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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전도가 온다!(민 13:25-33 행 14:8-18 막 5:1-13)성령강림후 둘째 주일/총회선교주일(6월11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3.06.08 23:44

1. 새로운 전도가 온다!

오늘은 성령강림후 둘째주일이자 총회선교주일입니다.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 세워진 교회가 제 기능을 다 할 때,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것이며 선교 역시 ‘하나님의 선교’로 그 빛을 발할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세본문 말씀은 복음 전파, 혹은 선교에 관한 말씀입니다.

먼저 사도행전과 마가복음 말씀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고 더러운 귀신을 내쫓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구약 말씀은 반대로 담대함을 잃어버린 이스라엘 백성의 약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결과 복음 전도는커녕,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복음 전도와 선교는 담대함이 필요함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겸손도 필요합니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복음 전도와 선교가 단지 영혼 구원의 영역뿐만이 아니라, 정치·사회적으로 확장된다는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군대 귀신을 내쫓은 것이 바로 그러한 의미입니다. 이렇게 곧 하나님의 선교는 영적 차원만이 아니라, 인간 전 삶의 영역에 펼쳐진다는 뜻입니다.

전도에 있어서 사람들의 환경을 살피고, 또 선교에 있어서 선교지의 언어와 문화를 정확히 알아야 된다고 생각한 영국 성공회의 존 피니 주교는 『새로운 전도가 온다』(비아, 2014)에서 기존의 복음 전도가 너무 제한적이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복음을 전달하는 방법은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내용과 그것을 표현하는 교회의 형태다. 나는 우리가 복음 메시지를 너무 ‘가둬 놓고, 표절하고, 제한시키며’, ‘교회’의 의미를 너무 한정시킨 나머지 사람들을 경시했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내용의 장엄함을 축소시켰다.”

사실 우리는 복음을 너무 작게 만들었습니다. 복음을 축소시킬 뿐 아니라, 이를 통제하고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기까지 합니다. 피니 주교의 말대로 “복음은 거친 들판에서 휘몰아치는 자유로운 바람 같은 성령의 매개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와 교회의 복음은 더 넓어지고 더 깊어져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피니 주교는 이 책에서 전도에 대한 서로 다른 세 가지 접근법을 소개합니다. 그것은 ‘케리그마 전도 방법’, ‘유앙겔리온 전도 방법’, 그리고 ‘미스테리온 전도 방법’입니다. 먼저 ‘케리그마 전도 방법’은 복음의 내용, 곧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사역과 “예수는 그리스도다!”라는 케리그마를 선포하는 것으로 교리 교육의 방식을 택합니다. 이 방법은 즉각적 회심이 아닌 점진적 회심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학교라는 형태를 통한 양육을 중요시합니다. 가령 성인들에게는 훈련 시스템을,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는 교회학교 등을 통한 단계별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예배에서도 교육적 요소를 드러냅니다. 

둘째 ‘유앙겔리온 전도 방법’은 말씀을 선포하고 반응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예수의 수난과 십자가 처형에 초점을 맞춥니다. 속죄 교리를 반복해서 선포하며 대속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합니다. 특히 가능한 많은 사람이 들을 수 있는 매체 활용이 필수적입니다. 이 방법은 양육보다는 라디오와 텔레비전, 인터넷을 통해 전도합니다. 대표적으로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방법에는 교회의 중요성이 잊혀집니다. 신자들끼리의 교제에 집중하지 않기에 공동체적 성격이 무시되기도 하며 대중 매체는 효과를 거두기 위한 수단이기에 숫자에 지나치게 의존합니다. 또한 대중 매체를 사용하기에 복음보다는 방법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단순하게 빨리 복음을 전파해야 하기에 말씀이 지나치게 단순화되는 단점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회개라는 것이 참회가 아닌, ‘단순한 유감’으로 오해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두 가지 전도 유형은 모두 언어 중심의 전도로 지금까지 그 나름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미스테리온 전도 방법’은 말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성령님께서 활동하시는 신비의 영역을 열어 놓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도의 영역은 비언어적이며 암시적인 상징과 의례, 소리와 몸짓, 그리고 경험과 분위기, 봉사와 헌신 등 복음이 전달되는 다양한 방식에 개방적인 전도 방법입니다. 특히 방언과 은사 등 외적 표현과 성례전적 요소가 강조됩니다. 설명보다는 표징과 침묵이라는 미덕을 중시합니다. 문제는 상징적 요소에 집중하다 보니 상징 그 자체에 갇힐 위험성이 있습니다. 또한 경험적이고 직관적이기에 예수의 생애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상징에만 가둬질 위험성도 있습니다.

오늘 사도행전 말씀에 나오는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 방법은 케리그마와 유앙겔리온 전도 방법이고,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전도 방법은 미스테리온 전도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세 가지 전도 방법은 모두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은 바울과 바나바의 담대한 전도를 보여줍니다. 복음서 말씀은 예수님의 담대함을 보여줍니다. 먼저 사도행전 말씀을 볼까요?

