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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하고 있다는 착각방언의 능력을 받읍시다(사도행전 2:1-13)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 승인 2023.08.12 20:11
▲ 「Pentecost」 ⓒhttps://worshipwords.co.uk/pentecost-images/

1.

오순절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태풍이 온 것 같은 바람 소리가 그 곳을 가득 채웁니다. 그러더니,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이는데요, 그것이 모인 사람들 각 사람에게 하나씩 임합니다. 성령의 능력이 임하시는 겁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사람들이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모두 다른 지역의 언어였습니다. 다른 지방 사람들이 그들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갈릴리 사람들이 자기 나라 말을 하니까 다들 놀라고 당황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의 말씀입니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행적들이 적혀 있습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을 증거하고 복음이 퍼져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앞부분은 사도 베드로를 중심으로, 뒷부분은 사도 바울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그런데 이 사도들의 이야기가 뜬금없이 등장한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1장 1절을 보면, 사도행전이라는 책이 누군가가 데오빌로라는 사람에게 써준 두 번째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첫 번째 책에서는 예수님 이야기를 써 주었고, 이제 두 번째 책에서 예수님의 제자들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 책은 바로 누가복음입니다. 누가복음의 맨 처음에도 데오빌로라는 사람에게 책을 써주는 똑같은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누가복음이 1권이고 사도행전이 2권입니다.

그런데 1권과 2권 사이에 긴밀한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1권인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으로 끝납니다. 사도행전의 처음도 예수님의 승천으로 시작합니다. 물론 다른 복음서에도 승천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런데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나오는 승천 이야기에는 다른 복음서에 없는 특별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늘로부터 오는 능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능력’말입니다. “너희들은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입을 때까지 이곳에서 머물러 있어라.” 누가복음 24장 49절 말씀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입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능력’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바로 이 특별한 능력이 무엇인가? 오늘 우리가 함께 고민할 이야기입니다.

2.

모든 복음서에는 똑같이 제자들의 못난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서 목숨까지도 내버리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다 도망쳐 버립니다. 베드로는 닭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합니다. 심지어 유다는 배신의 주인공이 됩니다. 예수님을 따라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온 삶을 던졌던 제자들의 무력한 모습이 복음서의 결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무능했던 제자들, 배신했던 제자들, 등 돌렸던 제자들, 어떻게 그들이 갑자기 복음의 투사들이 되어서 세상 속으로 나갈 수 있었는가? 어떻게 세상속에서 기적을 행하고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워갈 수 있었을까요? 복음서와 사도행전 사이에 어떤 엄청난 변화가 있었던 것입니다. 갑자기 존재가 뒤바뀌어 버리는 사건이 있었던 것입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바로 그 변화에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바로 그 변화의 순간을 보여줍니다. 제자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있는데, 하늘에서 성령이 내려와서 능력을 받고 변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능력이 수상합니다. 제자들이 무슨 능력을 받았습니까? 예, 방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방언이 무슨 대단한 권능이라고 방언을 주셨습니까?

저는 방언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성령이 권능을 부어주실 거면 좀 더 화끈하고 강한 것으로 주셨으면 어땠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치유의 능력을 받았다면 엄청났을 것 같습니다. 이 제자들이 다니면서 손을 댈 때마다 환자들이 씻은듯이 나아 버리면 얼마나 강력했을까요?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소경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가 듣게 되고... 얼마나 멋질까요? 더 강하게 권능을 주셔서 죽은 자들이 막 벌떡벌떡 일어나버리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순식간에 믿고, 그 소문과 복음이 빠르게 전해지지 않겠어요? 이런 게 권능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 주시며 주신 것은 방언의 은사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좀 초라합니다.

그런데 말씀을 잘 살펴보니까, 오늘 주신 이 방언은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기도할 때 하는 방언, 남이 알아듣지 못하는, 하나님과 나만의 은밀한 언어인 방언과는 조금 달라 보입니다.

방언의 뜻은 지방의 언어라는 뜻입니다. 경상도 방언, 전라도 방언이라고 하죠, 경상도에서 쓰는 말, 전라도 사람들이 쓰는 언어라는 뜻입니다. 방언은 말 그대로 다른 지방의 언어였습니다. 지금 유대 출신 사람들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대한민국 여기저기에서 다 서울로 모이듯이, 세상 구석구석에서 다들 뉴욕으로 모여들 듯이,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온 세상 출신 유대인들이 다 모여든 것입니다.

바대, 메대, 엘람, 메소포타미아, 갑바도기아, 본도, 아시아, 브루기아, 밤빌리아, 이집트, 리비야, 로마, 크레테, 아라비아 수많은 곳에서 모여들었습니다. 서로 말이 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능력을 받고 보니, 이상한 일이 생겨났습니다. 외국어 공부도 못해본 촌사람들이, 외국여행 한 번도 못해본 촌놈들이 갑자기, 영어로 중국어로 일본어로 스페인어로 태국어로 몽골어로 인디언말로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 통하지 않던 말이 소통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성령, 그 성령을 통해서 위로부터 받은 능력, 그 능력의 정체가 ‘말’이었다는 것입니다. 서로의 말을 하는 능력이라는 겁니다. 초라해 보이지만,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것이야말로 진짜 능력이라는 말입니다.

