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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권위에 복종하고 저항할 것인가통치자가 악령에 사로잡히면(사무엘상 16:14~23)
최형묵 목사(천안살림교회) | 승인 2023.05.09 22:37

어째서 오늘 이 본문말씀이 주어졌을까요? 이 시국에! 그저 성서일과를 따라 말씀 본문을 마주하지만 본문을 마주하는 것 자체로 섬뜩해질 때가 있습니다. 일부러 고르지도 않았는데, 시국에 딱 떨어지는 말씀이 주어질 때입니다. 설교자의 몫은 별 도리 없습니다. 말씀의 진실을 헤아리며 그로부터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일 뿐입니다.

본문말씀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의 시대가 저물고 그 다음 왕 다윗의 시대가 동터오는 국면에서 두 사람의 몫을 극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주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자 사울은 악한 영에 붙잡혀 괴로워했습니다. 그것을 본 신하들은 임금님께 말씀을 드려 그 악령을 물리칠 사람을 찾겠다고 합니다. 사울 임금의 허락을 받고 신하들이 찾아 데리고 온 사람이 다윗이었습니다. 다윗은 수금을 잘 탔고, 그 아름다운 음악으로 악령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말씀의 요체입니다.

역사의 무대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에 처한 사울과 이제 새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는 다윗이 엇갈립니다. 이 이야기는, 악령에 붙잡힌 사울은 이제 왕으로서 제 몫을 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이지만, 그 악령을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서 다윗이 새 시대를 이끌어간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야기의 표면에 주목하면 하나도 복잡할 것 없이 단순명쾌한 이야기입니다. 단순명쾌한 그 이야기의 속사정을 들여다봐야 오늘 말씀의 참뜻이 분명해집니다. 오늘 말씀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초점은, 사울 왕에게서 주님의 영이 떠나고 대신 악한 영이 그를 괴롭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최고통치자가 악령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태가 함축하는 뜻이 무엇일까요?

악령에 사로잡혔다고 하면 흔히 개인적인 심리현상이거나 정신상태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극심한 조울증과 같은 자기분열의 상태로 한정해서 이해되곤 합니다. 구체적으로 드러난 증상으로 보자면 그렇게 이해해도 무방할지 모릅니다. 만일 사울에게 나타난 증상이 그렇게 한정된다면 그것은 치유의 대상일 뿐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말씀은 먼저 분명하게 말합니다. “사울에게서는 주님의 영이 떠났고…” 성서 기록에 따르면 사울 왕 역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지도자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서 떠나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더는 그를 지지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까닭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멀쩡한 사람에게서 그냥 떠나 그가 악령으로 고통을 겪게 맡겨버린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는 역사적으로 마땅한 이유가 있습니다. 악령이 들린 사태는 명백한 역사적 실체를 갖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15:10 이하에 그 진실이 밝혀져 있습니다.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이 후회된다. 그가 나에게서 등을 돌리고, 나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삼상 15:11) 하나님으로부터 그 말씀을 듣고 사무엘은 괴로워서 밤새 기도했습니다. 도대체 영문을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까닭을 알기 위해 진중에 있는 사울 왕을 찾아갑니다. 진중에서 양 떼와 소 떼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무엘은 사울 왕에게 웬 소리냐고 다그쳐 묻습니다. 사울 왕은 당당하게 말합니다. 그것은 아말렉 사람들에게서 빼앗은 것으로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기 위해 살려서 데려왔다고 답합니다. 사무엘은 준엄하게 꾸짖습니다. “그만 두십시오!”(삼상 15:16) 하며 지난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합니다. “어찌하여 주님께 순종하지 아니하고, 약탈하는 데만 마음을 쏟으면서, 주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악한 일을 하셨습니까?”(삼상 15:19) 다시 변명하는 사울 왕에게 사무엘이 선언합니다.

“잘 들으십시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말씀을 따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 거역하는 것은 점을 치는 죄와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죄와 같습니다. 임금님이 주님의 말씀을 버리셨기 때문에, 주님께서도 임금님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삼상 15:22~23)

사무엘과 사울 대화의 초점이 무엇일까요? 왜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을까요? 사울 왕이 전리품을 취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어째서 중대 범죄행위일까요? 성서를 똑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서에 등장하는 매우 독특한 관습과 그 관습이 함축하는 뜻을 알아야 합니다. 이른바 ‘진멸’(헤렘)이 함축하는 뜻입니다.

오늘날 인도주의적 관점에서는 도저히 용납되기 어렵지만, 성서에서 적진의 사람과 재물을 완전히 진멸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전쟁은 전쟁으로 끝내고 그것으로부터 어떤 사적 이익을 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노예나 재물을 탈취하여 사적 소유로 삼는 것을 철저하게 금지하고자 하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적 소유의 금지, 곧 권력의 물질적 기반을 형성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잉여 인간을 거느리고 재물을 사적으로 취하는 행위 자체를 금지하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성서에서 이 관습은 역사적 맥락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집트에서 지긋지긋하게 노예살이하던 백성이 자유로운 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그 공동체에 어떤 불평등도 있어서는 안 되고, 어떤 권력도 용인되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진멸’, 곧 전리품 취득금지는 바로 그 맥락에서 형성된 관습이었습니다. 사사시대의 이스라엘 모습입니다.

