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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다움이 살아있는 대인관계 심리학한 사람에 관한 치유적 상담 이야기 (3)
한선영 박사(심리상담센터 치유공간 느낌 대표) | 승인 2024.04.06 04:18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시던 한 내담자가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의사들은 저를 환자 1이나 환자 2 쯤으로 보는 것 같아요!”

​가느다란 바람에도 쉽게 베이곤 하는 여리고 예민하던 감정의 시절에, 특정한 어떤 상황에서 인격체가 아닌 숫자 1, 2의 분류 대상으로 취급받았다는 생각에 내담자는 평소보다 더 크게 마음이 상했습니다. 틸리히에 따르면 내담자는 ‘사물화된 인간’ 혹은 ‘대상화된 인간’ 경험을 하신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사물화된 인간이란, 자기다움으로부터 소외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틸리히는 이와 같은 소외현상을 신학적인 의미에서 ‘죄’로 해석하였습니다. 신학을 공부했고, 상담가로 일하는 저는 ‘죄는 곧 소외이고, 구원은 치유이며, 은총이란 곧 수용’과 같이 신학과 심리학 사이에 개념적 다리를 놓은 틸리히에 빚을 지고 있습니다.

​환자만이 아닌 한 인격을 지닌 사람이고 싶었던 내담자의 욕구는 참으로 타당합니다. 자기다움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에 자주 놓이게 될 때 인간은 병리적이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치유란, 소외된 자기다움을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이 사라진 ‘우리들’에 관해서

​언젠가 러시아 여행 중에 아르미타쥬 박물관에서 화가 마티스의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Dance II’라는 그림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집단상담을 오랜 시간 해온 저는 빙 둘러 앉거나 서 있는 원형(circle)의 이미지들을 볼 때면 마음이 설레이곤 하는데, 이 작품을 보았을 때도 소그룹이 떠올라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 Henri Matisse, 「dance II」 ⓒWikipedia

작품을 감상하던 중 제 시선이 두 곳에 머물렀습니다. 하나는 춤에 심취한 듯해 보이는 무희 한 명의 표정이었고, 또 하나는 다른 멤버들과 달리 두 손이 떨어져 있는 남녀였습니다. 함께 추는 춤 속에서도 개인의 자유로움은 손상되지 않으며, 더러 동작이 일치하지 않는 구성원이 있어도 이렇게 공동체의 춤이 이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티스는 작품에서 ‘균형’을 중요시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작품에서 저는 그가 의도한 것과 연관성이 있는지는 몰라도 개인의 개성과 공동체성의 균형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건강한 관계 문화가 있는 곳에서 개인은 가장 자기다울 수 있으며, 타인과 기꺼이 교류하며 상호관계성을 만들어 갑니다. 반대로 그렇지 못한 관계성 속에서는 개인의 자기다움은 쉽게 희생되고, 집단적인 ‘우리’가 됩니다. ‘우리’라는 말이 아름다울 때는 상호적인 관계성과 개인이 존중될 때이지, 개인이 상실된 ‘우리’는 병리적입니다.

‘떡 반죽 가족’과 인간관계에서의 권위주의의 모습들

‘떡 반죽 가족’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을까요?

​지나치게 밀착되고 뭉쳐있는 가족을 의미합니다. 겉으로 보기엔 끈끈한 가족애로 더할 나위 없이 친밀해 보이지만 이런 가정에서 자녀들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깊이 감춘채 부모의 욕구나 바램에 자신을 흡수시킵니다. 가족치료학자 보웬은 이를 ‘불안으로 인한 미분화 현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엄마가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시면 그때부터 나 자신이 증발해버리는 것 같다. 엄마 모드에 나의 온 신경이 맞춰진다. 저녁식사부터 시작하여 회사와 아빠에 대한 불평 불만을 꼬박 두 세시간 이상 들을 때가 많다. 듣기 거북하고 지겨울 때도 자주 있지만 혹여라도 엄마의 우울증이 심해질까봐 나는 열심히 듣는 척 한다. 그러고나면 ‘딸밖에 없다’는 엄마의 말이 덧붙는다. 엄마가 안쓰럽기도 하지만, 엄마를 떠나고 싶은 마음도 크다. 그래서 교환학생 모집 공지를 매 학기 매 학기 찾아보지만, 그때마다 엄마의 침울한 얼굴이 어른거려 포기하곤 한다. 나때문에 엄마가 더 안좋아지시기라도 한다면 나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엄마가 퇴근하는 시간은 곧 내가 엄마에게 출근하는 시간이다.

- 이 글은 필자의 상담경험을 사실에 기반하여 각색하였으며, 특정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이 에피소드에서 엄마와 딸은 미분화된 관계 양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엄마는 딸이 없으면 마음을 지탱하기 힘들고, 딸은 엄마가 불안해서 독립적으로 행동하거나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미분화된 관계에서 건강하지 못한 권위주의가 생겨납니다.

