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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있는 이유출애굽기 강해 9(출애굽기9:14-17)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 승인 2024.03.31 03:14
▲ John Martin, 「The Seventh Plague」 (1823) ⓒWikipedia

1.

할렐루야, 반갑습니다. 오늘 귀한 주일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 올려드립니다. 오늘 우리 종려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종려주일에는 예수님께서 호산나 찬양받으며 예루살렘 입성하는 이야기를 본문으로 삼고 설교하는데요. 오늘은 우리 금년 한 해 동안 출애굽기 이야기를 쭉 이어가고 있어서, 계속 출애굽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모세와 아론이 파라오를 만나고 바로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죠. 그러나 파라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집트의 열 가지 재앙이 닥치고 있는 중입니다. 물이 피로 변하는 재앙이 닥치고요. 개구리가 온 땅을 덮기도 하구요. 이가 들끓고 파리가 들끓습니다. 집짐승, 가축들이 죽음을 당하고요. 피부병으로 고생합니다. 그런가 하면 우박이 내려서 온 농작물이 다 피해를 입죠. 농작물 좀 남았나 싶었더니 메뚜기가 몰려들어서 쓸어갑니다. 온 땅에 흑암이 덮여서 캄캄해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으로 처음 난 장자, 큰아들의 죽음이 이집트를 덮치죠.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어요. 어느 것 하나 견딜 만한 것이 없어요. ‘이 정도는 뭐 참을 만 해’ 하는 게 하나도 없어요.

이 모든 열 가지 재앙들이 조금씩 다릅니다만, 모든 재앙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열 번째 마지막 재앙만 빼놓고, 하나님은 결코 사람 자체를 죽이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고 심판을 내리시는데 생명 자체를 앗아가면서 죽여버리지 않으세요. 오히려 생명을 살리시기 위해서 아픔과 고통을 주시죠. 위협하고 경고하는 그런 재앙인 것이에요.

우리가 성경 말씀을 보면 이런 구절 기억나실 거예요. ‘주님은 우리에게 견딜 만한 시련을 주십니다(고전10:13).’ 우리의 생명이 완전히 없어지고, 그래서 죽음으로 향하는 그런 재앙, 그런 심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간단하게 주지 않으세요. 하나님의 목적은요, 하나님의 심판의 목적은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새로운 삶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견딜 만한 시련을 주시니까, 사람들이 딴 짓을 해요. ‘견딜 만하네!’ 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견딜 만한 시련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힘이 정도밖에 안 돼서, 더 센 것을 못 주셔서가 아니잖아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생명을 보호하시려고 견딜 만한 시련을 주시는 건데, 이 어리석은 사람들은요, ‘견딜 만하네, 살만하네’ 하고는 버텨버려요.

지금 이집트 사람들이 그러고 있는 거죠. 처음에는 재앙이 닥치면 다들 무서워해요. 놀라고 벌벌 떨어요. 바로가 납작 엎드려서 ‘당신들 말씀을 내가 다 들어 줄게요. 광야로 나가세요. 당신들 백성 데리고 나가세요.’ 그러잖아요. 그러다가 눈앞에서 재앙이 사라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 몰라라 원상태로 돌아가 버려요. 왜요? 이제 괜찮으니까, 이제 견딜 만하니까, 궁극적인 권세를 알아차리지 못해요.

이 재앙의 원인, 이 재앙의 근본적인 이유를 알아차리지 못해요. ‘나에게 왜 이런 재앙이 닥쳤는가? 이 재앙의 의미가 무엇인가? 이 재앙에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가?’ 전혀 알지 못해요. 학습 효과가 없어요. 한 번 호되게 당했으면 다음번에는 그렇게 당하지 않으려고 내 삶이 바뀌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바뀌지가 않아요.

심지어는 그 재앙을 흉내 내 보려고도 해요. 지팡이를 던지니까 뱀으로 변하는 능력을 보여주시니까 이집트의 마법사들이 나와서 저들도 똑같은 일을 하잖아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별거 아닌데? 이 정도는 우리도 해!’ 두 번째 재앙이 개구리가 온 땅을 뒤덮는 건데요. 이집트 마술사들도 똑같이 흉내를 냅니다. 하나님의 신적인 경고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들도 그런 일 한번 해보겠다고 합니다. 얼마나 어리석고 얼마나 교만합니까? 그래서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됩니다.

