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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기독교: 암브로시우스, 《토빗 이야기》채수일의 ‘기고만장’(基古萬張)(기독교 고전 만장 읽기) 13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 승인 2024.05.05 13:48

이 원고와 영상은 ‘사이너머’ 연구소에 진행하고 있는 채수일 교수의 ‘기고만장: 기독교 고전 만장 읽기’입니다. 기독교 고전을 독자들과 함께 읽고 우리 시대의 문제와 씨름하는 것입니다. 영상과 원고의 게재를 허락해 주신 채수일 교수님과 사이너머에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편집자 주

안녕하세요, 채수일의 ‘기고만장’, 오늘은 돈과 기독교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암브로시우스(Ambrosius, 340년경–397년)는 밀라노의 주교로서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 354년-430년)에게 387년 부활절에 세례를 준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본래 ‘마니교’(1) 추종자였던 아우구스티누스를 암브로시우스에게 데려간 사람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어머니였습니다. 384년 암브로시우스와의 만남으로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니 기독교에서 이른바 정통 기독교로 회심한 것이지요.

암브로시우스는 반 아리우스(256년-336년)파 투쟁에서 황실과도 극한 대립을 불사할 정도로 담대한 인물이었습니다. 암브로시우스는 당시 “어린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2세와 아리우스파를 등에 업고 교회를 무력으로 탄압했던 유스티나 황태후에 맞서 목숨을 걸고 저항했습니다.” 심지어 “그리스도교에 우호적이었던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테살로니카 양민을 학살한 것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속죄와 참회를 명령했습니다.”(2)

그런데 오늘 우리가 암브로시우스를 불러내는 이유는 그가 유대 –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오래된 이자놀이, 특히 고리대금업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제기한 교부들 가운데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고리대금업은 고대 근동, 구약성서 시대는 물론, 교부들의 시대에도 일반적인 관례였습니다. 문제는 교회 안에서도 고리대금이 평신도뿐만 아니라 고위성직자들의 막대한 부의 축적 수단이었다는 것이지요. 당시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주교였던 키프리아누스(Cyprianus, 200?-258)는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모든 이가 … 채울 수 없는 탐욕으로 자기 재산 불리는 데만 골몰했다. 그들은 욕심과 끝 모를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사제들의 경건한 신심은 간 데 없고, 성직자의 충실한 모습도, 실천적 연대와 삶의 규율도 자취를 감추었다. … 수많은 주교들은 … 거룩한 임무를 소홀히 한 채 더러운 이윤의 노예가 되었다. … 교회에서는 형제들이 고통스레 굶주리고 있는데 주교들은 돈을 무진장 긁어모으려 했고, 사기로 기금을 훔치고, 아무런 가책 없이 고리대금으로 이윤을 늘렸다.”(3)

교회 안에서도 극심했던 고리대금 문제는 급기야 공의회의 의제가 될 정도였습니다. 공식적인 에큐메니칼 공의회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스페인의 엘비라에서 303년에 개최된 교회회의는 ‘돈놀이를 하는 성직자들의 품계를 강등시키고, 그리스도교에 입교하려면 고리대금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규정을 세웠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 교회 공동체에서 제명키로 결정’했습니다.(4)

▲ Anthony van Dyck, 「Pious Fiction」 (Saint Ambrose barring Theodosius from Milan Cathedral, 1619, National Gallery, London) ⓒWikipedia

동서방교회가 함께 인정하는 최초의 에큐메니칼(보편) 공의회로 알려진 것은 325년에 니케아에서 소집된 니케아 공의회입니다. 여기에서도 ‘돈놀이하는 성직자들에 관하여’라는 의제가 전체 교회 차원에서 다루어졌습니다. 니케아 공의회는 강력하게 고리대금업을 금지했고, 탐욕적 이자놀이나 은밀한 돈놀이를 지속할 경우, 성직을 박탈하고 제명키로 결정했습니다. 니케아 공의회가 다룬 20개의 의제 가운데 고리대금 문제가 그 하나의 의제였다는 것은 고리대금을 수단으로 한 고위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의 탐욕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니케아 공의회 법규 17에 의하면, 당시 원금의 한 배 반을 이자로 요구했다고 합니다.(5)

서방 밀라노 교회의 주교였던 암브로시우스는 동방교회에 있던 바실리우스(330년경-379년)의 영향을 받아, 부자들과 권력자들의 탐욕을 성서를 근거로 날카롭게 비판하고, 이자놀이와 불로소득의 죄악성을 낱낱이 폭로합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는 ‘나봇 이야기’, ‘토빗 이야기’, ‘엘리야와 단식’ 등인데,(6) 우리는 그 가운데 ‘토빗 이야기’를 중심으로 암브로시우스의 경제윤리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개신교가 사용하는 성경에는 ‘토빗기’가 없습니다. 외경에 포함되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가톨릭은 ‘토빗기’를 정경으로 받아들입니다. ‘토빗기’는 기원전 8세기와 7세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실제로는 기원전 200년경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됩니다.(7)

‘토빗기’는 유배 생활을 하면서도 율법을 충실히 지키는 모범적인 유다인 토빗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정작 토빗과 관련된 이야기보다는 고리대금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가난한 사람들, 특히 품팔이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부자들의 끝없는 탐욕에 대한 비판이 주요 내용입니다.

