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민 사관에 치우쳐 ‘건국 전쟁’은 이승만만 부각시켰지만 정작 한국사에 가장 뛰어났던 정치인 중에 하나였던 ‘몽양 여운형’ 선생은 안중에도 없었다.

총선을 열흘 앞둔 시점에서 부활절을 맞습니다. 그 탓인지 모르겠으나 세월호 10년의 기록도 이번 선고 전에는 방송불가 통보를 받았답니다. 조사를 훼방했고 왜곡했던 정치인들의 실상이 드러날 것이 두려웠던 것이겠지요. 사실을 부정하는 자들에게 모든 것이 밝혀지는 부활은 아주 엄중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울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로 무덤을 찾은 여인들에게 예수는 ‘왜 산자를 죽은 자 중에서 찾느냐’며 자신의 부활을 알렸습니다. 아무리 무덤을 무거운 돌덩이로 막아 놓아도 새로운 세상은열려질 것입니다.

제7공화국을 꿈꾸는 이 땅 대한민국에 열흘 앞으로 다가온 총선이 부활에 상응하는 새로운 미래를 선사하길 소망하며 성서를 읽고 부활을 준비했습니다. 더구나 이번 부활절이 모처럼 3월 마지막에 자리했기에 특별히 하고 싶은 말도 있었습니다. 종교가 정치에 직접 관여하는 일에 저 역시 저어되는 바 있으나 가치의 문제만큼은 세상과 달리 설정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1.

제 SNS 글을 통해 알고 계신 분도 있겠으나 지난해 11월 남의 땅이 되어버린 간도에서 두만강, 압록강 건너의 북녘땅을 바라보고 돌아왔습니다. 함께 갔던 저보다 두 살 많은 영담스님 이야기를 잠시 하겠습니다. 150센티미터의 작은 키를 지녔으나 위풍당당한 분이었습니다. 청도 출신인 그녀는 고교 졸업 후 서울 감리교 신학대학을 지원했으나 면접에서 낙방했답니다. 예수는 좋으나 원죄설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네요. 그렇게 낙방한 그는 한학을 공부하여 불교경전을 연구했고 비구니 스님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습니다. 아울러 한지를 만들고 가공하여 예술품으로 재창조하는 공예전문가로 이름을 떨치며 고향에서 전시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법정 스님의 책 <무소유>에도 스님 이야기가 제법 길게 적혀 있습니다. 도올 김용옥 선생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만큼 경지에 올랐습니다. 그런 스님이 범도 루트 여행 시 소수가 모인 자리에서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억겁의 세상에서 태어났으니 매일(인) 바 없는 무애의 삶을 살아야겠으나 일제 침략의 후유증으로 분단의 고통을 걸머진 이 땅에 태어났으니 그에 맞는 의식과 행동을 하며 사는 것이 부처님의 법도에 맞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여성 목회자가 될뻔했던 스님, 비록 우리와 다른 길을 걸었지만 맡겨진 일과 사명을 생각하는 일에 있어서 다를 수 없었습니다.

2.

분단 이후 태어난 우리 다수는 휴전선 너머의 세상을 접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제 경우 두만강에서 압록강으로 이어진 범도 루트를 경험하면서 우리 땅(영토)에 대한 이해가 달라졌습니다. 나라 뺏긴 이들의 싸움터였던 간도 땅, 광활한 만주벌판을 다시 발견했던 것이지요. 독립을 위해 자신은 물론 가족 전체를 제물로 바친 이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민족애로 감내했던 선혈의 삶을 책이 아닌 가슴으로 느껴 알았던 시간이었습니다. 나라(왕조)가 힘없어 포기, 방치했던 땅과 유구한 역사, 그 때문에 고초당한 민초들의 삶을 지키려 했던 의병 및 독립투사들, 그들 존재의 의미를 잊은 채로 오늘을 편히 살 수만은 없다 싶었습니다.

독립, 그것은 ‘스스로 선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제국’에서 ‘민국’으로 체제를 바꾸되, ‘스스로 서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종교, 이념, 반상, 남녀, 노소의 벽을 허물었던 1919년 3월에 있었던 기미년 사건을 기억합니다. 그 사건은 주변 나라에 영향을 미칠 만큼, 식민지 아시아의 의식을 깨울 만큼 강력했었지요.

지금껏 그 공을 기독교가 독차지했지만 사실 동학 천도교 역할이 컸고 아울러 그보다 앞선 대종교의 영향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대종교 인들이 주축 된 무오년(1918년)의 독립선언이 기미년 사건의 동력이었습니다. 서세동점 시기 이 땅의 종교들은 너나없이 저항적 민족주의를 일깨운 선각자였습니다. 시대가 변했기에 탈민족주의 사조의 유의미성을 간과할 수 없겠지만 공통된 서사(기억) 없이 공동체로서의 국가가 유지 존속되기는 여전히 어려울 것입니다.