그런데 백성이 왕을 요구해 하나님께서 마지못해서 백성의 청을 들어줍니다. 왕이 생기고 권력이 형성되면 불평등이 만연하고 모든 백성이 그 권력에 종살이하게 되리라는 것을 경고했음에도 군사적 안보를 내세운 이들의 요청으로 왕이 허락됩니다. 그 첫 왕이 사울이었습니다.

▲ Rembrandt Mauritshuis , 「Saul and David」 (621) ⓒWikipedia

사울 왕은 등장 자체로 자기분열의 요소를 안고 있었습니다. 자유롭고 평등한 공동체를 수호해야 한다는 임무와 효율적인 안보와 통치를 위해 권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요구의 충돌이었습니다. 그 긴장 안에서 사울이 선택한 것은 권력을 강화하는 길이었습니다. 권력의 사유화입니다. 전리품을 취한 것은 사울이 그 길을 택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간 이유입니다. 사울이 악령에게 사로잡혀 괴로움을 겪는 까닭입니다.

권력의 사유화, 공평한 통치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특정한 세력의 이해관계에 집중하는 권력의 사당화에 대한 심판은 준엄합니다. 성서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의 안위를 저버리는 통치행위에 대해 철두철미하게 그 책임을 묻는 것을 일관되게 증언합니다. 오늘의 통치자들, 오늘의 그리스도인 모두가 철저하게 유념해야 하는 진실입니다. 외면해서는 안 되는 진실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에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사울 왕의 패악을 넘어서 새로운 시대를 이끌 것으로 기대되는 인물입니다. 소년 다윗, 청년 다윗은 확실히 그렇게 촉망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성서는 다윗이 왕 된 이후에 이룩한 놀라운 치적들을 기록하고 그 시대를 영광스러운 과거로 기억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놓쳐서는 안 되는 진실이 있습니다. 성서는 동시에 왕으로서 다윗의 치부를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신명기 역사가 기록하고 있는 다윗 왕의 행적은 그 치부를 그대로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다윗 왕은 사실 사울 왕보다 한 술 더 떴습니다. 숱한 전쟁으로 피를 흘리게 하였고, 남의 땅을 자신의 영지로 삼고, 관료제와 상비군 제도를 만들고 왕위 세습제까지 만들었습니다. 정신분열을 겪어야 했던 사울 왕이 오히려 인간적으로 느껴질 만큼 다윗 왕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데 과감했습니다.

이는 한편으로는 다윗 왕의 영광스러운 치적으로 기려지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애초 이스라엘의 길로부터 얼마나 멀어진 것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기도 합니다. 바로 그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예언자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역사는 다윗 왕의 중대범죄를 고스란히 기록해두고 있습니다. 자기 부하의 아내를 취한 일, 이미 주어진 것에 족한 줄 모르고 인구조사를 실시하여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려는 시도에 대해 하나님께서 엄중히 그 책임을 물은 것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사울 왕이나 다윗 왕 모두에게 애초 하나님의 영이 함께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말씀은 사울 왕에게서 하나님의 영이 떠났다고 명백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다윗 왕에게서 하나님의 영이 떠났다는 기록은 없지만, 그의 잘못까지 낱낱이 기록해둔 성서의 관점은 다윗 왕에게도 한결같이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한 것만은 아니라는 진실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 진실이 함축하는 뜻이 무엇입니까?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겸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지위와 책무를 맡고 있는 사람은 더더욱 그래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하나님의 영의 인도로 선한 몫을 감당할 수 있는 동시에 어느 순간 악령에 사로잡혀 악행을 범할 수도 있는 가능성 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끊임없는 성찰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말해 뭐하겠습니까? 노동절이 낀 지난 주간에 검찰의 압박을 겪고 있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생명의 자유보다 소중한 것이 없거늘 입만 열면 자유를 외치는 이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어린이날을 앞둔 날에 유해물질이 하나도 제거되지 않은 채 잔디로 뒤덮인 뜰에 어린이들을 뛰어놀게 만드는 권력자의 기만이 펼쳐졌습니다. 유해물질로부터 안전해야 하는 ‘공원’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니 ‘용산어린이정원’이라는 이상한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 패악질과 기만을 언제까지 지켜보고 있어야 할까요?

우리 모두 정말 사무엘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했던 그 심정으로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더불어 ‘예’ 할 때와 ‘아니오’ 할 때를 분명히 하여 우리의 미래가 악령에 휘둘리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어떤 권위에 복종하고 저항해야 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단순히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영의 눈이 흐려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진정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최형묵 목사(천안살림교회)  chm189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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