암브로시우스는 “자기 노동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 가고 품삯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가난한 사람을 경멸하고, 가난한 사람의 삶에 필수적인 도움을 거절하는 것은 인간을 살해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8) “가난한 사람에게서 생계 수단을 빼앗아가는 것이든, 과부의 담보물을 떼먹는 것이든 둘 다 글자 그대로 대죄”라는 것이지요.(9) 암브로시우스는 “가난한 사람들의 곤경을 악랄하게 이용한 탐욕적 돈놀이를 도둑질로, 벼랑 끝에 선 가난한 이들을 빚의 구렁텅이로 떠미는 고리대금업을 살인으로 단죄합니다.”(10)

또한 재화의 독점은 하나님의 질서와 자연법에 어긋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생산되는 모든 것은 모든 이를 위한 공동 양식이 되고, 땅은 모두의 공동 소유가 되게 하라고 하나님께서 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연은 공동 권리를 낳았지만, 독점이 사적 권리를 만들었다”고 합니다.(11)

일찍이 암브로시우스는 이른바 ‘토지 공개념’, ‘공유경제’ 개념을 가지고 있던 셈이지요.

오늘 인류의 대다수가 당면한 고통은 약탈적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롯된 것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사회적 약자들만이 아니라, 자연까지도 약탈하여 부를 축적하는 자본주의 시스템, 특히 금융 자본에게 큰 책임이 있습니다.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지만, 해결책은 무엇인지, 대안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양합니다.

그동안 세계의 부채와 빈부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적 노력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제3세계의 빚의 악순환을 극복하기 위해 지난 2000년을 세계의 ‘희년’으로 선포하고 부채의 탕감을 극복하려는 운동이 있었습니다. 약탈적 대출 시장에서 빚의 노예로 살아가는 채무자들의 인권을 지키고, 가난한 채무자들과 연체자들의 부실 채권을 소각하여 야만적 금융질서에서 해방시키는 ‘주빌리 은행’(Jubilee Banks), 가난하여 벌금을 낼 수가 없어 교도소에 갇히는 사람들에게 벌금 낼 돈을 무담보, 무이자로 빌려주는 ‘장발장 은행’(2015년 출범)(12), 소액대출로 자립을 돕는 ‘마이크로 크레디트’ 운동(1976년 방글라데시에서 그라민 은행이 설립되면서 시작) 등이 생겼습니다. 이런 운동들이 지역 단위에서는 놀라운 변화를 가져온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세계적 차원에서의 대전환은 아직 요원합니다. 기후위기, 아니 기후재앙이라는 인류 멸종의 위협도 ‘각자도생론’, ‘자국중심주의’를 이겨내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암브로시우스를 비롯한 교부들의 가르침, 교회가 제시하는 사회적 가르침은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탐욕을 대죄로, 가난한 사람들의 생명을 짓밟는 행위를 살인으로 규정하는 것으로 충분할까요? 크리스천의 자선행위나 빚의 탕감이 가난한 사람들을 가난의 질곡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을까요?

물론 세계경제 시스템을 전환시키고, 인간의 탐욕을 공동선으로 바꾸는데 교회의 가르침이 충분하지는 않을지 모릅니다. 교회의 가르침이 기독교인들 자신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현실은 우리를 더욱 회의적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악을 악으로 이름붙이고, 저항하고 심판하는 행동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암브로시우스가 성물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했을 때 사람들은 그를 미워했습니다. 이자놀이를 강력하게 규탄하는 설교를 했을 때, 사람들은 그를 비난하고 조롱했습니다. 설교자는 설교로 말하고, 자선으로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미움을 받는 것이 현실입니다.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실천, 교회에게 그것은 진리의 선포와 자비의 행동입니다.

미주

(1) 마니교는 조로아스터교에서 파생된 종교로 3세기에 페르시아 왕국의 마니(216년-274년)가 조로아스터교, 불교, 기독교를 혼합하여 창시했다. 이집트에서는 마니를 ‘예수의 사도’로 불렀고, 중국에서는 그에게 ‘빛의 붓다’라는 별명을 붙였다. 마니의 희망은 3대양의 연안에서 꽃을 피웠지만, 얼마 되지 않아 증오와 원한의 대상이 되었다. 세계의 군주들은 그를 ‘거짓말쟁이 악마’, ‘악이 가득 찬 그릇’, ‘편집광’이라고 했고, 그의 메시지를 ‘구역질나는 이교도의 교리’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그의 저서들은 그의 제자들과 함께 화형대의 불더미 속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니교는 4세기 서방에서 최성기를 맞았고, 6세기 이후에는 동방으로 교세를 뻗쳐 중국에 이르렀다. 당대의 중국에서는 마니교 혹은 말니교라고 하였으며 측천무후(당나라 3대 고종의 황후)는 대운사를 세웠다는 기록도 있다. 마니교의 합리주의적 주장과 미적 종교성에 끌린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9년 동안 마니교를 신봉하면서 마니교의 미학서, ‘미와 적합’을 저술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폴 존슨, ⟪2천년 동안의 정신 I⟫, 김주한 역 (서울: 살림, 2005), 150; 아민 말루프, ⟪마니⟫, 이원희 역 (서울: 정신세계사, 1996), 326 참조.
(2) 암브로시우스, ⟪토빗 이야기⟫, 최원오 역주 (경북 왜관: 분도출판사, 2016), 12.
(3) 암브로시우스, ⟪토빗 이야기⟫, 34 재인용.
(4) 암브로시우스, ⟪토빗 이야기⟫, 34.
(5) 암브로시우스, ⟪토빗 이야기⟫, 34.
(6) 암브로시우스, ⟪토빗 이야기⟫, 13.
(7) 암브로시우스, ⟪토빗 이야기⟫, 21.
(8) 암브로시우스, ⟪토빗 이야기⟫, 207.
(9) 암브로시우스, ⟪토빗 이야기⟫, 195.
(10) 암브로시우스, ⟪토빗 이야기⟫, 47.
(11) 암브로시우스, ⟪토빗 이야기⟫, 38.
(12) 암브로시우스, ⟪토빗 이야기⟫, 59.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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