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Junger Prediger
그들이 강도였다“제한 없는 사랑을 베푸신 예수님”(마가복음 11:15-18)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3.12.18 04:16
▲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는 예수 ⓒhttps://ctrendsmag.com/sections/logos/did-jesus-cleanse-the-templ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언제나, 어디서나, 어떠한 상황에서나 성도는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완전한 평안이 이미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평안을 누리기 위해 수많은 사람은 외부의 상황을 자기 뜻대로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가 수도 없이 경험했듯 외부의 상황은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언제나 불안정하기에 평안을 얻을 수 없습니다.

잠언에 이런 말씀들이 있습니다. “계획은 사람이 세우지만, 결정은 주님께서 하신다.”(잠언16:1),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그 쓰임에 알맞게 만드셨다.”(잠언16:4a),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앞길을 계획하지만,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잠언16:9)

내 삶을 내가 통제할 수 있다고 믿거나, 통제하고 싶지만, 통제는 하나님만이 하십니다. ‘이건 하나님이 결정하시고, 저건 하나님과 상관없이 내가 결정할 수 있고, 이 걸음은 하나님이 인도하실 수 있지만, 저 걸음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내 의지로 걸어간다.’가 아닙니다. ‘모든 것’에 하나님의 인도가 있고, ‘모든 것’에 하나님의 결정이 있습니다.

내가 결정할 수 없고, 통제할 수도 없는 삶을 여전히 통제할 수 있다고 믿으며 평안을 얻고자 하십니까? 아니면 삶의 결정권자이시자, 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삶을 의탁하며 평안을 얻고자 하십니까? 내 뜻대로, 내 목적대로 무언가를 이루어 평안을 누린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입니다. 삶을 하나님께 맡기고, 이미 내 안에 주어진 완전한 평안을 선택하고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함께 읽은 마가복음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 구약성서의 두 가지 이야기를 먼저 나누겠습니다. 첫 번째는, 이사야 56:1-8의 내용입니다. 이 본문에는 고자와 이방인이 등장합니다. 신명기 23:1에 “고환이 터졌거나 음경이 잘린 사람은, 주님의 총회 회원이 되지 못합니다.”라고 기록이 되어 있듯 고자는 성전 안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입니다.

또한, 신명기 23:3에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주님의 총회 회원이 되지 못합니다. 그 자손은 십 대가 아니라, 영원히 주님의 총회 회원이 되지 못합니다.”로 기록되어 있듯 이방인 역시 성전 안에 들어갈 수 없는 신분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56장 본문에서 하나님은 안식일을 지키고, 말씀을 지키려 하는 자들은 앞으로 고자든 이방인이든 누구도 배제됨 없이 성전에서 함께 예배드릴 수 있다고 말씀하시며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예레미야 7:1-15의 내용입니다. 이 본문에서 하나님은 “그래,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이 성전이, 너희의 눈에는 도둑들이 숨는 곳으로 보이느냐? 여기에서 벌어진 온갖 악을 나도 똑똑히 다 보았다. 나 주의 말이다.”(11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여기에서 벌어진 온갖 악’은, 사회적 약자를 향한 차별과 폭력, 도둑질, 살인, 음행, 거짓 맹세, 우상 숭배 등의 행동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어서 이런 악을 행하면서도 성전에 들어와 ‘우리는 안전하다.’라는 고백을 했다고 폭로하십니다(10절). 이들을 향해 ‘강도들의 소굴’로 만든 자들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마가복음 본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들어가시자마자 가장 먼저 성전을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성전 정화’라 불리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루살렘에 들어갔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뜰에서 팔고 사고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시면서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성전 뜰을 가로질러 물건을 나르는 것을 금하셨다.”(15-16절)

이 일을 행하신 뒤에 예수님은 “기록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는 그 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17절)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록한 바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더냐!’라고 하시며 우리가 앞서 살펴보았던 이사야와 예레미야에 기록된 성전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한 구절에 불과한 짧은 말씀이지만, 이 말씀에는 여러 이야기를 통한 중요한 의미가 함축적으로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과 교차 본문인 마태복음 21:12-17을 보면, 예수님이 “기록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는 그 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고 말씀하신 뒤 “성전 뜰에서 눈 먼 사람들과 다리를 저는 사람들이 예수께 다가왔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마태복음 21:14)는 기록이 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고 말씀을 지키려 하는 자들은 신체, 출신 배경과 상관없이 성전에 배제되지 않고 들어가야 함에도 여전히 성전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장애인, 이방인 등 신체가 되었든 출신이 되었든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이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셨음에도 여전히 성전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이 존재했습니다.

