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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는가새시대가 열리는 길(이사야 40,27-31; 누가복음 3,7-14)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4.04.12 03:09
▲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는 하나님을 새롭게 인식하는 것이다. ⓒGetty Images

나라가 망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우리 역사를 통해 듣고 배워서 간접적으로 압니다. 울분을 토하고 증오하지만 어쩌면 그것으로 다일 것 같습니다. 나라가 망할 것이란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망할 위기는 상존합니다. 권력이 국민의 뜻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국제정세의 변동 때문에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근래에는 기후변화로 한 나라만이 아니라 전세계가 망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나라를 살리고 세계를 살리는 희망의 발견과 희망의 행동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사야 본문에서 하나님은 포로가 된 이스라엘의 절망적인 소리들을 듣고 되묻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고 하며 어떤 형상에 비기느냐? 좀더 감정 섞인 말로 바꾸면, 내가 누구와 같다고? 나를 어떤 형상에 비긴다고?가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절망에 어이없어 하는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아, 너희가 경험으로 아는 하나님이 이거 밖에 안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과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어떻게 고백해왔는지는 우리가 잘 압니다. 간단히 말해 하나님은 우주를 지으신 창조주요 세계사를 이끌어가시는 역사의 주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잊은 듯 또 조롱하는 듯 하나님을 우상과 다르지 않다고 비아냥거립니다.

이런 비아냥거림의 원인은 그들이 보기에 하나님이 자기들 사정을 몰라주고 자기들의 소송은 소위 심판자인 하나님을 비껴간다는 것에 있습니다. 포로지에서 그들의 삶이 얼마나 고달플지는 충분히 이해될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한탄하고 호소해도 하늘의 울림이 없으니 그런 현실 속에서 저렇게 하나님을 향해 푸념을 늘어놓을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자기들이 사는 땅에서 아무런 희망도 발견할 수 없는 사람들의 소리입니다. 회복과 귀환의 꿈을 꿀 수 없는 자들의 넋두리입니다. 그런데 그것뿐입니다. 망했고 그래서 힘들다면, 왜 망했는지를 따져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반성이 없으니 고칠 것도 없고 희망을 찾을 수도 없습니다. 그저 대답없는 하나님을 향해 불평과 원망을 늘어놓는 것 외에는 할 것이 없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의 처지는 딱하고 이해는 되지만 그들의 소리에 동의하기는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이같은 이스라엘에 대해 어떻게 하실까요? 자기 땅에 있을 때 하나님을 거스르고 욕보이고 배반한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이 침묵하고 이들을 외면하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른 길을 선택하십니다. 그들을 위로하고 설득하는 길입니다. 자신은 그들이 지금 말하는 것과 같지 않고 그들이 알던 하나님 그대로라고 하십니다. 창조주와 역사의 주로 여전히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 설득의 전제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지쳐 포기하고 싶어 하는 것과 달리 지칠 줄 모르고 변함없는 분임을 피력하십니다. 그들을 일으켜 세우실 분이고 그리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지친 이스라엘은 그에게서 새힘을 얻을 것입니다. 절망한 이스라엘은 그에게서 희망을 찾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오늘의 본문을 다시 읽습니다.

피곤한 사람에게 힘을 주시며, 기운을 잃은 사람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비록 젊은이들이 피곤하여 지치고, 장정들이 맥없이 비틀거려도,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 절망하지 않고 절망적인 상태에서도 하나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들이 되기를 하나님은 간절히 바라십니다. 이스라엘이 이 말 한마디에 하나님에 대한 조롱을 거두고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에게 희망을 둘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뒤이어 길게 그들을 설득합니다.

하나님에게 희망을 두는 일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때 가능한 일입니다. 아니 이미 아는 하나님을 힘든 새로운 환경에서도 그대로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들의 좁은 경험으로 하나님을 다 알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그것만으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불신하고 하나님을 버렸던 그들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면 그들은 결코 바뀌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변화를 위해 그들을 설득하십니다.

설득의 핵심은 그들이 단순히 외세에 의해 망한 것이 아니라 외세의 침입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므로 하나님은 무기력한 신이 아니라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권자이며 그러한 분으로 새역사를 써내려 가실 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망한 것이 하나님의 개입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그들에게 반성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을 인정할 수 있으려면, 이스라엘을 망하게 한 주요 원인이 바로 자신들의 잘못이었음을 먼저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반성이 인정을 가져오고 인정이 희망을 발견하게 할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세례 요한과 그를 찾아온 사람들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겠지만 그들을 향해 독사 새끼들아!라고 독설을 퍼붓는 것을 보면,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평범한 그러나 인색하고 몰인정한 사람들, 정해진 것보다 더 많이 거둬들이는 세리들, 폭력과 협박으로 탈취하는 군인들이 그 가운데 있습니다. 나눔을 모르고 ‘권력’을 남용하는 자들입니다. 게다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긍지를 갖고 스스로를 높이고 자만하며 스스로를 파괴합니다.

그들의 세상은 어떻겠습니까? 인색함과 몰인정으로 차디차진 세상이며 폭력과 협박으로 우울하고 불안해진 세상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허위의식으로 혐오와 배제가 일상화된 세상입니다.

이러한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 회개하라’는 것이 세례 요한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저와 같은 삶과 사람들은 그 나라와 함께 열리는 새시대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삶의 길을 돌이키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허위의식을 버리라고 합니다. 나눔과 자족의 겸손한 사람이 되라고 외칩니다.

이는 반성과 회개 없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성과 회개가 없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는 없고 또 오지 않습니다. 그 위에 이미 심판의 도끼가 놓여 있을 뿐입니다. 반성과 회개는 약하고 탈취당하는 사람들을 향하게 합니다.

연민과 공감과 나눔과 연대로 그들 편에 서게 합니다. 배제와 혐오와 수탈이 멈춥니다. 바뀐 삶, 바뀐 세상이 그들에게서 현실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고 그들 가운데 그 나라가 임했다고 하는 이유입니다.

새시대로 가는 길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믿음으로 그 길을 가십니까? 믿음은 회개와 반성을 낳을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에게서 오는 희망을 보게 할 것입니다. 그 희망이 마음과 생각을 넉넉하게 하고 따뜻한 눈과 손으로 보고 잡게 할 것입니다. 연대의 위로와 나눔의 기쁨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자라고 있음을 볼 것입니다.

새시대가 우리 앞에서 그렇게 열릴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함께 그 길을 열고 그 길 위에서 춤을 춥시다. 허나 이를 방해하는 세력이 없지 않고 때로는 고통스런 일들이 몰려오고 때로는 희망이 가려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나 실망과 절망 속에서 냉소하며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를 기다리시고 우리를 설득하시며 우리에게 미래를 보여주시는 하나님을 잃지 않고 그에게서 무언가 조금의 양보도 없이 지켜야 할 것을 발견하는 우리가 되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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