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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상을 장애로 만드는 사회는 안녕한가해명과 포섭을 넘어선 장애신학 (4)
황용연(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 대표) | 승인 2023.06.25 00:51
▲ 손상은 특별한 사고가 아니라 일상에서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이 손상이 장애가 되게 하는 것은 사회적 책임이다. ⓒGetty Images

장애의 사회적 모델을 추구하는 입장에서는 우선 장애인이라는 사회적 범주 자체에 대한 의심의 시선을 던진다. 예를 들어 농인, 맹인, 비장애인이 함께 있을 때 농인-비장애인과 맹인-비장애인은 의사소통이 원활할 수 있지만 농인-맹인은 별도의 매개가 없으면 의사소통이 곤란한 것처럼, 각각의 장애에 따라 다른 구분 프레임이 형성되게 마련인데 그런 상황을 무시하고 비장애인이 아닌 모든 사람들을 자의적으로 하나로 묶어 버린 범주가 장애인이라는 것이다.(1)

이렇게 장애인이라는 자의적인 묶음범주가 등장한 이유는 자본주의 체제의 정립과정에서 구빈대상자들을 노동능력이 있는(데 노동을 거부하는) 사람들과 노동능력이 없는 사람들로 구분하여 수용시설을 분리하고 효과적인 훈육을 시행하려는 국가의 의도 때문이었다.(2)

손상이 장애가 아니다

앞에서도 간단하게 논했듯이 장애의 사회적 모델을 추구하는 입장에서 보면 신체에 손상이 일어났다고 해서 그 자체가 장애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손상이 사회적인 이유로 해서 필요한 보완을 받지 못할 때 장애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위에서 살펴 본 장애인 범주의 자의성과 연결시킨다면 결국 장애인이라는 범주는 평등한 대우가 필요한 어떤 이익집단을 가리키는 고정적 범주라기보다는 그런 범주를 존속하게 만드는 사회에 대한 심각한 고찰을 거쳐야만 전사회적인 평등이 이루어지는 유동적 범주가 된다.

즉, 이런 입장에서 보면 장애 이슈는 장애인이라는 특수 집단에 관한 이슈가 아니라 장애 이슈를 통해 인간의 보편성 자체를 다시 사유해야만 하는 이슈가 된다. 이렇게 볼 때 앞에서 다룬 장애신학 논의의 대부분은 장애인을 고정적 범주와 특수 집단이라는 관점으로 본다고 지적할 수 있다.

장애인이라는 범주가 그 범주를 존속하게 만드는 사회에 대한 깊은 고찰을 이끈다고 할 때 그 예의 하나로 장애인의 시설 수용에 관한 고찰을 들 수 있다. 장애인운동의 입장에서 보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을 놓고 가정되는 기본 상태는 시설 수용이며 시설 바깥의 생활은 장애인이 특별한 여건(본인의 장애가 가볍거나 주위 사람들의 도움이 있을 때)을 갖출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장애인도 평등한 시민권을 갖춘 시민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시설 수용이 기본 상태일 수는 없는 것이므로 이 지점에서 그런데 왜 장애인에게는 시설 수용이 기본 상태로 가정되는가 하는 질문이 부각되게 마련이다. 이 질문은 나아가 장애인 외에도 시설 수용이 기본 상태로 가정되는 다른 상황에도 그 가정이 맞는가 하는 질문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리하여 장애인운동의 입장에 서면 장애인의 시설 수용에 관한 질문은 장애인뿐만 아니라 현재의 사회가 전반적으로 노숙인, 난민, 에이즈 환자 등의 시민들을 시설에 수용하거나 혹은 긴급도움이 필요한 여성/청소년 등에게 제공되는 긴급도움이 시설 수용으로 환원되는 등의 상황을 정당화하는 메커니즘을 기반에 깔고 성립하지 않는가를 묻는 ‘시설사회’(3)라는 프레임으로 발전이 가능하다. 이는 장애인운동에서 시작된 논의가 장애인운동의 지평만이 아닌 전 사회적 지평에서 유효한 논의로 발전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권리냐 사회복지냐

한편, 장애인을 평등한 시민권을 갖춘 시민이라는 입장에서 볼 때 장애인 권리투쟁도 다르게 볼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이 지점에서 김원영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서 서술하는 ‘오줌권’ 이야기가 생각할 거리를 상당히 준다.(4) 김원영은 장애인 화장실이 부족하여 대소변 보기가 상당히 힘든 장애인의 현실을 두고 ‘오줌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서술을 한 뒤, 이 ‘오줌권’의 성격이 어떠한가를 따진다.

