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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대300에 씁쓸해 하는 동료들에게진보정당 20년 당원이 드리는 글
황용연 연구실장(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 승인 2024.04.14 03:31
▲ 이번 22대 총선에서 진보정당들의 몰락은 여러 가지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KBS

1.

열흘쯤 전에 “‘윤석열 심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라는 글을 쓰고 나서 이 글도 써야겠다고 처음 생각했을 때는 제목을 2대298로 잡았었습니다. 진보정당(녹색정의당+노동당) 2석 대 나머지 298석. 희망사항이겠구나 싶긴 했어도 ‘그래도...’라는 마음도 솔직히 있었는데 결국 제가 그만큼 현실을 못 봤구나로 결론이 났네요.

사실 따지고 보면 2대298이나 0대300이나 숨이 턱 막히는 숫자인 건 똑같죠. 그래서 총선 끝나기도 전부터 끝나면 이 글을 써야겠다 싶었구요. 이 글의 독자분들 중에선 0대300이 아니라 188대112 아니냐는 분들이 제법 계실 거고 혹은 188대112는 아니어도 3대297이나 5대295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냐 하실 분들도 없지는 않으실 것 같지만, 이 글은 어디까지나 0대300이라는 제 입장에 동의하는 분들에게만 드리는 글임을 먼저 밝혀 둡니다.

2.

우선은 이 글의 독자들이 ‘몰라도 상관없는 이야기’를 좀 써 볼까 합니다. 이 부분은 이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익숙하게 들리는 분들에게 주로 드리는 글이기도 합니다.

부제에 진보정당 20년 당원(사실 그 중 거의 대부분이 당비만 내거나 당비도 못 내는 당원이었지만)이라고 했는데 그 20년은 이렇습니다. 2004년 민주노동당 - 2008년 진보신당(2013년 노동당으로 개명). 저 ‘민주노동당’이란 경험을 공유하거나, 공유하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얽혀 들었던 사람들이 주도세력으로 관여된 당이 지금 세어 보니 5개나 되는군요.

별 세력도 없는데 5개씩이나 분열되어 있냐는 말을 심심찮게 듣습니다만 사실 더 중요한 건 저 ‘5개씩이나 분열’이 그냥 나온 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진보정당이란 과연 어떤 정치적 비전을 가져야 하는가란 문제에 어떻게 답을 해 왔느냐 혹은 뚜렷한 답을 못 내리고 방황해 왔느냐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 소위 ‘범민주 진영’(저는 이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은 민주주의라는 말을 민주당주의라고 이해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이 ‘범민주 진영’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 하는 것이 저 ‘진보정당의 정치적 비전’에 대한 답의 주요 변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난 20년간 대중정치의 영역에서 그나마 작동했던 답은 ‘범민주 진영’의 하위파트너로서 ‘범민주 진영’의 이야기를 ‘더 세게, 더 멋있게, 더 재미있게’ 해주는 당이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겠습니다.

문제는 하위파트너의 자리는 상위파트너의 뜻을 거스르지 않을 때만 존재 가능하다는 것이겠습니다. 그러니 생존을 할 수는 있더라도 그 이상은 할 수 없는 질곡의 자리이기도 하다는 것이겠죠. 그래서 그 하위파트너의 자리를 가장 오랫동안 차지하며 대중정치에 존속해 왔던 정의당은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벗어난(동시에 처음으로 밀려난) 이번 선거에서 한순간에 원외정당이 되어 버렸습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진보정당을 자임하는 정당 중 그나마 세력이 크다는, 이른바 10만 당원을 말하는 정당이 대놓고 자기 당의 이름을 정당투표에서 지워버리는 초유의 사태까지 일어났죠.

총선 직후 심상정 의원이 정계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그 개인에 대해서는 속된 말로 ‘할말하않’입니다만 흔히 하는 말로 ‘한 시대의 마무리’인 것은 틀림없겠습니다. 그리고 그 마무리 이후에 남은 것은 여전히 진보정당은 하위파트너라는 생존과 질곡의 자리에 구조적으로 갇혀 있어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현실입니다. 부제를 진보정당 20년 당원이라고 달았으니 저 현실은 저에게도 크든 작든 책임이 있기도 합니다.

3.

어느 성소수자 활동가가 자기 SNS에 올린 이야기 하나를 인용하겠습니다.

