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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긋함과 아름다움에서 얻는 지혜평화를 짓는 농부이야기 10
유대은(기장 총회사회선교사) | 승인 2024.04.13 03:53
▲ 봄나물 ⓒ정아롬

봄이다. 추위 속에서 자랐던 겨울풀들이 꽃을 피운다. 흙 속에는 얼마나 많은 씨앗이 있는 걸까. 땅속에는 큰 움이 있다는 걸 말하듯 여기저기 싹들이 돋아난다. 봄비라도 내리면 그 기운은 더해 풀들이 땅을 점차 점령해 간다. 햇살은 따사롭지만 바람은 차다. 밤에는 방독에 불을 넣어야 하기에 아직은 땔감이 필요한 시기이다.

밭을 만들고 씨앗을 뿌리지만 제대로 된 푸성귀는 없다. 과수에도 꽃은 피지만 먹을 게 없다. 보리와 밀은 이삭을 내기 시작했지만 익기까지는 아직 두 달이나 남았다. 이런 때, 농부의 근질 거리는 손과 발은 봄나물로 향한다. 마을을 거닐다 보면 밭둑에서 검은 봉지 하나씩 옆에 두고 앉아 쑥을 캐는 아짐들을 쉽게 만난다. 나도 아이들과 쑥을 한움큼 따다가 국에도 넣어 먹고 튀김으로 먹는다.

조금 더 숲 안쪽으로 들어가면 손에 낫을 하나씩 들고 뒷산에 오르는 분들을 만난다. 보통 나물을 캐거나 고사리를 끊으러 가는 분들이다. 매년 같은 곳에 나물이 올라오니 자기 밭이 아니어도 비밀의 밭을 아는 사람들이다. 아는 만큼 보이기에 딱 그 만큼만 먹을 수 있다. 두릅, 엄나무순, 고사리, 산달래 등 봄나물은 아주 소중한 찬거리가 된다.

뿌리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이다. 무엇을 먹을지 고민해야 할 때 자연은 내어준다. 올해는 아내 덕분에 홀애비꽃대의 향긋하고 박하같은 시원한 맛과 가죽나물 장아찌의 맵지만 계속 당기는 맛을 알아 버렸다.

봄이다. 아름답다, 이쁘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꽃이 만발하는 시기이다. 진달래가 피기 시작하며 여기저기 봄꽃들의 아름다움에 취한다. 벚꽃길 명소에는 벌만큼이나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재밌게도 왕벚나무가 많이 있는 곳의 옆 동산에는 새들이 먹고 뱉어 놓은 벚찌씨 때문인지 다른 산에 비해 더 알록달록한 빛을 낸다. 산에 오르면 분홍빛 개복숭아꽃, 하얀 산벚나무의 꽃이 만개하여 신비로움을 더한다.

봄이다. 겨우내 방을 데우느라 모아 두었던 땔감이 대부분 없어지는 때다. 평상시에 주우러 갔던 곳은 이제 땔감이 바닥을 드러내서 더 높은 곳으로 오른다. 산의 중턱쯤 도착하니 떨궈진 잔가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가져 갈게 많네 하며 눈을 들어보니 큰 삼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그 한 나무가 떨궈낸 가지가 바닥을 덮고 있었다. 자연스레 안아보니 한아름도 넘었다. 나에겐 장작을 내어 주고 숲에선 주변의 어린 나무들을 기르고 있는 어머니 나무였다.

봄이다. 새벽 동틀 무렵 주변 숲 경계에선 다양한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겨우내 움츠렸던 새들이 따뜻한 기운으로 새 보금자리를 만들고 짝을 찾는 계절이다. 서로 뒤질세라 열심히 지저귀며 영역싸움도 한다. 참매 같은 맹금류도 날아다니며 자신의 위치를 굳힌다. 산쪽 아래 있는 논둑에는 멧돼지가 길을 내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이제 곧 새끼들이 태어날 때라 예민할 시기이다. 나무가 울창한 쪽에선 고라니의 유쾌한 소리도 들린다. 얼굴은 한번도 마주치진 않았지만 독특한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열심히 알린다.

봄은 인간을 포함한 다양한 생명체에 대한 자연의 선의(善意)을 알게 하는 계절이다. 자연은 거기에 깃들어 사는 온갖 생물들의 집이자 밭이다. 김매기도 하지 않고 거름을 주지도 않지만 항상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내어준다. 내 밭과 논도 다양한 생물들의 놀이터가 될 수 있을까. 풀과의 공존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게 해도 수확량은 괜찮을까. 생각하며 작부계획을 짠다. 그렇게 봄이 되면 자연스레 농사에 대해 고민이 시작된다. 자연에서 얻은 봄나물을 씹으며 자연을 닮은 농사가 무엇인지 공부한다.