3.

티비에서 부부관계를 개선해주는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결혼하고 살면서 서로 사랑하기는커녕 점점 사이가 안 좋아집니다. 그래서 전문가를 찾았습니다. 그 전문가가 하는 말이 서로 말이 안 통한다는 겁니다.
 
부부가 오랜만에 오붓하게 데이트를 합니다. 영화도 보고 사람 구경도 하러 시내에 나갑니다. 영화관을 가는 길에 길거리에서 머리띠를 봤어요. 아이들이나 할 법한 유치한 머리띠를 보고서 아내가 남편에게 말합니다. ‘이 머리띠 예쁘다~!’ 남편이 대답합니다. ‘쓸데없는 소리! 어서 가!’

그런데 조금 걸어가다가 아내가 이유 없이 짜증을 내기 시작합니다. 아내가 이유도 없이 짜증을 내니까 남편도 화가 납니다. 결국 영화도 안 보고 돌아왔습니다. 기분 좋게 나갔다가 왜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요?

그 전문가가 해석해 줍니다. 이 간단한 대화 안에, 전하지 못한 내 말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듣지 못한 상대방의 말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가 말하려고 한 것이 아닌데 서로 오해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줍니다. 상대방의 언어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 머리띠 예쁘지?’ 이게 무슨 말인가요? ‘나도 이런 예쁜 머리띠 하면 예쁘고 귀엽고 청순하던 그런 때가 있었는데... 그 때가 참 좋았지. 살다보니 그런 것도 다 잊어버리고 그냥 살아 왔네. 그래도 당신한테는 나 아직 예쁘지?’ 모처럼만의 데이트에서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을 담겨 있다는 겁니다. 아내가 아내의 언어로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에게는 이 말이 아내의 언어로 안 들립니다. 그저 남편의 언어로만 들립니다. ‘이 머리띠 이쁘지?’ 하니까, 남편의 두뇌가 해석하기 시작합니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이 머리띠는 크기와 모양과 색깔이 조화를 이루어서 그 아름다움의 수준이 상당하다고 생각합니까? 지금 내가 이 머리띠를 착용하면 나이와 신분과 사회적인 체면 등등 잘 맞아떨어집니까? 15000원이라고 적혀 있는데, 가격은 적절합니까?” 남편은 이렇게 자기 언어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자기 언어로 대답합니다. ‘내가 보기엔 미적 감각이 훌륭하지 않습니다. 60대인 당신이 하기에는 무척이나 유치합니다. 가격도 어처구니없이 비쌉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목적은 영화를 보는 것이니 서둘러 영화관으로 갑시다.’ 이걸 줄여서 뭐라고 했죠? ‘쓸데없는 소리! 어서 가!’

남편이 남편의 언어로 말하니까, 아내는 이것을 또 자기 언어로 해석합니다. ‘예쁘긴 무슨, 다 늙어 가지고 주책맞게 당신이 이런 거 어울리는 줄 알아? 그리고 왜 이런 쓸데없는 데다 돈 쓸려고 해? 그러면서 맨날 돈없다 그러지~ 어휴. 그리고 이렇게 딴짓이나 하니까 맨날 지각하고 늦고 그러지, 당신은 그래서 문제야~’ 서운합니다. 짜증이 납니다. 화가 납니다.

이 부부는 왜 계속 사이가 틀어질까요? 방언을 못해서 그렇습니다. 서로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성경에도 이 부부와 같은 맥락에 있는 사건이 있습니다. 바벨탑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을 흩어버리시고 서로 서로 다른 말을 하게 하시니까, 한 마음으로 열심히 뭉쳐서 일하던 사람들이 삽시간에 와해되고 맙니다. 소통하지 못하고, 제 말만 하고 남의 말을 듣지 않으니까, 하늘 높이까지 탑을 쌓아가던 사람들도 한 순간에 몰락하고 맙니다.

사자와 소의 안타까운 이야기도 있습니다. 사자와 소가 사랑에 빠졌는데 이 사랑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사자는 소를 볼 때마다 아껴두었던 가장 맛있는 고기를 먹으라고 줍니다. 그런데 소는 먹지 못합니다. 사자는 자기가 가장 아끼는 것을 주었는데, 소가 안 먹으니까 서운합니다. 소는 소대로 사자를 너무 사랑해서, 가장 좋은 최고급 싱싱한 풀을 사자에게 줍니다. 사자는 기껏 풀쪼가리나 주는 소가 서운합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합니다. 우리는 내 방식대로 사랑합니다. 우리는 내 생각을 내 언어로 말합니다. 온갖 정성을 내 방식대로 쏟아 붓습니다. 그리고는 내 기대와 다른 상대방의 반응에 서운합니다. 자기 잘못과 반성은 없습니다. 나는 최선을 다했고, 상대방이 나쁜 사람일 뿐입니다. 항상 서운하고 항상 억울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신앙 체험 갖고 있어요. 믿음 가지고 있어요. 복음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전달을 잘 못 해서 증인이 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소통하지 못하고 전달하기 못하여 능력이 나타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나는 증인이 되고자 하는데, 사람들이 내 말을 듣지 않습니다. 관심도 기울이지 않습니다. 내 체험이 거짓이기 때문이 아니라, 복음에 능력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내 언어로! 내 말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