“사람들이 ‘굳이 성소수자 얘기 선거에서 해야 해?’ 너희도 국민이면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해서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할 때 ‘너희를 위해서 열심히 하겠다는 말이기도 하잖아’라는 식의 얘기를 하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사실 그렇게까지 국민 취급을 잘 받아본 적이 없고. 내놓은 자식처럼 자라왔고. 그러니까 누군가 나서서 특별히 언급해주지 않으면 ‘국민을 위해서’라고 했을 때 사실 그 안에 저희 없거든요. 그리고 정확한 의제, ‘차별금지법 하겠습니다’, ‘성별 정정 관련해서 제도 만들겠습니다’와 같이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으면 ‘우리가 사법개혁 하겠습니다’라고 하거나 ‘법률 개혁 하겠습니다’라고 했을 때 그 안에 우리에 관한 게 들어있는 지 알 수가 없어요. 우리는 아무 것도 약속을 못 받는 상태에서 선거를 지켜보게 되거든요.”

2장의 이야기를 쓸 때 ‘몰라도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말하고 시작했습니다. 제가 2장에서 말한 긴 이야기를 싹 다 모르더라도, 위의 문단에서 언급한 성소수자 활동가의 이야기에 동의하는 것은 가능하겠기 때문입니다. ‘국민을 위해서’라든지, ‘개혁을 하겠습니다’라든지, 소위 ‘범민주 진영’이 종종 입에 담고 ‘보수 진영’도 가끔 입에 담는 이런 말로는 자기의 존재를 이야기할 수 없는 사람들의 정치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은 가능하겠기 때문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노동당과 녹색정의당의 선거 운동은 앞에서 이야기한 ‘이런 말로는 자기의 존재를 이야기할 수 없는 사람들의 정치’의 일익을 담당하고자 하는 선거운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선거에서 노동당과 녹색정의당에 대해서 지지선언을 한 사람들은 노동당과 녹색정의당이 자기의 존재를 이야기하는 통로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보수 진영’은 물론이고 소위 ‘범민주 진영’을 통해서도 들을 수 없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노동당과 녹색정의당이 필요하다는 사람들이 이번 선거에 지지선언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여성건설노동자와 장애인 운동 활동가, 병원노동자를 후보로 내세우고 아주 작은 역량이지만 최선을 다한 노동당과, “심상정이 사퇴 안 해서 윤석열이 당선됐고, 더군다나 윤석열이 되어도 어떠냐고 했다”는 등의 남의 당 후보를 자기 당의 뜻에 종속시키는 걸 아주 당연히 여기는 화풀이를 겪으며, 진보정당이 필요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뒤늦게라도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이번 선거를 치러낸 녹색정의당에게 수고하셨다는 한 마디 드리고 싶습니다. 노동당과 녹색정의당에게 지지를 보낸 우리 모두에게도 수고하셨다는 한 마디 드리고 싶습니다.

여기서 이 글의 주된 독자가 될 기독교운동 활동가, 특히 제가 제목에 쓴 “0대300”이라는 구도에 동의하는 분들께 이런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이라는 게 우리에게 어떤 만병통치약은 아니더라도, 우리의 존재를 이야기하고 우리의 운동을 펼쳐 나가는데 한 가지라도 더 도움받을 수 있고 참조할 수 있고 다른 근거들과 맞대 볼 수 있는 중요한 근거 하나는 되지 않겠느냐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진 우리는 ‘보수 진영’, ‘범민주 진영’ 이런 이름보다는 ‘두 기득권 진영’ 이런 이름이 더 적절하겠다는 판단을 내리기에 조금 더 자유롭고, 그래서 우리를 비롯해 이 사회에서 자기의 존재를 이야기하고 자기의 운동을 펼쳐 나가는 사람들에게는 진보정당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리기에 조금 더 자유로울 것 같다고 말입니다.

방금까지 제가 말씀을 드렸던 모든 동료분들과 저는 이제 0대300, 진보정당 0석 대 나머지 300석이라는 결과를 마주했습니다. 제목에는 씁쓸하다는 말만 언급했습니다만 씁쓸함 외에도 여러 가지 감정들이 교차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감정의 교차를 겪은 여러분들에게 같은 감정의 교차를 겪은 제가 어떤 말씀을 드리려니 생각나는 게 이런 이야기뿐입니다. 3.1운동이 일어난 후 일제가 독립운동가들을 말로 꺾어 보겠다고 여운형 선생을 도쿄로 초대합니다. 그래서 갖은 말로 설득을 하려 드니까 여운형 선생이 이렇게 답했다죠. “대군을 이끄는 장수를 잡는 건 가능해도 보통사람의 뜻을 꺾을 수는 없는 법”이라고요.

뜻을 꺾을 수 없는 보통사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 서로의 뜻이 꺾이지 않게 받쳐 주면서 0대300의 세상을 잘 살아나가기를 기원합니다.

황용연 연구실장(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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