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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롭고 순결하게하나님 나라를 살다 5(마태복음 10:16)
김현주 목사(한성교회) | 승인 2023.10.31 02:20
▲ 하나님 나라와 세상의 나라가 공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지혜와 순결은 하나님 나라의 삶을 보여주는 표징이다. ⓒGetty Images
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태복음 10:16)

주일예배에 참여하신 한성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나 자신보다 나에게 더 가까이 계신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크신 은혜와 평화 가득 부어주시길 기원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살다’ 라는 주제로 말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다섯 번째 시간으로 ‘지혜롭고 순결하게’ 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겠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령을 통해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우리를 다스리시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온전한 사람으로서 사랑의 법을 지키며 살도록 우리를 이끄십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저항하는 내적 장애가 있습니다. 죄가 그것입니다. 이 죄는 단순히 심판과 징벌의 대상이 아니라 치유의 대상입니다. 죄는 영적 감각과 기능상의 장애를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일시 정지 또는 작동 오류 상태였던 우리의 영적 감각과 기능들을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십니다.

하나님의 이 주권적 통치가 예수님의 가르침과 치유 사역 안에서 밝히 드러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임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가시화되고 실현된 하나님의 통치를 알아차리고 수용하고 순응함으로써 지금 여기에서부터 하나님 나라의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열렸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름으로써 그 나라를 경험하고 그 나라를 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자를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사는 삶이 곧 하나님 나라의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서사 구조에 따르면,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5-7장에서는 하나님 나라에 관해 가르치셨고, 8-9장에서는 그 나라를 경험하고 직접 살도록 병든 자들을 치유하셨습니다. 그리고 10장에서는 제자들을 불러 세우시고 그들에게 권능을 주시며 그들을 다시 세상에 파송하셨습니다. 세상에 파송되었다는 의미에서 제자들을 보냄받은 자라는 뜻으로 사도들이라 칭하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10장 2절에 소개된 열두 명의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름 받은 새 이스라엘을 대표하면서 동시에 이 시대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상징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 받았고 이 세상에 파송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파송하시는 이유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결코 이 세상과 유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저 교회생활로 국한된 게 아닙니다. 그 나라는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어느 특정한 초월적 공간 속에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오히려 이 세상의 초월적 변화 속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을 통해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길 원하셨습니다. 이 세상 모든 민족과 열방을 제자로 삼아 그들이 지금 여기에서부터 하나님 나라를 살게 하시길 원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특정 지역, 인종, 문화, 언어, 제도, 계급에 얽매여 있지 않습니다. 그 모두를 포괄하며 동시에 초월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두가 하나님 나라로 초대 받았습니다. 그가 어떤 배경을 갖고 있든 상관없이 그 누구도 하나님 나라에서 제외되거나 소외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어떤 이들은 그 나라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스스로 그 나라를 거부할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로 택하여 부른 사람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하나님 나라의 이런 전방위적 특성이 일부 드러납니다.

마태복음 10장 2절에서 언급된 열두 사도들을 보십시오. 그 중에는 아람어를 사용하는 유대 본국인들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빌립, 바돌로매, 도마와 같이 헬라 언어와 문화가 더 친숙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도 있었습니다. 친로마 세력이라 할 수 있는 마태와 같은 세리도 있었습니다. 로마에 적대적이었던 가나안인 시몬과 가룟 유다와 같은 열심당원도 있었습니다.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안드레와 같은 가난한 어부들도 있었고,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과 같은 부유한 어부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처럼 서로 다른 지역,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포괄적이면서 동시에 초월적인 나라임이 여기에서 확인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크게 네 가지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10장 5-12절의 말씀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라.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고 귀신을 쫓아내라.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라. 여행을 위한 별도의 소유물도 챙기지 말라. 너희를 영접하는 이들에게 평안하기를 빌라.’

