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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못 본 체하지 말라”(신명기 22:1-4)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4.04.08 03:42
▲ 이웃의 어려움과 고통을 외면하지 말라는 명령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Wikipedia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삶은 때로 내 인생을 이렇게까지 잘 풀리게 하나? 싶다가도, 언젠가는 밑도 끝도 없는 바닥으로 몰아가기도 합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여러 가지 상황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그 상황들이 나를 기쁘게도, 화나게도, 행복하게도, 우울하게도, 즐겁게도, 두렵게도 합니다.

이처럼 나의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언제나 일정하지 않고, 불안정합니다. 그렇기에 나의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성도에게 평안을 줄 수 없습니다. 평안은 잠시 잠깐만 손에 쥘 수 있는, 가질 수 없어 다시 되돌려주어야 하는 무언가가 아닙니다.

평안 그것도 완전한 평안이 성도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 성도 안에 있습니다. 이 평안이 있음에도 언제까지 나의 밖에서 불완전한 평안, 거짓 평안을 찾으시겠습니까. 평안은 성도 안에 이미 주어졌습니다. 나의 밖이 아닌 나의 안에서 이 평안을 구하고, 선택하고,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병아리가 부화하기 위해 알 안에서 탁탁 알의 안쪽 면을 치면, 어미 닭이 안에서 치는 소리의 바깥면에서 같이 탁탁 두들겨 줌으로써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올 수 있게 된다는 ‘줄탁동시啐啄同時’ 이야기를 지난주 말씀드렸습니다. 병아리가 알을 깨기 위해서는 어미 닭의 도움도 필요하고, 병아리도 먼저 알을 깨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하나님도 성도가 알고자 한다면 알 수 있도록, 말씀을 깨닫고자 하면 깨달을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요청해야 할 도움은 무엇입니까? 깨고 나와야 할 나의 예전 모습은 무엇입니까? 함께 읽은 신명기 말씀을 통해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리 지역에서 일어난 일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일 때문에 오늘 본문을 묵상하고 나누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도님들 얼마 전에 화곡리, 마달리, 배봉리, 명파리 주민들이 22사단의 만행 때문에 플래카드를 걸고 시위했던 일을 아십니까?

마을 주민들의 동의 없이 집 주변에 CCTV를 달아 주민들의 사생활이 고스란히 노출되는가 하면, 마달리에서 건달리로 넘어가는 길목을 바리케이트로 막아 주민들의 통행에 굉장한 불편을 초래했습니다. 평상시 자유롭게 출입하던 곳이 막혀 버렸을 뿐 아니라, 군인들이 계속해서 신분 확인을 하는 바람에 수해복구를 위해 나온 포크레인이 수해복구 장소까지 가는 데만 1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주민들이 항의하게 되었고, 면에서 중재하여 주민과 군이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이때도 군이 얼마나 오만했는가 하면, 군 간부가 협의 중에 주민들을 향해 “수준이 낮아서 대화가 안 된다.”라는 막말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면에서 군과 주민들을 중재한 끝에 군 간부로부터 사과도 받고, 바리케이트도 철거하면서 사건이 일단락되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군에서 다시 바리케이트를 치고 주민들의 출입을 불편하게 할 뿐 아니라, 현수막으로 ‘영농 활동 금지’를 적어서 곳곳에 설치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영농 활동을 하고 있는데, 게다가 내 사유지에서 내가 하겠다는데 영농 활동 금지라니 말도 안 되지 않습니까? 이에 주민들이 다시, 항의하게 되었고, 지난 금요일에는 건달리에서 바리케이트를 지나 마달리로 나오는 군인들을 길목에서 막아서며 사단장과의 대화를 요구했습니다. 이에 군인들은 길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아선 주민들을 경찰에 신고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출동한 경찰이, 주민들의 사정을 듣고서는 오히려 군인들을 나무라는 형국이 되었고, 면장님도 현장에 나오셔서 “30년 동안 너희 같은 군인은 처음 본다!”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결국, 현장으로 불려 나온 22사단 사단장은 주민들에게 사과하고, CCTV도 불법으로 달았음을 시인하면서 CCTV와 바리케이트를 월요일에 철거하겠노라고 구두로 약속하고 일이 마무리되었습니다. 군이 나라를 지켜야 하는데, 민간인과 게다가 평생을 한동네에서 살아온 주민들과 싸우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군이 이러는 이유는, 민통선 지역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럼 어디가 민통선 지역인지 확인’해달라는 마달리 이장님의 요구에 군은 여전히 답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정당한 이유 없이 막무가내로 실력행사實力行使, 갑질을 하고 있다고밖에는 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여기서 알아두어야 할 점은, 이 마달리에서 건달리로 들어가는 좁은 길 때문에 생겨서 불편함과 피해를 겪는 분들은 주민의 20%도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웃은 ‘뭐 이렇게 유난스럽게 굴어.’라고 생각하거나 말할지도 모릅니다. ‘동네 시끄럽게 하지 마라!’라는 사람들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침묵하고 외면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주민들은 나의 일이 아님에도, 자신이 피해 보는 상황이 아님에도 같이 맞서주었습니다. 자신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의 불편과 어려움을 보아 넘기지 않고, 목소리를 내주고 자신도 피해 볼지 모르는 상황에서 같이 길을 막아서며 드러누워 주었습니다. 얼마나 훌륭한 태도입니까? 얼마나 수준 높은 의식입니까?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이런 삶의 태도와 의식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반드시’라는 단서까지 붙여서 말입니다.

