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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성소수자들은 성소수자들보다 더 평등하다?(성)소수자와 그리스도교 28
황용연(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 대표) | 승인 2024.04.12 03:18
▲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고는 평등적인 말을 사용하지만 실상 죄인 내에서도 계급이 존재하는 아이러니를 발견하게 된다. ⓒGetty Images

1.

엊그제 총선이 끝났으니 간단한 총선 이야기로 글을 시작해 볼까 합니다. 총선 전에 주요 정당 후보자들에게 차별금지법에 관한 의견을 물어 본 기사가 났었습니다. 결과는 찬성한다는 후보가 단 1명이었습니다. 그 1명은 이번에 당선되지 못했더군요.

1번-3번(-9번)당이건 2번-4번당이건 아득바득 용썼지만 결과는 현재의 국회와 크게 다를 것도 없는 결과인데요. 현재의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이 4년간 의제에도 오르지 못했으니 앞으로 4년도 쉽지는 않겠네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의 국회도 앞으로의 국회도 1번당이 절대다수를 차지했고 차지할 거라는 국회인데 말이지요.

2.

지난 1월부터 이 연재칼럼에서 성소수자 이슈를 고려할 때 그리스도교의 신앙 체계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까라는 점을 생각해 보는 글을 주로 써 왔습니다. 1월에는 교회에 대해서, 2월에는 성서와 죄론에 대해서, 3월에는 구원에 대해서 썼었고 원래는 이번 4월달에 그리스도에 대해서 쓰는 걸로 마치려고 했었는데 추가할 주제들이 좀 생각이 나서 더 써 보려고 합니다.

이번 달 칼럼에서는 아마 이 글의 독자분들이 하기보다는 주로 들어 보셨을 법한 말 하나를 다뤄 보려고 합니다.

“성소수자를 죄인이라고 하는 건 성소수자를 혐오해서 그런 게 아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자신도 죄인이라고 여기니까 자신들과 똑같은 죄인이라고 말하는 것뿐이다.”

우선 이 말이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전혀 먹히지 않을 말이라는 점부터 지적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근본적으로 이 말 하는 사람들의 자기 위안에 그칠 말이겠죠.

그런데 그러면 그리스도인인 사람들에게는 그나마 먹힐 말이긴 할까요. 대체로 저런 말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먹힐 거라고 생각해서 하는 말이긴 하겠습니다만. 먹히지 않는, 혹은 먹히지 말아야 할 말인 것은 분명하겠습니다만, 결말을 그렇게 내기 전에 이 말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자신도 죄인이라고 여긴다”라는 말을 더 자세히 뜯어 보고 싶습니다.

3.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자신도 죄인이라고 여긴다”라고 했을 때 이 말은 무엇보다도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는 말이라고들 합니다.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라는 뜻이겠죠. 이 말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갑론을박이 가능할 수 있겠지만 일단 이 글에서는 이 말을 수긍하는 입장에 서서 이야기를 계속해 보겠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라고 하면, “우리”를 구성하는 너와 나 사이에는 어떨까요? 너와 내가 모두 하느님 앞에서 죄인이라면 그 너와 나 사이에 또다른 위계가 존재한다는 건 뭔가 좀 이상하죠? 그러니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라는 말은 둘 다 죄인인 “너”와 “나” 사이에는 평등한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할 겁니다.

다시 저 “성소수자를 죄인이라고” 운운하는 저 말로 돌아가면, 저 말 자체도 사실은 성소수자를 죄인이라고 한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인 자신들과 성소수자 간의 평등이 깨지는 것이 아니라는 변명을 하는 말이기도 할 텐데요. 그러니 이 경우에도 “하느님 앞에서는 모두 죄인”이라는 말과 평등은 긴밀히 연결되는 겁니다.

그러면 문제는 저 “성소수자를 죄인이라고” 운운하는 저 말이 정말로 평등을 보장하는 말인가 하는 데에 있을 겁니다. 일단 이렇게 물울 수 있겠지요? 성소수자를 죄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교회 안엔 모두 죄인들이 모여 있으니 죄인들끼리의 평등을 이야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성소수자를 교회에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이고, 동등한 성례 참여의 기회와, 동등한 봉사직 수행의 기회(쉽게 말해서 목사/사제 아무 제한 없이 할 수 있어야 한다가 되겠습니다) 등등을 다 보장해야 한다는 말이 되는데, 성소수자를 굳이 죄인이라고 해야겠다는 분들이 과연 저걸 다 보장한다는 의미로 하는 말일까요.

거기에 하나 더 얹는다면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 모두가 죄인이니 성소수자를 죄인이라고 하는 것도 문제가 없다라고 할 때, 그 ‘죄인’이란 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하느님 앞에서 너와 나 모두가 죄인이라는 말일 겁니다. 그러면 그 때 죄인이라는 건 인간으로서의 보편적인 존재 조건에 대해 말하는 차원인 거겠죠.

그런데 성소수자가 죄인이라는 것이 성소수자도 인간이니까 인간의 보편적인 존재 조건의 차원에서 죄인이다 이렇게만 말하고 마는 말이던가요. 성소수자라는 존재 조건에도 죄인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싶다는 말이겠죠. 그러면 죄인이라는 말에 수반되어야 할 평등은 여기서 완전히 깨지지 않을 수가 없을 겁니다. 성소수자만 이중으로 죄인 소리 들으라는 말이 되지 않겠습니까.

4.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 있죠.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그러면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는 셈이겠군요.

“모든 인간은 죄인으로서 평등하다. 하지만 비성소수자들은 성소수자들보다 더 평등하다.”

황용연(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 대표)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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