​이 시점에서 권위와 권위주의의 차이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교육이나 강의 중에 저는 ‘그러면 모든 권위가 나쁜 것인가?’라는 질문을 자주 받거든요. 권위 그 자체는 좋고 나쁨이 없습니다. 하지만 권위를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건강한 권위인지, 병리적인 권위인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틸리히는 이를 ‘실제로서의 권위’와 ‘원리로서의 권위’라고 말하였고, 프롬은 ‘합리적인 권위’와 ‘억제적인 권위’로 표현하였으나 모두 같은 의미입니다. 

​‘원리로서의’, ‘억제적인’ 권위가 바로 ‘권위주의’에 해당됩니다. 그러므로 권위주의는 경계해야 할 관계 양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히 권위주의라 하면 힘을 가진 사람이 힘이 없는 사람을 통제하고 조종하는 모습을 연상하는데, 권위주의는 힘이 없는 사람에게도 나타납니다. 프롬은 인간관계에 나타나는 다양한 권위주의 성격 유형을 분석하였는데 바로 다음과 같습니다.

1. 권력에 열광하는 유형  - 가치의 유무가 아니라 힘의 유무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본다.
2. 반역적인 유형 - 합리적인 권위임에도 권위 자체를 거부한다. 변화가 아니라 반대가 목적이다.
3. 운명에 복종하는 유형 - 운명론적 사고와 태도를 갖는다. 초월적 존재로 인간의 삶이 결정된다.
4. 권력을 대신하여 용기내는 유형 - 우월한 권력 혹은 가치를 대신해서 용감하게 행동한다.
5. 조용한 의존 유형 - 부모, 연인, 배우자, 신, 지도자 등을 이상화하며 의존한다.

​프롬의 분석은 당시 히틀러 시대의 다양한 인간 유형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지금 시대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권위주의 성격 유형들은 현재 한국의 인간관계 유형을 분석하는데도 유효한 연구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기다움을 꽃 피우게 하는 대인 관계망

​어떤 관계망은 자기다움을 앗아가지만, 어떤 관계망은 한 사람을 가장 자기다운 모습으로 꽃 피우도록 격려합니다. 집단상담에서는 초중기 단계를 거쳐 유대감이 가장 높고, 관계적인 결속감이 단단한 단계가 등장하는데, 이때 참여자들 개개인이 가장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자기다운 모습을 드러냅니다. 앞의 마티스의 그림에서 제가 해석한 것처럼 끈끈한 연대를 느끼면서도 고유한 자신만의 모습으로 마음껏 머무르고 드러내는 장면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내가 꿈꾸는 것은 바로 균형의 예술이다.” - Henri Matisse

『당신의 그림에 답할게요』에서 마티스의 작품에 대해 글을 쓴 오은 시인은 화폭에서 마티스가 시도한 균형은 '당최 불가능한 절대적 가치의 추구이며, 역설적이게도 그로 인해 작품이 완성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개인과 공동체의 균형도 상담과 같은 특정한 상황에서나 가능한 이상적인 가치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라는 화폭에 끈질김을 갖고 선한 관계망을 그려나가는 일이 쓸데없는 일도 아닙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가수 스텔라장의 노래 중 ‘You As You are(그대는 그대로)’의 가사 일부를 소개해 봅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곳이 자기다움을 그려내는 소중한 화폭이 되기를 꿈꾸며.

그대가 속한 세상이 / 그대를 지치게 하고 / 그대가 그대가 아닌 / 사람이기를 강요하네
​그대가 속한 세상엔 / 많은 사람들이 있고 / 많은 사람들 가운데 / 나라는 한사람이 있네
​세상의 어둠이 짙어 / 그대가 길을 잃을 때 / 내가 빛이 되고 싶어 / 그대는 그대로
- 스텔라장, “You As You are(그대는 그대로)” 중

 

참고도서

김연덕 외. 『당신의 그림에 답할게요』. 미술문화, 2022
에리히 프롬. 원창화 역. 『자유로부터의 도피』. 홍신문화사, 2006
폴틸리히. 성신혁 역. 『사랑, 힘, 그리고 정의』. 한들출판사, 2017.
폴 틸리히. 남정우 역. 『문화의 신학』. 대한기독교서회, 2002.
M.E.Kerr&M.Bowen. 남순현 외 역. 『보웬의 가족치료이론』. 학지사, 2006

 

​글쓴이 한선영 박사는 심리상담센터 치유공간 느낌 대표로 일하고 있으며, 현재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집단상담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심리상담으로 한 사람의 작지만 미세한 변화를 기쁘게 여기며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한선영 박사(심리상담센터 치유공간 느낌 대표)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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