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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깨기 위해 노력하고 있나요“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시는 예수님(성령)”(요한복음 20:11-16)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4.04.01 02:11
▲ Annibale Carracci, 「The Three Marys at the Tomb」 (c. 1600) ⓒWikipedia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사람들은 내 뜻대로 일들이 이루어지고, 갖고 싶었던 것을 소유하게 되면 평안하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의 바깥에서 일어나는, 외부의 일들은 평안을 주지 못합니다. 나에게 주어지는 소유도 결코 평안을 주지 못합니다.

잠시 잠깐은 기쁨을 누리고, 평안을 누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더 오래 그리고 더 크게 외부적인 일의 성공과 소유는 고통을 줍니다.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이 끊임없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참 평안은 나의 안에서 발견하고 누릴 수 있을 뿐입니다. 나의 안에서 발견하고 누릴 수 있는 이 평안은 우리 자신이 만들어내는 평안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주셨기에 발견하고 찾아 누릴 수 있는 평안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요한복음 14:27) 예수님의 이 말씀을 통해 위로받고, 언제나 내 안에 주신 평안을 통해 근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다는 소식은 언제나 성도에게 기쁨이 되고 위로가 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살아야 할 참 생명과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생명의 선포자이자 증인이 되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마르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요한복음 11:25-26)

이 말씀이 성도 마음에 주는 울림, 삶에 미치는 진동과 파동은 엄청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보여주신 영원한 생명에 대한 믿음은 결국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삶에 굴복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즉, 세상이 주입하고 요구하는 ‘나 자신의 것’이라고 여겨왔던 삶이 아닌 참삶, 제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성도님들께 종종 말씀드리기도 했지만, 저는 매일 새벽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한 번도 빠트린 적 없이 나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주어졌고, 이미 영원한 생명을 살고 있음을 감사함으로 시작합니다.

성도님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십니까?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의 말씀을 믿으십니까? 믿어야 한다고 강요하며 드리는 질문이 아닙니다. 또한, 이 질문은 단순히 지식으로 알고 있는지에 관한 질문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이 놀라운 신비를 믿으신다면 그 또한 놀라운 신비가 아닐 수 없기에 드리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성도, 우리 자신에게 영원한 생명이 주어졌음을 믿는 성도는 앞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삶 자체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삶의 목적이 달라지고, 삶의 방향이 달라지니 삶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 영원한 생명을 믿는 사람이 많겠습니까? 믿지 못하는 사람이 많겠습니까? 믿지 못하는, 믿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아나셨다고 우리가 전파하는데, 어찌하여 여러분 가운데 더러는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살아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될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5:12-14)

그리고 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에만 해당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5:19)

부활을 믿는 성도, 영원한 생명을 믿는 성도는 불쌍한 사람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 성도, 영원한 생명을 믿는 성도는 이 세상에만 해당하는 것들을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가 경험할 큰 기쁨이자 해방이기도 합니다.

남들이 바라는 것을 더 이상 바라지 않고, 남들이 원하는 것을 더 이상 원하지 않는 삶이 성도에게 주는 해방감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타인과의 비교, 자기 비하, 상실과 결핍을 더 이상 경험하지 않아도 되니 해방감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얼마나 자유롭겠습니까? 이러한 자유와 해방이 바로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32)는 말씀의 한 의미가 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문제는 우리 스스로가 예수님의 부활, 영원한 생명에 관한 믿음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혹은 믿어졌다, 믿어지지 않았다 하기도 합니다. 믿어졌다가 또 믿어지지 않는 게 정말 믿는 것일까? 라는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여하튼, 우리의 믿음은 늘 오락가락합니다.

사실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제자들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9 [예수께서 이레의 첫날 새벽에 살아나신 뒤에, 맨 처음으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다. 마리아는 예수께서 일곱 귀신을 쫓아내 주신 여자이다. 10 마리아는 예수와 함께 지내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였다. 11 그러나 그들은, 예수가 살아 계시다는 것과, 마리아가 예수를 목격했다는 말을 듣고서도, 믿지 않았다.”(마가복음 16:9-11)

마가복음 16:12-13 “12 그 뒤에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내려가는데, 예수께서는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13 그들은 다른 제자들에게 되돌아가서 알렸으나, 제자들은 그들의 말도 믿지 않았다.”