예수님의 이 말씀의 상징적 의미를 약술하면 이렇습니다. “너희가 진실로 나에게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고 나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살고 있다면, 이제는 너희를 통해서도 이 세상에 그 나라가 가시화되고 구현될 것이다. 너희들 통해서 누군가는 고난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이 함께 계심에 눈을 뜨고, 누군가는 죽음에 이르는 병인 절망을 깨뜨려 생명의 활력을 되찾으며, 누군가는 소외와 고립의 장벽을 허물고, 누군가는 병적인 환상에서 해방되며, 누군가는 내적 분열과 외적 다툼을 넘어 평화를 맛보는 기적이 나타날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기적이 너희가 가진 소유물과 능력과 재능과 지식으로 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너희를 관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영이 하시는 일이다. 너희는 그저 자비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데 집중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은혜와 신비와 기적은 어디까지나 그 나라를 기꺼이 영접하는 사람에게 미치고 그 효력이 드러납니다. 영접하지 않는 사람에게 그 나라는 그저 감추어져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방인이나 사마리아가 아니라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 갈 것을 명하신 이유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선이해가 있는 이들에게 먼저 하나님 나라 초대장을 건네주어야 그나마 제자들이 실패를 덜 맛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제자들이나 오늘의 우리들이나 모두 동일한 현실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우리의 호의와 선의, 우리의 사랑과 선한 행위를 마냥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곳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때로 하나님 나라에 무관심합니다. 때로는 그 나라의 삶을 이해할 수 없다는 식으로 조롱하고 모욕합니다. 때로는 무용하고 무가치하다고 폄훼합니다. 때로는 그 나라가 오히려 세상살이에 방해가 된다고 화를 내며 강하게 저지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사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핍박하고 박해하기도 합니다. 과거에나 지금에나 동일하게 일어나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실 때의 그 심정을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심정이라 표현하신 것입니다. 심정을 표현하신 비유인데 그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이리처럼 구는 사람들 틈에서도 양처럼 굴어라.” 불같이 화를 내면서 무례하게, 때로 폭력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에게조차 순한 양처럼 대응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선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해서 그에게 악의를 드러낼 순 없는 법이니까요. 대신 예수님은 이리 굴로 들어가는 제자들에게 이런 당부를 하십니다.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예수님은 뱀과 비둘기, 분명 서로 상반되어 보이는 것들을 한데 모아 역설적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세상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고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하니 이런 역설적 메시지가 필요했을 터입니다.

뱀은 한편으로, 특히 유대인들에게는 죄의 원형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지혜와 생명력을 상징합니다. 단순히 지혜롭게 살라 말씀하실 의도이셨으면 독수리같은 지혜를 상징하는 또 다른 동물을 빗대어 말씀하셨겠지요. 하지만 굳이 뱀을 거론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지혜가 필요한 우리의 실상을 염두에 두신 것은 아니었을까요?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비록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고 하나님 나라의 삶을 시작했다고는 하나 우리 속에는 이 세상 죄가 하나도 없던가요? 우리 속에도 세상의 죄가 여전히 꿈틀대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내면 어둔 구석에도 여전히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속성들이 남아 있지 않던가요? 우리가 방심하는 순간 언제라도 그 어둠이 우리를 집어삼킬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도 우리에게 이리처럼 구는 사람들에게 언제든지 이리처럼 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까? ‘누구라도 건드리기만 해봐, 어디 가만두나’ 하는 마음이 도사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한편으로 죄를 상징하는 뱀과 같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뱀처럼 지혜로울 수도 있습니다. 뱀은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았을 때 똬리를 틀고 머리를 곧추세웁니다. 2세 중반에서 3세기 초에 북아프리카에서 활동했던 오리게네스는 뱀의 이 모습에 착안하여 뱀의 지혜를 악하고 부당한 상황에서도 자기 머리, 곧 자기 신앙을 전면에 내세우는 지혜, 곧 내 속의 죄가 아니라 내 중심의 신앙이 나를 주도하게 하는 지혜라 해석한 적이 있습니다.

죄악에 직면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숨겨진 죄에 잠식당할 위험에 노출되게 됩니다. 못된 사람의 못된 행실 앞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못된 면에 사로잡힐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때 필요한 지혜는 하나님 신앙의 머리를 곧추세워 우리 안의 죄와 어둠을 살피고 동시에 우리 밖의 죄와 어둠을 살피면서 하나님 신앙을 지키고 하나님 신앙에 입각하여 행동하는 지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뱀같이 지혜로울 것을 명하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우리 안의 죄의 형국과 하나님 없이 사는 이 세상의 죄의 형국은 엄연히 다릅니다.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다 극복하지 못한 부정적이고 파괴적 속성들이 자리잡고 있긴 하지만, 우리에게는 동시에 우리를 늘 사랑스럽게 바라보시고 우리를 선한 손으로 이끄시며 우리의 가슴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내주하심의 은총도 함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악하고 험난한 이 세상 한복판에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영적 감각을 곧추세우는 것 역시 뱀처럼 지혜롭게 세상에 대응하는 방법입니다.

