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Junger Prediger
제발 나에게서 떠나라출애굽기 강해 10(출애굽기 12:29-31)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 승인 2024.04.21 00:13
▲ 재앙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있음을 깨닫게 하는 것에 있다. ⓒGetty Images

귀한 예배의 자리에 우리를 불러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지난주일 온가족초청예배를 드리면서 너무나 감사한 날이었습니다. 세례받으신 분들도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또 모노드라마 대장장이 이야기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초대받아 오신 손님들 한 분 한 분 볼 때마다 너무나 기뻤습니다. 물론 식사도 너무 맛있었습니다. 지난주일 예배가 우리들에게도 새로운 신앙의 시작의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앙에는 항상 새로운 시작이 필요합니다. 신앙의 새로운 시작은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매 순간 예배의 시간을 통해서 새롭게 시작합니다. 어떤 시작인가요? 2024년을 시작하면서 교회 표어를 현수막으로 걸었습니다. ‘회복’입니다. ‘예배 생활을 회복합시다. 기도 생활을 회복합시다. 감사하는 생활을 회복합시다’ 그랬습니다.

나의 예배 생활이 어떻습니까?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신다면 참 다행입니다. 그러나 나의 예배 생활에 조금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된다면 우리는 회복돼야 돼요. 언제부터요? 지금 당장이요! 구원의 때는 하나님께서 기다려주지 않으세요.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고 자비의 하나님이고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금 당장 변화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깨달았을 때, 알게 되었을 때, 생각이 들었을 때, 바로 그때 변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예수님이 복음서에서 계속 강조하십니다. ‘늘 깨어 있어라. 그 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른다.’ 이 말씀은 ‘그 때가 정해져 있는데, 너희들은 아무도 몰라. 하나님만 알아’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그날과 그때를 모르지만, 모르니까 지금 당장 시작하면 고민할 게 없다는 말입니다. 그때가 언제인지를 모르면서 그때에 맞춰서 하려니까 문제입니다. 그냥 지금 해버리면 됩니다. 지금 시작해버리면 됩니다. 그럼 그날과 그때가 도적같이 찾아와도 우리는 항상 준비되어 있죠.

예배 생활만 그럴까요? 기도 생활도 똑같습니다. 기도 생활을 한 번 돌아보세요. 얼마나 기도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횟수의 문제가 아니고 생활 태도의 문제입니다. 생활 습관의 문제입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을 때 기도부터 시작하는가? 습관처럼 버릇처럼 당연하게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가? 무조건 하나님과 이야기 나누는가?’ 내 삶을 한번 돌아보세요. 그렇지 않다면, 내 기도 생활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 바로 회개의 기도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살리셨는데 나는 주님을 까맣게 잊고 살아가네요. 죄송합니다. 지금부터는 주님을 기억하고 살겠습니다. 그냥 기억만 하는 게 아니라 주님과 함께 살겠습니다. 주님께 내 모든 것 이야기하고 주님 들려주시는 말씀을 듣겠습니다.’ 아무 말 안 해도 됩니다. 그냥 ‘주여’ 하고 눈만 감고 가만히 엎드려져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의 중심에 간절함을 아십니다. 그렇게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럴 때 감사의 생활도 회복됩니다.

최근에 감사한 일들을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당장에 떠오르지 않고 조금 생각하셔야 되나요? 그러면 안 됩니다. 제가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누군가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목사님, 감사할 일이 없어요. 감사할 일이 없어요.’ 물론 진짜로 감사할 게 없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게 힘들고 어렵다는 표현인 줄 압니다. 그래도 깜짝 놀랐습니다. 감사할 것이 없다니요. 우리에게서 감사가 사라지면 끝장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올바르게 잘 믿고 있는가? 내가 믿는 신앙생활이 잘 되어가고 있는가?’ 우리가 항상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궁금하고 의심할 때 알아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어요. 내가 신앙생활 잘하고 있는가를 알아보는 제일 정확한 방법은요, 내가 감사 잘하고 있는가, 내 입에서 감사가 나오는가를 보는 겁니다. 내 삶이 감사로 채워져 있으면, 그때 내가 하나님 잘 믿고 있다고 확신해도 됩니다.

매주일 우리가 예배드리는 바로 이 예배 시간이 새로운 시작을 우리에게 가능하게 해주는 시간입니다. 이제껏 제대로 못 살았지만, 지금 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다시 나와 하나님 만나고, 옛날의 나를 깨끗이 씻어내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여러분에게 시작점은 항상 있습니다. 바로 지금 예배드리는 시간 오늘 지금 당장 이 예배를 통해서 새로운 삶이 시작된 새로운 삶을 결심하는 새로운 삶을 결심하는 새로운 삶 결단하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그런 새로운 시작점이 옵니다. 그런데 평범하게 오는 게 아니라, 출애굽이라는 대단한 사건으로 옵니다. 출애굽기를 읽으면 하나님의 기적이 나오고 하나님의 역사가 나옵니다. 그 위대한 역사 앞에서 ‘야~ 우리 하나님, 정말 대단하시다. 엄청나시다.’ 그렇게 감탄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출애굽기를 읽으면서 마음속에 소망이 싹 터야 합니다. ‘나도 이렇게 탈출하고 싶다.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나도 노예 생활에서 탈출하고 싶다. 나를 붙잡고 있는 사슬, 내가 끊어내지 못하고 있는 족쇄를 벗어나고 싶다. 그렇게 새로운 존재가 되고 싶다. 나도 하나님 주신 땅으로 가고 싶다! 하나님과 함께 새 삶을 살아가고 싶다!’