이 ‘오줌권’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복지의 권리로 이해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장애인의 시민권 중 하나인 신체의 자유권의 성격으로 이해되어야 하는가? 김원영에 의하면 현재 한국의 법적 판단은 전자에 가깝지만, 인간이면 누구나 대소변을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오히려 후자인 신체의 자유권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이 권리를 보장해야 할 국가의 행동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전자의 사회적 복지의 권리라는 이해를 수용할 경우 국가는 복지를 위해 노력은 해야 하나 예산 등의 현실적 조건의 제약을 고려해야 한다는 절충적 입장에 서게 되기 십상이며 앞에서 언급한 법적 판단도 이런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후자의 신체의 자유권이라는 입장에 서게 되면 이러한 절충적 입장이 불가능해진다. 신체의 자유권은 기본적 시민권이기 때문에 그 기본적 시민권을 현실적 조건이든 뭐든 어떤 이유로도 보장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5)

김원영은 이 ‘오줌권’ 이야기를 오랫동안 장애인운동의 중심 이슈 중 하나였고 2022년 지하철타기 투쟁으로 사회적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던 장애인 이동권 이슈와 연관시킨다. “노동권을 포함한 삶의 질 확대와 제고에 기본이면서 필수 사항”(6)인 장애인 이동권은 사실상 장애인운동이 발명한 어휘이고 권리인데, 이 역시 신체의 자유권, 즉 장애인의 시민권의 문제로 바라보아야 하며, 장애인의 이동을 배려하는 사회적 복지의 권리로 바라보아 현실적 제약을 고려한다는 절충적 입장에 서는 것은 장애인을 평등한 시민권을 갖춘 시민으로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7)

장애인의 평등한 시민권이란 관점을 노동 영역으로 확장 적용할 경우 노동의 정의 자체도 일정한 변화를 겪게 된다. 장애인 노동의 이슈에는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등을 통해 장애인 고용 쿼터를 확보하려는 방식이나 노점상 등의 특정한 직업을 장애인 자립과 연결하려는 방식(8) 등이 시도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 서울시에서 실시한 서울형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제도는 전혀 다른 착상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제도는 세 가지 유형의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되었는데 장애인 권익옹호 직무, 장애인 인식개선 직무, 문화예술 직무가 그것이다. 장애인 권익옹호 직무에는 편의시설에 대한 장애인 접근성 모니터링과 현장 캠페인, 장애인 인식개선 직무에는 인식개선 강의의 강사 직무 등이 포함된다.(9) 문화예술 직무의 경우 중증장애인들이 진행하는 각종 문화예술 행위가 포함되며 그 내용의 상당수는 장애인 권익옹호/인식개선에 해당한다.

서울형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제도에서는 우선 중증장애를 갖고 있기 때문에 노동에 적합하지 않다는 사고에서 탈피해 중증장애인이 하는 일을 노동으로 인정한다. 또한 노동으로 인정하는 ‘하는 일’의 범주도 권익옹호, 인식개선 등으로 조금 더 넓게 설정하고 있다. 유기훈의 해석에 의하면, 이렇게 함으로써 노동 개념 자체가 중증장애 당사자에 맞추어 변화하게 되며 중증장애인들이 자신의 노동으로 자신들의 권리의 실현을 촉진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노동 자체를 당사자들의 입장에서 재구성하여 실행하는 것이 곧 노동 권리의 실현이기도 하다.(10)