2. 케리그마와 유앙겔리온 전도 방법

▲ 1차 전도여행: 시리아 안디옥 → 구브로 → 버가 → 비시디아 안디옥 → 이고니온 → 루스드라 → 더베

1차 선교여행을 떠난 바울과 바나바가 구브로 섬을 지나 지금의 튀르키예 지방에서 전도할 때였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 도착해서 회당에서 설교하며 이방인을 전도하였으나, 유대인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쫓아냅니다(행 13:14-50). 이후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서도 회당에서 설교하며 전도했으나, 이방인과 유대인과 관리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들어 루스드라로 가게 됩니다(행 13:51-14:7).

이고니온에서 루스드라까지는 직선거리로는 32킬로미터이나 험한 오솔길이었습니다. 루스드라 사람들은 도시 전체를 그리스의 주신 제우스에게 바쳤기 때문에 성문 옆에 제우스 신전을 세우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루스드라에 도착한 바울과 바나바는 청년 디모데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디모데의 아버지는 로마의 관리였으나 세상을 떠났고, 유대인인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디모데후서에 보면 디모데를 소개할 때,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 1:5).”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믿음의 가정이었습니다.

▲ 믿음의 가정인 디모데 가정

따라서 디모데의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메시아를 기다리고 소망하며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디모데에게 성경을 암송하도록 교육했으며 말씀을 듣고 배우도록 인도하였습니다. 또한 디모데는 그리스어를 자유롭게 읽고 쓰며 말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훗날 바울은 디모데를 선교여행의 동역자로, 또한 에베소 교회의 감독으로 세우게 됩니다. 아무튼 바울과 바나바는 디모데의 안내로 루스드라에서 복음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특히 제우스 신의 축제일에 두 사도가 공공 집회장에서 군중들 앞에서 설교를 시작할 때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바로 그때의 일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 능력을 행하다가 제우스와 헤르메스로 추앙받았던 바울과 바나바, 제우스 신상, 헤르메스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행 14:8-10)

이것은 케리그마와 유앙겔리온 전도 방법입니다. 말씀을 선포하고, 또 공공 집회장에서 이적을 보여줍니다. 그러자 이것을 본 루스드라 시민들은 깜짝 놀라 소리 질렀습니다.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행 14:8-13)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고 외친 것입니다. 이때 루스드라 사람들이 생각한 신은 그들이 섬기는 제우스 신과 그의 전령인 헤르메스였습니다. 키가 크고 검은 수염이 난 바나바를 제우스로 생각했고, 바나바보다 나이가 적고 말을 잘하는 바울을 헤르메스로 보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 전도는 담대하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서 말씀을 볼까요?

3. 미스테리온 전도 방법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막 5:1-5)

예수님께서 거라사인의 지방에서 전도하실 때입니다. 거라사 지역은 데가볼리(Δεκά-πολις, Decapolis) 가운데 한 곳입니다. 데가볼리는 갈릴리 바다 동쪽과 남쪽에 자리 잡고 있던 ‘10개(Δεκά)의 도시(πολις)’를 뜻합니다. 로마의 폼페이우스가 팔레스틴 지역을 정복한 후, 상업과 군사적 방어를 위해 동맹체로 통합된 지역입니다. 빌라델비아, 거라사, 스구도볼리, 벨라, 가다라, 디온, 카나타, 라파나, 힙포, 다메섹 등입니다. 이 데가볼리의 도시들은 상업적인 통상로와 군용도로에 자리 잡고 있던 전략적인 도시들이었습니다.

아무튼 거라사에서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을 만납니다. 밤낮 무덤 사이나 산에서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 몸을 해치고 있었는데, 아무도 그를 말릴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귀신에게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명령하십니다. 말씀을 볼까요?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막 5:6-8)

그런데 이 귀신이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고 부탁합니다. 또한 자신을 이 거라사 지방에서 내보내지 말아 달라고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귀신의 이름을 묻습니다.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이에 간구하여 이르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매,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막 5:9-13)

귀신의 이름이 군대라고 합니다. 헬라어로는 레기온(λεγιών)입니다. 우리말로는 ‘군단’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현대의 군대로 따지면 ‘사단’급), 그 수가 6,000명 정도 되는 로마 군사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로마군은 100명으로 구성된 백인대가 있습니다. 이 백인대의 지휘관이 백부장입니다. 그리고 6개의 백인대가 합쳐져서 600명의 대대를 구성하고, 대대 10개가 합쳐져서 6,000명의 레기온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왜 숱한 귀신 가운데 로마군대 귀신이 이 사람에게 들어갔을까요? 우리 교단의 군산 대은교회 오종윤 목사님은 식민지 백성의 내면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합니다.

