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위기와 정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상관 관계를 가진 것은 이제 기본에 가까워졌다. ⓒGetty Images

선거제도 개혁과 기후위기⁽¹⁾

기후위기 얘기를 하는데, 왜 선거제도 얘기가 나오는지 궁금해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거제도는 기후위기 대응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수대표제(Majority System, 우리나라에서는 소선거구제라고 불린다) 선거제도를 택한 국가의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율이 비례대표제(Proportional Representation) 선거제도를 택한 국가의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율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치학자인 살로몬 오렐라나(Saloman Orellana)의 연구에 따르면, 다수대표제 선거제도를 택한 국가에서는 17년간 (1990-2007) 사이에 45.5%의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율을 보인 반면, 비례대표제 선거제도 국가에서는 9.5%만이 증가했다. 그 이유는 각 선거제도가 가진 특성 때문이다. 비례대표제 선거제도는 각 정당이 받은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회 의석이 배분된다. 따라서 유권자들 입장에서는 정당에 대한 투표가 중요해진다. 그런데 유권자들이 정당투표를 던질 때에는 그 정당의 정책을 중요하게 볼 수밖에 없다.

즉 기후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유권자들은 기후위기 대책에 적극적인 정당에게 투표를 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정당투표를 더 얻기 위해 애써야 하는 다른 정당들도 기후위기 문제를 소흘하게 다룰 수 없게 된다. 진보적인 정당 뿐만 아니라 보수적인 정당도 기후위기에 대한 정책을 내세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기후위기가 정치영역에서 중요한 의제로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기후위기가 정치에서 중요한 주제로 다뤄지려면, 선거제도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경우에는 2020년 이전까지 정당득표율에 관계없이 지역구에서 1등만 하면 무조건 당선되는 다수대표제 방식으로 국회의원 대부분을 선출했다. 국회의원 300명중 253명을 이 방식으로 선출하고, 300명중 47명만을 비례대표로 선출했다. 이런 방식은 다수대표제와 비례대표제를 혼합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효과는 다수대표제에 가깝게 나타난다.

이런 방식을 ‘병립형(parallel system) 또는 혼합형 다수대표제(Mixed Member Majoritarian, MMM)라고 부른다. 그러다가 2020년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선거제도 개혁이 추진됐다. 그러나 제대로 된 비례대표제로 전환하지 못하고 ’준연동형‘이라는 기묘한 방식이 채택됐다. 기득권을 가진 거대정당이 자기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준연동형’ 방식은 각 정당의 정당득표율대로 배분한 의석에서 각 정당의 지역구 당선자를 뺀 숫자의 50%를 우선적으로 보장하는 형태이다. 100%를 보장하는 것이 온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면, ‘준연동형’은 50%만 연동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계속 유지되기가 어려운 방식이다. 너무 복잡해서 유권자들이 이해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2024년 국회의원 총선전에 선거제도를 다시 바꾸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대안은 온전한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덴마크, 스웨덴 등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Party-list propotional representation)을 도입하든지 아니면, 독일이나 뉴질랜드가 채택하고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혼합형 비례대표제, Mixed Member Propotional representation)을 도입하든지 해야 한다.

추첨제 시민의회

앞서 언급한 선거제도 개혁은 대의제가 기후위기라는 사상 최대의 위기에 대한 대응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대의제 자체가 가진 한계도 있다.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자칫 기후위기 대응에는 소극적으로 되기 쉽다. 임기가 정해진 대통령, 국회의원이 자신의 임기 내에 성과를 내기 어려운 과제에 대해 적극성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도 있다.

그래서 기후위기라는 상황에 대처하려면, 무작위 추첨으로 뽑힌 시민들이 참여하는 ‘시민의회’ 방식도 필요하다. 영국같은 경우에는 2020년 무작위 추첨으로 뽑힌 시민들 108명이 참여하는 ‘기후 시민의회(Climate Assembly)’를 구성하여 대책을 논의했고, 500쪽이 넘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또한 프랑스의 경우에도 150명으로 구성된 기후위기 시민총회(Citizens Convention for Climate)를 운영했었다.

이런 시민의회 방식이 가진 장점 중에 하나는 ‘동료시민에 대한 설득가능성’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정치와 정부, 기업의 역할도 있지만, 시민들의 의식변화도 중요하다. 그런데 정치인이나 정부가 시민들에게 ‘삶의 방식을 어떻게 바꿔야 한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거부감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동료시민들이 숙고해서 하는 제안이라면 좀더 설득의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육류나 유제품 소비를 줄이자’라는 것을 정치인이나 관료가 얘기한다면 거부감이 크겠지만, 동료시민들이 고민하고 토론해서 내린 결론이라면 다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시민의회 방식이 당장 선거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대의제를 보완하는 의미에서라도 시민의회 방식이 필요하다. 다만, 이벤트 형식으로 하는 행사에 ‘시민의회’라는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된다.

‘시민의회’라는 이름을 쓰려면, 최소한 6개월-1년 정도의 기간을 두고 성, 지역, 계층 등을 고려해서 무작위 추첨으로 뽑힌 시민들이 정기적인 논의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전체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어, 시민의회에 참여하지 않은 시민들도 정보를 제공받고 논의에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시민의회는 국가차원에서도 시도할 수 있지만, 지역차원에서는 보다 손쉽게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승수(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변호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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