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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여 있고 깨어지고 어둠 속에 있는 마음을 위해“위로하는 자가 되십시오”(이사야 61:1-3)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3.05.15 01:43
▲ 그리스도의 사명과 우리의 사명은 가난하고 깨어지고 포로된 사람들에게 해방과 위로를 전하는 것이다. ⓒGetty Images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소망회 성도님들과 함께 주중 어버이날에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기쁘고, 위로가 되어야 하는 날이 망쳐지는 건 아닐까 걱정을 했었습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설악산과 주변 경치를 높은 곳에서 보여드리려 했는데 보여드릴 수 없었습니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되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예배 후에 식사 하시면서 인화된 사진들을 보시겠지만, 단체사진 찍은 것을 보니 제가 제일 신나 보이더라구요. 소망회 성도님들이 잠시나마 나들이를 통해 위로가 되고 즐거우셨기를 소망합니다.

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한 학생이 유서에 “이제 됐어?”라는 글을 남기고 아파트에서 투신자살을 했다는 기사였습니다. 부모가 그토록 원했던 1등을 하고난 직후에 이 학생은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자신의 자녀가 학교에서 1등을 하고 부모는 얼마나 기뻤을까요? 자녀가 자랑스러웠을까요? 몇 시간 뒤에 자신의 자녀가 자살할 것이라는 것도 모른채 자신의 만족을 위해 자녀를 몰아부쳤던 부모는 얼마나 그 순간 만족했을까요.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저희 가족이 잠실에 살 때 아내가 잠실 한 아파트에 사는 친한 언니를 만났습니다. 옆 아파트에서 고등학생 아이가 왕따를 당해서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들은 언니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엄마들이 모인 카톡 방에서 “그 정도 아파트에 50평대에서 사는 애가 왜 왕따를 당했지? 가난한 동네, 가난한 집에서나 당하고 사고 나는 거 아니었나?”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제가 하도 기가 막혀서 이 이야기를 다른 분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듣자마다 어떤 분이 바로 하시는 말씀이 “그러면 아파트 집 값 떨어질 텐데.”였습니다. 우리가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질, 돈, 나만 아는 이기주의로 추악해 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서로를 걱정해주고, 사랑하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격려하는 모습은 볼 수 없고.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짓밟으려 하는 모습만 볼 수 있는 사회입니다.

내가 피해보지 않기 위해서는 남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야만 하는 현실에서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위로는커녕 서로를 속이고 밟아 이기려는 삶이 더 많습니다. 이런 시대에 누군가의 위로의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참 감동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희망이 없는 곳에서 희망을 이야기 하고, 고통이 있는 곳에서 기쁨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이가 있다면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 1절의 말씀입니다. “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하나님의 영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이 땅에서의 삶은 경쟁에서 승리하고, 남을 짓밟고, 인간적인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의 말씀과 같이 가난한 자들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기 위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음이 상한 자를 찾아가 위로하고 그 마음을 고쳐주고, 포로로 잡혀 있는 이들에게 찾아가 자유를 주고, 마음과 삶이 갇혀 있는 사람에게 놓임을 선포하는 삶이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들의 삶이어야 한다고 이사야 선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2절에서도 계속해서 위로하라고 이야기 하면서 더 구체적으로 위로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아주 구체적으로 위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사람들은 포로공동체입니다. 기나긴 타향살이와 남들에게 억눌려서 살아가는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도대체 언제 우리가 고향 땅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언제 예전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에 계시는가?’를 묻던 시절입니다. 그런 이들의 고통을 정확히 보고서 이사야는 구체적인 말씀으로 위로하며 선포합니다.

“이제 곧 해방의 날이 온다. 그리고 우리를 괴롭히던 이들을 향한 보복의 날이 곧 온다!” 포로 된 사람들이 바라던 결말이 아닌가요? 그들의 마음에 꼭 필요한 말씀으로 이사야는 위로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하며 자신의 생명을 꺼버리고 있습니다. 한 생명이라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과연 그런 선택을 했을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제 됐어?”라는 유서를 남기고 떠난 아이의 마음을 부모 중 한 명이라도 아니 곁에 있는 누군가라도 알아주고 위로했다면 그 마음의 고통을 정확히 알고 위로했다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하나님의 영을 받은 우리는 위로자로서 이 땅 가운데 살아야 하는 줄 믿습니다 오늘 3절의 말씀입니다. “3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재 대신에 화관을 씌워 주시며, 슬픔 대신에 기쁨의 기름을 발라 주시며, 괴로운 마음 대신에 찬송이 마음에 가득 차게 하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들을 가리켜, 의의 나무, 주님께서 스스로 영광을 나타내시려고 손수 심으신 나무라고 부른다.”

