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학술 구자만 박사의 《도마복음》 풀이
너는 하나님이다구자만 박사의 《도마복음》 풀이 (16)
구자만 박사 | 승인 2024.05.09 00:59
▲ Peter Paul Rubens, 「St. Thomas」 (Rubens’ Twelve Apostles Series, 1612) ⓒWikipedia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비교하여 내가 누구와 같은지 말해 보아라.” 베드로는 그에게 답하되, “당신은 의로운 천사와 같습니다.” 마태가 예수께 말했다. “당신은 지혜로운 철인과 같습니다.” 도마가 그에게 이르되, “선생님, 저의 입으로는 당신이 누구와 같은지 감히 말할 수가 없나이다”라고 하였다. 예수는 도마에게 이르시되, “나는 너의 선생이 아니라, 너는 내가 나누어준 거품이 끓어오르는 샘물을 마시고 취하였구나”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도마를 데리고 물러가셔서 그에게 세 가지 말씀을 하셨더라. 도마가 자기 친구들에게 돌아오자 저들이 그에게 물어, “예수는 너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더냐?” 도마가 말하길 “그분이 내게 하신 말씀 중 하나라도 너희에게 말하면 너희는 돌을 들어 나를 칠 것이요, 그 돌에서 불이 나와 너희를 태워 버릴 것이다”라고 하였다.(도마복음 13)

위 구절과 유사한 공관복음의 구절(마 16:13, 막 8:27, 눅 9:18)들은 도마와 다르게 ‘종말론과 기독론’(메시아 사상)적으로 기록하였다. ‘마음의 광기’(ego)에 취해 있는 도덕가인 베드로는 도덕을 초월한 예수를, 지식을 추구하는 마태는 시공간을 초월한 실재인 예수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예수는 도마에게 ‘나는 너의 선생이 아니다’고 하였다. 이원적 사유를 초월한 ‘존재의 깊은 비밀을 깨달은 자’(One)들에게는 모두가 둘이 아닌 하나의 생명(神性)들이며, 평등무차별함으로 더 이상 선생이라는 상(相)이 필요없다는 것이다(一味平等).

도마는 진리(샘물)에 취하여 하나(One)가 되었기에 ‘절대 평등한 생명’(神性)에 대하여 마음과 언어로 한계(ego)를 지어 말할 수 없었으며(道可道 非常道), 비웃음을 사지 않기 위하여 ‘침묵’ 이외에는 대답할 방법이 없었다(言語道斷). 그는 천지 만물에는 하나의 생명 즉 신(부처)뿐이며, 나(ego)와 내가 가진 것들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無我). 이때 온 세상이 신(부처)의 몸이며(佛身充滿於法界, 고전 12:12), 보이는 모든 것이 신(부처)이므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며(마 22:39), 환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침묵’에 대하여 십자가의 성(聖) 요한은 “무(無) 안에 거함으로 나에게는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음을 알았다”고 하였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바로 자기이고, 자기의 것이다. 디오니시오스(Dionysios) 주교는 “진리는 긍정과 부정 너머에 있으며, 생각하는 것은 상상일 뿐이다. … 그것은 묵상을 통해서만 알려질 수 있다”고 하였다. 예수가 침묵한 도마에게 한 말씀 중 하나는 아마 신성모독이며, 충격적인 “오직 신(진리)뿐이며, 너는 하나님(I am who I am)이다”(요 10:34)일 것이다.

‘본성(神)을 자각한 자’(One)는 무지한 사람들의 적(敵)이 되고, 돌을 던진 자는 그 돌에서 나오는 양심의 불에 의해 그 자신이 심판을 받게 된다. 불경(佛經)의 수심결(修心訣)에서는 귀종화상이 “무엇이 부처입니까?”라는 질문에 “그대가 바로 부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바울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다’(고전 3:16)고, 맹자(孟子)는 인간의 본래 마음에 있는 변하지 않는 본성을 성(性)이라고, 우파니샤드에서는 ‘그대가 바로 그것(神)이다’고, 동학(天道敎)은 ‘영원한 신(神)인 나(我)를 향해 제상(祭床)을 차리라’(向我設位)고 하였다.

모양이 없이 모든 존재에 편재하고 있는 진정한 ‘나’(참나)의 존재를 신(神)이라고 하며(요 8:58), 마하르쉬는 ‘모든 경전은 그들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신성한 참나(神) 깨달음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만 타당성을 갖는다’고 하였다. 깨달음은 지금까지 ‘나’(ego)가 몸과 마음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던 허상(거짓 나)이 사라지고, ‘나’를 새 사람의 실상(참나) 그대로의 모습으로 인식하게 한다. 또한  신비한 실상의 세계(본바탕)로부터 무한한 건강, 능력 그리고 지혜가 베풀어지고 있는 자기를 발견하게 한다.

도마는 예수의 말씀을 다른 제자들에게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언어는 어떤 사실을 명확하게 하지만, 반대로 전체로서 하나인 진리(神)를 가리기도 하며 또한 학문과 다르게 형이상학적인 종교에서는 문자를 쫓다가 영원한 생명을 놓치기 쉽다. ‘달을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는 것’(指月)처럼 진리(달)를 보지 않고 실체가 없는 문자(손가락)만 보면서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배타적으로 단정한다.

따라서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진리이다(고후 4:18). 시공간을 초월하는 진리(One)는 문자적인 것을 초월하며, ‘비유’(갈 4:24)와 ‘본보기가 되는 상징’(고전 10:6)이다. 바울은 “율법 조문(교리)은 죽이는 것이요 영(靈)은 살리는 것이니라”(不立文字, 고후 3:6)고 하여, 성경의 영적 해석을 강조하였다. 우리는 시공간을 초월한 하나의 진리에 대한 언어의 한계와  침묵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독선을 벗어나야 한다.

구자만 박사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자만 박사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9 한국기독교회관 503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4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