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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물만 마시면 됩니까?출애굽기 강해 14(출 15:22-27)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 승인 2024.05.19 02:11
▲ 마라의 쓴 물은 당연한 울부짖음이었지만 그 밑에는 불신이 숨어 있었다. ⓒGetty Images

홍해바다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다시 행군을 합니다. 사흘을 걸어 광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만난 것은 또 다시 힘든 현실이었습니다. 마실 물이 없는 것입니다. 물이 있기는 있는데 그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참 안 좋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구원하시고 그렇게 돌봐주시는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조금만 힘들면 불평하고, 조금만 맘에 안 들면 하나님을 배신하네. 금송아지 만들고 우상을 섬기고... 야, 이스라엘 백성 참 못 됐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사흘 길은 말 그대로 3일 동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숫자는 매우 상징적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켜 파라오에게 ‘내 백성이 광야로 사흘을 걸어가서 나를 경배하게 해라’ 하고 요구하시는데, 그 사흘도 3일이 아닙니다. 셋이라는 숫자는 완전한 숫자입니다. 온전한 날입니다. 3일만 걸어가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광야로 들어가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3일도 이스라엘 백성이 달랑 3일을 걸어갔다는 것이 아닙니다. 광야길을 완전히 끝까지 걸어갔다는 말입니다. 내 삶의 모든 시간을 하나님께서 걸어가라고 하신 그 길로 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안타깝게도 그들이 마주한 것은 물이 없는 현실이었다는 것입니다. 출애굽의 하나님을 믿고 온 삶을 광야에 던졌는데 그들이 만난 것은 고통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의 원망은 한편으로는 정당해 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온 삶을 하나님께 던졌는데 기껏 돌아오는 것이 굶주림이고 목마름이라면, 누가 원망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바로 이 원망의 지점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구원이 시작됩니다.

백성들의 원망을 들은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십니다. 원망하는 백성들을 심판하고 징계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백성들을 위해서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구원은 어디에서 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잘 믿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착하고 선하게 살아야 구원을 받겠죠? 그게 당연하잖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의 위대하신 면이에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 생각을 뛰어넘으시는 분입니다. 누가 봐도 착하게 선하게 구원받을만하게 살아서 구원받으면, 그렇게 구원하시면 하나님이 아니죠.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의 원망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임합니다. 오히려 원망을 구원의 통로로 이용하십니다. 우리 삶 속의 부정적인 것, 원망이라고 하는 부정적인 것을 구원이라는 최고의 선으로 바꾸어 놓으십니다. 이게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원망은 절망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원망은 하나님의 사람을 일하게 하고, 그 일이 마침내 우리를 구원합니다.

이 구원의 정체가 무엇일까요? 26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나는 주 곧 너희를 치료하는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치료의 하나님’, ‘치유의 하나님’, ‘여호와 라파’, 하나님의 구원의 정체가 바로 이것입니다. 치료해 주시는 것, 치유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베풀어 주시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오늘 목이 마른 백성들에게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신 것이 구원이 아닙니다. 진정한 구원은 그들을 치유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쓴 물’의 정체가 뭘까요? 광야로 들어간 백성들은 물을 찾습니다.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물을 찾으려 애씁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물을 찾아냅니다. 우리는 물을 찾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을 찾는 힘이 우리에게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힘으로 찾아낸 물이 마실 수 없는 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쓴 물’은 그저 그 물 맛이 쓰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힘으로 찾아낸 것, 우리의 힘으로 일궈낸 행복은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없는 가짜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가짜 생수라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물을 찾아내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마실 수 없는 물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복이 복이 아닙니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저 좋은 것을 ‘찾으려고만’ 노력합니다. 그렇게 찾은 물을 마실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물로는 결코 갈증을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계속 우리는 ‘우리 힘으로만’ 찾으려 합니다. 바로 이것이 치유되어야 할 우리의 현실입니다.

헛된 것인 줄 알면서 그 헛된 것을 계속 찾는 우리, 그 헛된 것에 계속 의지하는 우리, 헛된 것을 찾기 위해 우리의 모든 힘을 쏟아 붇는 우리, 온 힘을 다해 헛된 것을 찾다가 지쳐버린 우리, 그래서 ‘마라, 마라! 쓰다. 쓰다!’ 원망만 하고 있는 우리, 이게 바로 치유되어야 할 우리의 현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짜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그러고 보면 마라라는 곳은 우연히 들른 곳이 아닙니다. 광야를 이리저리 떠돌다가 우연히 머물게 된 장소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셔서, 주도적으로 면밀하게 이끌어오신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원망할 것을 다 알고 계셨어요. 그래서 그 원망을 구원으로 바꾸시기 위해서, 이 모양 이 꼴인 백성들을 치유하기 위해서. 일부러 마라로 이끌어 오신 겁니다.

