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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가 없다“공평하게 먹이겠다”(에스겔 34:11-16)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4.04.15 03:36
▲ 정의는 권리를 박탈당한사람들의 권리를 회복시켜 주는 것이다.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평안은 외부의 상황에 따라 누릴 수 있거나, 누리지 못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평안은 외부의 상황과 상관없이 누릴 수 있는 마음입니다. 만약, 평안이 외부의 상황에 따라 누릴 수 있는 마음이라면 평안은 환상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지만 평안은 환상이 아닙니다. 평안은 성도의 일상에서 실제적으로 누릴 수 있는 마음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경험할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마음입니다. 평안이 이미 성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욕망에 휩쓸려, 그것들이 영원히 줄 수 없는 평안을 헛되이 좇지 마시고, 나의 안에 하나님이 주신 완전한 평안을 구하여 찾고,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영국의 시인 T.S.엘리엇은 ‘황무지’라는 시를 통해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후로 많은 나라에서, 많은 사람에 의해 4월을 ‘잔인한 사월’이라고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사(史)에서 4월에 벌어진 일들을 이 시인의 문학적인 표현을 빌려 특별히 ‘잔인한 사월’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한국사(史)에서 4월에 어떤 일이 벌어졌기에 ‘잔인한 사월’이라고 부르고 있습니까? 먼저는 ‘제주4·3’이 있습니다.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에 4월에 폭발하여 1954년 9월까지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공권력에 의해 주민들이 무참히 살해당하고, 희생당한 사건입니다.

‘4·19 혁명’도 있습니다. 이승만 정권이 불법적으로 12년간 장기집권하던 상황에서, 사사로이 자신의 권력을 더 연장하기 위해 1960년 3월 ‘반공개 투표, 야당 참관인 축출, 투표함 바꿔치기, 득표수 조작 발표 등의 부정선거’를 자행하였고 이에 학생과 시민이 목숨을 걸고 민주화를 위한 시위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승만 정권은 국민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총과 폭력으로 강제 진압에 나섰고, 그 결과 다수의 참혹한 사상자가 발생한 것은 물론 무고한 학생과 시민들이 공산당으로 몰려 고문을 당해야 했습니다.

이와 중, 60년 4월 11일 실종되었던 고등학생 김주열 군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시체로 발견됐습니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의 제2차 시위가 마산에서 일어났고, 결국 4월 19일 전국의 시민과 학생들이 총궐기하여 독재정권, 살인마 이승만을 물러나게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10년 전인 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가 있습니다. 진도 인근 해상에서 세월호 여객선이 침몰하여 전체 탑승자 476명 가운데 304명이 사망한 참사입니다. 세월호 참사는 ‘엉뚱한 교신으로 인한 초기 대응시간 지연, 선장과 선원들의 무책임, 해경의 소극적 구조, 정부의 뒷북 대처 등 총체적 부실로 인한 최악의 인재(人災)’였습니다.

제주4·3, 4·19혁명, 4·16세월호참사 모두 공통점이 있습니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국민을 보호하지 않고 직접적인 폭력과 살인을 저지르거나, 무책임하게 방관하여 국민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점입니다. 즉, 정부의 부재(不在)입니다. 책임자의 부재입니다. 있지만 없었던 상태입니다.

이런 ‘정부(책임자)의 부재’ 상태가 얼마나 악한 일인지 성경에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부재로 인해 백성이 고통받을 때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는지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의 말씀입니다.