우리가 금년 일 년 동안 출애굽기를 계속 읽어가면서 묵상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내 삶의 새로운 시작, 내 삶의 회복! 뒤틀려 있고 잘못되어 있는 내 삶을 바로잡는 일! 이런 소망이 우리 안에서 끓어오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열 가지 재앙이 이집트를 덮치고 있습니다. 이 재앙 속에서도 우리는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 잘 믿으니까. 하나님이 내 편이니까. 나는 저런 재앙 안 당하지’ 이렇게 맘 놓고 있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내리시는 재앙은, 사실 우리의 삶에 도처에 항상 함께하고 있습니다. 내 곁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재앙이 내 곁을 채우고 있다’고 하니까 이상한가요? 사랑의 하나님인데 왜 나에게 재앙을 내리실까 의아한가요? 우리가 이집트 사람들처럼 하나님에게 반대하고 거역하는 사람들도 아닌데,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재앙이 닥치는가 싶나요?

사실 하나님이 주시는 재앙은, 우리의 죄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재앙을 내리시는 게 아닙니다. 재앙이 뭡니까? 우크라이나 러시아에서 지금 전쟁이 일어나고 있죠. 그런 전쟁이 재앙이죠.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하고 있죠. 대만에서 큰 지진이 일어났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그런 게 재앙이죠. 출애굽기에 나오는 제약만 봐도 그렇습니다. 개구리가 온 땅을 뒤덮고, 가축들이 몰살당하고, 피부병이 세상을 덮고, 우박이 내리고, 메뚜기가 들판의 곡식을 다 먹어치우고 아주 난리가 아니에요.

제가 거꾸로 물어볼게요. 그게 왜 재앙입니까? 전쟁이 왜 재앙입니까? 지진이 쓰나미가 왜 재앙입니까? 개구리가 온 땅에 가득하면 그게 왜 재앙입니까? 짐승들이 가축들이 죽어가는 게 왜 재앙이에요. 우박이 내린다고 재앙입니까? 메뚜기 떼가 자기들도 배고픈데 곡식 좀 먹을 수 있지 그게 왜 재앙입니까?

당연한 것 아닙니까? 전쟁 나면 사람들이 죽어가고 힘듭니다. 그러니까 재앙입니다. 지진이 나고 쓰나미가 나면 우리의 삶이 파괴됩니다. 그러니까 재앙입니다. 개구리 때문에 우리가 못살게 되니까 재앙입니다. 피부병 때문에 우리가 못살게 되니까 재앙입니다. 가축들이 다 죽어버리니까 우리가 못살게 되어서 재앙입니다. 우박이 내려서 못살게 되니까 재앙입니다. 메뚜기 떼로 먹을 것 다 먹어 치워서 우리가 못살게 되니까 재앙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 일로 인해서 내가 못살게 되는 것, 그게 재앙입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 나를 못 살게 하는 것, 그게 재앙입니다.

이제 다시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 곁에는 재앙이 없습니까? 지진이 일어나지 않고 전쟁이 없다고 해서 재앙이 없습니까? 여러분 곁에 여러분을 못살게 하는 것들 있잖아요. 힘들게 하는 거 있잖아요. 아프게 하는 거 있잖아요. 고통스럽게 하는 거 있잖아요. 그게 재앙입니다. 그 재앙 어디에서 왔습니까? 하나님 한눈파시는 틈을 타서 사탄이 재앙을 뿌려놓고 갔나요? 그렇게 설명하면 쉽겠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바로 이 사실이 오늘 우리의 고민의 핵심입니다. ‘하나님 왜 나에게 재앙을 주실까? 내가 무슨 잘못을 했지?’

오늘 이집트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살기 어려운 일이 닥쳐왔습니다. 열 가지 재앙이 이집트를 휩쓸고 갑니다. 한 두 번은 어떻게든 꾹 참고 필사적으로 버텨볼 텐데, 열 번이나 덮치는데 어떻게 합니까? 결국에는 두 손 두 발 다 돌고 항복하죠. ‘이 모든 재앙의 원인이 이스라엘 백성이다. 너희들 다 나가라. 제발 나에게서 떠나라!’

우리는 이 이야기를 이스라엘 백성의 입장으로만 읽어왔습니다. 그래서 파라오가 이집트 사람들이 결국 항복하고 ‘자, 떠나라’ 하니까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저놈들 기를 쓰고 버티다가  꼴 좋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잠깐 관점을 바꿔보세요. 이집트 사람들을 두고서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억압하는 나쁜 놈들’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입장에서 바라봅시다.

