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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는가? 치쁘리아누스: 가톨릭 교회 일치채수일의 ‘기고만장’(基古萬張)(기독교 고전 만장 읽기) 11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 승인 2024.04.22 04:19

이 원고와 영상은 ‘사이너머’ 연구소에 진행하고 있는 채수일 교수의 ‘기고만장: 기독교 고전 만장 읽기’입니다. 기독교 고전을 독자들과 함께 읽고 우리 시대의 문제와 씨름하는 것입니다. 영상과 원고의 게재를 허락해 주신 채수일 교수님과 사이너머에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편집자 주

안녕하세요, 채수일의 ‘기고만장’입니다.

여러분은 아마도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말을 들으셨을 것입니다. 이 말은 ‘기독교인이 아니면 구원받을 수 없다’, 혹은 ‘이웃(다른) 종교에는 구원이 없다’는 말과 동일시되었습니다. 기독교의 배타적 구원론과 교회중심주의를 한 마디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기독교의 이런 주장 때문에, 그러면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 죽은 우리 조상들은 물론이고, 지금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이냐고 질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 예수를 모르고 죽은 우리 조상 모두 다 그러면 지옥에 있고,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모두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일까요?

이와 비슷한 질문이 2천 년 전, 유대교인과 이방인 사이에서도 제기되었습니다. 이방인에게는 유대 율법이 없었기 때문에, 이방인에게는 구원의 문이 닫혀 있었다고 생각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율법과 복음을 비교하여(롬 2,14) 구원은 오직 은혜로 주어진다고 함으로써, 구원이 인간 편에서의 어떤 인간적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로운 은혜로(롬 3,24), 선물로 주어진다고 함으로써 구원의 주체를 전적으로 하나님으로 선언했습니다.

2세기 교회는 경전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구약의 하나님은 폭력과 보복의 신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말하는 하나님은 사랑과 정의의 신으로 서로 다르기 때문에, 구약을 경전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시노페의 마르키온(Marcion of Sinope, 85-160)의 주장과 대결해야 했습니다. 그 때부터 신앙에 대한 신학적 해석이 제기되었고, 이른바 정통과 이단이 구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유스티누스(Justinus, 100-165)라는 교부는 ‘로고스’론에 근거하여 세상이 ‘로고스’를 통해서 창조되었고, 창조된 모든 인간 안에는 ‘로고스의 씨앗’이 있다고 함으로써, 모세의 율법을 실천하는 유대인이나 자연법과 이성에 충실했던 그리스인들도 구원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이레네우스(Irenaeus, 120-200)도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덕과 정의를 실천한 유대인들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미친다고 주장하여 이방인의 구원 가능성을 열어놓았습니다. 이른바 ‘이단’으로 규정된 집단들 외에는 하나님의 구원 의지가 모든 피조세계에 적용된다는 매우 개방적인 태도를 취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언제, 누가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는 말을 했을까요? 그리고 그 말은 정말 ‘교회 다니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을까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는 주장은 체칠리우스 치쁘리아누스(Caecilius Cyprianus, 200-258)라는 교부가 처음으로 한 말입니다. 서북 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수사학과 웅변에 뛰어난 능력을 갖춘 치쁘리아누스는 246년경, 마흔여섯 살에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입교한지 얼마 되지 않아 사제서품을 받았고, 마흔여덟 살의 나이에 카르타고의 주교가 된 그는 순교하기까지 10년 동안 주교로서 박해의 시기에 중요한 공적을 남긴 인물입니다. 치쁘리아누스는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그 가운데 251년에 쓴 ‘교회 일치’(De ecclesiae catholicae unitate)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교회를 어머니로 모시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실 수 없습니다. 노아의 방주 밖에 있었던 사람 모두가 목숨을 구할 수 없었듯이 교회 밖에 있는 사람 역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 그리스도의 평화와 일치를 깨뜨리는 자는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자입니다. 교회 밖으로 사람들을 모아들이는 자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분산시키는 자입니다. … 이 일치를 보존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는 자이며, 성부와 성자에 대한 믿음도 없으며 생명과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1)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의 탈을 쓰고 나타나서 부주의한 사람들을 속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원수는 신앙을 말살하고, 진리를 파괴시키고, 일치를 갈라놓기 위해 이단과 열교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그리스도교 신자라 하며 어둠 속에 방황하고 있으면서도 빛 안에 있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2)

치쁘리아누스가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말한 것은 사도적 전승을 계승한 정통 교회를 분열시키고 교회 밖으로 뛰쳐나간 기독교 이단들을 향한 것이었지 이웃종교인들을 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교회를 분열시킨 문제는 박해시기에 배교했다가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오는 신자들을 다시 받아들여야 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이단 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자가 가톨릭교회에 들어오게 될 때 그에게 새로 세례를 베풀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 등이었습니다.(3) 당시 교부 떼르뚤리아누스(Tertullianus, 160-240)는 세 가지 중대한 죄, 즉 살인, 간음, 배교를 범한 자에게는 교회가 결코 죄의 용서를 베풀 수 없다고 주장한 반면, 치쁘리아누스는 배교자들에게 일정한 참회예식을 거친 후 용서해 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치쁘리아누스의 이런 유화적인 태도에 강력하게 반대한 사람은 하필이면 치쁘리아누스와 주교 자리를 두고 정치적으로 경쟁했던 노바뚜스였습니다.(4) 단지 신앙과 신학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간적인 갈등과 감정이 배교자 처우 문제에 개입한 것이지요. 겉으로는 신앙 노선의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속에는 온갖 인간적인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은 오늘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교회 분열을 막기 위해, 같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한 주장이었을 뿐인데,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공리는 그리스도교가 국가종교로 공인된 후, 점차 이웃종교에 대한 배타적인 주장이 되어갔습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에서 비그리스도교 종교와 문화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현존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있건, 밖에 있건, 예수를 알든 모르든, 누가 구원받는지를 판단하거나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은 하나님 외에 아무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분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눅 3,6)

그러므로 치쁘리아누스가 의도하지도 않았던 방식으로 그의 주장을 확대해석하여 ‘이웃종교에는 구원이 없다’고 배타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라고 하겠습니다. 게다가 고대 교회를 위협했던 종교적 도전은 주로 영지주의, 신비주의에서 왔지 불교도 아니었고, 이슬람은 6세기에 등장했으니 그 때에는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말을 이웃종교인을 하나님의 구원섭리에서 배제하는 근거로 주장하는 기독교인이 있다면,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마 7,21)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미주

(1) 치쁘리아누스, ⟪도나뚜스에게·가톨릭 교회 일치·주의 기도문⟫, 이형우 역 (경북 왜관: 분도출판사, 1996), 71.
(2) 치쁘리아누스, ⟪가톨릭 교회 일치⟫, 63.
(3) 치쁘리아누스, ⟪가톨릭 교회 일치⟫, 16.
(4) 치쁘리아누스, ⟪가톨릭 교회 일치⟫, 17.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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