이집트에 내린 열 가지 재앙의 특징은요, 하나님이 10번이나 재앙을 내리셨다는 데에 포인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집트 사람들이 계속해서 반복해서 어리석게 깨닫지 못했다는 데에 초점이 있습니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한 번 혼나고, 한 번 경고받고, 한 번 깨달음 얻고, 한 번 하나님의 말씀 들었으면, 이제는 알아들을 법한데 그러지 못해요. 계속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죠.

반복은 어리석음과 무지에서 옵니다. 몰라서 어리석은 반복을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끊임없이 일러십니다. 끊임없이 가르쳐주셔요. 예언자를 계속 보내주시고, 선지자를 계속 보내셔요. 말씀을 읽는 우리가 답답해할 정도로 하나님은 반복해서 계속 가르쳐 주시고 권면하셔요.

그런데 반복이 어리석음과 무지로 인한 것이라면, 반복보다 한 발 더 나아간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집입니다. 성경은 열 가지 재앙을 받는 과정에서 파라오가 계속 고집을 부린다고 증언합니다. 고집은 어리석음이 아닙니다. 알면서 우기는 것입니다. 다 알고 있으면서 눈 가리고 귀 막으면서 소리를 외쳐대는 거예요. ‘아니야!’ 이제는 다 알아요. 이제는 다 깨달았어요. ‘내가 잘못되었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야 되는구나.’ 그런데 바울이 말씀하시듯이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나를 사로잡고 있는 육신의 법이 나를 놓아주지 않아요. 고집부리게 만듭니다.

알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야 되는 것 알고 있지만, 하나님의 심판의 손이 나를 치고 있다는 것 알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견뎌낼 만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 사랑하셔서 완전히 나를 죽이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교만한 마음에 내가 고집부리면 내 고집대로 되는 일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2.

그래서 하나님은 결국 마침내 구별하십니다. 이집트에 닥친 재앙의 마지막 특징은 구별하신다는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그 재앙이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미치지 않아요. (열 가지 재앙 마다 전부 일일이 다 증언되어 있지는 않습니다만) 집짐승들이 죽고 가축들이 죽을 때, 이스라엘 백성의 집짐승과 가축은 죽지 않습니다. 구별됩니다. 파리떼가 온 땅에 들끓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살고 있는 고센 땅에는 파리가 없습니다. 구별됩니다. 흑암이 이집트를 덮쳤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고 있는 곳에는 빛이 있었습니다. 구별됩니다. 첫 번째 난 것이 모두 죽임을 당할 때 하나님의 천사가 일일이 다니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별하십니다.

열 가지 재앙의 핵심은 온 땅에 온 세상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온 세상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데, 그래서 온 세상에 하나님이 심판을 재앙을 주시는데, 다만 하나님의 백성을 구분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별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백성이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이죠. 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아브라함으로부터 내려온 핏줄이 DNA가 훌륭해서 하나님이 ‘너희는 내 백성이다’ 하십니까? 국적이 이스라엘 국적이어서, 이스라엘 여권 가지고 있으니까 하나님이 구별해 주십니까? 아니에요. 하나님이 ‘너는 나의 백성이다’ 구별해 주시는 것은 ‘믿음과 경외’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하나님이 무서운 줄 아는 사람들, 하나님의 뜻이 진리인 줄 아는 사람들, 하나님의 뜻을 과연 실행하며 사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하나님이 구분하여 주신다는 거죠.

오늘 함께 읽은 재앙은 우박이 내리는 재앙인데요. 20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바로의 신하들 중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두려운 마음이 든 사람들이 있어요. 이 사람들이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두려운 마음에 자기 사람들 자기 소유, 내 종들, 내 짐승들을 피신시킵니다. 이 사람들은 구별됩니다. 그래서 우박의 재앙에서 벗어납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백성이 아닙니다. 그런데 구별되어 재앙을 벗어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그들이 구별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 일컬음을 받습니다. 열 가지 재앙을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와, 개구리가 다 덮었대! 와, 온천지에 우박이 내렸대. 흑암이 덮였대. 우리 하나님, 정말 대단하시다! 우리 하나님, 능력 있으시다!’ 감탄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구별된 사람인가? 하나님이 온 세상을 향해서 이 심판의 손을 드실 때. 나는 구별된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안전하게 보호될 사람인가? 아니면 우박을 맞을 사람인가? 흑암 속을 헤매게 될 사람인가? 우리는 그것을 고민해야 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되는가? 내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되어서 하나님의 심판에 보호받겠는가?

