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Junger Prediger
사랑으로 드러내시다숨어 계신 하나님(요일4:16-21; 마6:1-4)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 승인 2023.05.30 03:27
▲ 우리 안에 사랑이 거할 때 하나님은 드러나신다. ⓒGetty Images

1.

우리는 찬송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습니다. 개인적으로 조용한 중에도 하나님을 찾고, 이렇게 온 회중이 공동체로 모여서도 하나님을 찾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찾으러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이 보이십니까? 보이지 않으시면 느껴지십니까?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좀처럼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존재하십니다. 그것이 우리가 경험하는 하나님의 존재 방식입니다. 존재를 알 수 없게 존재하시는 것입니다.

인류가 그 역사를 시작하면서부터 항상 고민했던 것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기도도 드리고 찬송도 부르고 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하나님의 얼굴을 본 사람이 지금까지 없습니다.

분명히 살아계시고 이 역사를 주장하고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데, 그 하나님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볼 수 없는 하나님, 아무도 보지 못한 하나님. 그래서 하나님을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표현하지 못하니 하나님은 없다고 하는 불신자들의 주장에 뭐라 반박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 가지 용어가 생겨났습니다. 그것은 바로 ‘숨어 계신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숨어 계십니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계속 숨어 계실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이 예언자들을 통해서, 제사장들을 통해서, 왕들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역사와 행동으로 계시하셨지만, 그런 하나님을 볼 수 없어서 인간들은 그런 하나님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보이지 않아서 숨어 계신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 승천 하신 이후에도, 그 하나님을 볼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이신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하는데, 그 성령은 도대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숨어 계십니다.

2.

그런데 단 한 번 하나님은 숨어 계신 곳에서 나오셔서 그 얼굴을 드러내놓고 인간에게 역사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가 언제냐 하면 바로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입니다. 아기의 모습으로 베들레헴 말구유에 태어난 아기가 있었습니다. 그 아기의 이름이 예수였는데, 이 아기가 나중에 알고 보니까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처럼 그 얼굴을 드러내놓고 보여주시고, 그 입을 열어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이다. 내 말을 들어라’ 하신 것입니다. 그 기간이 성경에 따르면 33년입니다. 하나님의 지상 생활, 드러내 놓고 ‘내가 하나님이라고, 하나님의 아들 된 하나님이라’고 선언하고 인간과 똑같은 모습으로 존재하시고 살아가고 죽으신 것이 33년입니다.

그것도 마지막 3년을 제외하고는 30년의 기록은 없습니다. 쓰려고 하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습니다. 3년이라는 기간의 압축된,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빈약한 증거가, 우리 인류에게 남겨진 유일한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그때 보여주신 하나님의 모습이, 천지창조 때로부터 시작해서, 앞으로 이 세상이 모두 끝나고 종말이 오기까지,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의 모든 하나님의 역사를 단번에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3년의 생애 속에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모두 요약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증거를 성경 속에 담아 가지고 있습니다.

3년 동안 드러내 놓고 ‘내가 하나님이다’ 하고 하신 그 분, 하나님으로 드러나 주신 그 분, 이를 라틴어로는 ‘레벨라투스 데이(revelatus Dei)’라고 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현현’, ‘하나님의 드러나심’, ‘하나님의 계시’라는 말입니다.

보이지 않았던 하나님, 그리고 앞으로도 보이지 않을 하나님, 이 사이에, 이 중간에 계시된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알 수가 없다. 하나님을 보여 달라.’ 인간은 끊임없이 칭얼대고 떼를 써왔지만, 사실 우리에게는 보이는 하나님이 존재했던 것입니다.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고, 음성을 들을 수 있고, 함께 먹고 마시며 생활하는 하나님이 존재합니다.

3.

숨어 계신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서 드러나신 하나님으로 살 때 그의 모습이 어떠했나 살펴보면, 참으로 기가 막힌 현실을 만나게 됩니다. 공중 보좌에 거룩하게 앉아 사시는 줄 알았더니, 그렇지 않습니다. 저 흙먼지 풀풀 풍기는 갈릴리 시골에 사십니다. 대단한 사람들, 굉장한 사람들과 비단옷을 입고 산해진미 즐기시는 줄 알았는데, 웬걸 가난한 사람, 별볼일 없는 사람, 강도, 죄인, 병자... 온갖 못난 사람들과 다 다니십니다.

그런가하면 하나님이 배반도 당하십니다. 가장 충성스러웠던 제자에게 배반당하여 끌려갑니다. 여러분도 혹시 배신당하신 적 있으십니까? 사람에게 실망하신적 있으세요? 너무 억울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도 배신당하십니다. 침 뱉음을 당하고, 매질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도 억울해하면서 무너져 웁니다. 슬프다고 마음이 괴롭다고 하소연하십니다. 그런가하면 하나님이 십자가에 처형당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죽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아프고 힘든 것이 나만 당하는 것인 것처럼 분노합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도 함께 아프시고 함께 힘들어 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님의 진짜 모습이 등장합니다. 하나님도 아파하고, 하나님도 힘들어하고, 하나님도 배반당하고, 하나님도 고통당하셨지만, 하나님은 우리와 달리 분노하는 대신,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부활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픔을 없애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픔, 슬픔, 고난, 고통, 절망, 비탄 이 모든 것들을 없애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하나님도 겪는 일이라고 알려주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천국은 그 아픔들이 없는 세상이 아니라, 그 아픔들을 극복하고 이겨내고 승리해내는 것이라고 알려주십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증명해 주십니다.