방언의 정체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내 언어가 아니라, 상대방의 언어입니다. 내 말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들을 수 있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하는 말을 듣는 것입니다. 소통하는 것입니다. 위로부터 오는 능력, 하늘에서 임한 권능은 바로 소통입니다. 서로 말이 통하는 것입니다. 말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과 상대할 때 가장 힘들까요? 가장 어려운 사람이 말이 안 통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할 말만 하고, 귀를 닫아버리는 사람들이 가장 어렵습니다. 그런데 우리 삶을 자세히 돌아보면,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 제일 어렵다고 하면서, 자기 자신이 말 안 통하게 삽니다. 대화하지 않습니다. 소통하지 않습니다. 자기 할 말만 합니다. 남들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에이, 저 사람들 문제야, 온 세상이 다 틀려 먹었어’라고 말합니다.

신앙인들도 그렇습니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알아듣지도 못하겠고, 쉽게 동의할 수도 없는 자기들의 말만 신나게 쏟아내고,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마음을 더 닫아버리든, 기독교를 더 싫어하게 되든, 나는 씨를 뿌렸으니까 성령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하면서 뿌듯해합니다. 전도했다고 말합니다. 같은 신앙인들도 눈살을 찌푸리게 ‘예수천당 불신지옥’ 만을 외쳐댑니다. 자기들만 옳다고 하고, 자기들 이야기만 일방적으로 말하는 배타적인 사람들이 되어갑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보시면서, 우리의 작금의 행태를 보시면서 무슨 능력을 줘야겠다 하실까요? 네, 방언이 바로 그 능력입니다. 상대방의 언어를 알고, 상대방의 마음을 아는 것, 그 능력입니다.

소통이 권능입니다. 오늘도 성령께서, 마음 다해 기도하는 우리에게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오늘도 우리를 서로 이해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교류가 일어나고, 오늘도 화해가 일어나고, 오늘도 사랑이 일어나고, 그 사랑으로 하나가 됩니다.

하나님과도 소통해야 합니다. 애초에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는데, 지금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과 소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창세기가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모양이라는 것은 우리의 생김새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눈 두 개, 코 하나, 입 하나, 팔다리 두 개 씩 달린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같은 존재여서 같은 생각을 나누고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꿈을 꾸고 마음 깊이 소통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소통이 깨어진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은 범죄사실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소통의 단절입니다.

하나님은 알고 계세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고, 풍성하고, 기쁘게 신명나게 살아갈지 알고 있어요. 그런데 인간은 반대로 살아요. 내 욕심으로 살아요. 욕심이 잉태하면 죄가 되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이 됩니다. 사람들의 사망의 길을 만들고 사망의 열매만 맺고 살아요. 예언자들을 보내고 선지자들을 보내십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기어이 자기 말만 하면서 살아요.

그래서 하나님이 택하신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십니다. 그리스도 예수가 이 땅에 오십니다. 예수님이 방언입니다. 오늘 요한복음서에서 함께 읽은 성육신의 사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것 바로 그것이 하나님이 하나님의 언어를 포기하고 인간의 언어로 말씀하신 사건입니다.

온 우주의 창조자 하나님이 인간의 한계를 입으셨습니다. 인간이 되셔서, 인간의 언어로 우리에게 명확하게 알려주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의 모습으로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의 모든 행동이 방언입니다. 죄인들이라고 손가락질 당하던 세리와 창녀들과 함께 식사를 하십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십니다. 십자가를 지십니다. 그리고 부활하십니다. 이 모든 것은 방언입니다. 우리도 사랑으로 살면 하나님의 생명으로 새롭게 부활하게 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우리의 수준으로 알려주시는 방언입니다.

5.

우리는 지금 어떤 말로 세상과 대화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지금 어떤 말로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습니까? 어떤 말로 하나님과 대화하고 있습니까? 어떤 말로 십자가를 감사하고 있습니까?

나의 말을 멈추고 깊이 기도하며 방언의 능력을 받기를 원합니다. 남편과 아내와, 부모님과 아이와, 친구들과 만나면서, ‘저 인간 또 저런다~’ 그러지 마시고, ‘주님, 나에게 방언의 은사를 주셔서 소통하게 하옵소서. 내가 상대방의 진심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게 하옵소서. 내 진심이 오해받지 않고 전달되도록 내 입술을 지켜주옵소서’ 그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는 능력이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영혼의 말을 그대로 하나님께 전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진실되게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 주신 방언의 능력으로 하나님과 하나 되고 세상과 하나 되어 하나님 기뻐하시는 하늘나라를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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