3.

해방 80년(2025년)이 바로 목전에 있으나 친일 종속 사관이 때론 친미 종속으로 변형된 채로 작동되고 있는 듯싶어 걱정입니다. 친일을 넘어 종일의 DNA가 소수 특권층에게 유무형으로 대물림된 결과입니다. 총선정국에서 불거진 상당수 ‘국민의 힘’ 후보들의 언사에서 이점이 가감 없이 드러났습니다. 북/중/러 견제를 위해 한/일 공조는 불가피하겠으나 도가 지나쳤습니다.

최근 ‘건국 전쟁’ 영화는 이런 의식의 정점에 서있습니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해방 후 한국의 분단을 신의 은총으로까지 묘사했지요. 분단 되었기에 미국(기독교)을 통해 남한이 북쪽에 비해 빠르게 성장했다고 말합니다. 분단이 곧 성장이라는 논리를 피력한 것이지요. 이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창한 친일 사관의 연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그런 점도 없지 않았겠지요. 하지만 일리를 전리로 둔갑시킨 이런 주장은 민족의 주체(자발)성을 실종시킨 노예 사관이라 말해도 좋겠습니다.

최근 갑오혁명과 기미독립운동을 주도한 동학 천도교 측에서는 서구(일본)적 ‘개(근대)화’보다 자생적 개벽을 소환, 강조하고 있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주지하듯 36년 통치 후 물러나는 그 순간까지 일본은 미국에게 조선 분단을 아주 끈질기게 요구했습니다. 물론 카이로 선언에서 결정되었으나 그와 무관하게 조선 분단을 요청했던 것이지요.

이를 모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서고자’ 했던 독립 의지를 불구로 만들면서까지 친일, 친미를 종일, 종미 수준까지 높이는 까닭은 분명합니다. 남북 갈등을 빌미로 윤 정권에게 오롯한 정당성을 부여할 목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스스로 서기’ 위해 자신과 가족을 버렸으나 잊히고 때론 폄하된 선혈들에 대한 모독이자 배반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4.

‘건국 전쟁’은 해방 전후 공간에서 이승만만큼 외교적 감각이 뛰어난 정치가가 없었다고 강변합니다. 일리가 있겠으나 역시 전리일 수 없습니다. 그가 정적으로 생각한 몽양 여운형과 견줄 때 더욱 분명합니다. 여운형은 원심력으로 대변되는 외교와 구심력을 뜻하는 만족 주체성을 새의 두 날개로 비유했고 양자의 균형을 위해 순간마다 신의 뜻을 강조했습니다. 기독교인으로 알려져 있으나 동학, 대종교 등 민족의 정신세계와 폭넓게 관계를 맺은 인물이었습니다.

다자 중심의 외교력을 중시했고 무엇보다 구심력(주체성)을 역설했기에 미국 의존적인 이승만과 변별되었지요. 기독교를 자기 이익을 위해 수용한 이승만과 달리 여운형은 종교를 제반 갈등(이념)을 포괄하는 힘으로 여겼습니다. 그가 천덕꾸러기 백정들의 해방을 위해 애쓴 이야기도 회자 되고 있습니다. 이런 몽양의 생각을 여해 강원용 목사, 가나안 농군학교 김용기 장로, 이대 통일 여성신학자 박순경 등이 사상적으로 이어왔습니다.

이 땅의 독립운동사에 있어 사회주의 계열이 생략된 것 또한 못내 안타까운 일입니다. 범도 상을 육사 교정에서 치워버린 것도, 연해주 지역의 독립운동가 이동휘의 삶을- 강화 지역의 모든 감리교회 및 학교가 그에 의해 시작되었음에도- 음소거하듯 지워버린 것 또한 이승만- 결국 미국-주도로 건국했던 까닭이겠지요. 이승만을 건국 아버지라 칭한 ‘건국 전쟁’은 이런 이념 잣대로 우리 역사를 조명했습니다. 하지만 압록강, 두만강을 넘나들며 나라를 찾고자 희생했던 독립군에게 ‘사회주의’라는 이념은 독립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민족주의 이상으로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의 끈질긴 희생에 힘입은 바가 너무 큽니다. 김산의 <아리랑>에서 보여지듯 중국 공산주의에 몸담았던 것도 결국 나라를 찾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한 일이었습니다. 긴 투쟁 과정에서 기독교인, 민족주의자들보다 상대적으로 변절자들이 적었던 것 역시 주목해야 옳습니다. 제국을 민국으로 바꾼 애국지사 중에 민족주의자들만큼 사회주의자들의 공헌을 기억하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남북의 관계도 분명 조금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5.

기독교 신학자로서 저는 1907년에 있었던 두 사건에 주목합니다. 하나는 평양에서 일어난 대부흥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민족 결사의 형태로 기독교, 민족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이 함께 참여한 신민회 창설입니다. 작금의 기독교는 앞쪽 것만을 유의미한 사건으로 기억할 것이나 나중 것도 그 이상의 의미로 평가, 기억되어야 마땅합니다.