▲ 로마 군대와 군대귀신

“무당들이 굿을 할 때 차려입는 복장을 살펴보면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전립을 쓰고 쾌자를 입는데 이것은 조선 시대 무관(武官)의 복장입니다. 전립은 무인들이 전쟁 때 쓰던 모자이고, 쾌자는 무인들이 입던 겉옷입니다. 왜 무당들이 군인 차림새를 하는 것일까요? 백성들은 자기들을 혹독하게 괴롭히는 관리들을 지독하게 미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기도 그런 관리가 되어서 한번 호령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습니다. 더군다나 무관은 힘이 있는 관리니까요. 백성들의 그런 뒤틀린 욕망을 무당이 대리만족시켜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무엇을 사랑하면 거기에 걸맞은 귀신이 붙는 법입니다. 돈을 사랑하면 돈 귀신이 붙고 음란에 빠지면 음란 귀신이 붙습니다. 군대 귀신이 붙은 사람은 로마군대를 죽도록 미워하면서도 또 마음 한편에 그런 로마군인이 되고 싶은 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로마군대의 귀신이 달라붙은 것이지요. 미워하면서 닮고 싶은 이중적인 사고방식, 식민지 백성의 슬픈 자화상입니다.” (『국민일보』 가정예배, ‘우리 속의 군대 귀신’ 2023.6.5.)

그런데 이 군대 귀신을 예수님은 근처에 있던 2,000마리 돼지 속으로 쫓아냈는데, 돼지들이 낭떠러지로 내리달아 바다에 빠져 죽었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사실 유대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돼지는 굽이 갈라져서 쪽발이지만 되새김질을 못 하므로 너희에게 불결(레 11:7)”하다고 율법에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돼지 떼들은 로마군대의 식사를 공급하기 위하여 사육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미스테리온 전도 방법은 단지 귀신 들린 이를 구원하는 것을 넘어, 로마 제국의 군대와 그 탐욕에 저항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탐욕을 상징하는 돼지와 군대는 모여있기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복음 전도와 선교는 단지 영혼 구원의 영역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적으로 확장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담대하게 케리그마 전도방법과 미스테리온 전도 방법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담대함에 겸손이 필요합니다. 다시 사도행전 말씀으로 돌아가 볼까요?

4.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바울과 바나바의 놀라운 사역을 들었던 루스드라의 제우스 신전 신관들은 제우스 신이 출현한 것으로 알고, 제사용 소와 화환을 가지고 와서 두 사도를 신으로 모시려고 제사를 준비하였습니다. 이를 들은 바나바와 바울은 급히 이들을 만류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행 14:14-15)

바울과 바나바는 겸손하게 창조주 하나님을 전합니다. 특히 이 말씀에서 우리는 ‘자연 계시’에 관한 말씀을 엿볼 수 있습니다. 말씀을 볼까요?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행 14:16-18)

“하나님께서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라는 말이 바로 자연 계시의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통해 말씀으로 계시하셨고, 또 예수 그리스도라는 특별 계시를 주셨지만, 이방인들에게도 자신을 증언하셨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것을 담대하게 또한 겸손하게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나 담대함과 겸손을 잃어버렸을 때 전도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구약 말씀이 그렇습니다. 먼저 말씀을 볼까요?

5.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 12 정탐꾼

“사십 일 동안 땅을 정탐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보고하고 그 땅의 과일을 보이고,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민 13:25-29)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이후 가나안 정복에 앞서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내어 그 땅을 정탐합니다.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12명의 정탐꾼은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보고하기 시작합니다. 정탐꾼들은 가장 먼저 그 땅이 약속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임을 이야기하고 그 증거로 가나안 땅에서 가지고 온 과일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말도 합니다. 땅 거주민인 아낙 자속과 아말렉인 등 강한 백성과 성읍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갈렙은 그 땅을 취할 수 있다고 합니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 13:30-33)

갈렙과 달리 10명의 정탐꾼은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 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다.”라고 말합니다. 40일 동안 똑같은 사람을 보고 똑같은 지역을 정탐하고 돌아왔는데 그 평가와 반응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이기리라!”라고 말하는데, 열 사람은 “못하리라!”라고 말합니다. 나아가 “우리는 그들 보기에 메뚜기와 같다.”라고 까지 말합니다. 결국 이들의 말대로, 두려워했던 출애굽 1세대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심리학 용어 중에 ‘라벨 효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라벨이라는 것은 상품에 부착되어 있는 표시를 뜻합니다. 따라서 ‘라벨 효과’란 붙여진 라벨처럼 되어 간다는 의미입니다. 곧 누군가가 나에게 ‘너는 성격이 나쁜 사람이다’라고 라벨을 붙여주면 자신도 모르게 그 라벨에 맞는 행동을 합니다. 점점 그 라벨처럼 되어 갑니다. 반면 나 스스로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 ‘나는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야’, ‘나는 좋은 사람이야’라는 라벨을 붙이면, 정말 그렇게 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으로 보면, ‘메뚜기 효과’입니다.

이러한 ‘메뚜기 효과’, ‘라벨 효과’가 실제로 발생하는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꼬리표가 붙는 순간, 그것을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자꾸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꼬리표가 자신에게 붙여지면,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것을 반복해서 생각하게 합니다. 계속해서 연상하게 됩니다. 그렇게 반복적으로 생각하게 되면, 우리는 그런 사람으로 변하게 됩니다.

따라서 좋은 라벨을 붙여야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처럼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처럼 복음 전파의 영역을 영혼 구원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의 전 영역까지 확장하는 하나님의 큰 사람, 넓은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 교회도 품이 넓은 교회, 생각이 큰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교회가 되어 하나님의 선교를, 맡은 바 사명을 감당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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