11절입니다. “참으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나의 양 떼를 찾아서 돌보아 주겠다.” 하나님은 양 떼를 찾겠다고 하십니다. 찾겠다는 건, 잃어버렸다는 전제를 둡니다. 그렇기에 이 말씀의 배경이 현재 양 떼가 모여있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양 떼는 이스라엘 백성의 비유적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기의 선지자 에스겔에게 양 떼에 관한 이야기로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양 떼는 왜 흩어지게 되었습니까? 오늘 본문의 앞 구절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2 사람아, 너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쳐서 예언하여라. 너는 그 목자들을 쳐서 예언하여라. 나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자기 자신만을 돌보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목자들이란 양 떼를 먹이는 사람들이 아니냐? 3 그런데 너희는 살진 양을 잡아 기름진 것을 먹고, 양털로 옷을 해 입기는 하면서도, 양 떼를 먹이지는 않았다. 4 너희는 약한 양들을 튼튼하게 키워 주지 않았으며, 병든 것을 고쳐 주지 않았으며, 다리가 부러지고 상한 것을 싸매어 주지 않았으며, 흩어진 것을 모으지 않았으며, 잃어버린 것을 찾지 않았다. 오히려 너희는 양 떼를 강압과 폭력으로 다스렸다. 5 목자가 없기 때문에, 양 떼가 흩어져서 온갖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다. 6 내 양 떼가 모든 산과 모든 높은 언덕에서 헤매고, 세계 각처에까지 흩어지게 되었는데도, 그 양 떼를 찾으려고 물어보는 목자가 하나도 없었다.”

양 떼를 돌보아야 할 목자가 양 떼를 먹이지 않고, 돌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강압과 폭력으로 다스리기까지 했습니다. 양 떼가 흩어져 위험에 노출되었지만 양 떼를 찾으려고 물어보는 목자가 하나도 없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직접 양 떼를 찾겠다고 하십니다. 직접 돌보아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2 양 떼가 흩어졌을 때에 목자가 자기의 양들을 찾는 것처럼, 나도 내 양 떼를 찾겠다. 캄캄하게 구름 낀 날에, 흩어진 그 모든 곳에서, 내 양 떼를 구하여 내겠다. 13 내가 여러 민족 속에서 내 양 떼를 데리고 나오고, 그 여러 나라에서 그들을 모아다가, 그들의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이스라엘의 산과 여러 시냇가와 그 땅의 모든 거주지에서 그들을 먹이겠다.”

강압과 폭력, 차별과 방치로 고통당하는 양 떼인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은 찾으실 뿐만 아니라 먹이고, 거주할 새로운 목장을 만들고, 다리가 부러지고 상한 곳은 싸매어 주며, 약한 것은 튼튼하게 만들겠다고 하십니다.