이때 하나님께 대한 영적 감각은 비둘기같이 순결해야 합니다. 당면한 현실과 상황에 대한 잘못된 판단과 어리석은 생각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고요히 기다리는 자세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게 비둘기같은 순결함이 상징하는 바 입니다. 비둘기같이 순결하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알아채 그 하나님의 마음으로 다시 나를 보고 세상을 보는 게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고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영적 비책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차리고 하나님의 사랑의 시선으로 나를 다시 보면, 내 안의 모든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속성들이 더 이상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됩니다. 거기 여전히 있지만 힘이 다 빠진 상태로 있을 뿐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내면을 향한 하나님의 지배력이 확장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어루만지심을 통해 내 안의 괴로움과 어둠을 자아냈던 상처들이 차츰 아물어 갑니다. 하나님의 선한 능력으로 우리 안의 죄의 씨앗들이 차츰 자리를 잃고 뿌리내리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시선으로 타인들을 다시 보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그저 그들의 죄, 그들의 악과 폭력, 그들의 오만과 무례함만 보이는 게 아닙니다. 그들 안의 영적 기능 장애, 그들 안의 깊은 불안과 소외, 그들의 병든 영혼도 함께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시선을 통해 보면 그들은 그저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 치유의 대상임이 확인됩니다. 그들의 죄와 악은 궁극적으로 심판과 징벌로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라 오직 하나님 사랑으로 치유되어야만 해결될 수 있음이 확인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말씀하신 후 마태복음 10장 17절 이하에서 하나님 나라를 가로막고 훼방하는 세상의 악한 현실에 대해 적나라하게 묘사하십니다. 제자들이 재판에 넘겨져 채찍질을 당할 수도 있고, 본보기로 처벌을 받을 수도 있으며, 가족과 같은 가장 친밀한 관계 속에서조차 분열과 파괴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런 엄혹한 현실을 묘사하는 것으로 그치시지 않고, 예수님은 동시에 제자들에게 약속하십니다. “그 엄혹한 현실에 대응하여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떤 생각을 품어야 할지 염려하지 말라. 하나님 아버지의 성령이 너희에게 말씀하실 것이다. 미움과 박해를 잘 견디면 반드시 구원을 받을 것이다. 냉혹한 현실이 빨리 끝날 것 같지 않게 느껴지더라도 내가 반드시 속히 너희 곁에 가까이 올 것이다.”
 
이뿐 아닙니다. 예수님은 또한 마태복음 10장 24절 이하에서 제자들에게 적대적인 이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 것을 명하시면서 세 가지 중요한 영적 진실을 언급십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때를 따라 감추어진 모든 것을 명명백백하게 드러내실 것이라는 진실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파괴하고 있는지, 그 세력이 얼마나 교묘하고 악한지, 우리의 괴로움과 억울함이 무엇인지, 우리의 내적 싸움과 인내가 얼마나 큰지, 무엇이 우리를 살리는 길인지, 하나님이 누구이시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어찌 통치하시는지, 하나님이 친히 만천하에 드러내실 것이니 그리스도의 빛으로 어둠을 밝히는 너희 사명을 멈추지 말라는 의미로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밝히신 또 하나의 진실은 아무리 큰 악과 폭력과 핍박이 우리를 공격하고 우리에게 엄습해 온다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의 영혼을 해할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안에는 영혼, 곧 사람의 힘이, 악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내적 공간, 그 무엇도 해할 수 없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내밀한 공간이 있으니 우리 영혼을 해할 수 없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우리 몸과 영혼 모두를 다스리시고 심판하시고 바로잡으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의미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길이 어두운 이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는 길임을 기억하라는 의미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밝히신 세 번째 진실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머리카락 한올까지 속속들이 헤아려 아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이 험한 세상 한복판에 던져진 우리를 결코 그저 방관하시거나 방치하시지 않으신다는 의미로 밝히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항상 그때그때 최상의 길로, 최적의 방식으로 인도하실 준비가 되어 계신다는 의미로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찌 하나님의 통치에 순응할까 고민하고 고심할 때 그것은 그저 우리의 고민과 고심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이어지는 것임을 굳게 신뢰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하나님 없이 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가는 게 결코 무모하거나 무가치하거나 무용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확언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신뢰와 결단과 응답만 남았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게 이 세상 한복판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고 그 나라를 확장해가는 데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우리 안팎을 에워싸고 이 세상 구석 구석에 침투해 들어갈 것을 의도하고 소망해야 합니다.

김현주 목사(한성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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