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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그린 내 모습고흐와 산책하기 (33)
최광열 목사(아리랑인문지식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4.04.13 03:51
▲ 존 러셀, <고흐의 초상> (1886, 캔버스에 유채, 60.1×45.6cm, 반고흐미술관, 암스테르담)

자화상이란 자기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말한다. 화가들은 대개 자화상을 남긴다. 빈센트는 자화상을 유달리 많이 그렸다. 렘브란트도 그렇다. 자화상을 많이 그리는 화가에게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대개 자기 성찰이 강하다는 점이다. 빈센트 역시 그렇다. 다른 하나는 가난하기 때문이다. 그림은 팔리지 않고 먹을 것조차 없어 며칠씩 굶어야 하는 가난한 화가에게 자기 얼굴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모델이다. 자기가 자신의 얼굴을 그린다고 자기 마음대로 과장하거나 왜곡되게 그릴 수는 없다. 화가란 천성적으로 진실을 그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얼굴은 내면의 자기가 밖으로 드러나는 자리이므로 자화상은 더욱 그렇다.

빈센트가 코르몽 아틀리에에서 공부할 때 호주 출신의 화가 지망생 존 러셀1858~1930과 친분을 쌓았다. 사교적이지 못하고 괴팍한 성격의 빈센트는 학생들 사이에서 기피의 대상이 되곤 하였으나 러셀과는 스스럼없이 대하였다. 아마도 파리의 아방가르드 분위기에 서 외국인이라는 사실로 연대감을 가졌던 모양이다. 러셀이 빈센트의 초상화를 그렸다. 남이 그린 빈센트의 초상화가 모두 세 점인데 그 가운데 첫 번째 그림이다. 두 번째는 앙리 드 틀루즈 로드렉이 그린 <빈센트 반 고흐의 초상화>는 1887년이고, 다른 하나는 고갱이 그린 <해바라기 화가>는 1888년이다.

이 무렵 빈센트는 기린아가 아니었다. 서른세 살의 늦깍이 미술학도에 불과하였고 화가로서 성공을 예견할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 스물여덟 살의 러셀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러셀은 아버지의 상당한 유산을 받아 1882년에 런던 미술학교를 거쳐 일 년간 파리의 코르몽 아틀리에에서 화가 수업을 받는 중이었다. 후에 러셀은 프랑스 북부 벨 일 해안에 정착하여 예술가 마을을 세웠고 모네와 마티스, 로댕과도 교분을 쌓았다.

무명의 화가 러셀은 무명의 인생 빈센트의 내면에 깃든 무엇을 찾는 예리한 눈으로 관찰하였다. 그리고 사실적이고 아카데미 한 터치와 인상파 화법이 어울려지게 캔버스를 채웠다. 화가의 완숙미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으나 집념과 열정의 인물을 묘사하는 성실함과 진정성은 한눈에 알 수 있다. 러셀은 이 그림을 위하여 다섯 점의 데생을 연습하였다. 이 그림을 선물 받은 빈센트는 마음에 들었는지 훗날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림을 잘 관리해달라고 부탁하였다. 두 사람의 우정은 오래도록 유지되었다.

인생이란 무명의 화가를 무명의 화가가 그리는 초상화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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