▲ 밀밭 사이에 자란 마늘 ⓒ정아롬

자연을 보면 다양한 높이의 식물들이 함께 살고 있다. 바닥을 기는 뿌리식물부터 참나무 같은 대교목까지 일곱층을 이룬다고 한다. 햇빛이 강할 때 키가 큰나무는 작은 식물의 그늘이 되어준다. 가물 때는 땅속 깊이 뿌리내린 식물은 깊은 곳의 물을 지표로 올려주어 뿌리가 얕은 식물들에게 물을 공급해준다.

그래서 숲의 다양성은 변화에 대한 저항성도 높고 생산성도 높다. 급격한 변화에 회복력도 높다. 이를 닮은 농사의 대표적인 예가 세 자매 길드이다. 오래전 멕시코 원주민들은 이를 자연에서 배웠다. 그래서 호박, 넝쿨콩, 옥수수를 함께 심는 농사를 지었다. 호박은 바닥을 기며 넓은 잎으로 그늘을 만들어 수분의 증발을 막아준다. 콩은 땅 속에 질소를 고정해주고 옥수수는 콩의 지지대 역할을 하고 콩과 공생하고 있는 박테리아에게 먹이를 공급한다.

단작 중심의 농사체계에서 벗어나 지속적으로 먹거리를 키울 수 있는 ‘먹거리 숲’을 조성하는 방법도 있다. 다년생 작물이나 일년생 씨앗이 떨어져 다음 해 자라도록 농사를 짓는다. 해마다 경운을 하거나 거름을 투입할 필요가 없다. 숲의 시간처럼 먹거리 숲의 시간도 느리다. 그래서 초반 수확량은 매우 적지만 차츰 땅심을 회복하며 좋아지기에 수년을 내다보고 짓는 방식이다.

밭에 나무를 도입하는 방법도 있다. 질소를 고정하는 나무를 밭에 여러 군데 심는다. 나무는 바람의 방향을 바꿔주어 작물 사이에 통기의 역할을 해준다. 깊은 곳까지 뿌리를 내린 나무는 땅 속의 미네랄을 끌어 올려주고 흙을 부드럽게 해준다. 뿌리 근처에는 다양한 미생물들이 있어 작물 성장에 도움이 된다. 나무와 농작물 간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작물의 생육에 도움이 된다.

먹는 것 이외에 공간을 다르게 배치하기도 한다. 지하수 보급이 많아 지면서 대부분 사라졌지만 ‘둠벙’이 있는 논이 대표적이다. 둠벙은 작은 저수조 같은 역할을 한다. 주로 논에 물을 대는 역할을 하지만 새나 곤충들이 물을 먹을 수 있는 장소이다. 작은 물고기 뿐 아니라 개구리 등이 있어 먹이사슬이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둠벙 덕분에 논에도 다양한 천적들이 등장해서 병해충에 대한 내성이 강해진다. 자연스레 논은 새들의 보금자리가 된다. 올해는 언덕 아래 물이 고이는 곳에 버드나무류를 심고 아주 작은 웅덩이를 팠다. 새들의 작은 쉼터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공간을 만들었다.

생태농사의 정수는 농사짓는 방식이 아니다. ‘아름다움’이다. 봄철의 자연이 아름다운 것처럼 자연을 닮은 농지도 그렇다. 올해 밀밭이 된 곳에서 작년에 미처 뽑지 못한 마늘이 자랐다. 땅을 갈지 않아서 심심치 않게 그렇게 자란다. 그런 어린 마늘은 반찬으로 먹을 수 있어 봄나물처럼 뽑아 먹는다. 월동한 배추와 청경채는 씨앗을 맺기 위해 꽃을 피운다. 보라보리밭에 진딧물이 있지만 칠성무당벌레가 먹어준다. 밭 경계에 있는 보리수 나무엔 동박새나 딱새 같은 작은 새들이 놀다가 간다. 다양성 속에서의 아름다움을 맛본다.

작년에 갈무리 해두었던 씨앗을 정리하고 심을 준비를 한다. 어떤 식물을 함께 심을지, 후작은 무엇으로 할지 농사일지에 적는다. 거기에 자연의 살림방식을 따라 하려고 노력한다. 겉으로 보기엔 풀밭이고 깔끔하지 않아 보이지만 우리 밭이 제일 이쁘다. 월동한 작물들 사이에는 벌써 풀이 무릎만큼 자랐다. 낫으로 베어 눕혀주어 농작물에 유기물층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 밭에 서면 마음이 숲에 온 듯 평온하다. 새소리를 들으며 낫질하는 농부가 얼마나 낭만적인가. 밭과 논에 자연의 감성을 더하자. 거기에 아름다움이 있고 풍성함이 있다. 겨우내 죽은 것 같았던 나무들이 봄이 되어 새싹을 내고 다시 꽃을 피워내는 계절, 본격적인 농사철이 시작되었다. 농지에 꽃을 더하고 나무를 더해 자연을 닮은 낭만농부가 되어보는 건 어떨까.

유대은(기장 총회사회선교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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