온 세상 사람들을 마침내 구원으로 인도하고 싶어 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의 입장에서 이집트 사람들을 한번 바라봅시다. 이 사람들 누굽니까? 멸망해야만 하는 사람들입니까? 죽어야만 하는 사람들입니까? 아닐 겁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이집트 사람들 역시 하나님이 구원하고 싶어 하는 하나님의 백성 아닐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구원하고 싶어하는 이 백성들에게 재앙을 내리고 계신 것입니다. 왜 그러실까요? ‘내 백성 이스라엘을 괴롭히니까 너희들을 멸망시키겠다!’ 하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이집트 사람들도 결국에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의 생명들입니다.

이유는 명백합니다. 하나님은 고통 속에서 이집트 사람들에게 지금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얘들아, 너희들이 이 고난 속에서 진짜 진리를 찾았으면 좋겠다. 이 아픔을 겪으면서 이 아픔의 의미를 깨달았으면 좋겠다. 진짜 생명이 무엇인지 내가 보여줄 테니, 진짜 진리가 뭔지 보여줄 테니, 진짜 하나님이 누군지 보여줄 테니, 제발 나에게로 돌아오면 안 될까?” 하나님이 이집트 백성에게 내리는 재앙이 바로 이런 말씀 아닐까요? 사도바울이 로마서에 쓰고 있듯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깊은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탄원이 바로 이 재앙 아닐까요?

하나님이 이집트 백성에게 내리는 열 가지 재앙 속에서, 이집트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사랑을 우리가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는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신지 보아야 합니다.

파라오가 마침내 심판당한 이유가 뭡니까? 이스라엘을 학대하고 억압해서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 시켜주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열 번이나 계속되는 하나님의 신호 앞에서 마침내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고통과 아픔 속에서 은총을 바라봐야 하시는데 끝까지 그 말씀을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주관자가 누군지를 명확히 밝혀주고 계시는데 징조 앞에서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재앙 속에서 손을 내밀고 계신데, 이 손 붙들고 은혜 받아라 하시는데, 오히려 ‘제발 나에게서 떠나가라’며 하나님을 거절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내 입맛에 맞는 것만 달라고 가짜 은혜를 졸라대기 때문입니다. 진짜 생명과 진짜 진리를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내 입맛에 맞지 않으고 내 맘에 들지 않으면, 나를 힘들게 하면, ‘아이고 못 살겠다. 재앙이구나’ 한탄하는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앞서 우리는 우리에게 재앙을 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못살게 하는 것이 재앙이라고 그랬습니다. 이제 그 말을 다시 살펴봅시다. 우리가 힘들면 재앙입니까?

아닙니다. 내가 힘들어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은혜로 베풀어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감히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내 입맛에 맞지 않다고, 나를 좀 힘들게 한다고, 나를 좀 괴롭게 한다고, 나를 좀 아프게 한다고, 하나님께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것은 재앙입니다. 하나님 이것은 재앙입니다.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사람들이 왜 구원받지 못할까요? 하나님이 우리의 곁에 안 계셔서, 우리를 구원해주지 않아서,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할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곁에서 내 곁에 오셔서 가장 좋은 것으로 나를 돌봐주시는데, 우리가 ‘아이고, 나는 그거 싫어요. 내가 죽게 생겼으니까 제발 나를 떠나주세요.’ 그렇게 하나님을 거절하고 하나님을 내쫓아버리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 곁에 수많은 일이 일어납니다. 즐거운 일도 있고 기쁜 일도 있지만, 어려운 일도 많고 힘든 일도 많습니다. 즐겁고 기쁠 때만 감사하시겠습니까? 싫은 일, 피하고 싶은 일, 나를 못살게 하는 일 앞에서는 ‘제발 나를 떠나십시오. 나를 내버려 두십시오’ 이렇게 말하시겠습니까?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의 손길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참 생명을 마침내 찾아내야 합니다. 그것이 그게 신앙입니다. 진짜 신앙은 내가 죽는 것만 같고, 재앙인 것만 같고, 그래서 떠나고만 싶을 때, 참 생명이신 하나님을 결국 선택하는 것입니다. 내가 죽는 것만 같아도, 재앙인 것만 같아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면 ‘아멘’ 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입니다. 죽는 것만 같아도, 못살게 된 것만 같아도, 재앙인 것만 같아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참 생명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 그게 신앙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재앙이라고 온 세상이 말했지만, 예수님은 그것이 재앙이 아니라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구원의 손길임을 알고 십자가로 무덤 속으로 뛰어들어가셨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리스도에게 부활의 영광이 임했습니다.

내 앞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일들을 보면서 재앙이라고, 싫다고, 피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구원인 줄 알고 뛰어드시겠습니까?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구원 앞에 있습니다. 출애굽의 은혜 앞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모든 것이 우리에게 기쁨이 되고 감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것 앞에서, ‘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이건 싫다’고, ‘제발 나에게서 떠나가라’고 외치는 그런 이들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9 한국기독교회관 503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4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