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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의 가치평화를 짓는 농부이야기 11
유대은(기장 총회사회선교사) | 승인 2024.05.11 14:10
▲ 손모내기 ⓒ정아롬

어김없이 벼농사 기간이 돌아왔다. 올해로 여덟 번째 모를 키운다. 우리집 벼농사의 첫걸음은 ‘소농두레’를 통해서였다. 먼저 귀농한 선배 농가들이 모여 시작하였고 우리는 그 중간에 합류 하였다. 참여하는 농가수와 농지 면적은 해마다 달라지며 이번에는 네 농가가 참여한다. 가급적 기계와 농업경제에 기대지 않고 십시일반 함께 손을 모아 농사를 짓는다.

벼농사의 과정인 상토채취, 훈탄만들기, 열탕소독, 염수선, 파종, 모판내기, 모내기, 벼베기, 탈곡 등을 함께하며 일손을 서로 보탠다. 두레가 올해 파종한 종자는 새청무 개량종외 토종벼 30종류다. 혼자서 벼농사를 했다면 지금처럼 할 수 있었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로 지금까지의 벼농사에 대해 배움을 갖게 한 ‘두레’다. 어려울 때마다 집단지성과 협력으로 서로에게 큰 힘이 되는 농사식구들이다.

‘소농두레’의 가장 큰 일은 역시 손모내기다. 그동안 키운 모를 곱게 써레한 논에 옮겨 두고 한 모, 두 모, 심는 일은 가슴이 벅찬 일이지만 힘든 일이다. 이른 아침, 두레 사람들이 양손 가득 간식바구니를 들고 논에 온다. 멀리서 물장화를 신고 챙 넓은 모자를 눌러쓰고 걸어오는 걸 보면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논에 입장하여 못줄 앞에 서서 모를 쥔다. 바로 옆 사람과 간격을 조절하며 손이 빠른 사람은 느린 사람 몫까지 한 줄 더 심어 준다.

우리 논에서 얼마나 모를 심는지 계산해 보니, 못줄 6치 간격 한 줄에 150번 정도를 심는다. 한마지기(우리 동네에선 200평)에 80줄 정도 심으니 1만 2천번, 하루에 500평 정도 심으니 대략 3만번의 허리를 굽혀야 논 한 필지를 다 심을 수 있는 양이다. 소농두레와 친구들이 그 만큼의 고생을 서로 나눠 짊어진다. 그래서 중간 중간 쉬면서 간식으로 당을 채워준다. 함께 먹으며 서로의 근황도 묻고 올해 농사는 어떨지 예측도 해본다. 아이들도 덩달아 신이 나서 즐겁게 뛰어다닌다.

세네번의 쉬는 시간이 지나 모를 다 심고 나면 다같이 큰 나무 그늘 아래에서 모밥을 먹는다. 논주인은 밥과 국을 준비하고 각자 집에서 반찬 한두가지씩 가져와 식탁을 차린다.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나눠 먹는 밥은 세상 어느 밥상보다 풍성하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도란도란 둘러앉아 먹는 모습은 그야말로 목가적이다. 지나가시는 마을아짐, 아재들도 와서 같이 드시라고 청하며 함께 나눠먹기도 한다. 식구라는 게 따로 있나 이런게 식구(食口)지.

멀리 타지에 가야하는 일정이 있어 전날 물꼬 상태를 보고 안심하며 나선 적이 있다. 다음 날, 안심하고 있었던 찰나에 두레의 톡방에 사진이 올라왔다. 두레 모자리가 물에 잠긴 사진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비가 많이 내려 난리가 났었단다. 타지에서 발만 동동거리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다행히 논 근처에 사시는 다른 두레식구 두 분께서 논둑을 터 물을 빼셨단다. 고마움과 미안함은 표했지만 멀리서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여건상 시간이 안되거나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양해를 구하고 다른 분들에게 의지한다. 일을 함께 하지 않았다고 욕하는 사람도 없다. 다음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

두레는 훈탄작업이나 파종과 같은 공동의 작업을 위해 함께 일을 하되 빈자리를 메꿔주는 게 큰 덕목인 협동체다. 그리고 손모내기나 벼베기처럼 각 농가의 작업에는 내 일처럼 즐거움으로 참여하는 느슨한 공동체다. 두레에 참여하며 어느 순간부터 남에게 받은 만큼 똑같이 되갚을려고 하고, 수고를 들인 만큼 그대로 받으려는 모습을 뉘우치게 되었다. 화폐경제의 논리에 익숙해서인지 내가 들인 땀과 노력도 거기에 맞게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람마다 가진 재능, 시간, 체력, 환경도 다르다. 빈 자리를 서로 채우면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 한밤중에 끝난 왕겨훈탄 작업 ⓒ정아롬

소농두레에는 농가의 아이들도 참여한다. 상토채취할 때 어른들은 큰 들통을 사용한다면 아이들도 작은 통을 사용해서 고사리 손을 보탠다. 왕겨훈탄을 만들 땐 아이들에게 배우기도 한다. 미처 도정되지 않은 쌀이 열에 의해 하얗게 튀밥이 되었나 보다. 아이들이 익은 튀밥을 왕겨더미에서 찾아서 한알씩 까먹는다.

