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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정권의 ‘녹화사업’, 청춘과 민주주의 봄을 앗아갔다[기획특집 1] 녹화사업은 무엇이었나
임석규 | 승인 2023.06.21 02:30
▲ 지난 5월 15일 ‘녹화공작·강제징집 피해자들을 위한 기독교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진실화해위의 권고결정문에서 갑자기 사라진 국가폭력 희생자들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홍인식
“한희철은 참 좋은 친구였어. 한희철이 철도공고를 다녔거든. 그 당시에는 거기서 1, 2등 하면 서울대에 바로 가고 그랬거든. 그래서 서울대에 입학하고 나랑 친하니까 그때 막 번역되고 출판되던 사회과학 책들 나한테 소개시켜 주고 읽고 이야기 많이 했어. 그렇게 이야기 하다가 시간 가는 줄 몰랐지. 그럴 때 내 서재에서 같이 자고 그랬어. 그러다가 녹화사업 대상자로 잡혀갔지. 고문 받고 하면서 나랑 어떤 연관이 있냐고 물었다고 하더라고. 그때 교회나 교회 청년들이 군사독재정권에 반대하던 때고, 엮어서 나를 잡고 싶었던 것 같아. 그런 경우가 많았어. 청년들한테 프락치 노릇시켜서 정권에 반대하는 교회랑 엮으려고 많이 했지.”
- 이해학 한국기독교장로회 성남주민교회 원로목사

젊은 청년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이른바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녹화사업(綠化事業)’. 특히 녹화사업에 희생된 청년들은 교회와 교계에서 멀리 있지 않았다. 군사독재정권과 가장 대척점에 있었던 곳이 교회와 교계였기 때문이다.

왜 교계가 나섰는가

이해학 목사가 증언한 한희철 학생의 경우와 같이 군사독재정권은 그들에게 반대하던 교회들을 감시하고 그들의 정보를 빼내려고 시도했다. 군입대 전 한희철 학생은 ‘성남시 대학생 연합회’, ‘YMCA’ 등지에서 활동했었고, 군사독재정권은 한희철 학생에게 그와 같이 활동했던 동료들을 밀고하고 감시하기를 요구했다. 고문과 압박에 시달리던 한희철 학생은 1983년 12월 11일 오전 4시 35분경 비극적인 선택을 한다.

이를 가장 먼저 공론화한 곳은 1984년 EYCK(한국기독청년협의회), KSCF(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민주화운동청년연합 등 5개 단체였다. 또한 지난 5월 15일 ‘녹화공작·강제징집 피해자들을 위한 기독교대책위원회’가 주최한 “강제징집·녹화공작·프락치강요 피해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과 국가책임이행 촉구” 기자회견에 나선 이종명·박만규 목사(기감)와 기자회견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오규성 목사(기장)가 교계의 대표적인 녹화사업 피해자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녹화사업의 피해자는 2,921명에 이른다.

황인근 NCCK인권센터 소장에 따르면 “특별법 제정 등 여러 가지 입법을 통해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 권고 결정문에 있었던 특별법마저 결정문에는 삭제되는 등 문제가 심각하다”며 “나서기를 조심스러워 했던 피해자들도 목소리를 내려고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교계가 앞장 서서 이 문제를 다룰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녹화공작·강제징집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기독교대책위원는 NCCK인권센터, KSCF, EYCK, 한국YMCA전국연맹, 기독교대한감리회선교국정의평화위원회, 목원대학교민주동문회,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 (사)기독교민주화운동 등의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피해자들과 가장 가까이 있었고 여전히 가까이 있는 곳은 교회와 교계이다. 그 옛날 피해자들은 바로 기독청년들이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에큐메니안은 기획특집으로 군사독재정권 하에 벌어진 ‘녹화사업’에 대해 다섯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프락치

러시아에서 유래된 단어 프락치에 대해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서전에서는 ‘특수한 사명을 띠고 어떤 조직체나 분야에 들어가서 본래의 신분을 속이고 몰래 활동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명사(名詞)로 소개하고 있다.

옛날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 말기 생활고(生活苦)가 깊어지면서 민중의 분노는 러시아의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이 점차 퍼졌다. 이에 러시아 비밀경찰은 각 운동단위와 반체제 조직들로 잠입시켜 정보를 수집하고 반체제운동에 민중이 합류하는 것을 막았다. 이것이 프락치의 역사적 태동이었다.

국내에서 프락치라는 단어는 광복 직후 이승만 정권의 ‘국회 프락치 사건’ 등에서 등장했다. 한국 전쟁을 거친 이후엔 박정희-전두환 등 군사독재정권이 민주화운동을 전개하던 학생 및 교계 단체에 잠입시킨 스파이(우리말 끄나풀)를 가리키는 단어가 됐다.

