모습이 저와 성도님들을 통해 나타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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