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칼럼
허기고흐와 산책하기 (32)
최광열 목사(아리랑인문지식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4.04.06 04:22
▲ <테오의 아파트에서 본 파리풍경> 부분 (1887 봄, 캔버스에 유채, 46×38cm, 반고흐미술관, 암스테르담)

빈센트는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미술이야말로 자기 인생의 전부라고 말했다. “너는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중략) 돈을 받으면 나의 가장 큰 허기부터 채우는데, 그건 며칠씩 굶었더라도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일이거든.” 그는 살기 위해서 먹지 않고 그리기 위해서 먹었다. “아침 식사와 저녁에 간이 식당에서 먹는 커피 한 잔과 빵, 혹은 가방에 넣고 다니는 호밀빵이 전부야. 그림만 그릴 수 있다면 식사는 이걸로도 충분해.” 굶기를 밥 먹듯 하면서도 그는 그림을 그렸다. 고집이 대단했다. 다른 길이 그에게는 없었다. 이런 삶에 대하여 탐험가이자 선교사인 리빙스톤(1813~1873)은 ‘사명을 가진 자는 그것을 이룰 때까지 죽지 않는다’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빈센트는 돈이 필요했다. 좋은 집과 맛난 음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캔버스와 물감을 구할 수 있는 돈, 그리고 허기를 면할 정도의 음식이면 충분하였다. 하지만 그에게 그런 호사는 주어지지 않았다. 혹시 자신의 그림의 진가를 알아줄 사람이 있는가 하는 기대를 갖기도 하였다. 안트베르펜의 작업실 아래층 물감 가게가 그런 기회를 가져다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몇 점의 그림을 그곳에 걸어두었으나 빈센트의 바램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의 작품에서 뉘넌의 어둡고 무거운 색감을 벗어나기는 하였으나 아직 그만의 개성은 드러나지 않았다. 빈센트의 그림을 이해하는 시대도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런 중에도 자신의 예술 가치를 제대로 알아줄 날을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소중히 지냈다. 그날은 더디 오거나 어쩌면 오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빈센트는 그날을 기대하였다. 배고픔과 외로움은 일상이 되었다. 인생은 오지 않는 희망을 기다리는 고단한 일상이다.

빈센트는 다시 한번 아주 단순한 해결책을 선택하였다. 안트베르펜을 떠나 테오가 있는 파리행을 결행한 것이다. 이번에는 테오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파리는 당시 유럽에서 런던 다음으로 크고 번화한 도시였다. 테오는 몽마르트르의 자기 숙소로 형을 안내하였다. 근처에는 20여 년 전 인상파를 이끈 마네와 모네, 르누아르, 바지유 등이 매주 모였던 카페 게르부아와 그들의 화실이 있었고, 관습과 전통을 해체하는 아방가르드도 인근에 있었다. 빈센트는 12년 전 구필화랑 파리 지점에 잠시 근무했던 적이 있어 파리가 낯설지는 않았다. 뜬금없는 파리 생활에도 빈센트는 여전히 가난했다.

그의 허기는 단순한 배고픔만은 아니다. 석 달밖에 머물지 않았던 안트베르펜에서도 빈센트는 왕립 미술아카데미에서 드로잉 수업을 받았다. 파리에 머물면서 페르낭 코르몽이 운영하는 미술학교에 등록하였고 루브르박물관을 자주 찾아 렘브란트와 황금기의 미술가들을 연구하였다. 가까이 있는 뤽상부르 미술관과 매해 열리는 독립미술가협회 전시회의 단골 관객이 되었다. 그의 허기는 아직 채워지지 않았다.

최광열 목사(아리랑인문지식연구소 연구원)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광열 목사(아리랑인문지식연구소 연구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9 한국기독교회관 503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4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