손모내기할 때도 자신의 자리에서 한 몫을 한다. 혹시나 아이들이 미처 심지 못한 곳은 옆에 있는 삼촌, 이모가 모르게 대신 심어준다. 벼베기때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벼베기를 할 수 있도록 톱낫을 따로 준비한다. 드넓은 논에 미로를 만들지만 논주인은 즐겁게 아이들을 위해 자리를 내준다. ‘두레’는 효율만을 중시하지 않는다. 어른, 아이 상관없이 사람간의 유대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어른들도 아이들에게 배운다.

올해는 유독 비가 잦아 상토에 섞어서 쓸 왕겨훈탄을 만드는 일에 애를 먹었다. 훈탄을 만드는 기구를 놓고 왕겨에 불을 붙여 두면 보통 12시간 정도에 걸쳐 왕겨숯이 만들어진다. 이번에는 양이 많아 두 번을 나누어 작업을 했다. 첫 작업은 바람이 없어 예상했던 한나절을 훌쩍 넘겼다. 결국 밤 11시쯤 마무리 되었다. 한밤중에 트럭의 상향등과 각자 가져온 헤드라이트를 이용해 왕겨를 식히는 작업을 했다. 이렇게 오래 걸린 건 또 처음이다.

1차로 끝난 왕겨를 식히고 바로 2차를 하면 좋았겠지만 다음날 비가 잡혀 기약없이 날짜가 밀리고 말았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왕겨가 습기에 젖어 불이 잘 붙지 않았다. 논에 갑바를 깔고 말렸으나 습기를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부려 놓았던 왕겨를 다시 푸대에 담아 가져와 나락을 말릴 때처럼 뒤집어 주며 이틀 정도를 말렸다. 다행히 잘 말라 불이 잘 당겨졌다.

젖은 왕겨를 말리는 수고는 내가 했지만 식힘 작업을 위해 경운기를 논에 가져다 놓고 물을 준비하고 왕겨숯이 잘 되가고 있는지 수시로 살피는 일 등은 다른 이들이 했다. 이렇게 여러 수고가 모여 하나의 하모니를 이룬다. 이번 훈탄작업은 시간과 노력이 배나 들었다. 소농두레 식구들이 서로의 시간을 내었기에 두차례에 걸친 훈탄작업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이번 모판 갯수는 470여개다. 농가별로 모판의 개수, 벼종류, 파종량도 모두 다르다. 양이 많다고 미안해 하거나 농지가 적다고 해서 일손을 덜 보태거나 하지 않는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함께 작업에 참여한다. 우리논 중 한 필지를 모자리로 사용하는데 다른 농가의 모판이 모두 빠져나간 뒤에야 모내기를 할 수 있다. 보통은 다른 논들은 모내기가 모두 끝난 상태다. 다른 논은 모내기 날짜를 미리 잡고 준비할 수 있지만 모자리논은 모판이 모두 빠져 나간 뒤에나 시간을 잡을 수 있다. 두레식구들 모두가 마지막 모자리논의 모내기가 끝날 때까지 긴장과 관심을 놓치 않는다. 이것이 두레의 모습이다.

마을마다 ‘동계’가 있다. 두 마을이 함께 하는 ‘대동계’가 있는 곳도 있다. 지금의 ‘동계’ 모임은 밥을 먹으며 마을의 1년 살림살이를 보고하는 자리이지만 예전에는 마을단위의 품앗이협동체를 이야기한다. 특히 과거 벼농사처럼 일손이 많이 필요한 일은 마을 사람들이 순번을 정해 여러 집의 손모내기와 가을(추수), 볏짚 날라주기 등을 함께 했단다. 고된 일을 하며 함께 논에서 새껏(새참)도 먹으며 인생이야기도 나눈다. 지금은 트렉터, 콤바인과 같은 농기계가 보편화되고 농업인구가 고령화되면서 그런 모습은 많이 사라졌다. 지금은 품앗이로 감자와 고추를 옮기고 심는 모습을 보는 정도이다.

나는 ‘소농두레’를 통해 같이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 그 농사의 자리는 노동의 자리이기 전에 삶과 애환을 나누는 곳이다. 서로의 부족함 알게 되고 채워주는 곳이다. 그래서 다른 이들의 고됨을 알고 이타심을 배우는 자리이다. 내 농사가 잘되면 좋듯이 다른 농가의 풍년을 기원하게 되는 자리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속도를 배려하고 놀 공간을 만들어 준다.

언제부터인지 노동의 가치는 모두 돈으로 환산하고 땀과 수고는 모두 등가교환 관계로 바꿔버렸다. 일을 위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과감히 제거해버리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사람도 말이다. 이런 시대에 ‘두레’는 우리가 배워야 할 가치를 알려주고 있다.

▲ 아이들과 함께 벼베기 ⓒ정아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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