특별히 3절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찬송’이라는 단어입니다. 나들이를 가는 중에 잠깐 소망회 성도님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요. 한 분이 부르면 따라서 다같이 부르시더라구요. 생각해보면 어딘가로 여행을 갈 때에 노래 부르기는 절대 빠지는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관광버스를 타면 춤도 열심히 추지만 노래방 기계로 그렇게 노래도 부르지 않습니까? 한 사람이 노래를 부르면 버스에 타고 있는 분들도 자신이 아는 노래면 다들 따라서 부르십니다.

우리가 노래를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노래를 부르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콕 집어서 한 가지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노래를 부르면 좋은 점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노래를 부릅니다.

제가 재미있게 보았던 <응답하라1988>이라는 드라마가 있는데요. 재미있는 스토리도 인상적이었지만 이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걱정말아요 그대>라는 노래였습니다. 들국화라는 그룹의 노래를 이적이라는 가수가 다시 불렀는데요. 이 노래가 인상 깊은 이유는 이 노래를 부르면 그렇게 마음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대여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그대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그대 가슴에 깊이 묻어 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떠난 이에게 노래하세요. 후회 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그대는 너무 힘든 일이 많았죠 새로움을 잃어 버렸죠. 그대 슬픈 얘기들 모두 그대여 그대 탓으로 훌훌 털어 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가수의 목소리도 너무 좋지만 가사를 듣게 되면 참 위로가 되는 내용들입니다. 이게 노래의 힘입니다. 노래를 부르는 큰 힘 가운데 하나는 짧은 노래로도 큰 위로를 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해 놓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찬송’입니다. “3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재 대신에 화관을 씌워 주시며, 슬픔 대신에 기쁨의 기름을 발라 주시며, 괴로운 마음 대신에 찬송이 마음에 가득 차게 하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들을 가리켜, 의의 나무, 주님께서 스스로 영광을 나타내시려고 손수 심으신 나무라고 부른다.”

찬송이 마음에 가득하면 우리의 괴로움은 잊고 기쁨이 가득차게 됩니다. 성도님들 그러니 “우리 찬양합시다.”, 우리의 바쁜 일상 속에서 찬양을 합시다. 찬양을 놓지 않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노래 자체가 주는 힘이 있다면 하나님께로 향하는 찬양은 우리가 더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삶 속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합니다.

성경은 노래나 음악이라는 단어를 600번 이상 언급합니다. 절대자인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찬양이 절반 이상을 이루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내용이 하나님 업적에 대한 기쁨과 감사가 들어있는 내용들입니다.

1) 모세의 노래 (출애굽기 15:1-18), 2) 미리암의 노래 (출애굽기 15:19-21), 3)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 (사사기 5:1-18), 4) 하박국의 노래(하박국 3:17-19) 등이 있습니다. 이 노래들을 보면요. 하나님이 어떻게 구원하셨는지, 어떻게 구원 하실 건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고백하며 지은 찬송이라고 감사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하며 찬송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찬양이 더 감동이 되는 것은 믿음의 고백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또는 그렇게 믿고, 살겠다는 결단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화려하거나, 음정의 틀림없이 아주 정확한 음악이 아니어도 우리가 얼마든지, 어디서든 환희를 느끼며 감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이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구나!” 라고 찬양이 울려퍼지는 곳이면 또는 우리가 찬양할 때마다 우리는 이 은혜를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찬송은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습니다. 잘 되서 하나님을 잊을 순간에 찬송을 하다보면 우리가 어떤 겸손함을 가져야 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슬픔과 어려움에 있을 때 찬송을 부르면 실제적으로 구원을 베푸셨던 하나님이 계시기에 위로를 받으며 소망을 얻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언제 어디서나 부를 수 있기에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위로자입니다. 우리에게는 타인을 위로할 힘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이죠. “1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니, 주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임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

가난한 사람, 상한 마음의 사람, 포로된 사람에게 곧 그 고통이 끝나게 될 것이라고 위로의 말을 전하라고 하나님의 영을 받습니다. 우리 역시도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도 오늘 본문의 말씀과 같이 위로 받으려고 하는 자를 자처하기 보다는 위로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찬양이 가득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위로와 기쁨을 누림으로 타인들을 향해 위로의 말씀과 기쁨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게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성경의 노래>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삶을 숙제가 아닌 축제로 맞는 능력은 결국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믿는 것에 달린 근본적인 신앙 문제라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 생명의 주인이 어떤 마음의 소유자인지 정확히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삶의 자세가 확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찬양을 통해 감동시키십니다. 하나님을 향하지 못하는 꽉 닫힌 마음을 찬양으로 여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서 눈물을 흘리게 하십니다. 결국은 그 사랑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로 바꾸어 놓으십니다.

에베소서 5: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며, 여러분의 가슴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찬송하십시오.”

“찬송을 부르세요~ 찬송을 부르세요~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찬송 부르세요~”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찬양을 불러보시기 바랍니다. 찬양을 통해 우리 자신을 위로하고, 위로 받아야 할 이들을 위로할 수 있게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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