여러분은 구별된 사람들이십니까? ‘나는 구별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나는 주님의 날개 아래 보호될 것입니다!’ 확신을 가지신 분 계십니까? 대답 안 하신 분도 속으로는 크게 대답하셨을 줄 압니다.

우리는 구별된 사람들이에요. 나는 하나님 앞에 구별된 사람이에요. 서장로님께서 제일 크게 대답하셨는데, ‘내가 이만큼 신앙이 좋고, 내가 이만큼 훌륭하니까 나는 구별된 사람이지!’ 하는 마음에 대답하신 것 아닐겁니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내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랑스러워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이 있으니까 우린 대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확신 있기 바랍니다. 확신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3.

그런데 이렇게 구별하신 그 뒷이야기가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하나님 우리를 구별해 주셨으면, 구별하신 백성을 어떻게 하셔야 됩니까? 구별한 백성을 안아주시고 품어 주시고 사랑 주시고 은혜 내려 주셔야지요. 하나님의 백성을 살리고, 하나님의 백성 아닌 사람들을 심판 해야죠. 그게 하나님의 백성된 의미고, 그게 하나님의 정의죠.

그런데 세상을 보니까 조금 이상해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힘들어요. 악한 자들이 잘 살아요.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떵떵거리면서 살지 못해요. 왜 그렇습니까?

신학적으로 신정론이라고 부르는데요. ‘하나님이 과연 정의로우신가?’ 하는 문제예요. ‘하나님 공정하신가?’ 이것은 아주 오랜 오래된 신앙적인 신학적인 물음이에요. 고통의 문제가 세상에 가득 차 있어요. 하나님을 잘 믿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데 그 삶에 고통이 있어요. 아픔이 있어요. 악이 있어요. 오히려 그 악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아요. 이래도 됩니까? 하나님 왜 이렇게 가만 놔두십니까? 하나님 의로우시다고 이야기하는데, 하나님 진짜 정의로우신 것 맞습니까? 의문이 생깁니다.

오랫동안 풀리지 않습니다. 정답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 중에 한 가지 실마리가 들어있습니다. 16절을 보니까 “온 세상에 나의 이름을 널리 알리려고, 내가 너를 남겨 두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알리는 도구로 사용하시려고 이 세상에 악한 자를 남겨두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알리는 도구로 사용하시려고 악을 쓸어버리지 않고 남겨두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많이 흔히 들은 천국 이야기가 있죠. ‘천국에 가면 아픔도 없고 고통도 없고 질병도 없고 슬픔도 없습니다’ 그랬더니, 누군가 이렇게 질문했다는 거죠. ‘아픔이 없는데 기쁜 줄 어떻게 압니까? 고통이 없는데 행복한 줄 어떻게 압니까? 질병이 없는데 내가 건강한 줄 어떻게 알아요? 질병이 있어야 옆에 아파하는 사람이 있어야 나는 건강하구나 하고 감사할 수 있고, 고통받는 사람이 있어야 고통이 없는 것을 기뻐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질병 하나도 없고 고통 없고 아픔 없는 곳 그거 천국 아닐 것 같은데요?’ 영리한 사람이 이런 이야기했다는 겁니다. ‘세상에 악이 왜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온 세상이 선하기만 하면 도대체 선이 뭔지 사람들은 모릅니다. 그래서 악이 있어야 합니다’라고 대답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야기가 그럴 듯합니다만 오해해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 너희들 힘들어 봐야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거야. 그래서 너희들을 좀 힘들게 해야겠다.’ 하나님이 이런 계획을 하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너희들 고통 좀 겪어봐야 내가 주는 은혜가 고마운 줄 알거야. 그러니까 고통 좀 겪어봐라.’ 이러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온 세상에 나의 이름을 널리 알리려고, 내가 너를 남겨 두었다”는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일부러 나를 알리기 위해서 악한 자들을 남겨두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진짜 의미는 ‘세상에 악이 있더라도 절망하지 마십시오. 악을 통해서 하나님이 계신 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하는 위로의 메시지입니다. ‘악이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없구나!’ 하고 절망하지 마세요. 좌절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라고 잘못된 생각하지 마세요’ 하는 메시지입니다.

