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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믿음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3.05.20 23:36
▲ Caravaggio, 「The Taking of Christ」 (1602) ⓒWikipedia
너희는 모두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갈라디아서 3,26)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은 잘 알려져 있는 만큼 오해도 많습니다. 그 앞에 오직이란 말이 더해지면서 더 그렇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4-15장이 믿음을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공간적인 말로 바꾸고 그 조건을 제시합니다. 내 말을 지켜 내 안에 있으라. 또는 내 안에 있으면 내 말을 지키라. 그러면 내 아버지 안에 너희도 있다 등입니다.

그렇지만 예수의 말씀은 교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바울의 저 이해를 바꾸거나 대체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보완 내지 보충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이 그 말의 의미를 이렇게 바꿔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요한의 이해에 접근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 안에 있고 예수 안에 있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믿음은 통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일과 그 결과를 믿는 믿음입니다. 요한은 바로 여기에 빠져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합니다. 예수의 말씀을 지키는 것 곧 그의 명령을 실천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의 명령은 그리스도를 ‘믿으면’ 자연적으로 지키게 되는 것일까요? 결코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요한의 말과 같은 표현을 애써 피합니다. 명령이나 말씀은 법과 같은 뉘앙스를 포함하고 있어서 혹시라도 자신이 말하는 것이 그것 때문에 희석되거나 무효화될 수 있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도 이 문제를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로마서에 12-15장을 실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시작에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는 권고하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그것은 지적 작용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뜻은 실현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실천을 요구합니다. 믿음은 당연히 그 요구에 응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이 관계가 마치 부수적이거나 선택적인 것으로 오해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 요구는 믿음의 목표입니다. 그에 미치지 못하는 믿음에 대해 뭐라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겠지만, 요한의 말을 빌어도 된다면 분명합니다. 믿음을 판단하는 잣대가 있다면 바로 그 요구의 실행 여부입니다.

예수 안에서는 ‘사랑으로 일하는 믿음’이 중요하다(갈 5,6)는 바울의 말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됩니다. 여기서 ‘일하는’이란 말에 조금 더 주목해야 합니다. 동사의 형태가 중간태/수동태이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믿음이 사랑의 활동을 통해 자기를 드러내거나 사랑을 통해 실행되는 등을 뜻합니다.

믿음은 말이 아닙니다. 믿음은 우리를 움직이는 능력입니다. 우리 속에 사랑을 일으키는 힘입니다. 믿음은 그 사랑의 실천에서 비로소 믿음이 되는 그런 것입니다. 우리를 움직이지 못하거나 우리 속에 사랑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그 믿음은 아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는 믿음이 되지 못했다고 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 없음을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사랑으로 자기를 드러내는 믿음이 되는 오늘이기를. 사랑으로 자기를 드러내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음이 아울러 드러나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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