자본주의는 문제가 없는가

위에서 본 것처럼 장애에 관한 사회적 모델은 장애운동에 의해서 손상을 장애로 만드는 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와 장애인의 입장에서 볼 때 사회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모델의 발전 현상이 질병을 앓고 있는 당사자들에게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적 임금노동을 수행하는 데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노동자에게 개인단위로 건강을 스스로 챙길 것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질병은 노동자 자격의 결격 상황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고 이는 다른 상황에서도 질병과 비정상성을 연결시키는 빌미가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이 질병을 앓는 사람의 자책감으로 이어져 “아플 권리가 사라진 자리에 자책감이 자리하는”(11)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건강하지 못한 상황에 대한 죄책감에서 해방되어 현재 자신의 아픈 상태를 잘 겪어 내는 ‘잘 아플 권리’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 권리를 질병권이라 명명하는 활동가 조한진희의 주장이다. 이 질병권을 주장하는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아픈 상태를 잘 겪어 내는 것은 아픈 사람도 원하면 적절한 시간과 강도의 노동을 할 수 있고, 퇴근 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할 수 있으며, 아픈 사람이 자책감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건강의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사회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 상황에서 가능하다.(12)

질병권의 관점을 조금 더 확장하면 각 개인의 신체의 기본 상태를 건강으로 가정하는 것에도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오히려 자기 나름대로의 질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 아니냐는 질문이 가능하며, 코로나19 팬데믹 등의 상황은 그런 질문의 정당성을 더 높일 것이라고 안희제는 주장한다. 그리하여 안희제는 각 개인의 신체의 기본 상태를 건강이 아니라 아픔이 쉽게 치유되지 않는 난치로 가정해야 하며 사회가 이 난치 상태의 시민들이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난치의 상상력 위에 조직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13)

장애 이슈에 대한 담론에서 장애와 질병을 분리하는 견해는 반드시 한 번은 천명이 되게 마련이며 장애에 관한 의료적 모델이 아직도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도 더더욱 그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이 점을 감안할 때 질병권 관련 담론들에서는 질병과 장애가 유사한 프레임으로 일정하게 재수렴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 특이하다고 하겠다. 뒤에서 다룰 장애인의 주체성을 상호의존에 근거한 연립으로 규정하는 논의가 질병권 관련 담론들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14) 이것도 질병과 장애의 재수렴의 한 예라고 볼 수 있다.

의료인류학자 김관욱은 그의 저서 『사람입니다, 고객님』에서 닉 폭스와 팸 앨드레드의 건강에 관한 정의인 ‘신체가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저항하고 전환할 수 있는 확장된 능력’이라는 정의(15)를 소개한다. 이 정의는 상호의존에 근거한 저항을 포괄하는 정의라는 점에서 앞에서 살펴 본 질병과 장애의 재수렴에 근거한 건강의 정의로 사용가능하다 하겠다.

미주

(1)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파주: 오월의봄, 2019), 52-53.
(2) Ibid., 304-306.
(3) 시설사회와 관련된 논의는 다음 책을 참조할 수 있다. 나영정 외, 『시설사회』(서울: 와온, 2020).
(4) 이후의 관련 논의는 다음 문헌을 참조하였다. 김원영,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파주: 사계절, 2018), 209-234.
(5) 이 화장실 문제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특히 트랜스젠더 성소수자에게도 문제가 된다.
(6) 김기용, “장애는 장해인가?-장애인 사회정책의 디아코니아적 해석과 전망”, 『신학사상』 187호(2019/겨울), 한신대학교 신학사상연구소, 350.
(7) 김원영,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226-227.
(8) 이 경우에 대해서는 다음 책을 참조할 수 있다. 정창조 외, 『유언을 만난 세계』(파주: 오월의봄, 2021), 97.
(9) 유기훈,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노동 (불)가능한 몸을 넘어”, 「비마이너」 2021년 1월 9일,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0575 , 2022년 11월 7일 검색
(10) Ibid.
(11) 조한진희,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파주: 동녘, 2019), 330-331.
(12) Ibid., 332.
(13) 안희제, 『난치의 상상력』(파주: 동녘, 2020), 243.
(14)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조한진희, “더 많이 기댈 수 있어야 덜 아픈 사회가 된다”, 「한겨레」 2021년 5월 22일,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96218.html (2022년 11월 20일 검색)
(15) 김관욱, 『사람입니다, 고객님』(파주: 창비, 2022), 357.

황용연(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 대표)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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