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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며느리? 여자 사위? 새 딸, 새 아들(성)소수자와 그리스도교 19
황용연(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 대표) | 승인 2023.07.13 23:28
▲ 동성결혼은 누구의 밑으로 귀속되는 것이 아니다. ⓒGetty Images

1.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는 시위 문구에서 가장 흔한 것 중 하나가 “남자 며느리, 여자 사위”가 존재하는 꼴은 못 본다느니 하는 말입니다. 이 말이 자기들 생각에는 당연하게 느껴지니까, 혹은 잘 먹히겠다 싶으니까 많이 쓰는 것이겠죠.

얼마 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성당 옆에 있는 교회 정문에 저 “남자 며느리, 여자 사위” 운운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것을 본 성당 신부님이 그리스도교를 믿는 사람들이 저렇게 이웃을 배척하는 현수막을 걸어도 되나 고민을 하시고 나서 성소수자 당사자와 성소수자 부모 각각 한 분을 성당에 초청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셨지요. 그렇게 보면 저 이야기가 당연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때로는 역효과를 불러 오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시위 문구로까지 나오지는 못하는 말이지만 저런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입에 잘 담는 말이 “당신 자식이 성소수자라면 그래도 찬성할 거냐” 운운하는 말이죠. 물론 앞 문단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성소수자 자식을 지지해 주는 성소수자 부모들이 엄연히 있으니 얼토당토 않는 말이겠구요.

2.

사실 “남자 며느리, 여자 사위”가 존재하는 꼴을 본다 못 본다 이런 말부터가 이상한 말이겠죠. 소위 “남자 며느리”라면 지정 성별 남성끼리 결혼했다는 말일 테고 소위 “여자 사위”라면 지정 성별 여성끼리 결혼했다는 말일 텐데, 결혼까지 할 정도로 깊은 관계를 맺었다면 며느리네 사위네 하기 전에 서로의 배우자인 게 먼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거기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이 며느리니 사위니 말을 붙여 가며 반대 운운하는 게 어이가 없을 수 밖에요.

며느리니 사위니 말을 붙여 가며 반대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며느리”가 “아랫사람”으로 소속된다고 생각되는 “시댁”의 “시부모”의 입장을 가상하고, 혹은 “사위”가 “아랫사람”으로 소속된다고 생각되는 “처가”의 “장인장모”의 입장을 가상하고 이야기하는 게 결혼하는 당사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것보다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가능할 터입니다. 이런 소속의 문제를 더 살펴 본다면, 완화되기야 했지만 “며느리”가 “시댁”에 “아랫사람”으로 소속되는 정도가 “사위”가 “처가”에 “아랫사람”으로 소속되는 정도보다 아직은 더 강해야 한다고 받아들여진다는 불평등을 이야기해야 하기도 하겠고요.

이런 점을 생각하면 “남자 며느리, 여자 사위” 운운하는 말에는 어쩌면 이런 당혹감도 담겨 있을 법도 합니다. 예를 들어 지정 성별 남성끼리 결혼한 부부는 배우자의 부모에게 서로 “남자 며느리”일 텐데, 그러면 대체 이 부부의 소위 “양가” 중 어느 쪽이 “시댁”이고 어느 쪽이 “처가”인지를 무슨 수로 가리겠냐는 당혹감 말입니다. 지정 성별 여성끼리 결혼한 소위 “여자 사위”인 경우에도 같은 당혹감이 당연히 생길 테구요.

3.

성소수자부모모임의 어느 정기모임에서 참석자 중 지정 성별 여성들끼리 결혼한 부부 중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자신의 부모님이 자신의 배우자, 그러니까 앞의 말을 빌려 오면 소위 “여자 사위”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네요. 아무리 생각해도 “사위”라는 명칭은 뭔가 안 맞는 것 같다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고민한 결과 나온 명칭이 “새 딸”이라면서 그 명칭이 자신과 자신의 배우자 모두에게 아주 마음에 든다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소위 “여자 사위”가 “새 딸”이라면 소위 “남자 며느리”는 “새 아들”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요? [커밍아웃 스토리]를 찾아 보니 비슷한 경우가 있더군요. 자신의 아들과 커플이 된 남성을 “공짜로 얻은 내 큰아들”이라고 부르는 분이 있었습니다.

“새 딸”, “새 아들”이라면 “시댁”이고 “처가”고를 가릴 필요가 없겠죠. 결혼한 부부의 양쪽 부모님 모두에게 “새 딸”이고 “새 아들”일 터입니다. 아니, 어쩌면 양쪽 부모님 중 한쪽이 먼저 “새 딸”, “새 아들”로 받아들이셔도 다른 한쪽은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시는 경우가 꽤 많을 수 있겠네요. 그러면 “새 딸”, “새 아들”이라는 명칭은 그 자체로, “며느리”, “사위”처럼 가족이기 때문에 당연하게 성립한다고 생각되는 명칭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이름과 체계 하에 이미 살고 있던 사람들이라도 서로를 새롭게 사랑하는 법을 발명해 내어야 가능한 명칭이겠습니다.

그러니 “새 딸”, “새 아들”이라는 명칭이 이미 존재한다는 것은 새롭게 사랑하는 법을 발명해 내는 일이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니, 하느님을 새롭게 알아가는 법이 나오고 있단 말도 될 테지요?

황용연(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 대표)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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