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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적 후유증과 정신적 죄책감까지, 청년들의 피맺힌 한(恨)[기획특집 2] 자료로 보는 녹화사업의 다양한 사례들
임석규 | 승인 2023.06.27 22:03
▲ 녹화사업 의문사 6인. 사진 위쪽부터 1. 한양대학교 기계과 81학번 한영현, 2. 고려대학교 정경계열 80학번 김두황, 3. 연세대학교 영독불계열 81학번 정성희, 4.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81학번 이윤성, 5. 서울대 기계설계과 한희철, 6. 동국대학교 사대 수학교육과 81학번 최온순 ⓒ민청련동지회

에큐메니안은 지난주 수요일부터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기독청년들을 대상으로 불법 강제징집·프락치 활동 강요한 ‘녹화사업(綠化事業)’을 기획특집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지난 첫 기사는 많이 그리스도인들이 생소(生疏)해할 녹화사업의 개념과 1970~80년대 역사적 배경을 짚어냄으로 기획특집의 문을 열었다.

이후에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의 자료를 통해 녹화사업의 다양한 사례들을 살펴보며, 녹화사업으로 피해당했던 그리스도인을 만나 그날의 참상(慘狀)을 직접 듣고 녹화사업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배·보상을 위한 특별법 제정 과정 및 기독교대책위의 활동 등을 다룰 예정이다.

이 녹화사업 기획특집 기사들을 통해 잔혹한 징집 속에 수많은 고문을 당하고 동지들을 밀고해야만 했던 가혹한 운명에 처했던 당시 피해자들이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기를 소원하며, 민주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재의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가 피해자들의 희생으로 인해 이뤄진 것임을 깨닫고 특별법 제정 등 이들의 회복을 위한 연대의 손을 잡는 실천을 이뤄내길 주문한다. - 필자 주

지난해 11월 23일 2기 진실화해위(정근식 위원장)는 군사독재정권 시절 국가 공권력이 대학생들을 강제징집 및 프락치 강요 공작(이하 녹화사업)한 사건에 대해 ‘국가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 발표했다.

진실화해위는 당시 보안사령부 존안자료 및 선도대상자 명단 등 방대한 자료들을 전수 분석해 11월 22일 제45차 위원회에서 이처럼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으며, 신청인 조종주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실규명추진위원회 사무처장 등 187명에 대해 중대한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로 인정했다.

이번 조사를 통해 녹화사업 관련자 2,921명 명단이 확인돼 기존(1980~1984년 기준)에 확인된 강제징집 1,152명과 녹화사업 피해자 1,192명(강제징집 921명 포함)보다 피해자 규모가 훨씬 컸음이 드러났다.

이번 회차에서는 군사독재정권들이 청년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벌였던 녹화사업의 사례를 진실화해위가 공개된 자료를 토대로 살펴보고자 한다.

[사례 1]

지난 1983년 대학교에서 민주화·인권을 위해 학생운동 활동하던 그리스도인 A씨는 학교서 귀가하다가 갑작스럽게 경찰에 체포당한 뒤 육군 ㄱ 보안부대에 강제로 끌려갔다. 체포부터 군부대에 도착하기까지 A씨는 자신이 어떤 혐의가 적용되었는지도 몰랐다.

보안부대로 끌려온 A씨는 공권력으로부터 친구·동지들과 어떤 활동을 벌였는지 진술할 것을 강요받았으며, 심문자가 원하는 답을 내놓지 않을 때 가혹한 고문을 받으며 동료들을 배신할 것을 지속적으로 협박받았다.

이후 보안부대 군인들은 A씨에게 매일 부대로 전화해 대학 내 조직·시위 동향을 보고하라는 프락치 업무를 강제로 부여했으며, 가족에게 피해가 생길까 두려운 A씨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재학 중인 대학가의 정보를 보고에 올렸다.

[사례 2]

신학대학교에서 소위 ‘운동권’으로 이름이 알려진 예비목회자 B씨는 1983년도에 군대에 자진 입대해 ㄴ 지역에서 복무하고 있었다가 갑자기 육군 ㄷ 보안부대원들에 의해 ㄹ 지역 보안분실로 끌려갔다.

