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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잣 같냐? 나도 잣같다”나의 사립학교 생존기 3
홍경종 교사 | 승인 2024.04.06 04:21
▲ 학교라는 공간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그 원인은 어쩌면 교사들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Getty Images

1980년대의 국민학교에서 전교 어린이회장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선거도 학급의 회장단을 중심으로 간접선거를 통해 선출했는데, 일반학생들은 그 과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학급 회장도 후보를 선생님이 지정해주던 시대였으니까 말이다.

누구 누구가 전교회장이라고 운동장 애국조회 때 발표하면 아, 저 놈인갑다 하고 대충 알았고, 운동회 때 차전놀이 맨 윗자리에 올라가는 놈을 보면 확실하게 알았다. 우리 동네에서 최고로 잘사는 녀석들, 2층 양옥집에 길가까지 뻗은 감나무가 정원에 심어져 있고 스텔라 자동차를 마당 안에 주차할 수 있는 집 녀석들에게만 허락된 자리라는 것을.

교사가 되어 바라본 2000년대의 학교는 확실히 그 때와 달랐다. 어쨌든 학생들의 투표라는 행위가 있었고 그 결과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맞았으니까. 그러나 전교회장이 유력한 집안의 아이가 되는 관례, 혹은 그런 아이가 되기를 바라고 직·간접적으로 학교가 지원하는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2학기 전교어린이회장 선거에서 교장과 그 측근들이 밀어주는 사람은 부장검사 아버지를 둔 K였고, 그 또한 매우 착실하며 인성좋은 모범생이었다. 다만 안타깝게도 K는 선거에서 아이들의 표를 몰아올만한 엔터테이너적인 ‘끼’가 없었다. 정작 그것을 가진 친구는 B였는데, K의 집안이 가진 재력과 영향력에 비하면 B의 집안은 평범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학교의 윗선은 모두 K가 회장이 되기를 바라며 여러 가지 간접적인 수단으로 ‘K 띄워주기’에 전력을 다했다.

그러나 그들의 간절한 염원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B에게 몰표를 줬고 당연히 2학기 전교회장은 B가 맡게 되었다. 그 결과를 발표하는 것도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인지 한참을 쉬쉬하고 숨기고 있었는데 선거 담당 선생님이 ‘너무나 순진하게’ 방송으로 B가 전교회장에 당선 되었다고 발표를 했고, 그 담당 선생님은 또 교장실에 불려가 ‘왜 교장의 지시도 없이 네 멋대로 일을 처리하느냐’고 질책을 들었다. 이후 K를 어떻게든 임원단에 넣기 위해 ‘서기’라는 직책을 새로 만들어 넣은 것은 지금 생각해도 웃지못할 코미디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교장이 사사건건 B를 ‘갈구기’시작했다. 당시 나는 방송 업무를 맡아서 월요일마다 운동장 애국조회를 진행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전교회장과 많은 이야기를 하며 친해질 수 있었고, B의 고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조금씩 추워지기 시작하던 어느 월요일 아침, 여느때 처럼 애국조회를 준비하는데 진행 멘트를 읽던 B가 약간 버벅거리기 시작했고 운동장에 모인 아이들 몇이 좀 키득거리는 일이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조회가 끝난 다음 교장은 지옥에서 올라온 사신의 얼굴을 하고서 B를 교무실로 불렀다.

그리고 사정없이 B를 몰아부쳤다. 방송부 지도교사인 나는 B를 제대로 지도하지 못한 죄를 추궁당하며 함께 차렷자세로 욕을 먹고 있었다. 수없이 많은 비난과 저주가 이어졌지만 옆에 있는 나도 듣기 거북했던 말은 이것이었다.

“그딴 것도 제대로 못하냐? 넌 회장 자격이 없어! 너같은 놈이 무슨 회장이야, 당장 그만둬!!!”

그렇게 10분 정도의 폭풍이 지난 뒤, 교장은 자리를 떴고 B도 화장실에 가겠다며 나갔다. 그 뒷모습이 너무 안돼보여서 조금 뒤 나도 B를 따라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그는 거울 앞에서 분노와 슬픔이 가득한 썩은 얼굴로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할까 고민하다가 그의 축처진 어깨를 감싸며 한 마디 던졌다.

“잣같냐?”

순간 녀석은 움찔했다. 하지만 입가에 묘한 미소가 돌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네. 진짜 열여덟개의 잣같아서 못해먹겠네요.”
“그러냐? 나도 조은날 잣같아서 그만두고 싶다. 그래도 어쩌겠냐. 잣같아도 시간은 간다. 힘내라.”

이후 시간은 흘러 B는 졸업을 했다.

그 교장은 그 외에도 여러가지 일로 빌런 짓을 하다가 결국 학부모의 대규모 봉기를 마주했고, 결국 학교를 그만두었다. 2년 뒤 B의 동생을 담임하게 되었는데, 상담주간에 어머님이 그 때 그 사건을 이야기하시면서 너무 고맙다고 하셨다. 선생님 덕분에 아이가 큰 위로를 얻었고, 그래서 중학생활을 더 자신있고 성공적으로 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냥 아이의 감정에 깊이 공감했을 뿐이라고, 그런데 좀 표현이 그래서 아이가 나쁜 걸 배운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우스갯소리로 인사에 답례했다. 때로는 명심보감, 사서삼경보다도 공감의 욕한마디가 모든 것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던 순간이었고, 이후 내 생활지도에 하나의 중요한 토대를 만들어준 귀한 추억의 순간이다.

홍경종 교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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