악의 존재를 오히려 내 마음을 선으로 바꾸어 갈 기회로 삼으라는 거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아차리는 기회로 삼아보라는 거예요. 더 나아가서는 그 악 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악과 맞서서 악과 싸워서 악을 이겨낼 때, 진정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내 삶으로 체험할 수 있다는 거예요.

오늘 종려주일로 예배드리는데요.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셔요. 수많은 사람들이 종려 가지를 흔들면서 환호성을 울리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 하고 반기죠. 그런데 바로 그 사람들이 불과 며칠 후에 어떻게 됩니까? ‘십자가에 못 박아라!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라!’ 하고 외칩니다. 예수님은 지금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데, 예수님이 아무것도 모르고서 당장의 환호성에 취해서 예루살렘 들어가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다 알고 계시면서 일부러 악한 자의 손아귀로 들어가고 계십니다. 악한 자의 손아귀에 들어가서 그 십자가를 일부러 지시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실까요? 악을 통해 하나님의 선함과 하나님의 구원을 온 세상에 밝히는 기회로 삼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이 종려주일의 깊은 뜻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하나님이 세상을 주관하시고,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시는데도 불구하고, 왜 악한 자들이 잘 살고 있습니까? 왜 나에게 고통이 있습니까? 왜 우리 주변의 슬픔이 넘쳐납니까?’ 왜 그렇습니까? 정답은 확실합니다. 악을 통해 고통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더 크신 섭리를 더 깊이 깨달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집트에 재앙을 내리듯이 날 둘러싼 악을 다 쓸어버렸으면 좋겠습니다’ 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니야. 오히려 그것을 없애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그 악 속에서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봐, 그 안에서 더 큰 구원과 더 큰 은혜를 찾아봐’ 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온 세상에 하나님의 이름을 널리 알리려고, 하나님께서 그 악을 남겨 두셨으니, 우리는 그 악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고민하고 결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선하게 살며, 악에 맞서 살아가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고 증언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온 세상에 악이 넘쳐나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여 주셨고 구별하여 주셨으니, 구별된 사람으로 악에 맞서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님의 선하심을 증거하겠습니다!’ 

일단 오늘의 말씀은 여기서 끝납니다.

4.

그런데 한 가지만 덧붙여 드립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내가 살아있는 이유> 조금 충격적인 질문일 수 있습니다만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물음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여기 살아있습니다. 지금 여기 살아있는 나는, 하나님의 거룩한 구별된 백성으로서 하나님 살려주신 사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남겨주신 악한 자입니까?”

이런 질문은 생각 안 해 보셨죠? 당연히 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있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죠. 그래서 당연히 악과 맞서 싸우고 당연히 하나님의 선함을 증거해야 된다고 우리는 결심하죠. 그러나 근본적으로 우리는 질문해야 됩니다. ‘내가 지금 살아있는데, 내가 지금 여기 숨 쉬고 있는데, 내가 지금 살아있는 이 생명은 하나님이 구별해 주셔서 살게 된 생명인가 아니면 악한데도 불구하고, 하나님 남겨두신 생명인가?’

우리는 이 충격적인 성찰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나는 당연히 주님 편에 서 있지’ 하고 생각합니다만, 아니요! 우리가 사람들 속에 속해 있어서 군중들과 함께 무의미한 ‘호산나’를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며칠 후면 ‘예수를 못 박아라!’ 외칠 그런 사람들은 아닙니까? 

우리는 이 물음을 통과해야 됩니다. 고난 주간을 앞둔 오늘, 예수님의 고난은 나에게 무엇입니까? 구별받은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입니까? 아니면 남겨진 악인 나를 심판하시는 손길입니까? 깊이 고민하고 기도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기도의 끝에 강한 확신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나는 남겨진 악으로서 살아가는 사람이 결코 아니구나! 나는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이구나!’ 더 깊은 확신으로 주님을 붙들 수 있기를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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