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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의 유령, 그리스도교의 문을 두드릴 때맑스 코뮤날레 첫 날 전경
오마이갓 | 승인 2005.07.05 00:00

 

이 정 훈

 

맑스 코뮤날레 첫 날...
 

“맑스 코뮤날레는  동구권 붕괴 이후  급속히 잊혀져 온 맑스와 맑스주의 이론의 정신과 방법을 오늘의 시대 상황에 되비추어 계승·혁신하여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지구화와 전면 대결하는 강력한 이론적· 실천적  공간을 창출하기 위한 새로운 모색이다”
(결성 취지문 중)

 

지난 5월 27일부터 28일까지 건국대학교 법과 대학에서 국내·외의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맑스주의 학자들이 모여 학술·문화제를 열었습니다. 아직도 맑스가 우리에게 들려 줄 말이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팽배해져 가는 이 세계에! 아니 맑스라면 아직도 서슬 퍼런 눈을 치켜 뜨고 쌍심지를 켤 이 땅 한반도에! 자본주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서울 한 복판에! 아카데미즘의 마지막 보루처럼 여겨지던 대학마저도 자본에게 팔려가는 현 시대의 작태 앞에서 말입니다. 과연 될 법이나 한  행사일까요?

그런데 벌써 두 번째 행사라고 합니다. 정확한 대회의 명칭은 맑스 코뮤날레라고 합니다. 코뮤니즘과 비엔날레의 합성어입니다. 코뮤니즘(communism)은 공동체라는 뜻으로 쓰이고, ‘비엔날레’(biennale)는 이탈리아 말로 ‘2년마다’라는 뜻입니다. 2년마다 치르는 맑스주의자들의 코뮤니즘 축제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제1회 행사는 지난 2003년 5월 23일부터 25일까지 이화여대 삼성교육문화관에서 주최측에서도 놀랄 2000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열렸다고 합니다. 주제는 “맑스의 현재성”이었다고 합니다. 지나간 시대의 유물과도 같이 여겨지는 맑스의 말들이 현재성을 가질 수 있느냐의 고민 가운데 탄생되었다고 합니다.

이번 두 번째 대회의 주제는 맑스가 아직도 우리에게 희망인가 하는 절대절명의 물음으로 시작한 것 같습니다. 1980년말부터 좌파적 대안은 없고, 우파는 신자유주의를  통해 승승장구 하고 있다는 패배감! 우리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회자되는 우파는 부패해서 망하고 좌파는 분열로 망한다는 우스갯 소리! 그렇다면 도대채 대안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은 자연스레 뒤 따라오는 꼬리표인 것 같습니다.

김수행 상임대표의 인사말로부터 시작된 제2회 대회 전체 강연의 첫 포문은, 속된 말로 요즘 한참 줏가를 올리고 계시는, 자율평론의 조정환  선생님의 “오늘날의 코뮤니즘과 삶 정캇라는 주제의 강연과 빛나는 전망의 황선길 선생님의 “평의회 공산주의”라는 강연이었습니다.

 

 

자본주의가 전 지구적으로 팽창하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코뮤니즘은 가능한지에 대한 연구와 토론이었습니다.

 

맑스의 유령, 그리스도교의 문을 두드릴 때...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가 주축이 되어 기독교 진보 진영 내에서도 맑스 이론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지난 대회에 이어서 계속되었습니다. 그 너른 강의실에 15명 정도가 조촐하게 모여서 시간에 구애됨 없이 여유롭게 강연은 진행되었습니다. 조금은 안타까운 부분이었습니다. 현 기독교의 현주소가 아닌가 해서 말입니다.

 

 

시골 아저씨 같이 푸근한 최형묵 목사님, 그리스 시대의 떠돌아다니며 전복적 지혜를 가르쳤던 현자 같이 기인한 이정희 목사님, 깔끔한 외모만큼이나 깔금한 논평을 해 주신 정혁현 목사님. 이 세 분이 기독교의 맑스 수용의 문제를 가지고 진지한 발표와 논찬이 시작되었습니다.

 최형묵 목사님의 사회로 첫 강연자로 나선 이정희 목사님은 “현 시대의 자본주의와 결탁한 기독교는 국가 폭력 앞에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벙어리로 전락해 버렸다”고 합니다. 특히 박홍규 교수와 이종영 선생님의 이론들을 수용하면서 궁극적으로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 교회 공동체를 ‘에클레시아-코뮌’으로 정의하면서 맑스가 말한 코뮤니즘의 기독교적 수용 형태를 전망해 주셨습니다.

“오해하기도 힘든 어려운 글을 어떻게 논평하겠는가?” 하시며 너스레를 떠시는 정혁현 목사님이셨지만, 자신도 알지 못하는 자기에 대해 정확한 논찬을 하셨다는 이정희 목사님의 칭찬은 과찬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해방적 맑스주의의 정신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 그리스도교가 아닐까 한다”는 이정희 목사님에 대한 논평은 그리스도교의 맑스 수용의 당위성을 아주 깔끔하게 설명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주 노동자 - 외부로서의 내부, 내부로서의 외부

이정희 목사님에 이어서 두 번째 강연자로 나서 황용연 간사님은 한국 사회의 큰 이슈 중의 하나인 이주 노동자 문제에 대한 강연이었습니다. 한국 사회가 바라보는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시선 문제와 현 정부가 내어 놓는 해결책들이 오히려 더 많은 문제를 야기시킨다는 지적은 정부의 여러 관계자들도 귀담아 들어야 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특히 강연 서두에 모 인기 그룹 가수에 대한 문제를 이주 노동자의 문제로 바라 볼 수 있다는 지적은 참 신선한 것이었습니다.

 

 

황용연 간사님의 논평을 맡아주신 이석규 선생님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이주 노동자에 대해 타자로 머무는 강연자에게 지구화의 희생자로서 이주 노동자로서 바라볼 것과 노동의 주체로서 이주 노동자들에게 저항과 대항 그리고 혁명을 위한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비판은 아주 적절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예수 운동을 하부 구조로서의 기독교로 이해하면서 이주 노동자 운동을 위해서 기독교가 나서야 한다는 지적은 단순한 시각의 교정이 아니라 구체적인 대안 마련의 단초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었던 것은 우리 나라에서 이주 노동자로서 일하다가 본국에 돌아가서는 한국의 악덕 기업주와 같은 행동을 저지르는 일부 노동자들의 행태에 대한 지적이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이주 노동자에 대한 선교가 국제 연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의견은 진보적 기독교 운동이 나아가야 할 앞으로의 방향 설정에 참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내일은 맑습니다!

   
이 모든 강연이 끝난 후 캠퍼스 한 가운데에서 맑스를 통해 내일의 희망을 보고자 했던, 우리들의 소원을 담은 “내일은 맑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열려진 문화 축제는 이론들이 주었던 무거움을 감성으로 풀어내기에 충분했던 자리였습니다. 어색하게 기대어 앉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시원한 술잔을 건낼 수 있도록 우리에게 여유로움을 주기에도 충분했습니다. 너와 내가 서로를 타자화시키지 않고 소외시키지 않고 서로에게 의미로 다가오는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멀리 부산에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오시고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칭하시면서 흥겨운 선율에 가볍지만은 않은 가사로 노래를 들려주신 우창순 선생님의 무대와 이주 노동자들로 결성된 락 그룹인 Stopcrackdown의 공연은 필자에게 가장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맑스 코뮤날레 첫 날의 모든 일정을 마치면서 정말 맑스의 말대로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아직도 살아서 구천을 떠돌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유령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아직도 정말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이야 어떻게 되었든 젊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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