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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토피아를 창출하는 새로운 신학을 향해도의 신학의 입장에서 본 김용복의 ‘선토피아(仙境) 생명학’ (4)
김흡영(한국과학생명포럼 대표) | 승인 2023.05.09 23:04
▲ ‘ChatGPT’의 등장으로 전세계를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파괴적 미래일지 유토피아적 미래일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신학은 이에 대해 응답할 책임이 있다. ⓒGetty Images

민중신학과 도의신학: 두 이야기의 합류

2022년 10월 전라남도 신안군 자은도에서 개최된 생명평화 민중신학 학술대회에서 나는 민중신학은 역사적으로 도의 신학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1) 제1세대 민중신학은 우리의 도(道) 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는 사상가들과 짝을 이루며 발전되어왔다. 그것이 한국 민중신학이 남미 해방신학과 다른 점이다. 민중신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우리 종교문화에 대한 맥락적 문해력(contextual literacy)의 증강이 필요하다.(2) 예컨대, 서남동과 김지하, 안병무와 유영모, 그리고 김용복의 생명신학과 도의 신학 간의 관련성이다.

첫째, 서남동(1918-1984)의 민중신학은 김지하(1941-2022)의 초기 민중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김지하의 민중의 한(恨)에 대한 해석이 그의 민중신학 구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따라서 서남동의 신학은 김지하의 사상과 짝을 이루며 해석되어야 한다. 그러나 후기 김지하는 민중사상에서 생명사상으로 발전했다. 그의 해석학적 초점이 ‘민중의 한’을 넘어 ‘생명의 도’로 넘어 간 것이라 할 것이다. 그 대표적인 글이 「우금치 현상」이다.(3)

이 글에서 김지하는 우금치의 민중 봉기가 민중의 한 폭발의 수준을 넘어 태극(太極)의 우주적 생명운동임을 깨닫는다. 그의 사상이 일종의 도의 신학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 변화를 대부분의 민중신학자들은 받아들이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김지하를 민중의 배신자라고 폄하한다. 그는 우금치 현상을 통하여 『도덕경』과 『역경』의 복구와 반전의 사상으로 우금치 전투에서 보여준 민중의 생명운동을 각인한다. 나는 이것을 참고해서 새로운 한국신학의 방법론으로 ‘신기의 해석학’을 구상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이해하는 도-그리스도론으로 발전시켰다.(4)

둘째, 안병무(1922-1996)는 일반적으로 함석헌(1901-1989)과 연관하여 논의된다. 그러나 안병무 사상에 큰 영향을 준 사람은 그 두 사람 모두의 스승인 다석(多夕) 유영모(1890-1981)라는 사실이 간과되고 있는 듯하다. 민중 사상의 핵심이었던 함석헌의 ‘씨알’ 사상마저도 사실은 유영모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나는 아마도 안병무의 마지막 교육조교(TA)였을 것이다. 버클리연합신학대학원(Graduate Theological Union) 박사후보생 시절이었던 1989년, 그가 태평양신학대학원(Pacific School of Religion)의 초빙교수로 처음 미국을 방문했을 때 그의 강의 통역과 과목 조교를 맡았고, 그의 저서 “갈릴리의 예수”의 영문 번역을 도운 적이 있다.

그래서 그와 가까이 지낼 수 있었는데, 그때 그가 중심 개념을 ‘민중’에서 ‘민(民)’으로 바꾸려고 고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유영모를 언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5) 유영모 연구의 주요 자료 『다석일지』에도 안병무에 대한 메모가 나온다. 또한 안병무는 유영모의 애제자로서 다석사상을 해독하고 전수한 김흥호(1919-2012)와도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이 두 유영모의 제자들은 내게 상대방에 대해 서로 격한 말을 써가면서 그들의 친밀도를 표시하였다. 향후 안병무 연구에 유영모(김흥호)의 사상과의 관련성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지금 이 글에서 언급하기 시작한 김용복과 도의 신학의 관계이다. 민중의 사회전기를 기조로 시작한 김용복의 민중신학은 선토피아의 생명학에 이르렀다. 이것은 그의 신학 사상이 20세기 이후 세계 신학의 변천에 따라 그 패러다임이 변화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사회학적 관심에서 생명학으로, 그리고 세계종교와의 수렴과 융합해서 초-테크노 서양 문명에 대응하는 관계로.

그렇게 김용복의 사상은 민중신학에서 선토피아 생명학으로, 우주론적으로 확대되었다. 그것은 ‘억눌린 생명의 사회우주전기’에서 ‘기(氣)-사회-우주적 궤적’, 즉 우주생명운동의 징후를 찾는 큰 이야기(Big History)를 하자는 도의 신학과 수렴하여 합류되고 있다. 결국 민중신학도 민중의 도(道)를 추구하는 신학이 아닌가?

