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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기도로 시작합니다: 오리게네스, 《기도론》채수일의 ‘기고만장’(基古萬張)(기독교 고전 만장 읽기) 9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 승인 2024.04.08 03:50

이 원고와 영상은 ‘사이너머’ 연구소에 진행하고 있는 채수일 교수의 ‘기고만장: 기독교 고전 만장 읽기’입니다. 기독교 고전을 독자들과 함께 읽고 우리 시대의 문제와 씨름하는 것입니다. 영상과 원고의 게재를 허락해 주신 채수일 교수님과 사이너머에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편집자 주

안녕하세요,

채수일의 ‘기고만장’, 오늘은 지난 시간에 한 오리게네스의 ‘원리론’에 이어, 그의 ‘기도론’을 살펴보겠습니다.

‘기도’는 기독교인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인들이 하는 신앙생활입니다. 다만 그 대상과 방법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그러나 기도를 어떤 내용으로 해야 하는지, 기도에는 일정한 형식이 있는 것인지, 또 자세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양합니다. 또 기도에 대한 책들도 참으로 많이 있지요.

그런데 3세기의 대표적인 신학자였던 오리게네스(184/185-253/254)의 《기도론》은 기도를 학문적으로 규명한 최초의 기독교 신학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1) 물론 오리게네스 이전에도 기도에 대해 글을 쓴 신학자들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라틴 교부였던 테르툴리아누스도 ‘기도론’을 썼고, 오리게네스와 동시대인인 키프리아누스도 ‘주님의 기도’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오리게네스는 기도에 대한 정의, 형태, 필요성, 유익함만이 아니라, 마음과 몸의 자세, 장소, 주제 등 매우 실천적인 지침까지 제시한다는 점에서 그리스도교가 국가종교로 공인되기 이전 시기, 기도에 대한 가장 종합적인 저술이라고 하겠습니다.(2)

오리게네스가 《기도론》을 쓴 시기는 233년/4년경이라는 것이 대부분 학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저술 동기는 그의 후원자였던 암브로시우스와 타티아나가 자신들이 접한 기도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에 대해 서면으로 답변해주기를 원한 것에 있었습니다.(3) 두 사람은 ‘만일 하나님이 일어날 일들을 미리 아시고 그것들이 일어나야 한다면 기도는 헛된 것이고, 또 만일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 일어나고, 하나님이 뜻하신 일이 확고하며, 하나님이 원하는 일은 전혀 돌이킬 수 없다고 한다면, 마찬가지로 기도는 헛된 것이 아니냐?’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4)

오리게네스는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자유의지도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인정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인간이 자유의지로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도 아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예지를 통해 일어나게 될 일뿐만 아니라 일어난 일의 결과에 따라 일어날 일도 아시지만, 그 모든 일을 인간의 자유의지의 움직임에 합당하게 미리 정해놓으셨다고 합니다.(5)

다시 말해 하나님은 미리 아시기 때문에, 이에 기초해서 일을 적절하게 처리하십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는 경우, 그것은 기도하는 사람이 응답 받기에 합당하지 않거나, 응답 받는 것이 기도하는 자에게 유익하지 않거나, 허락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내용을 기도하기 때문에 응답하지 않으신다는 것이지요.(6)

오리게네스는 두 사람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기 전에, 먼저 기도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전제합니다. 어떤 인간도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고,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헤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성적이고 죽을 존재인 인간이 파악하기에 불가능한 것이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그것들이 파악 가능한 것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어주신 측량할 수 없는 풍성한 은혜로, 우리를 위한 더할 수 없는 은혜의 일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동역자 성령을 통해서’라고 합니다.(7)

무엇을 통해서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길은 오직 은혜의 길 밖에 없다는 것이 오리게네스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 기도해야 하는지,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또 어떤 시간이 다른 시간보다 더 기도에 적합한지를 밝히는 것은, 불가능한 일 중 하나라고 합니다.(8) 그렇다면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의 하나인 기도 역시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엄밀한 의미에서 성령께서 기도하도록 이끄시는 은혜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리게네스는 자신은 인간에 불과하므로 기도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지극히 충만하고 영적인 말씀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시고 복음서들에 쓰여 있는 기도들을 명확하게 해주시도록 성령을 받기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9)

어떤 내용의, 어떤 형태의 기도이건, 기도는 기도할 수 있도록 성령의 은혜를 간구하는 기도로 시작한다는 뜻이지요. 신도들 가운데 특히 회중기도나 중보기도 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기도문을 작성하여 낭독하는 것도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도할 수 있도록 성령의 은혜를 간구하는 기도를 하는 것이지요.

오리게네스는 기도하는 자세를 몇 가지 제시합니다. 먼저 손을 뻗치고 눈을 드는 자세가 다른 모든 자세보다 선호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물론 질병 때문에 앉아서 혹은 누워서 하는 것도 합당하게 허용됩니다.(10) 그리고 ‘무릎 꿇기’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죄를 스스로 책망하면서 이에 대한 치유와 죄 용서에 대해 간구하려고 할 때 필요한 자세라고 합니다.(11)

기도하는 몸의 자세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몸이 마음과 분리되어 있지 않듯이,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에 따라 마음가짐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몸의 자세 못지않게 마음을 비우는 것이 우선입니다. 기도의 순수한 우리말은 ‘빌다’, ‘비나이다’인데, ‘비나이다’는 ‘간절히 바라다’와 ‘비우다’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도는 자신을 비우는 행위라는 것이지요. 자신의 마음과 영혼을 비워야 하나님께서 그 곳을 은총으로 채우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기도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하는 기도로 시작하고, 아멘으로 끝납니다.

미주

(1) 오리게네스, ⟪기도론⟫, 이두희 역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8), “장용재의 해제”, 20.
(2) 오리게네스, ⟪기도론⟫, “장용재의 해제”, 20.
(3) 오리게네스, ⟪기도론⟫, “장용재의 해제”, 27.
(4) 오리게네스, ⟪기도론⟫, 151.
(5) 오리게네스, ⟪기도론⟫, 157-159.
(6) 오리게네스, ⟪기도론⟫, 161.
(7) 오리게네스, ⟪기도론⟫, 99.
(8) 오리게네스, ⟪기도론⟫, 105.
(9) 오리게네스, ⟪기도론⟫, 121.
(10) 오리게네스, ⟪기도론⟫, 481.
(11) 오리게네스, ⟪기도론⟫, 481.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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