우리의 삶이 힘들다고 걱정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지금 일부러 우리의 삶을 이 곳으로 인도하신 겁니다. 하나님이 내 삶을 계획하시고, 내 삶을 주관하시고 주장하셔서 지금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지금 고난이 있다면, 고통이 있다면, ‘쓴 물’이 있다면, 원망하지 마세요.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원망해도 되요. 그런데 ‘하나님께’ 원망하세요. 어디 딴 데 매달리지 말고, 원망을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 매달리시기 바랍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징조인 줄 믿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치유하시기 위해, 나의 못난 영혼을 고쳐주시기 위해, 새로운 삶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해 주시기 위해서, 내 삶에 ‘쓴 물’을 허락하셨음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원망하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나는 심판의 하나님이다!’ 하고 우리를 혼내지 않으십니다. ‘나는 치유의 하나님이다’ 하고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치유하십니까? 먼저 우리 삶의 환경을 치유하십니다.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십니다. 눈앞에 힘든 일들을 해결해 주십니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셔요. 육신의 질병을 고쳐주시고, 경제적인 문제, 금전적인 문제, 직장의 문제, 학업의 문제, 자녀의 문제, 가정의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그런 모든 문제들을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간섭하시고 주관하여 주십니다. 인생의 모든 ‘쓴물’을 ‘단물’로 바꿔 주십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수준에서 만족합니다. 당장 내 눈앞의 문제만이라도 해결되면 너무나 감사하죠. 얼마나 기쁩니까? 그런 응답도 못 받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요. ‘아멘, 할렐루야’죠.

그런데 진짜 치유는 이제 시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내면을 치유하십니다. 우리의 원망을 감사로 바꿔 주십니다. 인생 앞에, 하나님 앞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가? 진짜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 아닙니까? 내 마음이 하나님 앞에 올바른 마음이 되고, 원망이라는 삶의 태도가 감사라는 삶의 태도로 바뀌면, 당장 내 눈앞의 문제가 해결되느냐 마느냐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내 마음이 치유되면, 앞으로 닥치게 될 모든 문제들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렇게 우리 마음을 치유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치유,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그렇게 되면 내 영혼이 치유돼요. 영혼이 치유되면, 그때부터 우리의 삶은 나라고 하는 한 인간의 삶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져서, 하나님과 하나 되어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일을 해나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돼요. 백성들이 원망할 때, 누가 나섭니까? 모세가 나서 기도합니다. 원망을 구원으로 바꾸어 내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요. 모세가 바로 이렇게 치유된 영혼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사람, 하나님과 하나 된 사람, 인생의 모든 ‘쓴물’ 앞에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죠.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뜻이 내 생명의 본성이 되어버린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려고 해도 어길 수 없는 그런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버린 것 같은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게 진정으로 치유된 사람입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 치유되어야 할 나의 문제들을 가지고 와 보세요. 주님 앞에 기도로 내려 놓고 고백해 보세요. 지금 하나님께 치유 받아야 할 나의 문제가 뭡니까? 육신의 질병이 있습니까? 마음의 아픔이 있습니까? 삶의 문제가 있습니까? 자녀의 문제가 있나요? 인간관계에 갈등이 있나요? 기도합시다.

원망으로 시작해도 됩니다. 다만 주님 앞에 기도하면 됩니다. 기도 중에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우리를 치유해 주실 줄 믿습니다.

호세아서 6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유해 주시는 목적이 나옵니다. 호세아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주님께로 돌아가자. 주님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 주시고, 우리에게 상처를 내셨으나 다시 아물게 하신다. 이틀 뒤에 우리를 다시 살려 주시고, 사흘 만에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실 것이니, 우리가 주님 앞에서 살 것이다.” 아멘.

어떻게 하자구요? ‘하나님께로 돌아가자’구요. ‘하나님 앞에 서자’구요. 하나님은 왜 우리를 치유하십니까? 우리가 치유된다고 하나님께 무슨 좋은 일이 있습니까? 예, 좋은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치유의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겁니다. 하나님을 똑바로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겁니다. 호세아 6장 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 불살라 바치는 제사보다는 너희가 나 하나님을 알기를 더 바란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사랑하며 사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그렇게 똑같이 우리의 마음이 이해받고 소중하게 여김 받고, 하나님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겁니다. 그 사랑 안에서 행복하게 사는 겁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유일한 목적입니다.

오늘 마라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모든 것 내어놓고 기도함으로써, 하나님께 온전히 치유 받아, 하나님과 깊은 사랑을 나누며 복되게 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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