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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구자만 박사의 《도마복음》 풀이 (15)
구자만 박사 | 승인 2024.04.25 13:38
▲ 정경 복음서들과는 달리 도마복음 주의 동생 야고보를 원시 그리스도교 교회를 이끌 지도자로 언급하신다. ⓒWikipedia
제자들이 예수께 말했다. “우리는 당신이 우리를 떠나려 하는 것을 압니다. 그러면 누가 우리들의 우두머리가 될까요?” 예수는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가 어디에 있든지, 의인 야고보에게 가라. 하늘과 땅에 관계되는 모든 것이 그의 영역이다.”(도마복음 12)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제자들 중에 천국 열쇠를 받은 베드로를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이끈 지도자로 알고 있다. 그래서 천주교에서는 그를 초대교황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예수는 공식 후계자로 조직체를 이끌 자는 베드로가 아니라 본성(진리)을 깨달은 야고보(覺者)라고 말씀하신다. 의인인 야고보는 하늘과 땅 모두와 하나(One)라는 것을 자각하였기 때문이다(自己實現).

야고보와 같이 ‘하나(One)가 된 자’(Self-realization)는 ‘내 속에 거하는 죄’(ego, 롬 7:20)를 제거하고, 영원한 천국(One)의 길인 내면의 성령(신성)을 자각한 자이다. ‘오직 진리만이 실재한다’는 것을 깨달은 자는 아집(我執)이 없으므로 그 어디에도 자기 자신이 아닌 것이 없으며, 삼라만상을 껴안는 불생불멸의 실재와 하나(One)가 된 자이다(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體, 장자).

우주적 생명과 하나(One)가 된 야고보와 같이 ‘분별을 초월한 자’(참나)는 하나님과 하나(One)되는 거듭남을 체험하며, 주관과 객관을 나누는 이원성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天上天下唯我獨存). 본질인 ‘나’(참나)가 성립되기 전에는 ‘너’도 성립되지 않고, 만물도 성립되지 않으며, 하늘도 땅도 성립되지 않으므로 예수는 ‘너희도 처음(아르케)부터 나와 함께 있었다’(요 15:27)고, 장자(莊子)는 “하늘과 땅이 나와 함께 생겨났다”고 하였다.

야고보와 같이 근본인 하나(One)가 되는 ‘하나님의 자리’는 “행복이 넘치는 천국(본성)이 지금 이 자리에 이미 임해 있음”(마 12:28)을 자각하는 경지이며, 분별을 벗어나 본래의 마음(진리)을 직관하는 깨달음이다(直指人心 見性成佛). 진리를 깨닫기 위한 방법으로는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 46:10)의 구절처럼 조용히 명상을 하는 방법이 있다.

항상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마음이 동(動)하면 가려져 사라지고, 번뇌하는 마음(ego)이 끊어졌을 때, 즉 고요할 때 나타난다. 그러므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게 된다”(사 30:15). 조용히 자아의 근원(神性)을 파고드는 탐구를 통해서 마음이 내면(바탕)으로 향해지면, “마음의 나쁜 습관인 이원성의 원습”(原習)들은 저절로 소멸되어 진다.

성경은 진리 외에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되며 … 헛되도다’(전 1:2)라고, 불경(佛經)은 ‘모두가 다 꿈과 같고, 환상, 물거품, 그림자와 같으며(금강경), 또한 텅 비어 있다(色卽空)’고 한다. 현대물리학은 ‘물질은 에너지의 파동이며, 천지우주에는 에너지로 충만하다’고 한다. 보이는 것은 사실 없는 공(空)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진리이다(眞空妙有, 고후 4:18).

‘모두는 다 하나인 예수의 생명뿐이며(골 3:11), 하나인 신성(불성)뿐이다’(一切衆生悉有佛性, 롬 1:20). 고통을 일으키는 원습(ego)의 소멸은 육체적 예수가 아니라 시공간을 초월한 예수의 생명(神性)을 자각함으로서(요 8:58), 또한 육체적 부처가 아니라 시공간을 초월한 부처의 생명(佛性)을 자각함으로서 이루어진다. 예수(부처)의 생명이란 바로 누구에게나 가지고 있는 내면의 본성(神性, 佛性)이다.

따라서 천지우주에는 하나의 진리인 하나님의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충만하다(골 3:4). 자기 안에도 영원한 생명(그리스도)이 본래 실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원적 대상으로 있는 육신의 예수를 믿어야만 비로소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다(갈 2:20, 고후 5:16). 예수는 모두가 하나(One)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셨으며(요 17:21), 구원은  야고보처럼  하늘과 땅에 관계되는 모든 것과 둘이 아닌 하나(One)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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