B씨는 처음 보는 보안분실 군인들로부터 대학교 재학 중에 활동한 내용을 모두 진술하라고 협박받았으며, 그들이 원하는 진술을 거부하자 가차 없이 신체적 구타를 동반한 가혹한 고문을 받아야만 했다,

조사 이후 프락치가 되어 휴가를 나갈 때마다 보안대와 통화를 해 신학대 선·후배들의 동향을 보고할 것을 강요받은 B씨는 양심에 가책을 느꼈지만, 당장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에 그나마 사회에 비교적 알려진 정보들을 보고할 수 밖에 없었다.

[사례 3]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부지런히 공부해 서울 소재 ㅁ 대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한 C씨는 진학 이후에도 부지런히 학업을 이어갔다. 또한 대학생 연합회 및 기독청년 단체 등지에서도 활동해 지역에서도 훌륭한 인재(人才)로 손꼽혔다.

1982년 12월에 군입대해 성실히 복무하던 C씨는 1983년 10월쯤 1차 정기휴가를 보낸 후 갑자기 보안사로 끌려갔다. 그가 휴가 기간 중 민주화운동을 하던 동료·후배들을 도왔다는 것이 연행된 이유였다.

5일간 보안사의 온갖 고문 속에서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취조를 당해 몸과 마음이 매우 피폐해진 C 씨는 부대 복귀 다음 날 새벽 초소에서 총탄을 맞고 죽어있는 채로 발견됐다.

세 사례에서 소개된 피해자들처럼 녹화사업에 동원된 대학생들은 직·간접적으로 민주화운동 또는 학생운동과 접점이 있었다. 특히 12·12 하나회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정권은 자신들의 권력과 사익(私益)을 지키기 위해 연좌(連坐)까지 적용해 수많은 청년들을 희생시켰다.

진실화해위도 군사독재정권의 녹화사업에 대해 ▲ 위헌·위법 조치들을 어겼다는 이유로 강제징집, ▲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국가안전기획부·경찰에 불법 체포·감금된 상태에서 강제로 징집, ▲ 가혹행위와 강요로 휴학계·입대지원서를 쓰게 한 후 입영, ▲ 군 복무 중 사상 전향과 양심에 반하는 프락치 활동 강요 등 모두 불법이라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박정희-전두환 정권 20년간 4차례 대규모 강제징집이 이뤄진 사실을 확인했는데, 각각 ▲ 1971년 위수령 발동 이후, ▲ 1975년 대통령 긴급조치 9호 발동 이후, ▲ 1980년 계엄 포고령 발표 이후, ▲ 제5공화국 정권 시기였다.

특히 제5공화국 시기에 벌어진 강제징집은 당시 국방부·내무부·병무청·법무부·문교부·대학 등 국가 공공기관 및 공권력이 총동원돼 조직적으로 진행됐으며, 징집당한 청년들은 국가의 직권남용으로 인해 최전방 부대로 배치당했다.

또 보안사는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강제징집 당한 대학생들을 전역 후까지도 사찰했으며, 전두환 정권에 들어 복무 중·전역 후에도 징집당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근원 발굴’이란 명목으로 대학·노동·종교 분야에 침투시켜 정보수집활동을 했다.

녹화공작 대상자들은 보안사에서 수일간 가혹한 조사를 받은 후 반공·전두환 찬양 서적들을 읽고 반성문·서약문을 강제로 작성했으며, 이후 프락치로 투입돼 자신이 속한 조직(대학·노동·종교 등)의 동향과 지하서클 연계조직 등을 파악해 보고해야만 했다.

특히 프락치 강요 공작의 경우 보안사 심사과 폐지 이후에도 ‘선도업무’라는 이름으로 1987년까지 지속됐으며, 6·10 민주항쟁 이후 직선제로 출범한 노태우 정권 시기인 1990년대까지 이어진 것이 진실화해위의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녹화사업으로 인해 꽃다운 청춘을 육체적 후유증과 정신적 죄책감으로 보내야 했던 피해자들, 특히 ‘신앙’이라는 양심의 자유를 철저하게 유린당했던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 기나긴 억압의 역사를 지나 이제 진상규명과 국가의 사과·재발 방지 대책 마련 등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이제라도 ‘총체적 인권침해’를 당했던 녹화사업 피해자들의 피맺힌 통사(痛史)에 고개를 돌려 역사의 진실을 마주해야 할 때가 도래했다.

임석규  rase21c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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