마태복음 28:16-17 “16 열한 제자가 갈릴리로 가서, 예수께서 일러주신 산에 이르렀다. 17 그들은 예수를 뵙고, 절을 하였다. 그러나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어떻게 예수님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믿었으며, 죽음을 두려워했던 이들이 부활의 증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놓고 살아갈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도우심, 예수님의 도우심,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고자 하는 마음, 깨닫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반드시 성령님은 성도를 도와 믿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 이야기가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의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20:11-16 “11 그런데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울다가 몸을 굽혀서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12 흰 옷을 입은 천사 둘이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의 시신이 놓여 있던 자리 머리맡에 있었고, 다른 한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13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여자여, 왜 우느냐?’ 마리아가 대답하였다. ‘누가 우리 주님을 가져갔습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14 이렇게 말하고, 뒤로 돌아섰을 때에, 그 마리아는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지만, 그가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였다. 15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왜 울고 있느냐? 누구를 찾느냐?’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여보세요, 당신이 그를 옮겨 놓았거든, 어디에다 두었는지를 내게 말해 주세요. 내가 그를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가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부니!’ 하고 불렀다.(그것은 ‘선생님!’이라는 뜻이다.)”

마리아 곁에 예수님이 서 계셨지만, 마리아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마리아가 자신이 부활해야 한다는 말씀을 이미 듣기는 했으나, 실제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상상을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성경의 증언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셨다고 합니다. 즉, 생전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이셨습니다. 그러니 더더욱 자신의 곁에 서 계신 예수님을 알아보기란 불가능했습니다.

대화를 이어가면서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은 겉모습으로 판단하여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마리아를 위해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마리아가 자신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한 말씀입니다. “마리아야!” 예수님으로부터 불려진 자신의 이름을 통해 모습은 다르나 부활하신 예수님이심을 마리아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가 자신을 찾을 수 있도록 도우셨습니다.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이 있습니다. 국어사전을 보면,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어미 닭이 밖에서 쪼고 병아리가 안에서 쪼며 서로 도와야 일이 순조롭게 완성됨을 의미함. 즉, 생명이라는 가치는 내부적 역량과 외부적 환경이 적절히 조화돼 창조되는 것을 말함.’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어미 닭이 정성껏 품은 알은 21일쯤 되면 알 속에서 자란 병아리가 탁탁 소리와 함께 밖으로 나오려는 신호를 냅니다. 병아리는 알 속에서 밖으로 나올 지점을 정해 쪼기 시작하나 힘이 부족합니다. 이때 귀를 세우고 그 소리를 기다려온 어미 닭은 그 부위를 밖에서 쪼아줍니다. 그리하여 병아리는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병아리가 안에서 쭉쭉 빠는 것을 줄啐이라 하고, 어미 닭이 그 소리를 듣고 밖에서 쪼아주는 것을 탁啄이라 합니다.

이 시기에 병아리가 혼신의 힘을 다하여 안의 껍데기를 깨려고 시도하지 않으면, 어미 닭 역시 밖에서 도와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알 속의 병아리가 하는 행동은 미성숙자가 스스로 동기유발에 의해 행하는 행동으로서 도움을 요청하는 행동이고, 어미 닭이 돕는 행위는 성숙자가 도와주는 행동입니다.’라는 해석을 보았습니다. 줄탁동시는, 정말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병아리가 먼저 두들긴 자리를 찾아 어미가 그다음 아기가 쫄 때를 맞춰 쪼는 ‘타이밍’ 포착의 순간을 그립니다. 감동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장면이 또 있습니다. 요한복음 20:19-20 “19 그 날, 곧 주간의 첫 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대 사람들이 무서워서,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와서, 그들 가운데로 들어서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말을 하셨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기뻐하였다.”

음성으로, 보여주심으로, 만지게 하심으로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을 알려주셨습니다.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참 생명과 영원한 생명을 살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우리 주님은, 성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영원한 생명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이 땅에서 참삶을 살고,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성도를 외로이 홀로 내버려 두시거나, 알아서 스스로 깨닫도록 하지 않으십니다. 물론 성도의 노력은 분명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달걀 안에서 밖으로 나가기 위해 사방 어딘가를 치더라도, 우리 주님은 어디를 치고 있는지 정확히 들으시고 달걀을 깨고 나올 수 있도록 도우시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증인이 되어주셨습니다.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믿음으로 자유, 기쁨, 해방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또한 이 기쁨을 나누는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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