녹색 생명 신문명, 선토피아의 도(道)를 위한 한국신학의 대융합

또한 김용복이 민중의 사회전기를 넘어 생명전기(zoegraphy)를 생각하고 생명학(zoesophia)과 선토피아(seontopia)을 구상하게 된 것은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엄습해오는 초-테크노 문명이 가져 올 디스토피아적 미래의 가능성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수양 또는 성화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초지능(superintelligence)을 획득한 인공지능과 융합하는 등 고도로 발전된 과학기술을 활용하여 초인적 포스트휴먼(posthuman)으로 진화하려는 자본주의와 결탁한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의 위험성에 대해서 그는 누구보다도 잘 예견하고 있었다. 이러한 서양적 기술문명이 가져 올 수 있는 디스토피아(dystopia)를 극복할 수 있는 영적 근거로서 동양적 유토피아인 무릉도원의 선경 같은 영성 공동체를 생각했을 것이다.(6)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와 호모듀스(HomoDeus) 등 베스트셀러의 저자인 하라리(Yubal Noah Harari) 같은 트랜스휴머니스트는 최근 아예 대놓고 앞으로 인공지능과 연합하지 않은 일반 사람들은 “쓸모없는 계급(useless class)”에 속한 “쓸모없는 사람들(useless people)”이라고 선언해버렸다.(7) 더욱이 이런 무능한 사람들이 뭉쳐서 아무리 저항한다고 하더라도 인공지능과 연합된 변화된 사람들(트랜스휴먼)을 결코 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였다. 하라리는 세계 경제와 정치계에 크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다보스포럼(World Economic Forum) 같은 곳에서 선지자처럼 모셔지는 인물이다.

이에 앞장서서 나서고 있는 대표적 인물이 인간의 뇌와 인공지능을 연결하는 뉴랄링크(Neuralink)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최근 부각되고 있는 챗GPT(ChatGPT) 인공지능 언어 자문 프로그램 등의 개발에 앞장선 세계 최고 부자였던 일론 머스크(Elon Musk)이다. 스티브 호킹(Steve Hocking)도 작고 전에 이런 일반 사람들과 트랜스휴먼과의 분리와 갈등의 가능성을 경고했지만, 그것은 머스크처럼 소위 제4차 산업혁명 덕으로 벼락부자가 된 초대형 테크노-기업(Big Tech)의 창설자들을 중심으로 세계 경제계에 군림하는 인물들에 의해 이미 실행에 옮겨지고 있다.(8)

이러한 트랜스휴머니즘의 우생학(eugenics)과 사이버네틱 전체주의(cybernetic totalism)가 창궐하는 시대에 민중신학은 아마도 민중의 개념을 재해석하여 크게 확대해야 할 것이다.(9) 정치경제적으로 강력한 주도권을 잡아가고 있는 트랜스휴머니스트들에 의하면 인공지능 등과 연합하여 변화되지 않은 보통 사람은 앞으로 모두 분리되어 취약한 민중이 된다는 것이다. 그들의 움직임 속에는 테크노-맘몬의 출현과 악한 야욕이 보이고 있다. 이제는 모두들 힘을 합쳐 테크노-맘몬의 악한 세력에 의해 인간성과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파괴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특히 약한 자와 가난한 자에 우선권을 주는 산상수훈의 명령에 따라 인공지능 시대의 ‘사이버네틱 약자’들을 보호해야 한다.

“녹색생명 신문명”이란 개념은 이와 같은 선토피아 생명학에 걸맞은 표현이다. 에덴동산을 본받아 서양적 기술문명에 의한 디스토피아가 아닌 생명을 살리는 선토피아를 창발하여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지구촌과 우주의 생태·생명·인간을 보존해야 한다. 이것은 ‘인간세’라는 초-테크노 시대에 깨어난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천명이고 카이로스적 소명일 것이다.

이제 한국의 모든 신학들은 힘을 합쳐 서양적 기술문명에 의해 창조세계가 기계화되고 파괴되고 멸망하는 것을 막고 생태계와 인간성과 생명을 보존하고 복구할 수 있는 선토피아를 창출할 수 있는 새 길(道)을 찾아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총동원령이다. 우리는 뭉쳐서 그러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문명사적이고 더 나아가서 우주사적인 크고 큰 선한 싸움에 임해야 할 것이다.(10)

미주

(1) 자료집 「신안에서 녹색 신문명을 말하다」, 2022.10.24-26, 전남 신안 라마다 호텔, 20을 참조하라.
(2) 맥락적 문해력에 대해서는, 김흡영, 기독교 신학의 새길, 44-50을 보라.
(3) 김지하, 『생명』(서울: 솔출판사, 1992), 188-192를 보라.
(4) 이에 대해서는, 『도의 신학 II』, 173-95를 보라.
(5) 유영모에 대해서는, 김흡영, 『가온찍기: 다석 유영모의 글로벌 한국신학 서설』 (서울: 동연, 2013)을 보라.
(6) 이남섭에 의하면 2021년 그가 한일장신대에서 마지막 행한 강의에서 ‘선토피아’를 언급하면서 무릉동원 같은 선경을 모르는 서양인에게는 유토피아라고 번역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7) https://www.nationalreview.com/corner/transhumanist-theorist-calls-the-ai-unenhanced-useless-people을 보라.
(8) https://www.salon.com/2022/08/20/understanding-longtermism-why-this-suddenly-influential-philosophy-is-so을 보라.
(9) 인공지능, 트랜스휴머니즘, 로고스 신학의 관련성과 도의 신학적 평가에 대해서는 Heup Young Kim, “Artificial Intelligence, Transhumanism, and the Crisis of Theo-logos: Toward Theo-dao,” Madang, Vol. 38(Dec. 2022) 103-127을 보라.
(10) 이글은 고김용복박사1주기추모문집출판편집위원회 편, 『예언자 신학자 김용복의 생명 사상과 삶』(서울: 동연, 2023), 46-72에 게재되었다.

김흡영(한국과학생명포럼 대표)  heup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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