하나님도 우리와 똑같이 고난도 당하시고 죽으셨지만, 하나님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죽으셔서 다시는 죽음이 없는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십니다. 그 부활의 실체를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우리도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4.

그렇지만 그 약속과 함께 하나님은 또다시 모습을 감추십니다. 야속하게도 다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숨어버리십니다. 영원한 생명에의 약속, 구원의 약속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확증하셨지만, 이내 하나님은 다시 숨어버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굳이 그 모습을 감추시는 것일까요? 드러내놓고 영광 받으시고, 드러내놓고 찬양받으시고, 드러내놓고 역사하시고, 드러내놓고 통치하시지 왜 굳이 하나님은 힘들고 답답한 길을 선택하실까요?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인도할 때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음성도 직접 듣고, 하나님과 그렇게 수많은 교제를 나눠놓고도 정작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니 답답했던 것입니다. 본인 스스로 수많은 기적도 행하고 능력도 행했는데도,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해서 답답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의 얼굴을 보여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거절합니다. ‘내 얼굴을 보면 너는 죽는다. 나는 보이지 않아야 한다. 볼 수 없는 것을 보면,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을 보면 너희는 죽는다. 감당할 수 없는 것을 경험하면 안 된다.’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바위틈에 숨어서 하나님이 지나가신 뒤에야 비로소 그 등을 볼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말하지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드러내놓고 역사하시고 통치하시고 심판하셨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됩니다. 안 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면 우리는 다 죽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시게 되면, 우리 인생은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고 모조리 죽게 됩니다. 하나님의 지엄하신 심판 앞에 아무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얼굴을 감추신 것은, 그 모습을 숨기신 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방식인 것입니다. 그 얼굴을 드시고 우리와 마주하게 되면, 우리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스스로 숨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이 세상을 이 역사를 통치하고자 하시면, 인간에게는 심판뿐이기 때문에 숨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향한 사랑이요 우리를 향한 자비입니다.

저는 그래서 숨어 계신 하나님이 좋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그 하나님이 저와 일상을 같이 하시고 저와 구원의 역사를 함께 이루어가십니다. 얼굴은 볼 수 없지만,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숨어 계신 그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합니다. 지금이라도 하나님의 얼굴을 대하면, 죽음 밖에는 답이 없는 저를 용납하시고, 살려주시고, 기회를 주시고, 거듭나도록 인도하시고 인내하시면서 숨어 계신 하나님이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5.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이런 습관이 있었습니다. 하늘의 뜻을 펼친다고 유산을 하나님께 바칩니다.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고 자선 헌금을 드립니다. 그리고는 거리에 나가서 뿔로 만든 큰 나팔을 불어서 사람들을 불러 모읍니다. 사람들이 모여들면 손에 돈을 들고서, 봉헌할 물건을 들고서 ‘나는 이렇게 하나님께 바칩니다!’ 하고는 선포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숨어서 하시는데, 왜 너희 인간들은 드러내 놓고 바치려고 하느냐? 숨어 계신 하나님께 바치려는 사람은 숨어서 바쳐라.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라. 훌륭하고 찬양받을 일이지만, 훌륭하다는 찬양을 받으려고 하지 말아라. 정작 영광 받아 마땅하신 하나님은 숨고 숨고 감추고 감추신다.’

지금도 이스라엘에 가면 성소에 헌금통이 있습니다. 우리는 네모난 함 모양으로 된 헌금통을 쓰는데요. 이스라엘의 헌금통은 뿔로 된 나팔 모양입니다. 옛날 나팔을 불고 떠버리던 전통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입니다.

온 역사를 통해서 숨어 계시던 하나님이 단 한 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스스로를 계시하시고 보여주셨는데, 그 때 보여주신 것이 무엇이냐? 바로 온전히 숨는 방법, 제대로 숨는 방법을 보여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왜 깨닫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구원하시겠다고, 그 온 세상의 죄악을 감당하시고, 스스로를 죽이시고, 그 모습까지 감추시고 숨어 계신데, 왜 인간은 겸손하게 숨어서 그런 하나님을 성찰하고, 그런 하나님을 본받지 못하느냐는 겁니다. 하나님처럼 숨어서 조용히 일하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세상의 누룩이 되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누룩이 되어서, 세상 속으로 숨어들어가서 온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부풀어 오르게 하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왜 숨고 숨고 숨어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숨어서, 모든 것을 살려내는 그 길을, 걸어가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6.

오늘 요한일서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바로 그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안 보이지만, 하나님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그 사랑의 끈으로 우리 모두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영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 영이 우리 모두를 연결시켜 줍니다. 죽은 자와 산 자도 연결되어 있고, 과거와 현재로 연결되어 있고, 하늘과 땅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 우리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들어와 있으면, 그래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나면, 하나님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숨어버렸지만, 하나님이 숨으신 것은 우리의 사랑을 통해 드러나시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강림주일을 맞았습니다. 성령강림주일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사도행전의 말씀을 읽습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이 불처럼 내려온 일을 기억합니다. 그러면서 성령의 은사가 어떻게 드러나는가에 집중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드러나지 않고 숨어있음에 집중해 봅시다.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가득 차서, 내 손이 온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되고, 내 발걸음이 골고다 언덕 올라가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발걸음이 되고, 내 품이 내 삶이 인간 세상 모든 어려움을 품어 안아 주시는 성령의 품이 되기를 소망해 봅시다. 그렇게 조용히 하나님의 사랑이 되어, 이 세상 속에 숨어봅시다.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모르게, 나를 통해 주님께서 하나님의 세상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9 한국기독교회관 503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