녹화사업(綠化事業)

표준국어대사전에 기재된 녹화산업(綠化産業)의 뜻을 통해 녹화사업의 의미를 살펴보면 ‘공업 개발이나 택지 개발 따위로 파괴되는 자연환경을 보호하기 위하여, 나무나 화초·잔디 따위를 기르거나 심어 정원·공원 따위를 만들어주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기후 위기 시대 속에 녹화사업이란 단어는 미래세대를 위해 자연환경 보호 활동의 한 형태로 보이지만, 군사독재정권이 서슬이 퍼렇던 1970~80년대 민주화운동 시기에는 이 단어가 전혀 다른 형태로 사용됐다.

특히 전두환 정권에서는 이 녹화사업의 뜻을 ‘좌경화로 붉게 물든 학생들을 푸른 자유민주주의로 순화한다’며 사상이 볼온한 학생들을 강제로 징집해 특별교육을 시키고 학생운동을 차단하겠다는 의미로 바꿔버렸다.

당시 전 정권의 녹화사업은 시위를 주동하거나 학생운동에 가담·관련된 대학생들을 강제로 징집해 고문 등 폭력을 써 강제로 학생운동의 경력을 진술하게 하고, 전 정권을 긍정하도록 의식화한 뒤 대학교·시민사회단체 등에 프락치로 이용했다.

물론 앞서 박정희 유신정권 시기인 1971년에 교련 반대운동을 전개했던 학생 200여 명이 강제로 제적된 뒤 입영시킨 사건이 있었지만, 이때는 단순히 입대를 시키는 정도였기에 녹화사업의 악랄함은 오히려 앞선 정권보다 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협박과 고문에 프락치 된 청년들

녹화사업에 강제로 동원된 학생들은 병역법에 따른 정상적 절차도 없이 가족·지인들과 차단된 채 강제로 자원입대 동의서를 쓰고 곧장 군대로 끌려갔으며, 이 과정에서 ‘특수학적변동자’로 분류돼 보안부대에서 15~30여 일 동안 가혹한 고문을 받으며 조사를 받았다.

이들 중 일부에게는 특별휴가가 주어졌는데, 이 기간 이들은 대학 선·후배들을 만나 학내·외 정보들을 수집해 보안부대로 보고해야 하는 프락치로 활동했다. 프락치 활동이 끝난 후에도 정권은 이들을 지속해서 감시했는데, 이는 지난 1991년 보안사령부 윤석양 이병이 ‘청명 계획’이라고 하는 민간인 사찰 계획을 폭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렇게 녹화사업에 강제징집 된 청년들은 협박·회유·고문 등으로 심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어야 했으며, 프락치 공작에 활용당한 것에 대한 양심의 갈등에까지 내몰림을 당해야 하는 비참한 운명에 놓였다.

이러한 군사독재정권의 악랄한 공작에 의해 정성희(연세대학교, 1982년 7월 23일 사망), 이윤성(성균관대학교, 1983년 5월 4일 사망), 김두황(고려대학교, 1983년 6월 8일 사망), 한영현(한양대학교, 1983년 7월 2일 사망), 최온순(동국대학교, 1983년 8월 14일 사망), 한희철(서울대학교, 1983년 12월 11일 사망) 등 총 6명의 청춘들이 목숨을 잃었다.

40여 년이 지났지만, 고통은 ‘현재진행형’

지난해 12월 진실화해위는 제45차 위원회에서 강제징집·프락치 강요 공작 사건 피해자 2,921명의 명단을 공개하며, 이 사건에 대해 ‘중대한 인권침해’라 규정했다. 진실화해위는 당시 보안사령부 존안자료 및 선도대상자 명단 등을 전수 분석해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린 뒤 ‘신청인 C 씨 등 187명은 국가로부터 중대한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동시에 진실화해위는 위헌·위법에 의한 입영 조치가 불법이라 지적하며, 국방부 등 국가기관들을 향해 ▲ 개인별 피해를 명확히 규명할 수 있는 조사기구 설치, ▲ 피해자들의 명예회복 및 배·보상 관련 특별법 제정 등 인권침해에 대한 피해회복 실현을 권고했다.

그러나 진실화회위의 권고는 법적 구속력이 없기에 현재 윤석열 정권에서도 녹화사업 등 강제징집 및 프락치 활동 강요에 대한 국가적 사과는 없었으며, 도리어 김순호 행정안전부 경찰국장이 지난해 취임하면서 프락치 의혹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김 국장은 지난 1983년 학생운동을 하다 군에 입대한 뒤 프락치로 활동하며 1989년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의 동료를 밀고해 경찰 대공요원으로 특채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이에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단체 연대회의가 지난해 8월에 진상규명을 신청한 상태다.

이처럼 윤석열 정권에 이르기까지 녹화사업 피해자들은 육체적으로 고문 후유증과 정신적으로 죄책감 등에 시달리고 있지만 국가의 빈약한 과거사 인식과 배·보상 관련 법률의 미비로 인해 오늘날까지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임석규  rase21c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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