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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나의 사립학교 생존기 6
홍경종 교사 | 승인 2024.05.18 02:23
▲ 옛날 제주에는 집집마다 ‘돗통시’가 있었다. ‘돗’은 돼지를, ‘통시’는 뒷간을 뜻하는 말로 돗통시는 돼지우리와 화장실을 겸한 공간이다. 한 남자아이가 디딜팡을 딛고 앉아 용변 보기 시범을 보여 주고 있다. ⓒ제주학연구센터/연합뉴스

너무나 혹독했던 그 해 가을. 유치원 초청 행사준비는 공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행사장을 장식할 작품들을 생산해내는 것이 또 일이었는데, 아이들 그림을 전시하는 정도야 이런 행사에서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고 크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대략 1미터 정도 사이즈의 입체 조형물을 출품하는 일이었다. 그것도 ‘퀄리티가 철저하게 보증된’것을 제출해야 한다는 교장의 서슬 퍼런 지시에 선생님들의 한숨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대체 뭘 만들어야 할지를 몰라서 이틀 정도는 아무 준비도 못하고 그냥 흘려보냈다. 사립은 수업이 늦게 끝나서 업무를 할 시간이 부족했고, 그래서 야근을 하는 일이 잦았다. (물론 초과근무 수당 같은 것은 판타지에나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에 다른 학급들의 준비상황을 목격했는데 순간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밤중의 교실에 미술을 전공한 학부모들이 동원되어 예의 그 거대조형물을 만들고 있는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물론 그 분들은 본인의 자녀와 담임 선생님을 ‘위해서’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러 오신 분들이었겠지만, 내가 봤을 때 이건 분명 ‘아니어도 너무 아닌’ 것이었다. ‘대체 이 행사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래서 다음날 아이들과 조형물에 관한 논의를 했다. 비록 어른들의 탐욕에 의해 동원되는 행사라 할지라도, 그 가운데서 우리가 즐거움과 의미를 찾자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사회시간에 배웠던 옛날 ‘변소’를 만들어보자고 했고 충분히 의미와 재미를 담을 수 있다 판단하여 그것으로 결정했다.

사비를 털어 조형물의 뼈대를 만들 각목을 구입했고 공중전화 박스 사이즈의 직육면체를 견고하게 만든다 생각했는데, 국민학교 실과시간과 군대에서 배운 톱질과 망치질을 이 때 좀 써먹었다. 그리고 희망하는 아이들과 함께 야근하며 작품을 제작했다.

아이들은 우드락을 자르고, 색종이로 꾸미거나 그림을 그려서 건물의 외벽을 만들었다. 비록 아이들과 함께 작업한 것이라 교장이 말한 그 ‘퀄리티’는 맞추지 못했지만, 만드는 과정은 충분히 교육적이었다. 또 결과물도 실제 아이들이 들어가 볼 수 있는 형태였기에, 행사의 전시물중 가장 인기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그러나 이후 교무부장에게 전달받은 지시는 충격적이었다. 교장이 이 작품을 보고 ‘퀄리티’가 떨어진다고 화를 냈다, 그러니 작품을 철거하고 다시 새롭게 제작하라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반문했다.

“이 작품을 밤늦게까지 아이들과 고생하며 만드는 과정을 보시지 않았습니까? 아이들이 받을 상처는요?”
“나야 알지, 그런데 교장선생님 지시인걸 어떡해. 아이들한테는 잘 설명하고 부모님들 도움 받아서 좀 근사한 것으로 다시 하지 그래?”
“아니오! 전 못합니다.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이 사람아, 왜 이리 꽉 막혔어? 우리도 좋아서 하는 게 아니잖아.”
“다른 지시들은 다 따랐지만 이것만큼은 죽어도 못합니다. 교장선생님께 그렇게 전하세요. 저 새끼 또라이라고.”

우여곡절 끝에 행사날은 다가왔고, 예의 그 작품은 원형을 보존한채 그대로 전시했다. ‘홍보’를 위해 아이들의 꿈과 마음을 짓밟으려 하는 이런 곳에서는 더 이상 근무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만약 교장이 징계의 칼을 빼든다면 그 해를 마무리하고 학교를 그만둘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교장이 말한 ‘퀄리티 떨어지는’ 그 작품이 유치원 아이들에게는 가장 인기있는 조형물이었고, 그렇게 이 사건은  행사가 끝나면서 조용하게 정리가 되었다.

결과가 좋았기 때문에 과정을 넘어가 준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이 일로 인한 앙금과 후폭풍을 또 감당해내려니, 이곳에서 나의 미래는 없을 것 같았다. 행사를 즐기며 티없이 웃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말할 수 없는 아쉬움과 슬픔이 밀려왔고, 그렇게 혹독했던 우리의 가을은 끝이 났다.

홍경종 교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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