“14 기름진 초원에서 내가 그들을 먹이고, 이스라엘의 높은 산 위에 그들의 목장을 만들어 주겠다. 그들이 거기 좋은 목장에서 누우며, 이스라엘의 산 위에서 좋은 풀을 뜯어 먹을 것이다. 15 내가 직접 내 양 떼를 먹이고, 내가 직접 내 양 떼를 눕게 하겠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16 헤매는 것은 찾아오고, 길 잃은 것은 도로 데려오며, 다리가 부러지고 상한 것은 싸매어 주며, 약한 것은 튼튼하게 만들겠다. 그러나 살진 것들과 힘센 것들은, 내가 멸하겠다. 내가 이렇게 그것들을 공평하게 먹이겠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16절에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그러나 살진 것들과 힘센 것들은, 내가 멸하겠다. 내가 이렇게 그것들을 공평하게 먹이겠다.” 하나님은 ‘공평하게 먹이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공평하게 먹이시겠다는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흉폭한 목자, 무책임한 목자로부터 구원해 주실 뿐 아니라 흉폭한 목자, 무책임한 목자를 멸하는 것까지가 하나님의 공평입니다. 먹지 못하고, 보호받지 못한 자들을 먹이고 보호하시며 동시에 먹이지 않고, 보호하지 않은 목자를 멸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평한 방식입니다. 이것이 구약에 나온 하나님의 정의이고 공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에게 ‘정의와 공의’는 애굽 땅에서 탈출하여 광야를 지나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새로운 나라를 건설함에 핵심적인 주제였습니다. 고대 근동의 어떤 나라들도 상상할 수 없었던,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 즉, 정의와 공의가 충만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너희 각 지파에게 주시는 성읍마다 재판관과 관리를 세워 백성을 공평무사하게 다스리도록 해야 한다. 법을 왜곡시키면 안 된다. 체면을 보아도 안 된다. 뇌물을 받아도 안 된다. 뇌물은 지혜로운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죄 없는 사람의 소송을 뒤엎어 버린다. 정의, 그렇다, 너희는 마땅히 정의만을 찾아라. 그리하여야 너희는 살아서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주시는 땅을 차지할 것이다.”(신명기 16:18-20)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는 누군가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불공평, 불공정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당시에도 그랬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난한 이웃과 연약한 이웃에게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살고 있습니다. 법은 왜곡되고, 재판관은 사리사욕과 권력을 위해 존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사회가 법과 권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어디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까? 여전히 길거리에서 ‘정의와 공의’를 세워달라고 목소리를 외치고 있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 불의한 국가권력에 희생당하였으나 여전히 권리와 명예를 회복하지 못하는 이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천년도 더 전에 선포되었던 하나님의 경고를, 오늘날 정의와 공의를 이루어야 할 목자와 같은 이들은 새겨들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7 그러므로 너희 목자들아, 너희는 나 주의 말을 들어라. 8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한다. 내 양 떼가 약탈을 당하고, 참으로 내 양 떼가 온갖 들짐승에게 공격을 당하고 살육당하여 그것들의 먹이가 된 것은, 목자가 없기 때문이다. 내 목자들이라고 하는 자들은 내 양 떼를 찾으려고 나서지 않았다. 그 목자들은 양 떼를 잡아서 자기들의 배만 채우고, 내 양 떼는 굶겼다. 9 그러므로 목자들아, 너희는 나 주의 말을 들어라. 10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그 목자들을 대적하여 그들에게 맡겼던 내 양 떼를 되찾아 오고, 다시는 그들이 내 양을 치지 못하게 하겠다. 그러면 그 목자들이 다시는 양 떼를 잡아서 자기들의 배나 채우는 일은 못할 것이다. 내가 이렇게 그들의 입에서 내 양 떼를 구출해 내면, 내 양 떼가 다시는 그들에게 잡아 먹히지 않을 것이다.”

오늘 에스겔의 말씀처럼, 불의한 권력에 희생당한 이들과 국가의 부재로 인해 고통당한 이들의 눈물을 하나님은 닦아 주실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만든 이들을 하나님은 가만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공평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과거에 보호받지 못했던 이들, 현재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이들의 목자가 되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성도의 역할이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뜻을 받아 이 세상이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역할입니다. 바로, 정의와 공의의 나라입니다.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정의와 공의를 이루려는 성도로 인하여 오늘 슬퍼하고 고통당하는 이들은 슬픔이 기쁨으로, 고통이 행복으로 변하게 될 줄 믿습니다.

“25 내가 그들과 평화의 언약을 세우고, 그 땅에서 해로운 짐승들을 없애 버리겠다. 그래야 그들이 광야에서도 평안히 살고, 숲 속에서도 안심하고 잠들 수 있을 것이다. 26 내가 그들과 내 산 사방에 복을 내려 주겠다. 내가 때를 따라 비를 내릴 것이니, 복된 소나기가 내릴 것이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십니까? “31 너희는 내 양 떼요, 내 목장의 양 떼다. 너희는 사람이요,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지금 고통당하는 이들, 억울한 이들이 바로 오늘날 하나님의 양 떼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하나님이시기에 그 고통과 억울함을 보아 넘기지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특별히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유가족들의 눈물이 씻겨지기를 소망합니다. “세월호 참사 온전한 진실! 완전한 책임! 안전할 권리 보장! 생명 안전 기본법 제정! 세월호·이태원 참사 국가 책임 인정과 사과!”의 요구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같은 이유로 오늘 성도님들이 억울하게 고통당하고 있다면, 그 누구도 나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고통을 기억하시고 치유하시고 회복하시며, 눈물이 기쁨으로, 고통이 행복으로 변하도록 하실 줄 믿습니다.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과 함께 이 세상을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 정의와 공의가 충만한 세상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일하는 성도, 초도제일 믿음의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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