누구에 의해 이들이 성전에 들어가지 못하는 배제와 차별을 경험하게 되었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누가 이런 결정을 했습니까? 바로 대제사장과 율법학자와 같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어떻습니까? 태어나면서부터 성전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악을 저지르면서도 자신들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이들은 배제하고, 자신들은 거리낌 없이 성전에 들어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만민이 기도해야 할 집이 강도들의 소굴이 되어버렸습니다.

얼마 전, 감리교단 소속 이동환 목사님이 감리교단 경기연회의 재판을 통해 ‘출교’ 처분을 받았습니다. 출교는 소속 교단의 목사, 교인 자격이 상실되는 받을 수 있는 판결 중에 최고 수위의 판결입니다. 개인적으로 저희 부부와 이동환 목사님 부부는 2010년부터 지금까지 교제를 나누고 있기에 감리교단의 판결에 더 안타깝고,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출교’ 판결의 배경은, 어이없게도 2019년 있었던 퀴어축제에서 성소수자들을 위해 축복 기도를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마태복음 5:45b)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닿지 않아야 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제한이 없고, 누구에게나 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물며 성소수자들은 죄인도 아닙니다.

그런데 성소수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출교 판결을 받았으니 얼마나 놀라운 사건입니까? 아마도 이 판결은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불명예스러운 사건이요, 감리교단의 수치로 기록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강도와 같은 자들이 누구는 축복받을 수 있고, 누구는 축복받지 못한다고 결정하고, 통제합니다. 누구는 성전에 들어올 수 있고, 누구는 성전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결정하고, 통제합니다. 오히려 성전에 들어오지 못할, 사랑 없는 강도와 같은 자들이 말입니다.

강도와 같은 이들은 이동환 목사님을 출교시킬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불의함이 제한 없는 사랑과 축복 앞에서 자신의 사랑 없음과 자비 없음이 드러나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한 없는 사랑, 한계 없는 사랑을 접한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하기로 합니까? 18절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서는, 어떻게 예수를 없애 버릴까 하고 방도를 찾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를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리가 다 예수의 가르침에 놀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예수를 없애 버릴까에 대한 방법을 찾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자신들의 어두움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빛은 어두움을 몰아내기도 하지만, 빛은 어둠이 어둠 속에 있었음을 깨닫게도 합니다. 자신이 어둠 속에 있음을 깨달았다면, 어둠을 몰아내야 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계속해서 어둠 속에 머물기 위해 빛을 제거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한 없는 사랑, 온전한 사랑에 놀랐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자신들은 더이상 차별받고, 배제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출신과 배경을 넘어 하나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이들과도 동등한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였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기준에 따라 제한하고, 차별하고, 정죄하고, 판단하는 성도입니까? 아니면 예수님처럼 제한 없이, 차별 없이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입니까?

오늘 우리는 세 번째 초에 불을 밝혔습니다. 세 번째 초의 상징은 ‘기쁨’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기쁨이 되십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는 기쁨을 회복합니다. 어떤 이들은 우리를 두고 자신들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정죄하고, 차별하고, 배제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세상의 기준으로 우리를 바라보시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구원이고, 우리의 기쁨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나를 향해 제한 없는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이런 사랑을 받은 우리가 누구를 사랑에서 배제하고, 차별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보여주신 제한 없고, 한계 없고, 차별 없으신 사랑을 따라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어느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차별하지 않는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9 한국기독교회관 503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4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