전자의 영향으로 기독교 세를 불릴 수 있었지만 후자는 모든 차를 초극하는 3.1 사건의 모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후자의 모습으로 기독교가 성장했다면 ‘건국 전쟁’에 열광, 후견하는 개신교 교회는 애시당초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해서 다시 묻습니다. 누가 대한민국을 만들고 지켰을까요?

자신의 재능을 사사로이 쓰지 않고 독립을 위해 바친 독립군들, 이름 한자 남기지 않은 채 목숨을 내놓은 민초들, 자기 재산과 가족 모두를 내놓은 유(식)자들, 종교, 이념보다 민족을 중히 여겼던 사상가들, 반상의 차별을 스스로 벗어던진 양반들, 바로 이들 모두의 힘이 합쳐져 이 땅을 살려냈다고 믿습니다. 3공화국에로의 퇴행인가 아니면 7공화국으로의 도약일지를 결정하는 이번 총선에 출사표를 던진 여야 후보들에게서 이런 모습을 기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선거가 신이 날까요?

6.

이제 앞서 읽은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마태복음서 25장은 열 처녀의 비유, 달란트의 비유 이야기 끝에 최후 심판의 풍경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이번 부활절을 심판의 주제와 연결하여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인자가 다시 오는 그날에 펼쳐질 새로운 세상, 영원한 생명의 세상을 마태복음서 25장이 잘 설명하는 까닭입니다.

그날이 되면 양과 염소를 구별하듯 사람들을 둘로 갈라 살피겠다고 하십니다. 그중 한쪽 편 사람들에게 창세로부터 준비한 새로운 세상을 경험시키겠으며 다른 쪽의 사람들에게는 자신에게서 떠나기를 요구했습니다.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는 엄청난 말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본문이 말하는 선택의 근거는 아주 단순합니다. 역사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한 물음입니다. 자신을 위해 가진 자들, 높은 자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살았는가 아니면 고통받은 이들 편에서 그들과 한 몸을 이뤄 살아보았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해서 다석 유영모 선생은 사람이 죽을 때 눈물 한 방울 남기지 않도록 살아생전 모든 눈물을 쏟으라 했습니다. 성서가 말하는 헐벗은 자들, 목마른 자들, 감옥에 갇힌 자들, 형편없이 보이는 자들을 세상 죄를 대신 걸머진 존재들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어령 선생 또한 이런 존재를 위해 눈물 흘리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영성의 세계는 눈물과 관계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들에게 한 것이 곧 예수 자신에게 한 것이라 성서는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곧 역사 속에서 고통을 겪은 이들의 삶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은 식민지 삶과 분단의 고통 속에서 백여 년을 살아온 민중들, 그들 편에서 역사를 살폈고 미래를 생각해 봤느냐란 질문이라 생각해도 좋지 않겠습니까? 식민지 근대화를 칭송하며 백성들 고난에 눈을 감았는지 아니면 자식들까지 역사에 바치면서 스스로 고통을 감내했는지의 물음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서려고 했는지, 아니면 끝까지 남의 힘에 의지, 민족의 고통에 무심해지려고 했는지의 물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듯 성서는 세상과 다른 가치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습니다. 비 오는 궂은날 고급 승용차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비 젖은 몸으로 거리로 내몰린 이들의 시각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 오늘 본문의 뜻일 것입니다. 이렇듯 신앙은 가치의 전도를 의미합니다. 이를 준비하며 사는가를 질문하고 있습니다.

7.

최후의 심판 이야기 앞에 있는 기름을 준비 못한 여인들 이야기, 달란트를 땅에 묻은 게으른 종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을 적시합니다. 게을렀고 지혜가 부족했으며 눈앞의 현실이익만 따랐기에 신앙, 곧 가치의 전도를 이루지 못한 자들의 비극을 말하고 있습니다. 영구 독립이 되지 않을 듯싶어 친일했다는 영화 <밀정>의 한 대사처럼 그렇게 살았던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날이 되면, 부활과 재림의 날에 이들은 저주받은 자 편에 설 것이라 예수께서 경고했으니 두려운 일입니다.

부활은 정말 준비된 자에게 다가오는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예수가 사람을 영원한 불 속에 던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지혜로운 삶을 준비하며 살길 바라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불 밝힐 기름을 준비하고 주신 달란트를 활용하여 자신의 정신과 능력을 좀 더 크고 넓게 사용하기를 바라고 계실 뿐입니다. 성서에 기록된 마지막 때의 이야기가 위협이나 두려움을 목적하는 언사이기보다 맡겨진 삶을 더 풍요롭게 살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부활은 준비된 자의 몫인 것은 분명하다고 거듭 믿습니다.

2024년 3월 31일 부활절

이정배 교수(감신대)  ljbae20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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