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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성령이 시키시는 대로”(사도행전 2:1-13)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4.05.20 02:44
▲ John Lawson of Goddard and Gibbs, 「The Descent of the Holy Spirit」 (Stained glass, 1992) ⓒhttps://loandbeholdbible.com/2017/06/05/the-descent-of-the-holy-spirit-acts-21-11/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한 주간 평안하셨다면, 대단한 믿음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왜냐하면, 사실 삶은 하루도, 잠시도 평안할 수 없도록 여러 일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돈이 없어서 늘 전전긍긍 하기도 하고, 갑자기 아픈 곳이 생기거나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자녀 또는 손주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뿐입니까? 타인들은 언제나 내 기준에 미치지 않는 행동을 함으로써 나의 분노를 유발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 그리고 조건 속에서 평안할 수 있다는 건 어떻습니까? 대단한 믿음이라고 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평안하려고 해도 평안할 수 없는 이러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성도가 평안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안에 완전한 평안이 주어졌기 때문에 성도는 어떠한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도는 평안을 위해 시선을 나의 밖, 외부로 돌리지 않습니다. 이미 그곳에는 평안이 없음을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시선을 나의 안, 내면으로 돌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요한복음 14:27)

성도는 예수님의 이 말씀에 따라 시선을 밖이 아닌 안으로 돌려 평화를 찾고, 평안을 찾고, 마음에 근심과 두려움을 벗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헛된 목적을 향해 나아가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성도를 혼란케 하는 세상의 그릇된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셔서 평안을 누리게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사도행전 본문에서 제자들은 오순절에 한곳에 모여 기도를 하다가 성령을 받습니다. 이 성령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도 전에 모든 일을 예견하시며 제자들에게 보내겠다고 약속하신 바로 그 성령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다. 그리하면 아버지께서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셔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계시게 하실 것이다. 그는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므로, 그를 맞아들일 수가 없다.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안다. 그것은, 그가 너희와 함께 계시고, 또 너희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요한복음 14:15-17)

예수님이 약속하신 이 성령은 앞으로 제자들에게 임재하셔서, 제자들이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모든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할 것이고, 생각나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며,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요한복음 14:26)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말하고 행해야 할지까지도 알려주시는 성령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사도행전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령의 역할을 보면,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행전 1:8)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모든 것을 가르쳐주시며,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그 말씀을 살아낼 수 있도록 능력까지 주시는 분이십니다.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당시에는 제자들이 오늘날에는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이 모든 것을 하시고, 이루어 가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몇 주 전부터 주일 말씀 시간에 반복적으로 하나님을 만난 뒤, 또는 믿음을 가진 뒤, 또는 성령이 나와 함께 계심을 안 뒤의 삶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삶의 목적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크든 작든 성공이나 이 세상에서의 영향력이나 타인보다 좀 더 잘난 삶을 살고 싶어서 아등바등 살아갑니다. 하지만 성도는 어떻습니까? 예수님 닮기를 갈망하는 삶,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 된 삶을 목적으로 살아갑니다. 목적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렇기에 가는 길이 다르고, 도착지점도 다릅니다.

세상의 욕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과 싸울 이유도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성도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중요했던 것이 더 이상 중요해지지 않고, 가치 있게 여겼던 것들이 무가치해지는 놀라운 신앙의 체험을 하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쫓는 모든 허무한 것을 더 이상 좇지 않아도 되는 해방감은, 그야말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직접적으로 내 삶을 통해 경험되는 은혜입니다.

성령강림주일,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해 분명하게 알아야 하는 사실은, 성령은 성도에게 다른 삶을 살도록 안내하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한다는 점입니다. 이쯤에서 우리는 고민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믿음 생활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도움을 받기 위해 신앙생활을 이어가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도, 기도하는 것도, 헌금을 내는 것도 ‘내가 이렇게까지 하면,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들에 도움을 주시겠지?’라는 잘못된 목적으로 신앙의 행위를 합니다.

그렇게 얻고자 하는 목적, 이 잘못된 목적에는 참 생명, 기쁨, 평안이 없습니다. 그 모든 추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늘 불완전한 것들뿐입니다. 참 생명, 기쁨, 평안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갈 때 얻고,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참 생명, 기쁨, 평안을 누리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성도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인 사도행전 2장을 보겠습니다. “1 오순절이 되어서, 그들은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었다. 2 그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3 그리고 불길이 솟아오를 때 혓바닥처럼 갈라지는 것 같은 혀들이 그들에게 나타나더니,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4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각각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제자들은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말했습니다. 여기에 오늘날 성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이 있습니다. 내가 억지로 하려고 하지 않고,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하는 신앙생활이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으려면 내 의도를 지우거나, 비워야 합니다. 내 의도가 살아 있는 한 성령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를 들을 수 없고, 깨달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변에 고집이 센 사람을 잠시 떠올려 보십시오. 그에게 어떤 좋은 조언을 했을 때 그 사람이 성도님의 말을 들었습니까? 그 사람은 누구의 말도 듣지 않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 생각이 가득해서 그렇습니다. 자기가 옳기 때문입니다.