“1 당신들은 길 잃은 이웃의 소나 양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반드시 끌어다가 그 이웃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2 또 당신들은 그 이웃이 가까이에 있지 않거나,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해도, 그 짐승을 당신들의 집에 끌어다 두었다가, 그 주인이 찾을 때에 돌려주어야 합니다. 3 나귀도 그렇게 하고, 옷도 그렇게 하십시오. 그 밖에도 이웃이 잃은 것이 무엇이든지, 당신들이 발견하거든 그렇게 하고, 못 본 체하지 마십시오. 4 이웃의 나귀나 소가 길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마십시오. 당신들은 반드시 그 이웃을 도와 그것을 일으켜 주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웃의 재산이 손실되거나 파손될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이웃의 재산을 어떻게 돌보고 지켜 주어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적극적으로 돌보고 지켜 주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얼마나 번거롭고, 귀찮은 일입니까? 내 시간과 힘을 들여서 길 잃은 소, 양을 끌어다가 돌려주어야 합니다. 어쩌면 하던 일을 멈추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뿐만입니까? 주인이 누구인지를 모를 때는 주인을 찾을 때까지 소, 양을 돌보아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군가가 잃어버린 것은 내 소유가 될 수 없습니다. 정당하게 얻은 것이 아니라면 반드시 되돌려주어야 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웃의 소유인 것을 빼앗으려 할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웃의 일거리, 이웃의 일터, 이웃의 재산 등을 지켜 주는 것이 아니라 오늘 말씀과는 반대로 오히려 빼앗으려 합니다. 아주 사소한 이익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작은 것 하나라도 남의 것을 빼앗는 행위와 의도를 허용하지 않으십니다. 

이웃의 재산을 지켜주라고 말씀하실 뿐입니다. 그의 생계 수단, 그의 이동 수단, 그의 재산을 ‘반드시’ 지켜주라고 하십니다. 본문에 나오는 소, 양, 나귀는 단순한 동물이 아닙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 동물, 이동 수단에 필요한 필수 동물입니다. 그렇기에 더욱이나 잃어버린 사람은 당장 곤란을 겪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못 본 체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웃의 곤란함과 어려움을 못 본 체하지 말라고 선언하십니다. ‘못 본 체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도움을 요청하는 이웃의 상황에 마음을 열어서 능동적으로 도움을 주라는 말씀입니다.

신명기 보다 앞선 출애굽기의 본문에는 원수의 재산이 손실되거나 파손되는 경우에도 지켜주어야 한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원수의 소나 나귀가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을 보거든, 반드시 그것을 임자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너희가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의 나귀가 짐에 눌려서 쓰러진 것을 보거든, 그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말고, 반드시 임자가 나귀를 일으켜 세우는 것을 도와 주어야 한다.”(출애굽기 23:4-5) 아무리 원수라도 그의 생계, 생명이 되는 재산은 지켜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출애굽기의 원수에서 신명기의 이웃으로까지 도움을 요청하는 이웃이라면 누구에게라도 반드시 자신을 숨기지 말고 마음을 열어 능동적으로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였고, 법으로 명시하셨습니다. 아무도 도움이 필요하거나, 어려움을 당한 이웃의 사건 현장으로부터 자신을 숨겨서는 안 됩니다. 말씀은 단호합니다. 보았다면 알았다면 숨지 말라고 말입니다. 

이 법은 다른 사람의 문제에 연루되기를 싫어하거나 다른 사람을 도와주어야 할 상황에 빠지기를 싫어하는 사람의 태도, 마음을 경계합니다. 문제가 되는 현장을 보았음에도, 보지 못한 것처럼 가장하여 책임을 질 수 없다는 식으로 행동하려는 사람의 태도, 마음을 지적하기 위해 하나님은 히브리어 ‘숨다’라는 동사를 선택하셨습니다.

보고도, 보지 못한 것처럼 행동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숨은 적이 있으십니까? 어려움을 당한 이웃을 우리는 어떻게까지 도와주어야 하겠습니까? 마음을 열어 최선을 다해 도와주어야 합니다.

성도는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부활의 증인은 단순히 “예수 믿으세요.”라며 전도지를 나누어 주거나, 달걀을 나누어 주는 전도 행위를 뜻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힐 수밖에 없었던 예수님의 그 삶,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고,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그 모습을 닮아가는 삶입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이웃의 손길에 숨지 않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어려운 현장을 보고 숨지 않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비록, 그 일들로 인해 내가 피해를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성도의 선한 삶, 사랑의 삶, 헌신의 삶을 기억하십니다. 또한, 그 삶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고, 은혜를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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