나를 비워 성령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내가 무엇을 말하고, 선택하고, 행동해야 할지를 깨닫게 된다면 그 삶은 어디로 향하게 됩니까? 오늘 5절 이하의 말씀을 다시 읽도록 하겠습니다.

“5 예루살렘에는 경건한 유대 사람이 세계 각국에서 와서 살고 있었다. 6 그런데 이런 말소리가 나니, 많은 사람이 모여와서, 각각 자기네 지방 말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서, 어리둥절하였다. 7 그들은 놀라, 신기하게 여기면서 말하였다. "보시오, 말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모두 갈릴리 사람이 아니오? 8 그런데 우리 모두가 저마다 태어난 지방의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이오? 9 우리는 바대 사람과 메대 사람과 엘람 사람이고, 메소포타미아와 유대와 갑바도기아와 본도와 아시아와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와 이집트와 구레네 근처 리비아의 여러 지역에 사는 사람이고, 또 나그네로 머물고 있는 로마 사람과 11 유대 사람과 유대교에 개종한 사람과 크레타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인데, 우리는 저들이 하나님의 큰 일들을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듣고 있소." 12 사람들은 모두 놀라 어쩔 줄 몰라서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오?" 하면서 서로 말하였다. 13 그런데 더러는 조롱하면서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를 비워 성령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내가 무엇을 말하고, 선택하고, 행동해야 할지를 깨닫게 된다면, 세계 각지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하신 큰 일’을 알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 된 삶입니다. 정의를 이루고, 평화를 이루고, 용서를 실천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 된 삶을 살 때 이런 삶 속에서 참 생명, 평안, 기쁨을 성도는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삶을 위해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고, 성령님을 보내셨습니다. 다시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이러한 삶에 참 생명, 평안, 기쁨이 있습니다. 집 하나 더 생기고, 재산이 불어나고, 자녀들이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직장을 갖고, 더 건강해져도 그 모든 것은 불완전할 뿐만 아니라 정말 우리가 갖고 싶고 누리고 싶은 평안과 기쁨을 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공부를 하지 않는다거나, 건강을 위한 무언가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알고는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거기에는 참 생명, 평안, 기쁨이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주의해야 할 점은 ‘그래!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겠어!’라고 할 때 내 마음대로 이렇게 사는 게 증인으로 사는 거겠지? 하지 않고,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어렵죠?

제가 성도님들께 강원노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목사님들이 반반으로 나뉘어서 늘 싸운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5년간 이런 강원노회를 지켜보다가 이번에 강원노회 서기로 입후보를 하면서 반반으로 나뉜 이 노회가 하나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역시나 노회가 열렸을 때도, 노회가 끝나고 나서도 서로를 비난할 만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노회 서기로서 이쪽과 저쪽의 말을 들으면서 어떻게든 서로 화해하고, 하나가 될 수 있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의견을 내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노회 서기가 되고서 한 달도 지나지 않은 동안에 제가 이쪽과 저쪽 모두를 비난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반반으로 나뉜 목사님들은 반대편만 비난하는데, 저는 양쪽 모두를 비난하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입으로는 화해와 하나 됨을 말하면서 속으로는 비난과 판단을 끊임없이 하고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제가 노력한 만큼, 제 뜻대로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설득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곤 깨달았습니다.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로 가져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다락방에 모여 그저 성령의 임재를 기다리며 기도한 것처럼, 저도 소용돌이 속에서 가만히 성령의 인도하심을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어야 한다, 저렇게 되어야 한다는 모든 생각과 의도를 비우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비난하고 판단했던 생각과 마음을 멈추고 사랑으로 볼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화해시키고, 하나 되게 하는 것보다 제가 비난과 판단을 멈추기를 바란 것이 성령님의 뜻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성령님이 귀에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또는 ‘그건 이런 뜻이야, 저런 뜻이야.’라고 말씀해 주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령님은 분명하게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상황에 있을지라도 성령님은 여전히 함께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증인 된 삶을 통해 참 생명, 평안, 기쁨을 누리기를 포기하지 않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결국 알게 될 것이고, 깨닫게 될 것이고, 인도하심 속에 살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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